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자신의 마음에 신이 살고 있는 정도에 따라 신을 볼 수 있다. 17세기의 신비적인 시인 안젤루스가 말했듯 내가 신을 보는 눈은 그대로 신이 나를 보는 눈이다. (아미엘) 인간의 영혼은 곧 신의 등불이다. (탈무드) 어느 날 강 속의 물고기들이 물고기는 물속에서밖에 살 수 없다고 얘기하고 있는 인간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 말을 들은 물고기들은 무척 놀라서, 도대체 물이 뭔지 아는 물고기가 없느냐고 서로 물어보았다. 그러자 한 영리한 물고기가 말했다. “바다속 공부를 많이 해서 지혜로운 늙은 물고기가 한 마리 있는데 무엇이든 다 알고 있다더군. 우리 바다로 헤엄쳐 가서 그 노인한테 물이 무엇인지 물어보세.” 그리하여 물고기들은 지혜로운 물고기가 살고 있는 바다에 가서, 물은 어떤 것이며 어떻게 하면 물에 대해 알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지혜로운 늙은 물고기가 말했다. “물이란 우리가 그것에 의해 살고 있는 것, 그리고 그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너희들이 물을 모르는 것은, 너희들이 그 속에서 살며 그것에 의해 살고 있기 때문이지.” 그와 같이 사람들도 신에 의해 살고, 신속에 살고 있으면서 신을 모르고 있다. (수피) 자신의 사상을 하늘 높이 올리는
一路平安(일로평안)을 희구하면서 시작된 2021년도 결코 평안하지 못한 한 해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금세 잡힐 듯했던 코로나는 변이가 변이를 낳으면서 위기에 위기를 겹치는 상황으로 이어지고, 무역에서 시작된 강대국 간의 사활을 건 패권경쟁은 전방위로 전선을 넓혀가고 있다. 첨단 기술과 자원이 국제사회 헤게모니를 좌우하는 주요 요인으로 부상하면서, ‘기술냉전’ ‘기술패권’ ‘기술주권’ ‘디지털 냉전’ 등이 낯설지 않은 용어가 되어가고 있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미·중 기술패권경쟁은 점입가경이다. 미국은 어떤 비용을 부담하더라도 ‘디지털 만리장성’을 쌓아 첨단기술에 대한 중국의 접근을 봉쇄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중국도 ‘반도체전문대학’도 설립하는 등 반도체의 설계, 제조, 조립, 시험 중 길목이 되는 기술 우위 확보에 부심 중이다. 일본 역시 경제안보 담당관을 신설하고 첨단기술의 유출을 막기 위해 ‘경제안전보장법’을 추진하는 한편, 양자컴퓨터 개발· 인공지능 로봇개발과 같은 경제 안전보장과 직접 관련 있는 개발 프로젝트 참여 연구자들이 해외 정부 및 기관의 지원을 받고 있는지도 의무적으로 공개토록 하는 지침까지 마련하는 등 ‘기술 쇄국주의
최근 내가 접한 통계 중 가장 무서운 통계는 2021년 의대 신입생 2977명 가운데 무려 80.6%가 월 가구소득 920만 원이 넘는 부유층출신이라는 것이었다. 나머지 19.4%도 빈곤한 가정출신은 아닐 테니 세계적으로 유례없을 지독한 부잣집편중이다. 이대로라면 우리나라에서 ‘없는집’ 자식들이 의사되기는 틀렸다. 이미 의사는 부모찬스로 만들어지는 대표적인 특권직업이다. 의대생만이 아니다. 로스쿨학생은 물론 SKY 등 명문대 학생과 예술계 학생도 부유층과 전문직 가정출신이 압도적으로 많다. 드물게 발표되는 관련통계들은 우리사회에서 교육이 계층이동수단에서 신분대물림수단으로 타락했다는 사실을 더할 나위 없이 명징하게 보여준다. 만약 매년 명문대별, 인기단과대별로 신입생 학부모집단의 10 분위 소득분포가 지난 10년 동안 집계, 공표되었다면 어땠을까? 나아가서 영재고/과학고/국제고/외고/예고별로 신입생 학부모집단의 10분위 소득분포가 함께 집계, 공표되었다면 어땠을까? 모르긴 해도 교육의 신분대물림 강화효과가 의심의 여지없이 확인되면서 전사회적으로 폭동의 기운이 감돌았을 것이고 예방차원에서라도 정치권이 특단의 대책을 내놓았을 것이다. 치열한 입시경쟁과 사교육비를…
