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대중문화의 대표적 매체다. 일상에서 영화만큼 쉽고 편안하게 즐길 만한 경우가 있을까. 여러 사람이 동시에 특정한 영화를 감상하며 정서적 공감을 나누기에는 영화만한 것이 없다. 영화 탄생 100여 년을 훌쩍 넘기고, 텔레비전이나 게임 같은 새로운 매체들이 사람들의 흥미를 분산시켜도 영화의 위상은 굳건하다. 영화 작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어려운 일은 제목을 정하는 일이다. 지금은 마케팅 작업이 여론조사나 빅데이터 등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아 통계에 기반을 두는 경향이 강하지만, 조금만 되돌아보아도 ‘감’에 따라 움직인 시절이 있었다. 제작자나 기획자, 시나리오 작가 등이 이런 저런 이야기가 될 것 같다고 제안(추천)하면 그것을 영화 소재로 개발하는 것이다. 그것이 어떤 이야기이든 결국 제목을 정해야 하는데, 간결하면서도 영화의 인상을 결정지을 만한 호소력 있는 경우를 최고로 친다. 한국영화의 경우는 당연히 우리 식대로 짓는다. 소설이나 그 밖의 원작이 있는 경우라면, 그것을 차용하는 경우가 많다. 원작이 확보하고 있는 지명도를 활용하자는 것이 처음부터의 계산이었으니까. ‘춘향전’ ‘심청전’ ‘장화홍련전’ 같은 고전에서부터, ‘별들의 고향’
이스라엘에선 군대에 갔다 오지 않으면 정상적 사회생활이 힘들다. 그래서 젊은이는 누구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군대에 가려고 한다. 자폐증 청년들도 병역면제는 차별이라고 주장할 정도다.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로마인들도 그랬다. 뿐만 아니라 병역의무를 신성시했다. 힘 있는 귀족이든 힘 없는 평민이든 병역을 치러야만 비로소 한 사람의 시민이 된다고 여긴 탓이다. 특히 귀족들의 솔선수범은 강한 군대를 만든 원천이었다. 그들은 전쟁터에 맨 먼저 달려나가고 최전선에서 군대를 이끌었다. 로마가 1000여 년간 번성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로 로마의 ‘강한 군대’를 꼽는 역사가도 있다. 어떤 나라도 그 수준을 넘는 군대를 가질 수 없다.”라는 진리를 새삼 되새기게 한다.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부끄럽게도 병무행정이 병역기피자들과의 싸움으로 점철돼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도덕적 해이가 심하다.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어느 한해 병역문제로 시끄럽지 않은 해가 없었다. 잊을만 하면 터지는 지도층 자녀들과 유명인들의 병역비리는 사회를 온통 뒤집어 놓기 일쑤였다. 덕분에(?)병역을 면제받는 수법도 기발할 정도로 진화했다. 그런 가운데 45년전 운동선수들을
촉한 제갈량의 북벌을 막아낸 위나라 중신인 사마의 손자 사마염이 건국한 왕조 서진(西晉)의 위항(衛恒)이 쓴 ‘사체서세(四體書勢)’에서 동한(東漢)의 서예가 장지(張芝)의 서예를 논할 때 나오는 구절이 있으니, ‘臨池學書(임지학서)/ 池水盡黑(지수진흑)- 연못에 가서 붓글씨를 연습하니/ 연못의 물이 온통 까맣게 되었다’ ‘사체서세’는 중국 최초의 서예 이론서로서 문자 변천의 역사와 여러 가지 서예의 이론을 상세히 논하고 있는 귀중한 문헌이다. 장지는 붓글씨를 연습하기 위해 집에 있는 모든 옷감은 먼저 붓글씨를 연습한 뒤에 빨았다고 하며 쉼 없이 연못에 가서 종일토록 글씨를 연습하여 연못의 물이 온통 검은색이 되었다고 한다. 그는 특히 초서에 뛰어나서 초성(草聖)이라 불리었다. 동진(東晉)의 왕희지(王羲之) 또한 장지의 경지를 따라잡기 위해 붓글씨를 하도 열심히 연습하는 바람에 나중에는 연못의 물이 완전히 먹물 색이 되고 말았다고 하는 일화도 있다.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인 북송의 증공(曾鞏)은 왕희지의 고사와 관련이 있는 임천(臨川)의 연못을 방문하여 ‘묵지기(墨池記)’라는 명문장을 남겼다고 한다. 글 속에서 증공은 왕희지가 만년에 이르러서야 서예의 완숙한 경
