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는 우리 내부에 깃들어 있는 신성을 가리는 덮개이다. 우리가 자아에서 벗어날수록 우리 안의 신성은 더욱더 뚜렷이 나타난다. 우리는 자아에 대해 고민하고 자아에 얽매이는 일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리고 자신의 생명을 지키려고 몸부림치면 칠수록, 더욱더 나약해지고 더욱더 자유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그런데 반대로 자신에 대해 고민하고 집착하거나, 자신의 생명에 대한 애착이 적으면 적을수록, 더욱더 강해지고 더욱더 자유로워진다. 만약 욕심과 집착을 버리고 무슨 일을 도모한다면, 모든 일이 쉽게 풀릴 것이다. 진리는 그것이 자신의 자아를 버린 사람의 입에서 나왔을 경우에만 믿을 만한 가치가 있다. (탈무드) 인간 최대의 승리는 내가 나를 이기는 것이다. (플라톤) 자신의 명성과 육체 속에서의 자신의 모습을 보지 않는 자야말로 인생의 진리를 아는 사람이다. (부처) 이야기 도중에 자기를 의식하면 이야기의 흐름을 놓쳐버린다. 자기를 완전히 잊고 자아를 떠났을 때 비로소 우리는 상대의 이야기를 깊이 이해할 수 있고, 그럴 때 우리는 비로소 도움을 주고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순간이라도 자기 자신을 완전히 포기해 본 경험이 없는 사람은 자신의 인생은 물론 타인의 인생을…
말 많고 탈 많은 2022베이징 동계 올림픽이 끝났다. 이번 동계올림픽은 91개국이 7개 종목에 출전하였다. 이는 2021년 도쿄 하계 올림픽에 참가했던 46개 종목의 205개 국가에 비하면 반쪽짜리 축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림픽의 정신은 고스란히 유효하기 때문에 세계인의 체육행사로써 인정받고 있는 것이리라. 주지하듯이, 근대올림픽은 1896년 4월 쿠베르탱 남작과 14명의 올림픽 위원회 위원들의 노력의 결실이었다. 그리스를 정복한 로마에 의해 서기 393년까지 중단되었던 올림픽은 1500의 시간이 흐른 후에야 비로소 다시 시작되었다. 쿠베르탱과 뜻을 같이 하는 동료들은 올림픽을 통해 ‘세계평화를 실현하겠다는 이상’을 이룩하고자 하였다. 이와 같이 스포츠를 통한 평화와 공존은 올림픽의 중요한 목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몇 가지 역사적 사례를 살펴보면, 먼저, 게르만족의 우수성을 선전하기 위해 1936년 베를린에서 열렸던 11회 하계 올림픽을 꼽을 수 있다. 히틀러는 게르만족과 나치의 우수성을 홍보하기 위한 장으로써 올림픽을 이용했다. 베를린 올림픽은 히틀러의 의도대로 독일이 종합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나치가
그녀는 거의 10년동안 머리가 아플 때마다 진통제를 먹었다. 그러다가 4개월 전 사업상 스트레스를 크게 받은 후 원래 복용하던 진통제가 듣지 않았고 방문한 병원에서 향정신병 약을 비롯한 몇가지 약이 추가되었다. 그런데 내원 열흘 전쯤부터는 그 약들을 회수를 늘려 복용해도 듣지 않았고 염려하던 중 친정엄마의 권유로 한의원을 찾게 되었다. 치료를 시작하며 그녀에게 섭취한 음식을 기록해오라고 했는데 3일간 먹은 음식리스트를 본 나는 너무 놀랐다. 빵 한 조각, 비스킷 하나, 케이크 한 조각, 이렇게 이어지는 음식에 제대로 식사라고 할 만한 게 별로 없었다. 손발이 시리다는 그녀는 아침에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빠지지 않았다. ‘아이고 이렇게 먹으면 기운이 나요?’ 하는 말이 절로 나왔다. 치료와 함께 습관으로 굳어진 음식들을 조절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다행히 6개월여의 한약, 침, 뜸, 명상 등의 통합한방치료와 운동과 식이관리 등 일상생활 관리로 그녀는 두통뿐 아니라 소화, 대변, 불면, 불안 등이 호전되어 신체의 활력을 회복할 수 있었다. 그는 10년 넘게 두통으로 진통제를 일주일에 한두 번 곧잘 복용했던 이력이 있다. 최근 몇 년은 일반적으로 처방받는 진통제는…