곡예는 완성된 기술이 아니라 끝나지 않는 훈련 머리카락 위를 전차처럼 전진하는 마음 바늘 끝에 선 낙타가 세계를 긴장시킨다 슬픔을 쌓아 도달한 높이에 본 적 없는 우아한 자세를 전시한다 길에서 길을 뽑아 촘촘한 안전망을 허공에 설치하는 곡예는 신에게 드리는 경배 실핏줄처럼 번진 수많은 갈래 중에 고난을 걸어간다 넘어지지 않기 위해 기울어지고 냉정해지기 위해 불을 삼킨다 한 발도 놓치지 않고 칼날 위에 대평원을 건설하는 중이다. 곡예는
모든 것에 저항할 수 있지만 선량함에 대해서는 저항할 수 없다. (루소) 선행에 목적이 있다면 그것은 이미 선이 아니다. 대가를 예상하고 이루어진 경우에도 역시 선이 아니다. 선은 인과율을 초월한 것이 아니면 안 된다. 횃불과 불꽃이 아무리 강력해도 태양 앞에서는 빛을 잃어버리듯이, 우리의 지능도(설사 천재라 하더라도) 또 아름다움도, 마음으로부터의 선량함 앞에서는 빛을 잃어버린다. (쇼펜하우어) 한없는 부드러움은 진정으로 위대한 사람들의 천성이자 재산이다 (존 러스킨) 연약한 식물이 단단한 흙을 뚫고 바위가 갈라진 틈을 지나 자생한다. 선량함도 그와 같다 어떠한 쐐기도, 어떠한 망치도, 어떠한 무기도 선량하고 성실한 사람은 이기지 못한다. (소로) 인간이 있는 곳에는 그에게 선을 행할 기회도 있다. (세네카) 우리가 어떤 사람을, 우리의 마음에 든다거나 우리에게 선을 행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람 속에서 모든 사람들 속에 깃들어 있는 신의 영혼을 보기 때문에 사랑할 때, 비로소 우리는 신의 사랑, 진정한 사랑으로 사랑하는 것이다. 원수 사랑이 가능해지는 이유이다. 위대가 무엇이 위대겠습니까? 강대국의 뒤를 따라가며 그 후진을 무릅쓰는 이른바 후진국 의식을
전직이든 현직이든 교사가 모이면 두 집단이 입을 모아서 하는 말이 ‘학교는 참 변하지 않는다’이다. 몇십 년 전과 지금의 교실의 풍경을 사진 찍어서 놓고 비교해보면 전자제품들이 들어와 있는 것 빼고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교사는 칠판 앞에 서 있고 학생들은 책상에 앉아서 교과서를 펴 놓고 앉아있다. 수업을 자세히 살펴보면 조별 활동이나 학생 중심 활동 같은 게 생겨서 예전처럼 책상에 앉아만 있는 건 아니지만 큰 틀에선 달라진 게 없다. 학교의 모습 중 정말 한치의 변화도 없는 것 중의 한 가지가 교과서와 관련된 풍경들이다. 교과서 배부 및 수령 방식은 1970년대나 2000년대나 2021년이나 똑같다. 학생들은 학기 말이나 학기 초에 열 권이 넘는 교과서를 한꺼번에 지급받고, 그걸 가방에 미어져라 쑤셔 넣은 채 집에 간다. 교과서 지급받는 날 부모님이 교문 앞에서 기다리는 친구들도 있고, 며칠에 걸쳐서 교과서 나눠 들고 가는 방법을 쓰기도 하지만 왜인지 어린이들은 한꺼번에 가방에 넣고 집에 가는 걸 택한다. 나 역시 어린 시절 교과서 받는 날이면 무거운 가방에 어깨가 한껏 처진 채 집으로 걸어갔었다. 이런 교과서 지급 방식을 이상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1980년 5월 21일 서울 변두리 여관방, 며칠 전 광주 도청 앞 시위로 검거대상 1호로 지목된 전남대 교수 몇 사람이 피신 중이었다. TV에는 ‘폭도들이 광주를 폭도에 장악했고 계엄군이 진압작전을 준비하고 있다’는 뉴스가 뒤덮었다. 광주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벌써 피비린내가 진동할 때, 뉴스를 보던 송기숙 선생이 벌떡 일어섰다. “갑시다. 광주사람들이 다 죽는다는데 우리만 여기서 이럴 수는 없소. 살아있더라도 평생 부끄러운 삶일 것이오. 차라리 가서 같이 싸우고 같이 죽읍시다. 내려갑시다.” 그 길로 3명의 전남대 교수는 전라선 막차를 타고 제 발로 사지로 들어갔다. 시민수습위를 조직하고 활동하다 계엄군에 체포되어 보안사의 모진 고문을 겪어야만 했다. ‘내란죄 중요임무종사’라는 죄명이었다. 소설 ‘녹두장군’의 작가 송기숙 선생이 며칠 전 세상을 떠났다. 한 시대의 녹두꽃이 떨어졌다. 78년 서슬퍼런 유신치하에서 국민교육헌장이 ‘유신독재의 비인간적이고 비민주적인 교육정책을 집약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며 ‘우리의 교육지표’를 발표하고 구속되기도 했던 선생은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두 세력에 모두 맞서며 고초를 겪었다. 선생을 고통 속에 몰아넣었던 군사쿠데타 주동
