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장마가 시작됐다. 최근 기상청이 공개한 지난해 ‘2023년 이상기후 보고서’는 오랜 가뭄 뒤에 폭우가 쏟아지거나 극심한 기온 변동 등 기후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졌다고 밝혔다. 심각한 것은 기후위기가 가속화하고 있어 이런 현상은 더 심화할 것이란 분석이다. 지난해에는 ‘양극화된 기후’로 인해 남부지방에 기상관측 이후 가장 길었던 가뭄이 계속됐고 해소되자마자 660mm가 넘는 비가 쏟아졌다. 장마철 역대 1위 강수량이었다. 이로 인해 53명의 인명 피해와 8071억 원에 달하는 재산피해가 발생했다. 극한 기후현상으로 인명과 재산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장마철이 되면 주거 취약계층이 사는 지역이나 반지하 주택에서는 재해 사고와 반복되는 상습 침수 우려 때문에 불안에 시달려야 한다. 특히 반지하 주택은 집중호우, 화재 등에 취약할 뿐만 아니라 채광, 환기, 습기, 곰팡이, 하수 역류, 사생활 침해 등 주거환경도 열악하다. 그럼에도 반지하에 살 수밖에 없는 것은 저렴한 방값 때문이다. 반지하는 인구급증 시기에 대량의 주택공급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일시적 건축기준 완화로 양산된 비정상적인 시설이다. 원래는 거주 공간이 아니었던 것이다. 비상 대피용 목적의
누구나 잊을 수 없는 첫경험의 순간들이 있다. 한의사를 업으로 택한 숙명인지 나는 어려워보이는 병들이 좋아지는걸 목격할 때 온몸의 전율이 흐른다. 특히 꼬꼬마한의사시절에 잘 안낫는 질환의 환자들이 놀라웁게 호전되는 광경을 목격한 순간들의 경이감들은 그 이후의 수많은 치료경험이 쌓여도 퇴색되지 않고 생생하다. 한 파킨슨 병 환자의 경우도 그렇다. 한방병원의 내과전문의과정 2년차 레지턴트였던 때 입원병동에 파킨슨 병으로 약을 복용하고 있는 한 환자분이 중풍으로 입원하였다. 70대중반의 뇌경색환자였다. 침대에서 절대안정을 취해야 하는 급성기가 지나가고 회복과 재활훈련이 시작되자 종종걸음, 느린동작, 지팡이를 잡는 손의 떨림 뻣뻣한 일상동작까지 파킨슨 병의 증상이 또렷이 보였다. 그녀는 변비가 심했다. 중풍자체로도 오는 증상이지만 발병전에도 무척 배변이 힘들어서 다양한 변비약을 처방받아서 복용했다고 하였다. 그녀는 일제강점기와 6. 25 한국사회의 고도성장기에 여성으로써 자신의 감정을 억눌러온 삶의 궤적 속에서 화병도 같이 가지고 있었다.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는 게 낯선, 그저 참고 인내한 세월이었다. 변비와 우울, REM수면행동장애, 후각소실 기립성 저혈압
드라마 '전원일기'는 1980년 10월 21일에 시작하여 2002년 12월 29일까지, 22년이 넘게 방송된 국내 최장수 주간 드라마이다. 나이 든 세대에게 드라마 '전원일기'는 너무도 친숙하다. 젊었던 시절 자신의 시대를 향한 향수를 담고 있는 고향 같은 드라마이기도 하다. 김포 양촌리라는 농촌 마을을 드라마의 공간으로 삼고, 산업화와 도시화가 빠르게 이루어지던 시대 배경을 맥락으로 거느리며, 농촌의 일상사를 다룬 드라마이다. 그 일상사에서 묻어나는 마을 사람들의 인정을 인간적 시선으로 다가가, 잔잔한 감동을 주었던 드라마이다. 그런데, 드라마 '전원일기'가 방송을 중단해야 할 위기는 진작에 찾아왔었다. 20년 넘게 그저 빤하기만 한 농촌 마을, 그것도 몇 가구의 이야기로만 계속 드라마를 이어가기로는 궁색한 구석이 많았다. 말하자면 소재 고갈에 직면한 것이다. 그런 문제가 제기되자 이 드라마의 주역 주연인 배우 김혜자 씨가 획기적 제안을 했다. 그것은 이 드라마에서 자신을 죽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이 드라마에서 김혜자 씨는 마을 공동체의 중심인 김 회장(최불암 역)의 부인으로서, 드라마상의 역할 비중이 크다. 그녀는 이야기의 중심에 있다. 그녀가 드라마에
한동안 뜸하다 싶던 경기도 대형 화재 참사가 또 터졌다. 경기 화성시의 한 리튬전지 제조공장에서 폭발과 함께 불이 나 25일 오후 현재 23명이 숨지고 8명이 다치는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 잊을만할 때 또 발생한 후진국형 대형 화재 참사에 억장이 무너진다. 아직 원인 규명이 정확하게 이뤄지지 않았지만, 그동안 공을 들여왔던 산업안전 시스템에 구멍이 난 것만은 분명하다. 경기도 산업안전 행정의 허점까지 세밀히 찾아내어 확실하게 보완해야만 한다. 경기도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화재는 24일 오전 10시 31분경 화성시 서신면 전곡리 산업단지에 있는 리튬전지 제조업체 ‘아리셀’ 공장 11채 중 3동 2층에서 폭발음과 함께 발생했다. 