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구리농수산물공사 사장은 서울가락시장과 강서시장,양곡시장을 관리하는 서울시 농수산식품공사에서 34년을 근무한 유통 전문가다. 대학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던 4년 전 구리농수산물공사 사장 공모에 응해 선발되면서 구리시와 인연을 맺게 됐다. “2018년 9월,구리시에서 도매시장 유통전문가를 사장으로 채용한다는 정보를 듣고 응모해 개설자인 구리시장으로부터 임명을 받고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부임해보니 공영 도매시장의 기능이나 역할 측면에서는 중앙이나 구리시나 대동소이했으나 도매법인 및 중도매인, 유통종사자들의 유통에 대한 인식, 직업 만족도, 활동성 등에서 차이가 보였다. 그래서 부임 초기부터 시장 내 유통인들과 시장 활성화에 대해 수많은 소통과 회의를 하면서 3년 간의 사업계획을 수립·실행했다. “청과시장 소분가공센터 구축 등 시설물을 재배치하고, 수산시장 회센터 등 신규시설 구축과, 옥상 주차장 전면 보수로 이용고객 편의성 강화 등 하드웨어를 재정비했습니다. 소프트웨어 측면에선 거래규제 대폭 완화, 상장예외품목 확대, 폐기물 종량제 등을 실시한 결과 민원이 대폭 감소했고 ‘Clean도매시장’으로 탈바꿈 했습니다. 덕분에 행정안전부 경영평가에서 2년 연속…
자신을 송도 원주민으로 소개하는 이강구 인천시의원(국힘, 송도2·4·5동)은 허허벌판에 높은 건물들이 하나둘 세워지는 모습을 지켜본 만큼 지역에 대한 애착은 남다르다. 인천과 첫 인연을 맺은 건 10살 무렵이었다. 당시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어머니는 시골에서 혼자 5남매를 키우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에 인천으로 거처를 옮기게 됐다. 어머니가 갖은 궂은일을 하면서 자식들을 살뜰히 돌보는 모습에 그는 바르게 자랄 수밖에 없었다. 중학생 때부터 경제적 부담을 덜기 위해 신문과 우유를 배달하는 등 직접 돈을 벌기도 했다. 학창 시절 그의 첫 번째 꿈은 작가였다. 글쓰기 대회에 나가 상을 받았던 경험도 있었고 성적도 상위권이었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 인문계 고등학교로 진학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의 어깨는 꿈만 바라보기엔 무거웠다. 5남매 중 셋째였지만, 장남이었던 만큼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 막중했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돈을 벌기 위해서는 공고로 가야 한다’는 생각이 일반적이었기에 작가라는 꿈은 추억으로 남겨뒀다. 이 의원의 첫 직장생활은 광고물을 제작하는 회사였다. 그곳에서 10여 년간 배운 것을 토대로 직접 사업장도 차리게 됐다. 처음에는 걱정이 가득했지만, 빠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우리 스스로 새우가 아닌 ‘고래의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행복한 대한민국이 되려면 사람에 투자해야 합니다.” 이광재 국회 사무총장은 경기신문과 인터뷰에서 “제가 국가에 기여한 것보다 국가와 국민으로부터 받은 것이 훨씬 더 많다”며 “이를 보답하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고 이같이 말했다. 그는 “정치인이 아닌 국회 사무총장으로 일하는 국회를 만들기 위해 국가적 아젠다를 준비하고 있다”면서 “이를 통해 싸우는 국회가 아닌 일하는 국회로 나아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사무총장은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 23살 어린나이에 보좌관으로 근무하며 정계에 입문한 뒤 3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탐구하며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인터뷰 내내 온화한 미소를 유지하며 분위기를 이끌었다. 그러나 ‘더 나은 대한민국’을 이야기할 때는 온화함과 함께 강렬한 다른 분위기가 연출됐다. ‘날카로운 분석’과 ‘시대를 이끄는 방향성’을 제시하며 현재 대한민국이 나아갈 방향을 가감 없이 쏟아냈다. “현재 대한민국은 경제 선진국입니다. 그러나 행복은 후진국입니다. 지금 대한민
