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현대자동차가 생산 현장에 로봇을 투입하기로 한 결정에 대해 노조가 강하게 반발하며 저지에 나섰다는 보도를 접했다. 그 소식을 들으며 분노보다 먼저 든 감정은 피로감이었다. 우리는 언제까지 같은 논쟁을 반복해야 하는가. 기술은 이미 다음 단계로 이동했는데, 노동을 둘러싼 언어와 투쟁 방식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고 기술은 이미 다음 단계로 이동했는데, 노동계의 투쟁 방식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
노조의 주장은 익숙하다. 로봇은 일자리를 빼앗고, 자동화는 노동자를 거리로 내몬다는 것이다. 이 논리는 역사적으로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산업혁명 역시 대량 실업과 사회적 혼란을 낳았다. 그러나 지금의 자동화는 과거와 질적으로 다르다. AI와 로봇은 인간의 팔과 다리를 대체하는 수준을 넘어, 생산 과정 전체에서 인간의 개입 자체를 줄이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일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구호 하나로 이 변화를 막을 수 있다고 믿는 척한다.
냉정하게 말해, 로봇을 막아서 지켜낼 수 있는 일자리는 이미 미래의 일자리가 아니다. 글로벌 경쟁 속에서 자동화를 거부한 기업은 도태되고, 그 결과 남는 것은 보호된 노동이 아니라 사라진 산업이다. 로봇을 거부한다고 노동이 존속되는 것이 아니라, 로봇을 받아들이지 못한 구조가 먼저 무너진다. 기술을 막는 투쟁은 결국 노동자를 보호하지 못한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노조의 투쟁이 여전히 ‘고용 유지’라는 단일 목표에 갇혀 있다는 점이다. 자동화로 사라지는 일자리는 특정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문명적 전환의 결과다. 그럼에도 노동은 여전히 생존의 유일한 조건으로 설정되고, 노동에서 밀려난 인간은 곧바로 실패자이자 잉여로 취급된다. 이것이 바로 문제의 핵심이다. 노동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노동만이 인간의 자격을 증명하던 시대가 끝나가고 있음에도 우리는 그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로봇은 노동자의 적이 아니라, 노동이라는 굴레에서 인간을 해방시킬 잠재력을 지닌 존재다. 문제는 로봇이 아니라, 로봇이 만들어낸 부와 효율을 누가 소유하고 어떻게 분배하느냐다. 로봇이 생산을 담당한다면 인간은 더 이상 단순한 임금노동자가 아니라, 생산 구조의 소유자이자 기여자로 재정의되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논쟁에는 이 질문이 빠져 있다.
AI 시대의 노동 문제는 더 이상 “일자리를 지킬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노동이 줄어드는 사회에서 인간은 무엇으로 존엄을 증명할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로봇을 적으로 삼는 순간 인간은 미래를 거부하게 된다. 필요한 것은 저지가 아니라 전환이다. 노동을 지키는 싸움이 아니라, 노동 이후의 인간을 설계하는 싸움이 지금 우리에게 요구되고 있다. 로봇은 이미 현장에 들어왔다. 남은 선택지는 명확하다. 과거의 노동을 붙잡고 몰락을 함께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기여의 질서를 설계하며 인간의 자리를 재정의할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지 않는 한, 로봇과의 싸움은 결국 인간 내부의 싸움으로 되돌아올 것이다.
결국 AI와 로봇의 확산은 노동의 위기가 아니라 상상력의 위기다. 우리는 기술의 속도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 없이도 인간이 존엄할 수 있다는 발상을 아직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그것이 문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