모든 사람들은 똑같이 자연의 혜택을 누릴 권리와 존중받을 권리를 가지고 있다. 오늘날 기독교는 너무 왜곡되어 있고 주요 가르침이 전혀 실천되지 않고 있다. 그건 모든 사람은 하느님의 자녀이자 형제자매이고 각각의 생명은 신성불가침하다는 가르침이다. 진정한 평등은 신분 제도와 칭호와 특권의 폐지를 요구할 뿐만 아니라, 불평등을 낳는 최대의 무기인 폭력의 근절을 요구한다. 평등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듯이 사회적인 수단에 의해서만 실현될 수 없으며, 신과 인간에 대한 사랑에 의해서만 실현된다. 이 신과 인간에 대한 사랑은 정치적인 수단에 의해서가 아니라 참된 종교적인 가르침에 의해서만 이루어진다. 남들보다 강하고 똑똑한 사람들이 반드시 있기 마련이므로, 평등 같은 건 어차피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이 보다 강하고 영리하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사람들의 평등한 권리가 더욱 필요하다고 리히텐베르크는 말했다. 왜냐하면 강하고 똑똑한 강자들의 약자에 대한 박해가 무서운 것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권리의 불평등까지 자아내기 때문이다. 백성들은 나라의 근본인 바, 근본이 깎이면 나라 역시 쇠잔해지는 법이다. 그러니 잘못되어 가는 나라를 바로잡
우리가 쓰고 있는 주7일 짜리 요일제(曜日制)의 근원은 하나님이 6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고 7일째 하루를 쉬었다는 구약성서 창세기 편이죠. 거기에다가 땅을 중심으로 해와 달, 그리고 눈에 보이는 다섯 행성이 시간을 관장한다고 여긴 고대 바빌로니아의 점성술이 결합한 개념이에요. 요일 개념이 없었던 조선 시대에 관청에서는 1일·8일·16일·23일 그리고 연 24회의 절기마다 업무를 보지 않았다지요. 요일 개념이 우리나라에 도입된 건 1895년 갑오개혁 때예요. 오랜 기간 계속되던 ‘주6일 근무제’가 ‘주5일제’로 넘어간 게 2003년이었으니까 한 20년 됐네요. 그런데 요즘 20대 대통령 선거 한복판에서 ‘주4일제 근무’가 화두로 떠올랐어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주4.5일제’를 정책으로 꺼내자, 정의당 심상정 후보가 ‘주4일제’를 공약으로 내놓았지요. 어떻게든 더 쉬고 싶은 현대인에게 달콤한 유혹인 건 분명해요. 유럽에서는 이런 변화의 흐름이 진작부터 나타나고 있어요. 가장 앞서가고 있는 나라는 아이슬란드예요. 이미 지난 2015년부터 주4일제를 시범적으로 도입해 현재 국민의 약 90%가 주35~36시간만 일하고 있대요. 스페인도 지난해 일부 기업에 임
'동장군'(冬將軍)이라고까지 높여 부르는 삭풍혹한도 입춘, 우수에 이어 개구리처럼 동면하던 생명들이 여기저기서 기지개 켜는 경칩이 되면 무장해제한다. 자연의 법칙이다. 꽃들도 제각기 볼록한 가슴을 열어 자부심을 뽐낸다. 모두가 양춘가절(陽春佳節)의 주역으로 생명축제의 들판에 진출하는 것이다. 봄은 기화요초(琪花瑤草), 만화방창(萬化方暢)의 시간이다. 선남선녀들은 두터운 겨울옷을 벗어던지고 산야대지로 뛰어나가 약동하며 그 맹추위의 기나긴 억압을 떨치려 한다. 이 자유는 흡사 해방을 맞은 식민지 민초들에게 주어진 고귀한 선물과 같다. 이때 거르지 않고 찾아오는 불청객이 있으니 그 이름은 '꽃샘추위'. 4월에도 마치 한겨울로 되돌아간 듯 맵찬 눈보라가 몰아친다. 나의 군복무 시절, 강원도 화천 대성산에는 5월에도 눈이 내렸다. 꽃샘추위는 우리의 인생에도 봄 속에 겨울이 있고, 겨울 속에 봄이 있음을 극적으로 가르친다. 그 어느 날 칼바람 불던 새벽. 보초교대하고 하산, 행정반에 신고하러 내려가는데, 조리하는 냄새가 멀리까지 진동하였다. 개구리 매운탕이었다. 와공 일당은 긴 겨울잠을 멈추고 기어 나오던 날 팽형(烹刑)을 당하여 전방병사들의 술안주가 된 것이다. 이…
종교란 모든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철학이다. 종교란 단순한 형태로 마음에 호소하는 예지이다. 예지란 이성에 의해 인정된 종교이다. 사람들이 종교라고 일컫는 것에서 그들의 교육관과 정치 형태, 경제 기구, 그리고 모든 예술활동이 태어난다. (주세페 마치니) 선한 생활의 법칙(살생하지 말라, 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악으로 악을 갚지 말라, 등등)은, 그것이 신의 계율이기 때문에 진리이며, 그래서 우리도 그것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그 법칙들을 자신의 내면적인 의무로 느끼기 때문에, 그것을 신의 계율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칸트) 사람은 선한 생활에 의해서만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다. 그러므로 바르고 깨끗하고 선량하고 겸허한 생활 이외의 그 무엇으로 하느님을 기쁘게 하려고 생각하는 것은 모두 기만이요, 하느님에 대한 거짓 봉사이다. (칸트) 종교란 세상과의 관계에서 인간의 심장과 같다. 곧 사람은 종교 없이는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 다만 자신에게 심장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 수는 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면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가?” 그렇다!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