소방 관계자는 배터리 셀 하나의 폭발에서 시작돼 퍼졌다는 목격자 진술을 확보했다. 공장에는 3만 5000 개에 이르는 리튬전지가 있었고, 해당 건물 1·2층에는 아리셀 직원과 일용직 등 102명이 근무하고 있었다. 사망한 23명 중 대다수가 리튬 1차전지 완제품을 검수하는 2층에서 발견됐다. 소방 당국은 인접 소방서까지 동원하는 대응 2단계를 발령해 소방관 등 인원 191명과 펌프차 등 장비 72대를 투입했지만, 배터리가 연쇄 폭발하면서…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다는 게 싸움 구경이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내가 피해자가 아닐 때 이야기다. 지난 13일, 공정거래위원회와 쿠팡 간 싸움이 본격화되었다. 공정위와 쿠팡이 주거니 받거니 하는 ‘대화’를 지켜보자니 여간 껄끄럽지 않다. 그도 그럴 게 국내 유통업계 1위 사업자로 올라선 쿠팡은 이미 3천만 명 이상의 국내 이용자를 보유하고 있다지 않은가. 공정위와 쿠팡의 오랜 다툼의 역사는 다시 한번, 역대급의 과징금과 함께 불이 붙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쿠팡에 잠정 1400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공정위가 유통업체에 부과한 역대 과징금 중 가장 큰 규모라고 한다. 공정위는 쿠팡이 자사 상품을 상단에 고정 노출하고, 임직원을 동원하여 구매 후기를 작성하도록 하는 등 불공정행위를 해왔다고 보았다. 쿠팡에 입점한 일반 사업자와의 공정한 경쟁과 소비자 후생을 저해했다는 것이다. 제재 결정을 발표하는 44쪽에 걸친 보도자료는 공정위가 고려한 근거들, 즉 쿠팡의 내부 자료와 소비자들의 구매 후기, 입점 사업자의 문의와 쿠팡의 답변 등을 정리하여 보여준다. 일례로, 쿠팡은 그간 임직원으로 구성된 ‘체험단’을 동원하여 자사 상품에 우호적인 구매 후기를 남겨왔다.…
잠에서 깨어나면 저마다 하는 일들이 있다. 간 밤에 보았던 꿈 기억하기, 화장실에서 일 보기, 조용히 앉아 명상하기, 밤새 들어온 이메일 확인하기 등등. 필자는 ‘오늘의 역사’를 최우선 확인한다. 생일인 사람에게는 꽃을 보낸다. 생화도 아니고 실제도 아니지만 사진으로나마 예쁜 꽃다발을 보낸다. 그동안 신세졌거나 정(情)을 주고받은 분이라면 SNS상으로 작은 마음의 선물도 보낸다. 그리고 라디오를 켠다. 주로 클래식 음악(音樂)을 듣는다. 귀에 익은 선율이 나오면 잠시 손을 휘저어 보기도 한다. 당첨된 적은 없지만 ‘출발 퀴즈’에 문자를 보낸다. 되돌아오는 것은 “당첨은 덤일 뿐, 함께 하는 이 시간을 즐겨 주세요^^” 엹은 미소로 화답한다. 오늘 하루도 매 순간을 즐기자고 다짐하며 일상 속으로 뛰어든다. 아마 대학 2학년 때인 걸로 기억된다. 외지로 떠난 첫째 아들을 보기 위해 상경한 어머니를 앞세우고 세운상가 전파사에서 전축과 스피커와 LP 음반 한 질을 샀다. 서양 음악에 문외한(門外漢)인지라 순서대로 하나씩 틀어보았던 것 같다. 써라운드로 들리는 음악 소리가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잠시 황홀해 하면서 듣고 또 들었다. 쿵! 쿵! 울리는 소리가 옆집 목
전세사기‧깡통전세로 인생길이 가로막힌 피해자들의 절규가 계속되는 가운데 정치·행정·사법당국의 대응은 하세월 게걸음이다. 경기지역 전세사기 피해 임차인들이 경찰의 신속한 사건 수사를 위한 ‘전세사기 전담수사팀’ 설치를 주장하고 나섰다. 전세사기 사건은 여전히 진행형인 비극으로 파장을 넓히는 중이다. 사건 수사가 발 빠르게 효율적으로 진행되는 게 급선무다. ‘전세사기 전담수사팀’ 설치 요구는 충분히 일리가 있다. 당국의 전향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최근 수원과 평택 등 전국에서 70억 원 규모의 전세 사기를 벌인 임대인이 재판에서 유리한 입장을 만들기 위해 ‘보여주기식’ 행태에 나섰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경기신문 취재에 따르면 전세사기를 벌인 임대인은 파산신청을 한 뒤 강원도 원주의 한 택시회사에서 기사로 근무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수원시 27세대 임차인들에게서 약 50억 원, 평택시 21세대 임차인들에게서 약 20억 원에 더해 원주시 등에서 전세 보증금을 편취한 인물로 알려졌다. 며칠 전 경기도 광주시에서는 35억 규모 전세사기 의심 사건이 또 불거졌다. 다세대 주택 등 건물을 여러 채 보유한 임대인 김모 씨가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않고 있다는 임차인 9
