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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기의 말에게 말걸기] 있다 VS 없다

 

스페인 그라나다의 명 건축물 알함브라 궁전에 갔을 때 들은 슬픈 이야기가 있다. 이 궁전에 살았던 나스르 왕조의 한 왕이 있었는데, 그는 정치적 위기를 맞아 자신의 권력에 도전하려는 그의 정적들인 귀족과 장군들을 제거하려 했다. 왕은 음모를 꾸몄다. 왕비가 정적들과 부정한 관계로 내통했다는 죄를 조작했다. 왕비와 함께 누명을 쓴 귀족과 장군들은 알함브라궁 내의 ‘사자의 궁전(Court of the Lions)’에서 처형되었다. ‘없는 사실’을 ‘있는 사실’로 만든 정치적 공작이었다.

 

모든 다툼의 근원에는 ‘있다’와 ‘없다’의 대립이 있다. ‘있다’와 ‘없다’의 대립은 ‘이다’와 ‘아니다’의 대립이 될 수 있다. 영어의 ‘Be’ 동사는 ‘있다’의 뜻도 되고, ‘이다’의 뜻도 된다. ‘있다’와 ‘이다’는 같은 범주에 있다. ‘있다’는 무엇이 존재함을 나타내고, ‘이다’는 무언가를 지정(규정)할 때 동원된다. 있지 않는 것을 지정(규정)할 수 없고, 지정(규정)할 수 없는 것을 두고 그것이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있다(이다)’와 ‘없다(아니다)’의 문제는 과학의 세계에서는 사실과 진리의 문제를 다루는 인식의 대극점을 차지한다. 그만큼 과학은 ‘있다(이다)’와 ‘없다(아니다)’를 밝히기 위한 과학적 논증과 탐구를 중시해 왔다. 그렇게 함으로써 과학적 진리·진실에 대한 인류의 믿음을 구축해 왔다. 그러나 인간의 과학 활동도, 인간 사회의 권력 작용에 휘말리는 순간 조작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독일계 헝가리인 이그나츠 제멜바이스(Ignaz P. Semmelweis, 1818-1865)는 빈(Wien) 병원의 산부인과에서 조수로 일하면서, 산모의 높은 사망률이 분만 중 세균 감염에 있음을 주장했다. 이 시기 의학계에는 세균이 감염을 일으킨다는 이론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기에 아무도 감염 방지를 위해 손을 씻지 않았다. 미신과 민간요법의 영향을 받은 원로 의료인 집단은 강한 정치적 파워를 가지고 제멜바이스를 무시했다. 제멜바이스는 실증적인 통계를 제시하였음에도, 오히려 그가 ‘의대생이 산모를 죽여 왔다’고 말한 걸로 몰아갔다. 기성 의학계는 ‘있다’를 없다’로 덮으려고 제멜바이스의 주장을 ‘아니다’로 몰고 갔다. 그의 주장을 인정하면 의사들의 과실로 산모들이 사망했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결국 병원에서 해고당한 제멜바이스는 정신병동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다.

 

조작(造作, Fabrication)은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만들어 버리거나, 있는 것을 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행위이다. 알함브라궁 왕비의 이야기는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만드는 조작이었고, 제멜바이스의 비극은 있는 것을 없는 것으로 만들어 간 조작이었다. 그 과정에 불합리와 무리가 따르는 것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권력은 조작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다.

 

지금 우리 정치권은 어떤 수사를 두고, ‘있었다’와 ‘없었다’의 조작 시비가 소음처럼 요란하다. 조작 주장과 조작 몰이 주장으로 어지럽다. 조작 몰이는 조작을 조작하는 것에서 멀지 않다. 잠시 이긴 것처럼 보이기 위한 신경전도 대단하다. 눈앞의 이익에 쫓겨 지금 당장 이기고 봐야 한다는 데에 급급한 느낌도 준다. 그러나, 역사와 양심 앞에 부끄러움으로 남을 일이라면 먼저 그것을 두려워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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