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적인 세계에는 육체적인 세계보다 모든 것이 훨씬 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모든 기만은 반드시 또 다른 기만을 부르고, 모든 잔학행위 또한 또 다른 잔학행위를 부른다. 사람들은 흔히 단순한 건망증으로 자신의 양심이 결백함을 자랑한다. (조니자드 라페스키) 작은 악에 대해 이 정도쯤이야 하고 소홀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조금만 물방울이 모여 항아리 하나를 채운다. 어리석은 자는 조금씩 악을 저지르다가 마침내 온몸이 악으로 가득 차 버린다. 선에 대해서도 어차피 나는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미리 포기해서는 안 된다. 한 방울 한 방울의 물이 그릇을 가득 채우듯, 선을 향해 꾸준히 나아가는 사람 또한 온몸이 선으로 가득 차게 된다. (부처) 나무 기둥을 쓰러뜨리면 그 가지도 함께 쓰러지듯, 죄악의 뿌리를 제거하면 다른 죄악도 같이 제거된다. (파스칼) 사람은 미덕을 많이 갖추었다 하더라도 일단 허영심에 사로잡히면 모든 것이 흔들리고 만다. 허영과 진실은 결코 부부가 될 수 없다. (라 로슈푸코) 악의 싹을 감시하라. 악이 싹트는 것을 알리는 영혼의 목소리가 있어, 그것이 싹트자마자 우리는 왠지 모르게 초조하고 부끄러워질 것이다. 그 목소리를 믿어라. 그리고…
“거긴 가지 말아요! 그 나쁜 놈들은 빵을 만드는데 악마가 발명한 수증기를 사용한단 말이오. 하지만 나는 하느님의 숨결인 북풍과 동풍을 이용해 일을 하고 있소.” 알퐁스 도데(Alphonse daudet)의 『풍차방앗간의 편지(Les Lettres de mon moulin)』다. 어두운 파리와 빛나는 프로방스를 대비시킨 이 단편은 도데를 일약 스타로 만들었다. 이 소설의 무대는 프랑스 남쪽 끝 퐁비에이유(Fontvieille).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의 무대인 아를(Arles)과 길쌈의 마을 파라도(Paradou) 사이에 있다. 옛날에 이곳엔 풍차방앗간이 많았다. 프로방스 사람들이 밀방아를 찧어가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날 파리에서 온 사람들이 기계방앗간을 세우면서 풍차방앗간은 문을 닫았다. 하지만 웬일인가. 언덕 위의 코르니유(Cornille) 영감님 풍차방앗간은 돌아갔다. 이 영감님은 빈 방아를 돌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비밀을 안 마을사람들은 모든 밀을 코르니유 영감님께 가져가기 시작했다. 그 후 이 영감님은 절대로 일이 떨어지지 않았다. 시골사람들의 인정과 의리가 산업화와 기계문명의 거대한 회오리를 막아낸 감동의 대서사시다. 프랑스…
집 근처 사거리에 보름 가까이 걸려있던 현수막, 대선 당선사례 문구가 눈에 확 들어온다. ‘하나 되는 대한민국 만들겠습니다’. 정말 마음에 와닿는다. 그런데 참말일까, 가능은 할까, 얼마나 노력을 할까,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오르지만 꼭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품어 본다. 부동산 정책, 지속적 성장, 사회 양극화 해소, 소통 문제 등 사실 여야 보수 진보가 많은 분야에서 차별화를 시도하지만 대안책에 있어서 그렇게 큰 차이는 없어 보인다. 그런데 대북정책에 있어서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북에 대한 인식, 관점에서 본질적 차이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하나 되는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한 가장 좋은 방책은 대북정책이라 확신한다. 북한을 제대로 이해하고 핵미사일 문제 등 현재의 어려운 상황을 바로 진단한다면 새 정부에서 기대치 않는 커다란 성과, 남북관계의 획기적 진전을 이룰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이런 기대가 현실로 다가올 수 있을까. ‘생각을 바꾸면 길이 보인다’는 평범한 진리를 생각하자. 북한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꼭 필요하다는 말이다. 먼저 헌법이 요구하는 최상의 가치, 평화적 조국 통일을 잊지 말아야 한다. 또한 북한은 현재는 적(
