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지적 활동은, 종종 진리를 해명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은폐하는 데 이용되곤 한다. 재판의 목적은 현재의 사회체제를 유지하려는 것에 불과하다. 그래서 지적 수준이 높은 사람들 또한 수준 낮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박해하고 처벌한다. 나는 농부들을 사랑한다. 그들은 잘못된 판단을 내릴 만큼 많이 배우지 않았으므로. (몽테뉴) 도대체 왜 그 사람은 종교적, 정치적, 학문적으로 그토록 괴상하고 불합리한 입장을 옹호하는 것일까 하고 참으로 이상하게 여겨질 때가 종종 있지만, 잘 살펴보면 그저 자신의 입장을 변호하는 호신술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잘 알 수 있다. 사람이 자신의 행위를 복잡한 이론으로 설명하려 할 때는, 그 행위가 나쁜 행위라는 것을 믿어도 된다. 양심의 결정은 항상 간단명료하고 솔직하다. 영혼이 구원 얻기 위해 먼저 도덕적인 인격의 자유로운 사람이 되지 않을 수 없고, 자유의 길을 걷기 위해서는 현실의 발길에 채이는 돌을 우선 치워놓지 않을 수 없다. 목적은 하늘에 있으나 일은 땅에 있다. 땅을 박차지 않고 날아오르는 새는 하나도 없다. 이 의미에서 예수께서 기도를 가르치실 때에 “나라가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나는 내 앞의 그녀에게 이렇게 대답한다. 이러저러한 자신의 증상을 호소한후에 잠을 계속 잘 못자서 그런가. 하는 혼잣말을 하는 그녀에게 말이다. 5일전부터 소변이 1,2시간에 한번씩 자주나와서 모병원에서 검사를 받고 미세한 혈뇨가 보인다고 간단한 처방을 받았는데 남편이 한의원가서 보약지어먹고 빨리 회복하라고 성화여서 한의원에 들른 차였다. 나는 혈뇨가 나타날 수 있는 여러 가능성에 대해 말하며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혈뇨일지라도 지금부터 몸을 잘 돌볼 것을 일렀다. 어느식당에서 서빙을 하는일을 하루 종일 소변생각도 잊을 만큼 바쁘고 고되다. 열심히 해서인지 손님들이 많이 좋아해줘서 일할 때는 힘든줄 모르다가 밤이 되면 넘 피곤하데 밤에는 편치 않아 잠을 잘 못잤다고 하였다. 검은 흙빛의 얼굴로 이런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도 표정은 밝은 그녀다. “그래요. 잠이 보약입니다. 지금 필요한 한약을 복용하면서 제가 안내하는데로 일상생활을 관리하면 점점 좋아질거예요. 잠을 잘 못잤던 분들은 몸이 회복될때까지는 잠이 많아진답니다. 몸이 이제까지 쌓인 피로를 풀려고 하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니 잠이 오면 주무세요. 한달 쉴 수 있어 정말 다행이예요. ” 수면장애의 대표적 증상인
"왜 어린 애들에게 미사일을 쏘아 죽이려 하는 거죠? 정말 불공정합니다.”(팔레스타인 소녀 나딘 압델 타이프가 지난 15일 중동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점점 팔레스타인의 숙명에 익숙해지고/ 우리 삶이 감옥이 되어 갔다는 것/(....) 나는 죽는 것이 두렵지 않아요/ 이미 그때 내 삶은 죽음과 손잡고 있었으니까"(2011년 출간된 정한용 시인의 『유령들』에 실린 시 '레퀴엠' 중에서) "이 무지막지한 이스라엘 군인 놈들아/ 내 자식 내 남편 내놓아라./ 이 갈갈이 찢어 죽일 아브람, 모세, 다윗, 솔로몬의 새끼들아/ 통곡의 벽 안쪽은 그 벽 밖의/ 통곡이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이 외신은 울음의 전도체인가, 아닌가"(1983년 출간된 황지우 시인의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에 실린 시 '베이루트여, 베이루트여' 중에서) 2021년, 2011년, 1983년. 팔레스타인 소녀와 한국의 두 시인이 40년이라는 시간 격차 안에서 절규한 이 연도들은 무엇을 뜻할까? 너무 명백해서 묻는 것 자체가 부질없다. 팔레스타인 상황은 그만큼 전혀 달라지지 않은 것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하마스가 지난 20일(현지 시각) 휴전하기로 합의했지만 합의서는 두루마리 화장지
