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혼탁(混濁)한 시대를 살고 있다. 신문·방송·영화·SNS 할 것 없이 정치·경제·사회·문화 전반에 걸쳐 거친 말과 혐오 표현이 난무한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다들 살림살이가 어렵다 보니 인심(人心)이 각박해진 것은 아닐까. “일정한 생업을 갖지 못하면 바른 마음을 견지하기 어렵다.(無恒産無恒心)”는 맹자(孟子)의 말이 예나 지금이나 틀리지 않은 것 같다. 우리 속담에도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말이 있듯이 가정·조직·기업·국가·세계 어느 곳 하나 민생(民生)이 넉넉하지 않고 미래가 불안하면 여기저기서 불평·불만이 터져 나오기 마련이다. 서로의 생각이나 의견이 엇갈리더라도 내부 분위기가 좋을 때는 별다른 탈이 생기지 않는다. 기초 체력이 있거나 어느 정도의 내성(耐性)이 있는 사람은 약간 상한 음식도 너끈히 소화해내는 이치와 같다. 그러나 국가의 경우에는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제때 제대로 대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훗날 더 큰 분열과 자중지란(自中之亂)의 빌미가 될 수 있다. 사안에 따라서는 국가공동체나 민족공동체의 뿌리 자체를 송두리째 뽑아버릴 수도 있다. 그래서 내부에서 일어나는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관심을 갖고 주의
누구였더라? 핸드폰에 저장된 이름이 낯설어서 한참 만지작거립니다. 명함이든 무엇이든 주고받았으니 저장되었을 게 분명한데, 떠오르는 얼굴이 없어서 답답할 밖에요. 죄송하기도 하고 무안하기도 해서, 몇 번을 속으로 불러 보다 삭제 버튼을 누르고 맙니다. 한 해를 마무리할 즈음이면 늘 겪는 일입니다. 젊어서는 전화번호를 적은 조그만 수첩을 정리하였는데, 요즈음은 핸드폰에 저장된 연락처를 정리합니다. 굵은 볼펜으로 주욱 선을 그어 지우던 시절에서 슬쩍 삭제 버튼을 누르는 세상으로 변했지만, ‘정리한다’는 본래의 목적에는 달라진 게 없습니다. 아시겠지만, 요즈음 나와 당신이 하는 정리는 방이나 책상을 정돈하는 것이 아닙니다. 쓸거나 털거나 닦아내는 게 아니고, 높낮이를 조절하거나 위치를 바꾸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하는 정리는 묵은 생각을 지우고 고인 시간을 비우는 것입니다. 덜어내고 또 덜어내서 세상살이에 눌린 어깨를 쉬게 하는 겨울잠 같은 것이랄까요. 묵은 계절을 정리하는 건 사람 아닌 것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람은 계절의 온도에 따라 낯빛을 바꿉니다. 스치고 지날 때 얼굴을 할퀴는 손톱은 겨울바람의 전유물입니다. 봄도 여름도 가을조차도 겨울바람이 뿜어내는 작별의
최근에 발표된 ‘2024 세계행복보고서(WHR)’에 따르면 한국인이 반응한 행복 지수는 전 세계 143개국 중 52위로 중위권에 해당한다. 그러나 전체 행복 지수에 비해 노인의 행복도는 매우 낮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추정은 2023년 OECD가 발표한 65세 이상 노인빈곤율은 우리나라 노인이 40.4퍼센트로 가장 높다. OECD에서 국가별 노인빈곤율을 공개한 2009년 이래 우리나라는 계속 1위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위 라트비아 25.4퍼센트에 비하면 우리나라 노인 빈곤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짐작할 수 있다. 미국 노인들은 우리나라 노인들과는 사정이 사뭇 다르다. 순자산의 약 80퍼센트를 60세 이상의 국민이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다수 국가에서는 그 비율이 50∽60퍼센트라고 한다. 이렇게 편중된 부(富)조차도 고령층 사이에서 불평등하게 분포되어 있어, 20∽30퍼센트의 노인들이 이 연령대에 축적된 부의 9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미국 노인들은 전 연령대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부유한 편이지만 같은 연령대에서도 빈부격차가 여전히 큰 셈이다. 미국 노인빈곤율도 18퍼센트로 OECD 38개국 중에서는 5위에 해
