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과 부를 추구하며 빠르게 달려가던 세상은 육체적, 정신적 조화를 통해 건강한 삶을 영위하는 ‘웰빙(well-being)’을 일으켰고,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치유와 회복을 추구하는 ‘힐링(healing)’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이제 칠랙스(chillax)의 시대다. ‘쉬다, 놀다’를 의미하는 ‘chill’과 휴식을 의미하는 ‘relax’가 합쳐져 생겨난 속어 ‘chillax’는 ‘느긋하게 쉬다, 특별히 하는 일 없이 시간을 보낸다’는 의미다. ‘chill’의 본래 뜻은 ‘무언가를 얼지 않을 정도로만 차갑게 한다’지만, 영어적 표현인 ‘cool’과 비슷하게 쓰인다. 즉, 시원하고 차분(cool)한 태도는 한층 나아가 삶이 과열되지 않도록 차갑게 식혀주는(chill) 삶에 대한 태도로 진화됐다. 실제로 칠랙스는 ‘긴장 풀다’를 의미하는 ‘chill out’과 같은 의미로도 사용된다. 삶에 대한 태도는 조화에서 치유로, 치유에서 식힘(가라앉힘)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긴장되고 과열될 것 같은 삶은 어떻게 식히고, 풀어줘야 할까? 웰빙, 힐링에 비해 칠랙스에는 주체성이 더 짙다. 앞의 두 개념이 명상, 요가, 산책 등을 통해 신체적, 정신적 이완을 꾀한다면…
“이 땅에 저널리즘은 있는가?”는 지난 6월 4일 서울민예총 시각예술위원회 ’굿바이전‘작가 일동이 내 성명서의 제목이다. 이 성명이 나오기 전날인 6월 3일 한국기자협회는 “서울민예총...언론인들의 명예를 훼손하고 활동을 위축시키는 전시회를 즉각 중단하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낸 바 있다. 기자협회 ‘협박 성명서’ 덕분에 서울민예총에서 지난 6월 1일부터 광주시의 메이홀에서 ‘굿바이 시즌2 전(展)-언론개혁을 위한 예술가들의 행동’이라는 전시회를 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번 전시에는 ‘소녀상’ 조각가 김운성, ‘조선일보 두루마리 휴지’의 오종선 작가, 박근혜-최순실을 풍자한 ‘더러운 잠’으로 논란의 중심이 되었던 이구영 작가 등 만화, 회화, 캐리커처, 일러스트 분야의 작가 18명이 참여하고 있다. 한국기자협회가 성명서에서 주장하고 있는 것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소위 문재인정부에 비판적인 기자들을’ 붉은색으로 덧칠해 적폐세력으로 묘사하고 소속사와 실명을 거론하여 명예훼손을 하고 있다. 둘째, 전시하고 있는 것은 예술작품이 아니라 ‘편협한 이념과 사상이 개입되어 그들과 다른 생각의 존재를 비하하고 악의적으로 표현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명예훼손
최근 두각을 나타내던 테라·루나의 가격 폭락으로 인하여 전 세계 암호화폐 시장에 먹구름이 가득하다. 테라는 알고리즘에 기반을 둔 스테이블 코인으로서 탈중앙화에 대한 매니아들의 맹목적 신뢰와 가격상승 편향의 알고리즘 구축으로 짧은 기간에 급속한 성장을 이루었다. 테라 신화 몰락의 요인은 알고리즘 자체의 결함이다. 테라의 알고리즘은 현실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완전경쟁시장을 상정하였기에 필연적으로 불완전할 수밖에 없었고, 이를 보완하기 위한 가격안정 시스템은 적시에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는 기술적 측면에서 본 것이고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화폐의 본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였거나 이를 경시하였기 때문이다. 현재 유통되는 법정화폐는 수십만 년 인류 진화의 DNA가 내재화된 정치·경제·사회적 산물이다. 암호화폐는 정치로부터 독립한 탈중앙화의 실현을 추구한다. 따라서 정치적 문제는 별개로 논의한다고 하더라도, 테라는 화폐의 사회적 성격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였다. 테라를 기반으로 하는 전자 상거래 생태계가 아직 성숙하지 못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테라·루나의 가격상승을 통한 생태계 성장 전략을 추구하였다. 그 결과 네트워크 내 신뢰관계가 취약한 상태에서 포스
