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월 9일은 차기 대통령 선거일이다. 225일 남았다. 우리나라 대통령은 5000만 씨알들과 8000만 민족 전체의 삶과 내용, 낱낱의 개인들과 공동체의 안위에 지대한 영향력을 갖는다. 뿐만 아니라, 소위 G8의 일원이 됨으로써, 지구촌 전반에도 비중 높은 인물이 된다. 과연 누가 될까? 솔직히 말하면, 지금 장부에 이름 올리고 뛰는 이들 대부분 마치 '전국상인연합회'의 회장 자리를 놓고 다투는 듯하다. 하기야, 당선만 되면 100만 명의 공무원들이 하던 일 그대로 하고, '여의도'는 변함없이 잘 굴러갈 텐데 무슨 문젠가? 취임하면 가장 먼저 공약들을 손본다. 캠페인 기간에 마구 던졌던 '뻥카'들은 섞어찌개 식으로 합치거나 과감히 폐기하면 되는 것. 야당이 따지고 들면, 겸손 떨며 사과하면 된다. '허니문 기간' 타령하는 기특한 기레기가 반드시 나오니 걱정할 것 없다. 특급 장사치는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언동으로 목적을 이룬 다음, 주판 튀겨서 이문이 큰 쪽으로 말을 바꿀 줄 아는 자다. 그래서 개나 소나 닭이나 다 나와서 구세주처럼 약을 파는 거다. 나와 동지들은 요즘 대선 도전자들의 저질 행태에 역겨움과 분노를 금치 못하고 있다. y와 c가 특
이제 갓 마흔이다. 스물아홉에 고향 함경도 청진을 떠났다. 대부분의 탈북민들처럼 그도 몇 개국을 경유하여 목적지 서울에 도착했다. 태영호나 지성호처럼 황송한 신분(국회의원)이 된 이들도 있지만, 대다수는 어렵게 산다. 10년이 지났다. 그 사이, 그는 이화여대 국문과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일본에서 공직자로 일하던 남편을 만나 가족을 이루었다. 그리고 2년간 일본에 살면서 남편과 함께 통일에 대한 그림을 그렸다. 지금은 신촌에서 네 살 된 딸 하나와 다복하게 살고 있다. 객관적으로, 탈북민들 가운데 이 정도로 안착한 경우는 전체의 1%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빛나는 명함의 주인공은 아니지만, 좀 다른 시각으로 보면, 그는 정치 경제 분야에서 세속적으로 크게 성공한 소수의 탈북자들과 질이 다른 성취를 해왔다. 이는 점점 더 탄탄해지고 규모도 더 확장되고 있다. 그와 긴 시간 대화를 나눈 뒤에, 그에게 도움될 천사들을 모으는 중이다. 지금 남쪽에는, 목숨 걸고 가족과 삶의 터전을 떠난 뒤, 과장 없이 지옥을 건너서 마침내 서울에 들어온 북쪽 이주민들은 3만 5000명(2020년 기준)이다. 그 중 2/3는 여성이다. 그 가운데 대학생은 2천 명이 넘는다.
아동폭력, 병영폭력으로 인한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방어능력이 전무한 어린 목숨들, 정당방위 불가의 젊은 군인들이 희생된다. 가해자들은 놀랍게도 부모와 상관들이다. 천인공노할 일이다. 가해자들에게 사면이나 감형이 없는 종신형이 국민의 법감정인데 국회는 완행이다. 뿐만 아니다. 산재는 중대재해법을 비웃듯 점점 더 늘고 있다. 2020년 기준, 산재사망자는 총 2062명이며, 이중 882명은 사고사다. 하루 평균 5.6명이 여러 종류의 산재로, 2.4명이 사고로 죽는다. 국회는 전체 노동자의 35%가 일하는 5인 미만사업장은 적용대상에서 제외했다. 사고가 가장 잦은 50인 미만 사업장에는 관련법 적용을 3년이나 유예했다. 5인 이상 50인 미만 범주에서 45%의 노동자가 일한다. 김용균군의 어머니 김미숙씨는 연초 이 '엉터리법'이 통과되는 과정에서 한달 동안 단식투쟁을 했는데, 그 자리에서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사람을 살리자는 건데 왜 국회의원들이 앞장서서 방해를 하는지 모르겠다." 그게 이 나라 국회다. 씨알들은 이 저열하고 야비한 여야 야합의 3류정치를 지켜보면서, 특히 여당을 손볼 수 있는 방도가 없어 속수무책이었다. '경부 보궐선거' 참패에
중국 역사는 무궁무진의 스토리텔러다. 호기심도 제일이고 머리도 으뜸인 학자가 평생을 바쳤더라도, 그는 노년에 코끼리의 새끼발톱을 만진 인생이었다, 고 술회해야 할 것이다. 그 중 우리에게도 익숙한 '요순시대'라는 태평성세가 있었다. 4000-5000년 전이었다. 자료에 의하면, '요'(堯)는 인류역사 5000년을 통틀어 전무후무한 성군(聖君)이었다. 현대의 국가지도자들 중에는 역시 하나의 전설이 된 호세 무하카 전 우루과이 대통령이 떠오른다. 이 분은 아흔 살의 노인인데 아직도 1987년형 소형차를 운전하며 고향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요임금을 성군으로 만든 또다른 업적은 아들에게 왕위를 승계하지 않고 천하를 다스리기에 최적의 인물을 찾아다녔다는 점이다. 그 큰 올바름이 또 하나의 신화가 되어 그 장구한 세월 동안 동양세계의 정치사상과 시문학에 마치 펄펄 뛰는 생선처럼 살아있다. 정보를 종합한 결과 허유(許由)가 최적이었다. "선생이 내 자리를 이어주시오." "뱁새는 숲이 필요한 게 아니라, 나뭇가지 두셋만 있으면 됩니다. 두더지도 황하의 물을 필요로 하지 않고 그저 목을 축이면 족합니다." 왕은 다시 찾아가서 간청했으나, 허유는 그 역시 단호하게 거절했다.