형편이 어려웠던 그는 할머니와 살았다. 할머니와 살았던 어린 시절은 그의 가슴에 나이테처럼 새겨졌다. 나이테로 꼭꼭 새겨진 할머니는 그가 대학 다닐 때 세상을 떠났다. 할머니가 이 세상에서 보낸 마지막 육 개월을 그는 곁에서 지켜보았다. 돌아가실 무렵, 할머니는 기력이 없어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할머니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죽고 싶지 않다고 읊조렸다. 그때, 왜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지 못했을까. “제가 꼭 옆에 있을게요” 말하지 못하고 바보처럼 안아드리기만 했을까. 아직도 그는 그게 늘 안타깝다. 시간을 다시 되돌릴 수만 있다면, 죽음을 앞둔 할머니의 깜깜한 밤하늘을 촛불이라도 태워 밝혀드릴 수 있을 텐데. 후회는 늘 늦고 더딘 것이라서, 할머니의 영원한 떠남을 그는 쉬 받아들이지 못했다. 상실의 아픔은 할머니 장례를 치른 뒤에 밀어닥쳤다. 스무 살 청춘이 감내하기엔 깊은 상처였다. 휴학하고 군대에 갔지만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훈련에 지친 이등병의 가슴에는 삶과 죽음이라는 골 깊은 나이테가 새롭게 각인되었다. 그러다 문득 떠 오른 게 어린 시절이었다. 그때 그 시절, 할머니는 그가 잠에서 깨기도 전에 일하러 나갔다. 할머니 일터는 건설 현장 ‘함
브라이트 호라이즌스(Bright Horizons Family Solution Inc.)가 매년 발표하는 현대 가족 지수에 따르면 미국인의 3분의 2는 새로운 직업을 구할 때마다 남성(아버지)보다 여성(어머니)이 탈락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 오히려 경력을 발전시킬 기회가 워킹맘 대신에 자격을 덜 갖춘 직원에게 돌아가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한다. 또한 사회학자 미셸 버디그(Michelle Budig)의 연구에 의하면 일하는 어머니는 자녀 한 명당 급여가 4퍼센트 삭감되는 반면 일하는 아버지는 오히려 평균적으로 6퍼센트나 인상된다. 성별 간의 임금 격차는 해를 거듭할수록 커지고 있으며, 이는 승진 비율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처럼 미국의 경우 직업 시스템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상대적으로 불리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직장 생활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불리한 현상은 일부 유럽지역만 빼놓고는 미국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도 국가 연금 제도가 경력 단절을 보상해 주기에 여성이 받는 불이익이 보상으로 바뀌지만, 이런 경우는 동유럽과 스칸디나비아에만 해당하는 사례다. 이들 국가를 제외한 나머지 유럽지역에서는 여전히 여성에게 불이익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독
내가 초등학교 시절 TV에서 아주 재미있는 미드(미국드라마)가 인기를 끌었다. 이름하여 “소머즈” 원제는 Bionic woman. “600만불의 사나이”의 여성판으로 초능력을 사용하는 특수 요원, 소머즈의 활약을 그린 내용이다. 내 기억으로 그 드라마의 마지막 회 정도 될 때 아주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나온다. 어떤 능력 있는 박사가 핵폭탄의 위험성에 대하여 인류에게 경고를 한다. 그냥 말로 하는 경고가 아니라, “앞으로 지구 어디서든, 어느 나라든 핵실험을 한 번이라도 하면 자동으로 자신이 설치한 어마어마한 핵폭탄 미사일이 발사되어 전 인류가 멸망할 것이다”라는 무시무시한 경고이다. 모든 나라가 혹은 위정자들이 경고를 귀 담아 들었다면 이 에피소드는 그냥 재미없게 끝나겠지만, 항상 이야기가 재미있으려면 누군가는 그 경고를 무시하고 핵실험을 한다. 그리하여, 박사가 설치한 핵미사일 발사 시스템은 자동으로 카운트 다운이 시작된다. 소머즈의 미션은 바로 이 카운트 다운된 핵미사일 발사 시스템을 중단시켜야 하는 중차대한 일이다. 항상 그렇듯이 시간은 촉박하고 미션은 어렵다. 이 핵미사일 발사 시스템은 박사의 연구동 캠퍼스 중앙에 설치되어있고 중앙 컴퓨터에 의해 작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