엄마, 당신이 낳은 딸을 보세요. 낳고 기른 딸이, 이제는 또 다른 딸의 엄마가 되어서 걸어가요. 낮게 걸린 비구름 사이로, 건듯 내딛는 걸음걸이가 바람 같아요. 바람은 멈추지 않아요. 멈춤과 바람은 전혀 다른 성질의 것이라서, 끝끝내 멈춤 없는 세상으로 나아가요. 엄마, 당신이 낳은 딸이 그래요. 이제는 또 다른 딸의 엄마가 되었지만, 그렇다고 당신의 딸이기를 포기한 적은 없어요. 의사의 입에서 사망선고가 떨어지던 그 날도 그랬어요. 모두가 절망으로 머리를 조아릴 때, 당신이 낳은 딸은 바람처럼 나부끼며 온몸을 펄럭거렸어요. - 울 엄마 아직 안 죽었어요. 엄마, 당신이 기른 딸을 보세요. 낳고 길러 공부시킨 딸이, 이제는 또 다른 딸의 엄마가 되어서 새벽을 열어요. 새벽이면 어둠은 썰물처럼 무너져요. 무너지는 어둠을 딛고 현관문을 나서는 뒷모습이 밀물 같아요. 밀물은 바다를 품었어요. 바다를 품은 밀물이 첫차를 타고 돈 벌러 가요. 엄마, 당신이 기른 딸이 그래요. 가족을 먹이는 일이라면 포기하지 않아요. 포기를 모르는 모습이 엄마를 닮았어요. 뒷모습조차 당신이랑 똑같아요. 금방이라도 걸음을 멈추고 돌아서서, “고 서방” 하고 부를 것 같아요. 불러 세우
“벌에 쏘여 본 적 있으세요?” 한의원에서 봉약침 시술을 하는 경우가 있기에 혹시 알레르기 반응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종종 하던 질문이다. 예전에는 이 질문이 유효했지만 최근에 특히 도시에서만 생활하는 젊은 층에는 의미가 없다. 당최 도시에는 벌에 쏘일만한 일이 없기도 하거니와 벌의 개체수도 많이 감소했기 때문이리라. 나는 임상에서 꿀벌의 도움을 자주 받는다. 한의원에서 만성 통증치료에 적용하는 봉약침 요법은 자연상태의 벌(Honey Bee)이 가지고 있는 독을 추출, 정제하여 치료에 유관한 경혈에 주입함으로써 인체의 면역기능을 활성화시켜 질병을 치료하는 요법이다. 한의학에서는 이독치병(以毒治病)이라 하여, 약물이 가지고 있는 독성을 잘 이용하여 질병을 치료하는데 봉약침 요법 또한 이에 해당된다. 벌의 독은 약 40가지의 성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진통과 소염 효과가 뛰어나고 면역기능을 증진시켜 준다. 꿀벌이 생산하는 꿀은 예로부터 한약재로 쓰였다. 한약재명은 봉밀이다. 동의보감에서는 봉밀의 효능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성질이 평하고 맛이 달며 독이 없다. 5장을 편안하게 하고 기를 도우며 비위를 보하고 아픈 것을 멎게 하며 독을 푼다. 여러 가지 병을…
2차 세계대전 전후에 저널리스트로 활동했던 제바스티안 하프너의 『히틀러에 붙이는 주석』(돌베개 출간)을 읽으면 허탈해서 잠을 이루지 못한다. 하프너는 저널리스트답게 히틀러에 관한 기록을 건조하게 따라간다. 하지만 거리두기가 오히려 실체를 더욱 뚜렷하게 드러내 과거를 현재진행형으로 만든다. 독일 포로수용소에서 굶어 죽은 러시아군 포로 300만 명. 폴란드에서 유대인 200만 명 살해. '쓸모없는 식충이'로 분류된 독일인 10만 명 살해. 집시 근절작전으로 독일인 50만 명 살해. 폴란드 지도층 근절 정책으로 100만 명 살해... "히틀러는 오직 자신의 개인적인 만족을 위해 수많은 해롭지 않은 사람들을 죽게 하였다. 그런 측면에서 그는 알렉산드로스나 나폴레옹과 같은 범주에 속하지 않고, 여성 연쇄살인범 퀴르텐과 소년 연쇄살인범 하르만과 같은 범주에 속한다. 그의 손에 희생된 사람은 몇 십 명 또는 몇 백 명 단위가 아니라 몇 백 만 명 단위로 헤아리게 된다. 그는 그냥 대량학살을 행한 범죄자이다." 하프너를 떠나 이제 우리가 빈 칸을 채워야 한다. 히틀러의 대량 학살, 제노사이드를 과연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 자본주의라는 구조적 모순이 낳은 필연인가? 아
조선 중기에 천재 딸 셋이 태어났다. 그들의 삶은 하나같이 비운(悲運)의 시간이었다. 황진이 허난설헌 이숙원이 그들이다. 여염집 처자가 예술적 재능을 타고난 것은 대개 불행의 원인이었다. 치명적인 저주가 되기도 했다. 몽매하고 흉악한 시대였다. 황진이는 시서화무(詩書畵舞)의 탁월한 종합예술가로 당대를 풍미했다. 기생이었기에 가능했다. 성리학이란 게 이 얼마나 난폭한 세계관인가. 난설헌과 진이에 비하여 덜 알려진 숙원은 이들 못지않은 천재였다. 왕실 후손으로 출세길을 마다하고 시골 군수를 지냈던 이봉(李逢)의 서녀였다. 멸문폐족의 한 처자와 화합하여 얻은 이 특별한 딸은 아비의 문재를 내려받아 총기 넘치고 영민하였다. 어린 나이에 자신의 호를 옥봉(玉峰)이라 지었다. 이봉은 '옥돌이 아름답게 솟아오른 봉오리'에 크게 감탄했다. 그날부터 숙원은 옥봉이 되었다. 그 이름은 아비가 하늘까지 높여준 자존감의 기호였다. 딸은 무시하고 첩의 딸은 더욱 심하게 냉대하는 천형의 세상에 던진 돌팔매였다. 옥봉은 열다섯에 당시 젊은 관리 중에 가장 촉망받던 엘리트 조원을 찍어 그의 소실로 들어가겠다고 선언했다. 이봉은 딸을 위하여 그에게 청혼한다. 일언지하에 거절당하는 수모를…