젤소미나 /강영은 젖은 기억은 언제나 오지 않는 기차를 기다리네 비테르보 해안의 작은 마을, 삼류 극장 자막 위에 내리는 비가, 눈 속에 내리는 비가, 빗방울 튀기지 않는 비가, 기차를 기다리네 영화가 끝나도 사람들이 흩어져도 기차는 오지 않네 오지 않는 시간이 빗방울을 굴리네 빗방울 바퀴가 덜거덕 덜거덕 토마토 씨를 심네 가엾은 토마토야, 너의 낡아빠진 북을 잡고 세 번 돌아라. 네 슬픔이 빨갛게 익을 때까지- 시집 ‘상냥한 시론’ / 2018 오후 2시, 마르고 건조한 지중해의 바람이 구름을 몰고 온다. 간헐적으로 들리는 파도 소리에는 아프리카 먼 바다에서 여기까지 흘러온 이국적인 슬픔 한 덩어리가 박혀 있다. 삶이 있으므로, 우리는 그 삶을 어떠한 방식으로든 지속해야 한다. 그때 시인은 비테르보 해안의 작은 마을을 산책하고 있었는데, 변덕스러운 날씨가 몰고 온 소나기를 피하기 위해 잠시 간이역에 들어선다. 시인은 역사 내부에 배치된, 기묘한 중세풍의 건축물과 장식품들을 보면서 비현실적 이미지들이 펼쳐놓은 몽환 속으로 빠져든다. 어느 틈에 ‘젤소미나’의 가늘고 묵직한 곡조를 흥얼거리기 시작한다. 먹고살기 위해 짐
최저임금의 급격한 상승으로 중소기업,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은 생존위기에 놓여 있다. “우리도 국민이다”라는 이들의 절규는 더 달라는 것이 아니라 삶의 터전을 지키고 먹고 살게 해달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이들의 절규를 외면하고 있다. 경제는 공정과 균형이다. 정부는 경제주체들이 공정하게 경쟁하고 사용자와 근로자가 상생하도록 균형있는 정책을 추진하여 불확실성을 줄이고 예측 가능한 경제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현정부의 소득주도성장정책은 정반대 방향이다. 정부가 공정한 룰을 만들기보다는 직접 개입하여 일방적으로 이끌어 가는 국가주도정책이다. 그 결과 저임금 근로자의 소득 증대를 약속했지만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은 저소득층의 소득을 감소시키고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연쇄폐업, 일자리 감소로 역대 최악의 고용참사, 서민물가, 생활체감 물가상승 등 온갖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대통령을 비롯한 청와대 정책실장 등은 오히려 소득주도성장정책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정부는 내년도에 일자리, 복지예산을 대폭 증액한 470조원의 슈퍼예산안을 확정했다. 정책실패로 나타나는 부작용을 또다시 엄청난 국민혈세로 메우겠다고 하니 무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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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을 주축으로 하는 대북 특별사절단의 방북(5일)이 다가왔다. 4·27 판문점 선언, 6·12 북미정상회담으로 순항하던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정착 논의가 북미 간 뿌리 깊은 불신 속에 다시 교착에 빠진 현 상태에서 이번 특사단 방북의 의미는 각별하다. 북한이 특사단에 내놓을 메시지는 가깝게는 이달 중 있을 3차 남북정상회담의 성공 여부를 점칠 수 있고, 장기적으로는 한반도 정세의 향배를 알려줄 방향타 역할을 할 것이다. 객관적 환경이 지난 3월 대북 특사단의 방북 때보다 더 녹록하지 않은 엄중한 상황에서 특사단의 어깨에 놓인 짐은 더 무거워졌다. 그리고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북미관계를 견인하겠다는 뜻을 밝힌 만큼 성과도 있어야 한다. 남북정상회담 날짜 확정 및 의제 논의, 남북관계 발전방안 논의,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및 항구적 평화체제 논의 등 특사단이 논의할 의제들이 많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비핵화 문제의 실질적 진전이다. 이런 측면에서 북한의 입장 변화 여부를 주목하고자 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특사단과 만나 ‘선(先) 종전선언-후(後) 비핵화’라는 기조에 유연성을 보이면서 핵 신고, 핵물질 생산시설…