진정한 생명은 시간과 공간밖에 있다. 그러므로 죽음은 이 세상에서의 생명의 현상을 바꿀 수 있을 뿐, 결코 생명 자체를 멸망시킬 수는 없다. 남을 아는 사람은 지혜롭고 자기 자신을 아는 사람은 밝음이 있다. 남을 이기는 사람은 힘이 있고, 자기 자신을 이기는 사람은 강하다. 죽으면서 자기가 멸망하지 않음을 아는 사람은 영원히 존재를 유지한다. (노자) 나는 현존하는 모든 종교를 믿지 않기 때문에, 내가 무언가의 전승과 교육의 영향에 맹목적으로 따르고 있다고 의심받을 이유가 없다. 나는 평생동안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 깊이, 우리의 삶의 법칙에 대해 생각해 왔다. 나는 그것을 인류의 역사와 나 자신의 의식 속에서 탐구한 결과, 다음과 같은 흔들리지 않는 신념에 도달했다. 즉, 죽음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생명은 원래 영원한 것이어야 하며, 늘 그 자리에 있으며 변하지 않는 것이 진정한 생명의 법칙이라는 것, 내 안의 모든 능력과 모든 사상, 모든 요구는 실천을 통해 살려야 한다는 것, 우리 안에는 우리가 세상살이에서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을 훨씬 넘어서는 높은 사상과 동경이 있다는 것, 우리 안에 있는 그러한 동경은 우리의 감성을 통해 그 출처를 확인할 수…
'노랑예수'. 폴 고갱(Paul Gauguin)의 그림이다. 퐁타벤(Pont-Aven) 트레말로 성당의 나무 예수상을 보고 그렸다. 2년에 걸쳐 완성된 '노랑예수'. 19세기 프랑스 북부에서 펼쳐진 예수의 수난과 그 곁을 지키며 기도하는 브르타뉴 여인들의 모습이다. 예수의 강한 윤곽선과 평면적 구성, 여인들의 독특한 음영. 인상파와 결별한 새로운 풍이다. 노랑, 주황, 녹색의 가을 팔레트는 예수의 형상을 압도하는 노랑의 메아리로 울림이 크다. 프랑스 브르타뉴지방의 퐁타벤. 볼을 스치는 부드러운 바람, 밀감익기에 좋은 온화한 햇빛, 저렴한 생계비, 풍부한 현지소재. 가난한 예술인들이 이곳으로 모여든 이유다. 고갱이 퐁타벤을 처음 방문한 건 1886년. 그 후 다시 찾아와 4년간 머물렀다. 야생의 마을이자 원시적인 곳. 고갱은 이런 퐁타벤을 무척 좋아했다. “화강암 위를 걷는 내 장화 소리를 들을 때, 난 그림에서 찾고자하는 은은하지만 강력하고 불투명한 소리를 듣는다”라고 표현했다. 그만의 스타일을 찾아 세계를 헤매던 고갱. 퐁타벤에서 급기야 그 꿈을 이룬다. 갑갑한 도회지생활을 벗어던지고 순수성과 고결성을 찾아 이곳에 왔다. 신선한 공기, 이국적 방언, 전통적
인구와 일자리 등 수도권 집중화가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청년 구직자 10명중 7명 이상이 지방 근무를 기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수도권에 거주하며 구직활동을 하는 청년을 대상으로 ‘지방근무에 대한 인식 조사’를 실시한 결과, 지방 근무를 기피한다는 응답이 73%(49.2% ‘다소 그렇다’, 23.6% ‘매우 그렇다’)에 이르렀다. 반면에 ‘별로 상관없다’와 ‘전혀 상관없다’는 대답은 각각 22.6%와 4.6%로 조사됐다. 또 비수도권 회사에 실제로 입사 지원하는지를 물었는데 ‘전혀 지원하지 않는다’가 34.5%나 됐다. ‘가급적 지원하지 않는다’(31.6%)까지 합하면 66%다. ‘지역에 상관없이 지원한다’는 응답은 14.3%에 불과했다. 연봉이나 다른 조건이 좋아도 비수도권 회사라면 다니지 않겠다는 생각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2020년 기준 비수도권에서 수도권으로 순유출된 청년인구는 약 9만1000명으로 2010년에 비해 1.7배 이상 증가했다. 비수도권 인구 중 청년 비중 역시 2010년 19.7%에서 2015년 18.8%, 2020년 17.6%로 하락했다. 수도권 인구는 1970년 28.3%에서 급속한 산업화·도시화가 진행