최근 내가 속한 벤처기업이 신용보증기금이 정하는 '퍼스트 펭귄'(first penguin)이 되었다. 이 제도는 그 심사가 엄격한 걸로 유명하다. 1만 개의 벤처기업들 가운데 50개 회사만 합격한다니 0.5%다. 이후 상당한 지원을 받게 된다. 큰 경사다. 우리는 머지 않아 장대높이 뛰기선수처럼 높이 도약할 것이다. 코로나만 아니면, 지인들을 초청하여 잔치라도 열고 싶다. 하지만, 벤처(venture)는 인생을 통째로 거는 모험이다. 저 남극의 펭귄들은 먹고살기 위하여 바다에 뛰어들어야만 한다. 그곳에는 펭권을 잡아먹는 바다표범과 범고래 등이 기다리고 있다. 양측의 일상이고 운명이다. 그 첫번째 펭귄은 그 족속을 위하여 죽음을 불사한다. 머뭇거리던 무리는 일제히 그 뒤를 따른다. 우애가 특별하다고 알려진 이 특이조류의 섭생환경에서 집단은 과연 '퍼스트 펭귄'을 어떻게 정할까. 가장 나이 많은 펭귄의 임종의식이라면 참 좋겠다. 유투브에 젊은 시한부 교수의 '마지막 강의'가 있다. 시청을 권한다. 그는 미국 카네기 멜론대학 컴퓨터 공학부의 故 랜디 포시 박사다. 요절했다. 그가 '퍼스트 펭귄' 현상을 이론화했다. 대부분의 인간들에게 공포의 영역인 죽음을 그토록
단식 10년 전, 한 단식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오십 대초였다.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놀라웠다. 내 인생 전체를 통틀어서도 특별한 도전이었다. 2-30대에 술담배를 과하게 했다. 1년에 한두 번은 탈이 나서든 쉴 목적으로든 1주일쯤 입원하면서 일했다. 듬직하게 살아 있는 게 기적이다. 당시 나의 체중은 80kg, 키는 165cm. 이 숫자들은 몸과 정신상태가 좋지도 옳지도 않았다는 증거다. 더 정확히 말하면, 생사의 경계선을 겁도 없이 몰지각(沒知覺)으로 뛰어다녔다는 말이다. 단식 돌입 후 두 달이 되었을 때, 체중은 60kg으로 떨어졌다. 그게 정상이었다. 내 인생 중반에 참으로 쑈킹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회복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지금은 종종 막걸리 한두병쯤 하면서 살지만, 그때는 담배는 물론 술 한 방울도 안하는 일적불음(一滴不飮)이었다. 그랬더니 머지않아 오래 전 나를 떠났던 '조양'(朝陽)이 돌아왔다. 친구들에게 '미스조'가 아침마다 노크한다고 말하면, 소수만 폭소를 터뜨리고 나머지는 영문을 몰라하며 눈만 꿈벅거린다. 몸이 되살아난 것이다. 섭생 그래서 내친 김에, 식생활을 잡식에서 채식으로 변경했다. 일체의 육류는 물론, 좋아하던 바지락 칼
약 40년 전 어느 날 사회면 톱기사다. 6·25 때 월남하여 성공한 한 노인이 강도에게 살해되었다. 그는 열심히 일하여, 돈 참 많이 벌었다. 그의 여러 빌딩들 가운데 가장 허름한 게 장충동에 있었다. 노인은 그 건물의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밑 삼각진 작은 공간에서 일을 봤다. 낡은 전기장판, 전화, 오래된 치부책들 몇 권, 볼펜 두어 자루, 목침 하나가 용품의 전부였다. 점심은 항상 혼자서였고 언제나 값싼 짜장면이었다. 노인은 이렇게 살아서 부자가 되었고, 그 노하우는 비극의 원인이 되었다. 화려하고 당당한 부자들의 가슴 속에 이 노인의 영혼이 들어 있지 않을까. 어느 날 저녁, 스무살 쯤 된 청년이 침입하여 주판을 놓고 있던 노인을 놀라게 했다. “돈 내놔.” “뭐 이 도둑놈의 새끼야.” 노소(老少)가 실랑이 하던 중, 허리춤을 잡힌 청년이 위협용으로 품고 간 칼로 노인을 찔렀다. 부노(富老)의 삶은 그 시간 거기서 멈췄다. 어설픈 청년 강도의 삶 역시 사실상 끝났다. 나는 당시 20대 신문방송학과 복학생이었는데, 그 시절 수첩에 아쉬운 미담들이 적혀있다. 지갑을 털어 주면서, “앞날이 창창한 놈이 왜 이렇게 사냐? 이거 가져가 쓰고, 다음에