사람들의 내부에 있는 신적 본원의 해방은 필연적으로 사회 체제의 개혁으로 우리를 이끈다. 오래 살면 살수록 내 앞에는 할 일이 더욱더 많아진다. 우리는 중대한 시기에 살고 있다. 일찍이 사람들 앞에 이처럼 해야 할 일이 많았던 적은 없었다. 현대는 좋은 의미에서의 혁명의 시대, 물질적인 의미가 아닌 정신적인 의미에서의 혁명의 시대이다. 숭고한 사회체제의 이념, 숭고한 인간성의 이념이 창조되고 있다. 우리는 수확을 거두지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나지만, 믿음을 가지고 씨를 뿌리는 것은 크나큰 행복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채닝) 모든 사람이 한 형제자매라는 종교적 인식이 널리 퍼져 있는 현대에 진정한 학문은 이 인식을 실생활에 적용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어야 하고, 예술은 또 이 인식을 사람들의 감정 속에 불러일으켜야 한다. 나는 내 눈앞에서 예속과 정치적 속박에 갇힌 민중이 누더기를 걸치고 굶주림에 지쳐 부자들이 호사스러운 술자리에서 모욕적으로 던져주는 음식 찌꺼기를 줍는 민중을 보고, 또 야수 같은 증오와 야만적인 기쁨에 취해 무서운 반역의 충동에 몸을 던지는 그들을 본다. 그리고 그러한 때 야수로 둔갑한 사람들의 이마에도 신의 손가락 자국이 새겨져 있는 것을
이 세상의 삶은 결코 눈물의 골짜기도 아니고, 시련의 장소도 아니며,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멋진 것이다. 삶의 기쁨은 순간순간 하늘의 뜻을 알아채면서 살아간다면 계속 증가할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대부분 지금까지의 만족과 기쁨을 잃어버리며 탄식하고 슬퍼한다. 그러나 기쁠 때는 순수하게 기뻐하되, 기쁨의 원인이 사라질 때도 슬퍼하지 않는 사람이야 말로 진정으로 현명한 사람이다. (파스칼) 늘 쾌활함을 유지하는 비결은 사소한 일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운명이 가져다 주는 사소한 기쁨에 감사를 잊지 않는 것이다. (스마일스) 만족을 찾아 헤매지 말라. 그보다는 항상 모든 것 속에서 만족을 발견하려는 자세가 중요하다. 너의 일이 바쁘더라도 마음이 자유롭다면,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도 너에게 만족을 줄 것이고, 네가 듣는 모든 이야기 속에서 흥미롭고 즐거운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만약 네가 인생의 목적을 만족에 둔다면, 아무리 재미있는 순간을 만나도 결코 진심으로 웃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존 러스킨) 진정한 현자는 언제나 쾌활하다. 기쁘게 사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인생은 기쁨을 위해 주어진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만약 기쁨이 끝났다면 자기가 어디가 잘못
한 주를 월요일 시작하는 아침마다 서클 대화 시간을 갖는다. 거창한 활동은 아니고 아이들과 동그랗게 앉아 주제 2~3가지를 골라 이야기를 나누는 친교 시간이다. 주말에 무엇을 하며 지냈는지를 말할 때도 있고, 이전 일주일 동안 가장 즐거웠던 순간을 말하기도 한다. 아이들이 쉬는 시간에 끊임없이 떠드는데 굳이 대화 시간까지 필요한지에 대한 의문이 들 수 있다. 이렇게 대화하는 시간을 만들지 않으면, 일상적인 이야기 한마디 나누지 않은 채 공간만 공유하는 친구들이 반에 의외로 많다. 얼마 전 서클 시간에 뽑힌 주제는 ‘가장 갖고 싶은 것 5가지 말하기’였다. 어린이와 청소년 중간에 서 있는 6학년 아이들이니 다양한 품목이나 종목들이 나올 거라고 기대했다. 어른은 모르는 아이들의 유행 아이템 같은 걸 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이십여 명의 친구 중에서 한두 명만을 제외한 아이들이 모두 비슷한 대답을 했다. ‘롯데월드타워, 빌딩, 강남 아파트, 목 좋은 곳의 땅, 삼성전자나 테슬라 주식. 등등’ 부동산이나 주식을 말하지 않은 소수는 건담이나 아이폰, 아이패드 같은 물품을 말했다. 모두 초등학생이 갖기에 결코 저렴한 물건들은 아니었는데, 앞서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