- 포르노와 딥페이크 배우 스칼렛 요한슨은 포르노 영화에 출연한 적이 없다. 그런데 그녀가 등장한 포르노 영상이 걷잡을 수 없이 온 지구에 공개되고 있었다. 2018년 <워싱턴 포스트>지와의 대담에서 그녀는 자신이 겪고 있는 고통을 이렇게 하소연했다.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지만, 어떻게 할 도리가 없더라고요. 모든 나라에 가서 일일이 다 그 영상을 다 내리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이러다가는 누구라도 영상조작의 희생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 AI를 동원한 이른바 심층조작 테크놀로지 ‘딥 페이크(Deep Fake)’에 대한 이해가 없었더라면 스칼렛 요한슨은 명백한 영상증거 앞에서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았을 것이다. 할리우드 인기 여배우가 이런 식으로 피해자가 되고 있는 딥페이크는 오늘날 포르노 시장의 대부분을 구성하는 기술이 되고 있다. 이 같은 영상뿐만이 아니다. 이방카 트럼프와 미셀 오바마가 함께 변태 성행위를 하는 걸 빌 클린턴이 보고 있는 영상도 버젓이 돌아다니고 있는 판국이다. 바로 이런 딥페이크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영상도 딥페이크로 만들어진 바 있다. 오바마의 영상이었다.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이 영상에서 딥페이크 기술로
축제 끝난 이른 아침을 기억하는가. 광란의 밤이 훑고 간 취기 남은 몽롱한 눈앞에 펼쳐지는 일상이 갑자기 낯설다. 어깨 비듬을 털며 지하도로 내려가는 사람들, 상가 셔터를 올리고 째지게 하품하는 상인들, 도로를 메워가는 자동차들...... 꿈이었던가. 지난밤이 전생인 듯 하다. 그 생경한 아침의 감정을 말과 글로 풀면 반이나 전할까. 그럴 때 도와주는 음악이 있다. 영화 흑인 오르페(Black Orpheus)의 주제곡 ‘카니발의 아침’. 인생에서 몇 번 안 될 그 생경한 순간의 감정을 넘치게 표현해준다. 영화 ‘흑인 오르페(감독 마르셀 까뮈)’는 1959년에 만들어져 우리나라에는 60년대 들어왔다. (손가락 하나로 모든 영화, 음악을 접할 수 있는 이 시대 젊은이들에게는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이야기겠지만) 80년대 청춘을 보낸 나는, 지난 영화는 볼 수가 없어 심야 라디오를 통해 영화도, 음악도 처음 알게 되었다. DJ가 영화 소개를 장황하게 했는데 ‘그리스 신화 오르페우스와 유리디스의 비극에서 소재를 따왔으며 무대를 브라질로 옮겨 만들었다’ 정도만 기억난다. 음악이 나오자 공기가 달라졌다. 전주에 기타소리에 맞춰 여가수의 허밍이 나오는데 절로 눈이 감겼다
닭 잡아먹고 오리발 내민다, 옳지 못한 짓 하고 엉뚱한 수작으로 남을 속이려 한다는 속담이다. 매끈한 얼굴과 날씬한 몸매, 능숙한 말솜씨의 ‘AI윤석열’은 느닷없는 오리발처럼 낯설고 당혹스럽다. AI은 인공지능이다. 신기술 AI가 매만진 저 윤석열은 윤 후보가 아니다. 이준석 대표의 젊은 비단주머니가 너무 나갔나, 저건 사기(詐欺)다. 날조(捏造)다. 신기술 따위 제목 이전에 상식으로 보라. 젊은 여자들을 암소로 ‘출연시킨’, 더러운 서울우유 광고처럼 국민 속이는 짓이다. 그 ‘암소여자 광고’처럼 사과하고 바로 거두어들이는 것이 어떤가. 바카야로(馬鹿野郎 마록야랑)는 ‘바보야’하는 일본의 욕이다. 원래는 중국산(産)이다. 지록위마(指鹿爲馬)라는 고사성어는 요즘 말로 가짜뉴스(fake news)로 풀 수 있다. 사슴을 가리켜(指) 말이라 한다(爲)는 뜻이다. 사전은 ‘사실이 아닌 것을 강압으로 사실로 인정하게 함’이라고 푼 다음 ‘윗사람을 농락하여 권세를 마음대로 함’이라고 덧붙였다. 나쁜 짓일세. 진시황 죽은 후 권력을 좌지우지한 내시 조고(趙高)가, 계략을 써서 만든 어린 황제 호해(胡亥)와 신하들에게 사슴을 보이며 말이라 했다. “왜 저게 말이냐?”한 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