지난 9월 초 연길에 갔을 때였다. 호텔의 북한식당에 들어서려는데, “한국사람 받지 않습네다”, ‘남한’도 ‘남조선’도 아닌 명확히 ‘한국’이라는 용어를 쓰며 차갑게 거절한다. 북한 접경지역에서 경험한 ‘남한과의 결별’ 상태는 예상보다 훨씬 심각했다. 현지 중국동포에 따르면 10만 명 정도 되는 연변지역 북한 노동자들에게 이미 지침이 전달되었다고 한다. 전쟁의 비극을 경험한 한반도에서 동족의식으로 상호절제에 의해 어렵게 유지되어온 잠정적 평화가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었다. 하노이 북미회담 결렬이후 북한은 자력갱생으로 전환했다. 한미일 협력으로 압박이 강화되자 북한은 2023년 12월 남북관계를 ‘교전 중인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하고 통일, 화해, 동족 개념을 지워나가고 있다. 그리고 남한이나 미국 대신 러시아와 손을 잡고 국가발전을 모색하는 중이다. 북한은 서로 상관하지 말자며 결별의 길을 가고, 남한은 강경책을 고수하며 일촉즉발의 대결상태가 계속된다. 글로벌 10위권, 문화강국 대한민국이 유치하게 대북전단과 오물풍선으로 북한과 싸우며 국제사회의 조롱거리가 되었고 국민들은 전쟁위험에 불안해하는 상황이다. 한반도에서 전쟁은 남북한 모두에게 재앙이고, 가장 큰…
돌림자처럼 ‘농’자 든 세 낱말, 농단 농간 농락 등은 비슷해 보인다. 같은 뜻으로 아는 이도 있겠다. 그러나 이 말들은 각각 다른 단어다. ‘시대언어’인가? 박근혜 정권 말기처럼, 요즘 큰 유행인 ‘국정농단’의 농단(壟斷) 말이다. ‘깎아 세운 듯한 높은 언덕’이란 뜻이다. 사전에는 이런 풀이도 있다. ‘이익이나 권리를 독차지하는 것. 시장에서 높은 곳에 올라가 사방을 둘러보고 물건을 사 모아 비싸게 팔아 이익을 독점하였다는 데서 온 말’이란다. 농간(弄奸)은 ‘속이거나 남의 일을 그르치게 하려는 간사한 꾀’ 즉 사기다. ‘손으로 만지며 논다’는 농(롱)과 ‘간사하다’의 간의 합체다. 희롱 우롱의 弄이 핵심 의미다. 농락(籠絡)은 ‘새장과 고삐’라는 뜻, 남을 교묘한 꾀로 휘어잡아 제 마음대로 놀리거나 이용하는 것을 말한다. 시쳇말로 ‘가지고 논다’는 말이다. 대충 바꿔 사용할 수 있는 말들은 아니다. 한자(漢字)도 다 다르다. 계통이 같거나 비슷한 말로 생각했던 것은 오산이었다. 그러나 공공(公共)의 도리나 개인 간의 이해(利害) 등 여러 세상사에서 품격이 현저히 떨어지는, 악질 또는 저질적 행실인 것이 셋의 공통점이다. 언론 등 현장에서의 단어의 용례(
요즘 우리 사회는 희망적인 일보다 비관적인 일이 가득하다. 주식폭락, 정치부패, 지방소멸, 학교폭력, 고독사 등등. 사회가 방향을 잃은 듯하다. 부모 자식 지간도 마찬가지다. 단적인 예로 노인들이 자신의 전 재산을 자식에게 한 푼도 주지 않고 전부 쓰고 가겠다는 자조 섞인 이야기가 난무하다. 자식에게 더 이상 기댈게 없다는 비관론이다. 이런 삭막한 분위기와는 달리 프랑스에서는 전 재산을 지역 사회에 기증하고 떠나는 노인들이 많다. 올 초 프랑스 남부에 있는 바르(Var) 지역에서 95세의 한 노인이 세상을 뜨면서 지역 당국에 250만 유로(한화 약 40억 원)를 유증하고 돌아가셨다. 마르슬렝 아르튀르 샤익이라는 이 남성은 자신의 유산으로 노인들을 위한 데이케어 센터를 설립해 줄 것을 요청했다. 시 의회는 고인의 유언과 유산을 만장일치로 받아들였다. 약 3,000명의 주민이 거주하는 이 지역의 단체장인 카미유 부주(Camille Bouge)는 이 금액이 “앞으로 몇 년 동안 놀라운 투자 및 운영 능력”을 키워갈 것이라며 흐뭇해했다. 부주 시장은 “약 100평방미터의 새 부지를 찾아 노인들이 함께할 수 있는 친절하고, 따뜻하고, 친근한 공간을 만들고 세 명의 직
호주 정부가 16세 미만 청소년의 소셜미디어(SNS) 사용을 금지하는 법안을 준비한다. 이 금지법이 시행되면 청소년은 부모의 동의 여부에 상관없이 SNS 접근이 제한된다. 호주 정부는 SNS 기업이 어린 청소년의 접근을 막기 위해 적절한 조치를 마련하게 하고, 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으면 막대한 벌금을 물린다는 구상이다. 청소년의 SNS 사용을 제한하는 입법 시도는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에서 나타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하루 일정 시간 동안 SNS가 부모 동의 없이 미성년자에게 알림을 보내는 것을 금지하고, 미성년자 계정은 비공개를 기본 설정으로 하도록 규정하는 법안을 2027년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프랑스 정부는 3세 미만 영유아의 영상 시청을 전면 금지하고, 스마트폰을 통한 인터넷 접속은 13세부터 할 수 있게 하며, SNS 사용은 15세부터 허용하되 제한을 두어야 한다는 초강경 정책을 논의 중이다. 프랑스 일부 학교는 스마트폰 사용 금지를 선언했는데 내년에는 초중학교 전체로 확대하자는 여론이 호응을 얻고 있다. 이탈리아에서 14세 미만은 휴대전화 소유 자체를 금지하고 16세 미만은 SNS 계정 개설을 금지하자는 온라인 청원이 올라왔다. 교육
