집회·결사의 자유는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이다. 하지만 집회로 인해 발생하는 불편과 위험이 시민의 행복추구권 등 또 다른 기본권과 충돌할 경우, 사회적 공감대를 얻지 못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집회 형식을 빌려 법의 사각지대를 파고드는 이른바 ‘유령 집회’와 ‘알박기 집회’가 비일비재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에따라 과태료 부과 또는 집회 우선순위 제한을 포함해 집회방해죄 적용도 검토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게 일고 있다.
지난해 10월 오전, 과천시내 중심가에 있는 한 빌딩 앞 공터. 이날 이 곳에는 오전 8시부터 오후 7시까지 한 시민단체의 집회가 예고돼 있었다. 신고된 인원은 모두 50명.
그러나 집회 시간이 됐지만 집회 참가자는 단 한명도 없었다. 시위 구호가 적힌 패널이 부착된 컨테이너 구조물만 덩그러니 있을 뿐이었다. 3시간 뒤 집회 현장을 다시 가봤지만 사정은 마찬가지로 집회는 열리지 않았다.
주민들은 불편을 호소한다. 시각장애 2급 A씨(36)는 “길을 가다 구조물에 부딪히거나 넘어질까 봐 이 곳 주변에 오면 늘 불안한 마음으로 조심해서 지나간다”며 “우리같은 시각장애인에게는 생명과도 직결될 정도로 위협적”이라고 말했다.
◇"집회는 없고 점유만 있다"... 96%가 유령집회
집회 신고만 하고 실제 집회는 하지 않는 것을 이른바 ‘유령 집회’라고 한다. 더 나아가 집회는 거의 하지 않으면서 장기간 특정 장소를 선점해 집회 신고를 하는 방법으로 다른 단체의 집회나 행사를 차단하는 것은 ‘알박기 집회’라고 한다.
19일 경기신문이 입수한 경찰청 공공데이터포털 자료를 보면 전국 집회 신고 건수는 2021년 357만9541건에서 2022년 430만4917건으로 37% 가량 증가했다.
반면 실제 집회가 열린 건수는 2021년 8만6348건, 2022년 7만6031건으로, 미개최율이 98%에 달하고 있다. 2023년에도 290만7251건이 신고됐으나 개최 건수는 7만9395건에 불과하다.
지난해 1월부터 10월까지도 미개최율은 96.6%에 달하고 있다.
유령집회 또는 알박기 집회의 경우 집회를 통해 자신들의 주장을 알린다는 것보다는 장소 선점이 주목적이다. 후순위 집회 신청자가 나타날 경우 천막이나 구조물을 설치해 형식적인 집회를 이어가는 방식도 반복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주민 불편과 도시 미관 저해는 물론이고 경찰과 지자체의 행정력 낭비 또한 심각하다는 지적이다.
◇법은 있지만 제재는 ‘제한적’
정부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6년 집회및시위에관한 법률을 개정했다. 집회 철회 신고를 하지 않을 경우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한 것이다. 그러나 이 법은 사문화된 실정으로, 실제 집회 현장에서는 제대로 적용되지 않고 있다.
과태료 부과의 경우 선순위 단체와 후순위 단체의 중복 집회가 발생한 경우에만 가능하다. 동일 장소·시간대에 다른 집회 신고가 없으면, 집회를 열지 않아도 제재 대상에서 벗어난다. 결과적으로 ‘신고만 하고 열지 않는 집회’를 막을 장치는 사실상 없다는 게 경찰과 지자체 입장이다.
유령 집회로 인한 부담은 고스란히 경찰에 전가된다. 집회 신고가 접수되면 경찰은 참가 인원을 기준으로 경비 규모를 산정하고, 여러 차례 동향을 점검해야 한다. 경찰 관계자는 “집회 당일 아침에 갑자기 집회를 열지 않겠다고 통보하는 경우도 잦다”며 “집회 직전까지 인원을 반복 확인해야 해 행정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참가 인원을 과도하게 부풀려 신고하는 이른바 ‘뻥튀기 집회’도 문제다. 경기신문 취재 결과, 100명 이상 집회를 신고한 사례 중 상당수는 실제 참가 인원이 신고 인원에 크게 못 미치거나 아예 집회가 열리지 않은 경우가 허다했다.
이러한 현상은 대기업 사업장 등에서 주로 벌어지고 있다. 집회가 열리지 않아도 현수막 등은 장기간 내걸려 방치되고 있어 도심 미관 훼손과 함께 주민 불편을 초래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경기신문 2026년 1월 19일자 6면 보도)
사정이 이런데도 경찰과 지자체 모두 “집회가 열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현수막 철거 등 적법한 행정 조치를 하지 않고 서로 책임을 떠넘기기에 급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선 순위 박탈해야”
현행 집시법상 집회 인원 과장 신고 자체를 제재하기 어렵다. 집회는 허가제가 아닌 신고제이기 때문이다. 특히 인원 과장을 이유로 신고를 반려할 경우 기본권 침해 논란이 벌어질 수도 있다.
이에 대해 법조계에서는 제재의 방향을 처벌이 아닌 ‘불이익 부여’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경기중앙변호사회 관계자는 “상습적인 유령집회나 알박기집회 주최자에 대해서는 집회 우선 순위를 제한하거나 집회방해죄를 적용해야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알박기 집회로 타인의 집회 기회가 침해되거나 행정력 낭비가 발생한다면 권리남용의 문제로 접근할 수 있다”며 “과태료 부과나 반복 위반 시 제재 강화를 논의할 때가 됐다”고 덧붙였다.
[ 경기신문 = 김태호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