지난 8월15일 광복절 기념식이 서울 용산에 위치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렸다. 용산이 내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과 9월 평양에서의 남북 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에서 상징적인 장소였기 때문이다. 용산은 일제강점기 일본의 군사기지였으며 광복 후에는 미군기지가 들어선 착취와 분단의 상징이었다. 광복절 기념식이 이곳에서 열린 것은 역사의 질곡에서 벗어나, 대륙으로 향하는 기점으로 삼고자 하는 이 정부의 의지를 나타낸 것이라고 해석된다. 실제로 문 대통령은 이날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 조치를 한다면 올해 안에 철도 연결 공사를 시작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아울러 경의선과 경원선의 출발지였던 용산에서 동북아 6개국(남한·북한·중국·일본·러시아·몽골)과 미국이 함께 하는 ‘동아시아철도공동체’를 제안했다. 이 제안이 성사된다면 “우리의 경제지평은 북방대륙까지 넓히고 동북아 상생번영의 대동맥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숨기지 않았다. 4·27판문점 선언에도 남북 철도와 도로들의 연결 등 10·4선언 합의 사업의 이행이 명시됐다. 경원선은 과거 서울~원산을 이었던 철도였지만 현재는 용산~신탄리 까지만 운행된다. 경의선은 서울~개성~평양, 신의주 등 우리나라 서북부의 대도시
수원화성의 시설 중 가장 멋진 것을 꼽으라고 하면 누구든지 공심돈을 가장 먼저 생각할 것이다. 당시에는 수평적인 건물이 많았는데 그와 달리 공심돈은 높아서 어디에서든지 볼 수 있어 랜드마크 역할을 하였다. 특히 서북공심돈 입면은 다른 공심돈에 비해 더 세장(細長)하여 멋있었다. 남공심돈의 입면은 하부 치성(雉城)과 분절되어 높이감은 없고, 한 칸의 작은 평면은 팔달문과 대비되어 웅장함보다는 소박한 느낌이 앞선다. 동북공심돈은 성곽 내부에 위치하여 치성과 연결되지 않고 평면이 커서 수직적인 맛보다는 오히려 수평적인 면이 보인다. 서북공심돈이 세장하게 보이는 것은 공심돈과 하부 치성이 일치되어 외관상 한 몸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서북공심돈의 위치는 화서문의 동측으로 화서문의 보호와 그 주변을 방어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높이 제도는 치성과 공심돈을 하나로 만든 일체형으로 높이는 치성 15척과 공심돈 18척이고 상부에 와가(瓦家) 높이까지 더하면 총 40자(12.32m)가 된다. 내부 공간은 3층이며 수직동선은 동북공심돈의 계단이 아닌 남공심돈과 같은 사다리가 설치되었다. 주공격 무기인 불랑기포(佛朗機砲)를 발사할 수 있게 층별로 20개의 포혈(砲穴)을 뚫었다.
지구대에 근무하다 보면 종종 장애인 관련 신고를 받는다. 시각장애인의 경우 절도 우려와 통로의 위험한 물건과 관련된 신고를 하며, 청각장애인은 곤란한 상황 속에서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느껴 부득이 지구대로 방문했던 경우가 더러 있다. 우리나라 장애인은 약 251만 명(국가통계포털 2016년 기준)으로 전체 인구의 5%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이렇듯 이미 우리 사회의 하나의 구성원으로 자리 잡은 장애인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바로 ‘편견’으로 대하는 우리의 태도다. ‘다름’을 ‘차별’로 느끼지 않도록 세심한 배려와 관심이 필요한 시점에서 장애인을 대하는 올바른 에티켓으로 어떤 것들이 있을까? 시각장애인은 목소리로 사람을 구분하기 때문에 먼저 인사를 건네고 자신이 누구인지 밝혀야 한다. 함께 걸을 때는 반보 앞에 서서 팔꿈치 위를 잡아줘야 하며, 안내견을 쓰다듬거나 먹이를 주면 집중력이 떨어지므로 삼가야 한다. 청각장애인이라고 수화로만 대화하는 것은 아니다. 구화, 필담 등 다양한 방법으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정면에서 입모양이 보일 수 있도록 차근차근 말해야 하며, 중요한 정보는 글로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