기술의 발전으로 과거 번거롭고 복잡했던 삶은 간소화됐고, 사람들의 생활은 더욱 풍요로워졌다. 하지만 기술 발전에 따른 부작용이 발생하면서,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한 기업의 사회적 역할이 점점 강조되고 있다. 이에 환경(Environment)·사회(Social)·지배구조(Governance)의 앞 글자를 딴 ESG 경영이 기업의 중요한 의제로 다뤄지고 있다. 33년 동안 근무했던 세관에서 명예퇴직한 이후 운송업계의 ESG 바람을 이끌어 가고 있는 최영진 카짱 대표를 만났다. "K-물류 이끄는 무서류·원스톱 플랫폼" Q. 간단한 자기소개와 함께 카짱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소개한다면. - 카짱 대표 최영진이다. 세무대학을 졸업하고 지난 33년간 세관에서 근무했다. 당시 힘들어하는 기사님들을 보고 누군가는 그들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세상은 변화하고 있는데 우리나라 물류 시스템은 도태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국가 차원에서 나서서 시스템을 개발했으면 정말 좋았겠지만(웃음), 그럴 수 없더라도 누군가는 해야 한다고 생각해 직접 카짱을 개발하게 됐다. Q. 카짱이 개발한 시스템에 대해 설명한다면. - 한마디로 기존에 종이로 제출하던 서류를 디지털로 전환해 QR코
"구리시는 서울과 가장 인접한 도시로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 함에도 오히려 잊혀져가는 도시, 소외되는 도시가 되고 있습니다. 구리시민의 바람이었던 GTX-B 노선에서 구리시만 제외됐고, 지하철 9호선 유치도 이뤄지지 않았잖습니까?" 세종-포천고속도로 한강 통과 교량이름을 '구리대교'로 해달라는 시민운동을 펼치고 있는 구리발전추진시민연대 허현수 회장은 먼저 구리시의 푸대접에 대해 섭섭함부터 토로한다. 아울러 그동안 구리시는 GTX-B 노선 정차역에 구리시만 제외됐고, 1순환고속도로 한강 통과 교량도 강동대교로 명명되는 등 손해와 양보를 해왔으므로, 이번 세종-포천 고속도로 한강 통과 교량은 꼭 구리시민의 요구대로 되야한다고 강조한다. 허 회장과 구리발전시민연대는 지난해 12월부터 현재까지 120여 일째 구리대교 명명 촉구 20만 범시민서명운동을 벌여 7만여 명의 시민들의 동참을 이끌었고, 이를 국토교통부와 국회, 경기도 등에 제출하면서 시민의 요구를 들어줄 것을 촉구했다. "이 교량의 87%가 구리시 행정구역구간입니다. 게다가 이 고속도로 공사로 시민휴식공간인 한강시민공원이 두동강이 났고, 이 일대에 고속도로 접속구간 교각들이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구리시가 큰…
전라북도 전주에서 태어나 대학생 때까지 고향을 떠나본 적 없던 청년이 서울을 거쳐 연고도 없는 인천에 정착한 것은 우연이었다. 교사였던 부모님의 영향으로 교단에 서는 것을 꿈꾸며 대학에 입학한 1994년. 최루탄 냄새 가득한 학교생활은 생각지도 못한 피를 끓어오르게 만들었다. 직접 학생운동을 하진 않았지만 그때의 시간은 교사에서 노무사로 진로를 바꾸게 된 계기가 됐다. 처음으로 고향을 떠나 서울 신림동으로 올라온 것도 노무사 공부를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처음 본 시험에서는 아깝게 고배를 마셨다. 심기일전하고 두 번째 시험을 준비하려고 했지만, 이미 퇴직하신 부모님에게 학원비 등으로 손을 벌리기에는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 무렵 우연히 인천으로 선거운동 알바를 가게 됐다. 그리고 그곳에서 당시 총선에 출마했던 이강일 나사렛의료재단 이사장을 만났다. 그 인연으로 나사렛한방병원에서 일하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노무사 시험을 위해 돈을 벌 목적이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일하며 생활정치를 배우게 됐고, 생활정치네트워크 ‘국민의 힘’ 인천사무국장을 맡으며 정치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였다. 그렇게 13년. 나사렛한방병원과 나사렛국제병원에서 원무과장으로 일하며 인천에
백낙인 안성시체육회장은 신뢰, 소통, 통합을 바탕으로 안성시민을 위한 체육회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또 변화와 혁신으로 안성체육을 반드시 재도약시키겠다고 다짐했다. 경기신문은 백낙인 안성시체육회장과 인터뷰를 통해 앞으로 체육회의 운영 방안과 비전을 들어봤다. -민선 2기 체육회 회장 당선 소회는 먼저 안성시체육회가 될 수 있도록 많은 관심을 가져주신 시민들과 체육인들에게 깊은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아울러 민선 2기 체육회장이라는 자리에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 민선 체육회는 정치적으로 휘둘리지 않고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받고 출발한 것이다. 지금은 관선 체제 시대의 체육회가 민선 체제로의 체육회로 거듭나는 과정에 있어 과도기적인 체제에서의 여러 가지 시행착오와 많은 과제들이 난무한 상황이다. 안성시 체육인들은 좀 더 변화되고 발전된 안성시 체육회를 기대하고 있다. 그 열망하는 마음이 함께해 이루어진 자리라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기에 막중한 책임감을 더욱 느낀다. 안성 시민들과 체육인들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안성시체육회 발전과 개혁에 앞장서겠다. -민선체육회의 나아가야 할 방향과 계획은 민선 체육회는 오래된 관선 체제의 습관에서…