칼 포퍼는 '열린사회와 그 적들'이란 자신의 저서를 마르크스 주의 비판을 위해 썼다. 그가 이 책을 썼던 때는 1945년이다. 나치의 잔혹함을 경험했고 스탈린의 전체주의 독재를 목격했다. 칼 포퍼의 이론은 소위 자유민주주의자들이 자신들의 정치 선전 도구로 이용하곤 한다. 반공 이데올로기를 그럴 듯 하게, ‘좀 있어 보이게’ 하려는 사람들은 칼 포퍼를 아는 척 한다. 특히 개신교 이론가들이 포퍼의 ‘열린 사회와 닫힌 사회’의 대립 개념을 내세우곤 한다. 아이러니다. 칼 포퍼의 열린 사회론을 내세우는 집단들, 정당들, 교회들이 오히려 닫힌 사회의 행태를 더욱 적극화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견이 다른 정당의 대표와 정치인들을 무리한 법조항을 내세워 활동을 규제하려 하는 것은 닫힌 사회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동성애, 이슬람을 인정하지 않는 일부 개신교들의 집회는 그걸 지켜 보는 사람들을 두려워 떨게 만든다. 나치 히틀러는 유대인을 학살하면서 동성애자 역시 상당수 태워 죽였다. 그 역사를 애써 외면하려 하는가. 한 사회가 열린 사회인지 닫힌 사회인지를 바로 알 수 있는 길은 사회 구성원의 일부, 특히 지도급 인사들이 문화와 예술을 대하는 태도이다. 한국 사람들 중 일
지난 시간에 이어 보양주에 대해 마무리를 해야겠다. 이 술이 사람들의 관심을 가장 많이 받았다. 일단 동물성 재료로 술을 빚는다는 부분과 맛이 나쁘지 않다는 것이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했을 수도 있다. 동물성 재료는 발효하는데 많은 변수가 있을 수 있다. 술빚기에는 적합하지 않아 지금까지 전해진 것은 별로 없지만 이런 지혜를 통해 우리 술이 나아가는 길을 좀 더 확장 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좋을 것 같다. 네 번째로 사용했던 재료는 북어이다. 북어는 명태를 말린 것으로 다양한 음식 재료로 사용되지만 우리는 제일 먼저 해장국을 떠올린다. 아버지가 저녁에 술 한잔하고 들어오시면 다음 날 아침 부엌 한편에 있는 북어를 나무 방망이로 두들겨 부드럽게 만든 후 고소한 참기름에 볶다가 물을 조금씩 넣으면서 끓이면 뽀얀 국물이 우러난다. 여기에 파와 마늘 그리고 달걀을 풀어 마무리하면 까칠한 입맛을 돌아오게 하는 시원한 속풀잇국이 완성된다. 드시면서 시원하다고 이야기하시는데, 어렸을 때는 이해하지 못했던 그런 일들이 지금은 말하지 않아도 공감이 많이 간다. 그럼 먼저 명태에 대해 유래부터 알아보자. 여러 가지 이야기가 전해진다. 옛날 함경도 명천(明川)에 성이 태(
10월 7일에 벌어진 일은 물론 많은 사람에게 충격을 안긴 비극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1948년에 팔레스타인의 땅 78%를 강탈하며 이스라엘이 만들어지고, 1967년 이후에는 나머지 22% 지역마저 군사점령하고, 2007년부터는 가자지구를 봉쇄해서 창살 없는 감옥으로 만든 것이 낳은 결과라는 것도 분명했다. 이스라엘 정권은 끝없이 정착촌을 확대하면서 무장헬기, 전투기, 불도저, 장갑차로 팔레스타인인들을 인종청소해 왔다. 75년이 넘게 다른 민족을 점령하고, 2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을 감옥처럼 가둬놓고서 평화를 기대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 10월 7일을 통해서 명명백백해졌다. 그날 벌어진 비극은 이스라엘의 식민 점령과 억압에 대한 분노의 분출이었다. 지난 1년간 우리가 가자에서 본 것은 '하마스에 대한 공격'이 아니었다. 이것은 팔레스타인과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폭격이었다. 가자의 모든 학교와 병원이 파괴됐고 생지옥으로 변한 가자에서 끝없이 피난 가고, 죽고, 돌아오고, 다시 죽는 사람들이 매일같이 생중계로 보여졌다. 이것은 SNS를 통해서 피해자들 자신에 의해서 24시간 생중계된 대량학살이었다. 지난 1년을 통해 우리가 봐야 할 가장 중요한 사실은, 아랍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