우리네 인식에 붉은색은 보통 위험, 정열, 공산당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살면서 자연스럽게 체화된 인식이다. 초등학교 운동회엔 항상 만국기가 줄에 매달린다. 왜 그런지 한 번이라도 생각한 교장이 있을까? 내가 보기엔 습관적 의식이다. 어릴 때부터 봤으니까 당연한 거다. 쿠베르 땅의 올림픽 정신이 제일 잘 구현된 곳이 우리나라 초등학교 운동회일 거다. 민방위 교육장에서 선창 하는 우리의 선서는 10개를 읽어도 그냥 하나 우리는… 하나 우리는… 이다. 항목을 표기하는 ㅡ을 무의식적으로 한자 1로 생각하여 하나로 읽는 것이다. 10개를 선창해도 매번 하나면 의심해볼 만도 한데 누군가 시작했을 것이 전국 어딜 가도 똑같다. 의심하는 내가 이상하다. 각 나라 국기색 중 가장 적은 것이 검은색이다. 독일, 이집트, 시리아, 남아공, 자메이카 등이다. 찾아보니 독일은 탄압에 대한 분노란다. 남아공은 흑인을 의미하고 시리아는 아바스 왕조를 상징한다. 자메이카는 고난을 의미하고. 이번 선거를 보니 붉은색 천지다. 전국 지형도나 서울 지형도나 붉은색이 대다수인걸 보고 민심의 변화가 무섭고 이렇게 흐름을 타는 것인가 생각했다. 정치적으로 붉은색은 기피 대상이었다. 남북이
인간은 모두 노예가 아니면 안 된다. 문제는 누구의 노예가 될 것인가이다. 만약 욕망의 노예라면 말할 것도 없이 인간의 노예가 될 것이고, 정신적 본원의 노예라면 신의 노예가 될 것이다. 기왕이면 높은 주인에게 속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가난한 사람들은 언제나 너희 곁에 있다’는 예수의 말씀은 매우 사악한 의도로 해석이 되고 있다. 오늘날의 사회적 진보와 발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잘못도 아닌데 기초생활을 꾸려나갈 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 있다면, 이는 ‘우리’의 잘못이며 ‘우리’의 치욕이다. 누구든지 주위를 돌아보면 노동자들에게 당연히 주어져야 할 권리와 이익이 보장받지 못하고 있고, 가진 자들의 부정과 불의로 인해 우리 모두가 부유해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헨리 조지) ‘모든 것이 합동하여 선을 이룬다’는 성서의 가르침이 이상하게 작동을 하여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악도 선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잘못된 태도를 낳고 있다. (조헌정) 어떤 사물, 어떤 습관, 어떤 법률이 존중받으면 받을수록, 정말로 그것이 존중할만한 가치가 있는지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한다. 현재 생활의 악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 속의 종교적 허위를 버
한겨레신문은 창간 당시 재판관련 기사를 쓸 때 속보경쟁에 밀려 한쪽 주장만을 일방적으로 보도하는 기존 행태를 바꾸기로 했었다. 여론재판의 위험성을 막기 위해서였다. 설령 뒤늦은 보도라는 비판을 받는 한이 있더라도 공판에 참여하는 원고와 피고 양측 주장을 모두 듣고 이를 정리해서 독자들에게 그 전체적 맥락을 파악하도록 하는 것이 목표였다. 하지만 속보경쟁이 난무하는 현재 언론 풍토에서 이는 지켜지지 못했다. 최근에 본 다큐영화 '그대가 조국'은 속보 경쟁에 휩싸인 언론의 치명적 약점을 파고든 정치 검찰의 언론 플레이를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수사 과정에서 참고인마저 겁박하고 선별적으로 뽑아낸 진술을 기초로 언론에 흘리고 피의자들에 대한 공소장을 만드는 법 기술자들의 행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동양대 교수휴게실에 놓여 있던 PC 사용 위치를 가리키는 IP번호가 앞의 세 개 번호만 같고 뒷 번호는 상이함에도 같은 위치라고 강변하는 검찰 측 억지 주장도 소개됐다. 조 장관 부인인 정경심 교수가 PC를 집으로 가져가 딸의 표창장을 위조했다는 사실을 입증하려면 전체 IP 번호가 일치해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수사 검사가 자신이 원하는 진술을 받아내기 위해 참고인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