한민수 인천시의원(국힘, 남동 만수1‧6‧장수서창‧서창2동)은 지역과 지역의 정치문화 발전을 위해 젊은이들의 정치 참여가 활발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현재 시의회에는 김대영(민주‧비례‧32), 이단비(국힘‧부평3‧36), 문세종(민주‧계양4‧39) 3명의 30대 의원이 있다. 한 의원은 “전문직이나 사회운동을 하던 젊은 세대가 기초나 광역의회 등 제도권에 진출해야 지역정치도 젊은 층의 관심을 이끌 수 있다”며 “그들을 위한 정책사업 개발에도 지방의회가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실제로 한 의원은 시의회 운영위원장 직을 놓고 자당 이단비 의원과 경선을 치르기도 했다. 여야 화합을 꾀하고 의회의 운영 방향을 결정하는 운영위원장은 사실상 의장 다음 가는 자리다. 이에 대해 한 의원은 “경선을 치른 덕분에 운영위원장 직에 더 큰 정당성이 생겼다”며 “도전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 의원처럼 당당함과 패기, 섬세함을 갖춘 젊은 정치인이 지방의회에 에너지를 불어넣고 있다”고 말했다. 1959년 남동구 장수동에서도 작은 마을인 수현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민수 의원은 만수초를 나왔으나,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동구 대헌중와 경기도 부천시의 부천고를 졸업했다. 그는 “어렸을
임춘원 인천시의원(국힘, 구월1·4동·남촌도림동)은 학창시절 모범생으로 이름을 날렸다. 그는 운동과 공부 모두 잘하는 학생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반장을 도맡았고, 전교학생회장에도 뽑혔다. 전교 5등으로 중학교를 입학해 첫 번째 중간고사에선 1000여 명의 학생 중 1등을 했다. 조회시간 단상 위에 올라 대표로 상을 받았다. 이날 임 의원의 존재를 전교생에게 각인시켰다 지금도 중학교 친구들은 그를 공부 잘하는 친구로 기억한다. 그는 인하대학교 법학과를 지원하면서 인천시 공무원 시험을 함께 치렀다. 대입 일주일 뒤가 시험이었다. 입시와 함께 준비할 수 있던 다른 과목과 달리 전산학개론은 처음이었다. 짧은 기간 준비하기엔 ‘무리가 있다’ 판단하고 이론에만 집중했다. 결국 공무원 시험에도 합겼했으나, 대학 진학을 선택했다. 임 의원은 인천 남동구 토박이로, 윤태진 전 남동구청장의 2012년 국회의원 선거를 도우면서 정치와 연을 맺었다. 남동갑 당협 사무국장을 맡으며 초석을 다졌다. 그동안의 경험을 밑천으로 출마를 결심하고, 2014년 지방선거에서 남동구의원에 당선된다. 4년간 호흡을 맞추며, 소소한 민원부터 큰 민원까지 자신의 지역구를 살뜰히 살폈다. 8년
“원도심 균형발전을 견인하면서 집행부의 정책에 검증·협력 하는 인천시의회가 되겠습니다.” 제9대 인천시의회 출범 후 9개월여가 지난 가운데 허식(국힘·동구) 의장이 경기신문과 인터뷰에서 이같은 포부를 밝혔다. 인천의 대표적인 원도심 동구에서 정치생활을 시작한 그는 제9대 시의회에서 의장을 맡으며 원도심의 발전 방향과 인천의 항만 개발 등에 대해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특히 최근 논란이 일었던 창영초등학교 이전과 과거 수차례 얘기가 나온 제물포고 이전 등을 옆에서 지켜보며 원도심 교육을 위한 근본적인 고민도 이어왔다. 허 의장은 “원도심의 학교 이전 문제는 과거에도 그랬듯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다”며 “원도심의 균형발전과 함께 공립학교 교육의 질적 특화가 필요하다. ‘1인 1악기’, ‘1인 1운동’ 등 차별화된 교육 정책으로 학부모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공립과 사립학교의 교육 격차를 해소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집행부에서 추진하는 제물포르네상스와 뉴홍콩시티 프로젝트에 더해 청라국제도시역~동인천역~국제여객터미널역을 연결하는 ‘인천3호선’ 등 교통정책이 충실히 수립돼야 원도심과 신도심의 균형발전이 이뤄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해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