여러 번 대통령선거를 겪었지만 이번 같은 경우는 처음이다. 여야,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일국의 대통령 후보는 아무나 할 수 없다. 훌륭한 인품과 식견있는 사람의 몫이다. 평생 정치인으로 살면서 그 기회를 갖는 것은 5년에 딱 2-3명뿐이니까. 그런데 이번 대통령 후보를 보면서 감히 나와 비교를 하게 되었다. 5년 만에 내가 인품과 식견이 급성장한 게 아닌데. 시진핑, 바이든, 영국의모리스존슨 수상, 젊은 기수 프랑스의 마크롱도 어느날 갑자기 국가의 지도자가 된 건 아니다. 시진핑은 지방 현, 성의 서기와 성장, 중앙당 상무위원을 거치면서 정치, 행정 수업을 쌓고 공청단과의 권력투쟁 끝에 권력을 잡았다. 정치는 인간행위 중 가장 종합예술이다. 정치인을 폄하하지만 그 정치인 덕에 사회와 국가는 중심을 잡을 수 있다. 훌륭한 정치지도자가 국난을 극복하고 발전시킨 예는 동서고금에 많다. 정치지도자는 국회든 지자체든 다양한 정치경험을 쌓으면서 성장해야 국정운영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어떤 특정상황에 의해 선거를 이긴다고 갑자기 능력이 생기진 않는다. 뛰어난 스탭도 본인 능력이 떨어지면 활용 못한다. 회사도 뛰어난 CEO에 의해 성장이 좌우된다. 인간이 만든 모든
네거티브 공방이 난무하는 대선 기간 중 아름다운 소식을 접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통령 후보가 신년 초에 ‘대한민국의 G5 도약과 국민소득 5만불 목표’ 공약을 발표했을 때보다 반갑다. 지난 16일, 민주당이 발표한 ‘장애인 정책 5대 공약’이 그것이다. 이 후보는 중증 장애인에게 장애인연금 확대 지급, 장애인 이동 보장, 장애인의 권리를 동등하게 보장하고 장애를 이유로 차별받지 않는 나라를 비전으로 제시했다. 우리나라가 진정한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는 자긍심이 높아지는 공약이다. 지체 없이 포털을 검색했다. 키워드로 ‘윤석열의 장애인 정책’ ‘이재명의 장애인 정책’을 입력했다. 윤석열 키워드로는 ‘뉴스 화면’에서 장애인 정책을 찾기 쉽지 않았다. 한편, 이재명 키워드로 검색된 장애인 정책 뉴스 보도량은 상당했다. 장애인으로 산다는 것, 혹은 가족 중에 장애인이 있다는 것은 겪어 본 사람만이 안다. 필자의 경우는 모친이 노환으로 요양병원에 장기 입원하게 되면서 ‘고령 장애인’의 가족 구성원이 됐다. 장애인에 대한 무관심이 ‘적극 관심’으로 바뀌게 된 시점이다. 장애인과 장애인을 위한 정책에 관하여 ‘근원적인 물음’을 생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장애인이…
선거의 계절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것이 있다. 바로 정치 광고다. 정치 광고는 일반 상업 광고와는 다른 특징이 있다. 상업 광고의 경우, 광고 덕분에 매출이 1%라도 올라가면, 성공작이라고 할 수 있지만, 정치 광고는 그렇지 않다. 정치 광고 덕에 지지율이 1% 올라갔다고 하더라도, 선거에서 패배하면 그 광고는 실패작으로 취급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상업 광고의 논리와 정치 광고의 논리는 다를 수밖에 없다. 정치 광고는 일반적으로 선거 전략이라는 큰 틀 안에서 만들어진다. 이번에 등장한 정치 광고를 봐도, 이번 대선에 출마한 후보들의 전략을 엿볼 수 있다. 이재명 후보의 광고에는, 자신을 둘러싼 여러 비호감적 요소들을 최대한 축소하려는 전략이 포함돼 있다. “이재명은 흠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상처가 많은 사람”이라는 광고 카피는 바로 이 후보 캠프의 이런 전략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윤석열 후보의 경우에는, 광고에 걸음마를 하는 아기를 등장시키며 “국민이 키워낸 후보”라는 이미지를 강조하고 있고, 동시에 공정을 강조하면서 정권 심판론을 키우려는 전략을 보여주고 있다. 심상정 후보의 경우에는, 광고에 본인의 모습보다는 심 후보가 강조하는 지향점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