내가 외운 최초의 한시(漢詩)는 '대장부가'(大丈夫歌)다. 복학하여 '맹자 원전강독'을 들었는데 이 시가 너무 좋았다. 중국에는 수교 초부터 드나들었다. 현지 파트너들과 만찬을 할 때면 매번 통역사인 친구가 여급에게 백지와 펜을 부탁한다. 취기가 오른 나는 과장된 폼을 잡고 이 위대한 시를 내려 쓰곤 했다. 그러면 모두 놀란다. 한번은 그 덕분에 큰 계약을 쉽게 한 적도 있다. 중국측 대표가 맹씨였다. 그에게 이 시를 써주었다. '非常棒(비상봉)!'은 그의 칭찬. '엄청난 인물'이란다. 大丈夫歌(대장부가) 대장부의 노래 居天下之廣居(거천하지광거) 거하되 천하에서 가장 넓게 자리 잡으라 立天下之正位(입천하지정위) 서되 천하에서 가장 올바른 자세를 취하라 行天下之大道(행천하지대도) 행하되 천하에서 가장 거침 없이 나아가라 得志 與民由之(득지여민유지) 뜻을 얻으면 백성들과 함께 하고 不得之(부득지) 獨行其道(독행기도) 뜻을 얻지 못하면 혼자서 그 도를 닦아라 富貴不能淫(부귀불능음) 부귀는 그를 삿되게 하지 못한다 貧賤不能移(빈천불능이) 빈천도 그를 시시하게 만들지 못한다 威武不能屈(위무불능굴) 위력 권세도 그를 결코 굴복시키지 못한다 此之謂大丈夫(차지위대장부) 그
프랑스 하원이 건국이념 조항인 헌법 1조에 "공화국은 생물다양성과 환경보전을 보장하고, 기후변화와 맞서 싸워야 한다"는, 인류사회 전체가 직면한 시대적 요청을 명문화할 것을 압도적으로 통과시켰다. 상원을 통과하면, 마크롱 대통령은 국민투표로 확정하게 된다. 역시 프랑스답다. 이는 "프랑스는 '슬로우 푸드(slow food), 슬로우 라이프( slow life)'를 구가하는 나라가 되겠다", 는 천명이다. 실로 감동적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프랑스 대혁명(1789~1799)의 기치와 가치가 이 품격 선언의 뿌리다. 역사적 사건들은 우연 같지만 예외 없이 필연이다. 과거는 현재의, 오늘은 내일의 원인이다.1986년 이탈리아에서 시작했지만, 3년 후 '슬로우 푸드(slow food) 선언'이 파리에서 채택된 것 역시 우연이 아니다. 30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를 비롯, 전세계 180개국에서 10만명 넘게 활동하고 있다. 다음은 그 선언문의 일부다. "산업혁명으로 최초로 기계가 발명되었다. 기계는 오늘날 우리 생활의 모델이 되었다. 우리는 속도의 노예가 되었다. 기계는 우리의 소중한 관습을 망가뜨린다. 사생활을 침해하고 식사시간을 줄여서 일하도록 '패스트 푸드'(f
지난 2009년 8월, 목포대학교에서 한ㆍ일 씨알사상 포럼이 열렸다. 나는 그 학술행사의 기획위원장이었다. 그 때 가장 인상적인 발표자는 오가와 하루히사(당시 동경대학 철학과 교수)였다. 그는 특히 다석 유영모(1890-1981)의 사상에 경도되어 있었다. 그는 " 선생의 '생각의 고결함'과 '생활의 검소함'은 21세기 생태위기를 구할 수 있는 심오한 사상"이라며, "죽을 때까지 한국의 다석 유영모를 연구하겠다", 고 엄숙히 선언했다. 뭉클했다. 다석은 심지어 백 리 먼 길도 걸어다녔다. 선생은 51세부터 91세에 죽을 때까지 1일1식을 했으며, 부인과는 '해혼(解婚)'이라 하여 각방을 썼다. 평소 "인류의 모든 문제는 '食'과 '色'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했으며, 이를 실천한 것이다. 선생은 새벽 세시에 일어나서 사색과 묵상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코로나-19는 인간의 탐욕이 초래한 재앙이다. 과식, 과소비, 과속을 특징으로 하는 인류사회는 지난 200년간 난폭하게 자연을 파괴하여 회복이 불가능한 지경이다. 급속한 자멸의 과정이다. 어느 진보적인 환경론자는 이 바이러스 재앙 이전에 지구의 수명은 25년 남았다고 단정했다. 하루에 한 끼의 식사를 하고서도 아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