앞에 산이 버티고 섰다. 세찬 물살이 앞길을 가로막았다. 갈 길 바쁜 나그네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다시 산그늘 속으로 들어간다. 아득한 길을 탓해봤자 허망한 일, 묵묵히 신발끈을 동여맬 뿐이다. 한미 정상회담을 보며 들었던 느낌이었다. 부동산문제, 검찰개혁 문제 등은 고구마를 입에 털어 넣은 듯 답답하다가도 1년 남은 임기에 그래도 한반도의 숨통을 트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을 보니 짠한 마음이 들었다. 정상회담은 역대급 성과였다. 내 기억에 정상회담에서 이런 굵직한 합의가 나오는 것을 보지 못했다. 꽉 막혔던 남북-북미회담을 뚫기 위해 판문점선언과 싱가폴 공동성명으로 출발선을 다시 맞춰놓았다. 백악관을 어지간히 설득했을 것이다. 또 백신 공동생산이나 달 탐사계획 참여도 반갑다. 미사일지침 완전해제는 상상조차 못했을만치 미래지향적이다. 이로써 대한민국은 안보는 물론이고 우주로까지 시야를 넓히게 되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나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대한민국을 대하는 미국의 태도가 과거보다 진심어린 예우와 환대를 느낄 수 있었던 점이었다. 그것은 높아진 한국의 국제적 위상에 기인했겠지만 한편으론 그동안 정부의 균형 잡힌 외교가 지렛대 역할을 했을 것이 틀림없다.
죽어가는 자의 말과 태도는 주위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죽는 것은 그에 못지 않게 매우 중요하다. 미련을 버리지 못한 추한 죽음은 잘 살아온 자신의 삶에 상처를 내고, 깨달음을 얻은 의연한 죽음은 이전의 나쁜 삶을 보상해준다. 무대장치가 한 장면에서 다른 장면으로 완전히 바뀔 때, 우리가 그때까지 현실 속의 장면처럼 생각했던 것이 한탙 장치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이와 마찬가지로 너는 죽음의 순간,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무대장치였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죽어가는 사람은 살아 있는 사람을 잘 알아보지 못하는데, 그것은 그가 그 순간 이해력을 잃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는 뭔가 다른 것을, 살아 있는 자는 알지 못하고 알 수도 없는 뭔가를 알게 되어, 그것에 영혼이 사로잡혀버렸기 때문이다. 한 인간이 죽는 순간, 그가 그때까지 그 아래에서 불안과 기만과 슬픔과 악으로 가득 찬 책을 읽어 왔던 촛불이, 그 어느 때보다 밝게 타올라 지금까지 어둠 속에 있던 모든 것을 비추어낸 뒤, 이윽고 지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어두워지면서 영원히 꺼지는 것이다. (아미엘) 죽어가는 사람은 어느 정도 이미 영원한 세계에 발을 들여
오마이뉴스와 조선일보가 오랜만에 동행했다. 오마이뉴스가 5월 14일 '산림청이 저지른 엄청난 사건, 국민생명이 위험하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2050년까지 30년간 30억 그루의 나무를 심어 탄소 3400만톤을 흡수하겠다”는 산림청의 초대형 프로젝트에 대한 맹렬한 비판이 골자였다. 드론으로 촬영한 2분 36초짜리 동영상을 포함해 18장의 사진이 곁들여진 기사였다. 그 충실도는 대단히 높았다. 오프라인 언론은 시도하기 어려운 장문의 심층고발 물이었다. 3000건이 넘는 댓글(포털 다음 기준)로 독자의 관심도 뜨거웠다. 조선은 다음날 15일(토)자 2면 톱기사로 '탈원전 文정부, 멀쩡한 산 밀어버렸다'라는 자극적인 제목으로 보도를 시작했다. 이틀 후 월요일자(16일 신문 일요일자 신문 휴간)에선 '산으로 가는 文정부 탄소정책'이란 제목의 1면톱 기사로 강도를 높였다. 아울러 3면 전체를 할애해 비판했다. 이후 금요일까지 매일 기사를 내보냈다. 근래에 보기 드문 1주일간 계속된 집요한 비판기사였다. 두 언론의 기사는 독자들의 분노를 자극했다. 코로나 이후 부쩍 는 등산 인구의 공감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산림청의 ‘30년 이상된 나무가 탄소흡수량이 떨어
석유 수출국 이란은 부자다. 그러나 이란엔 가난한 사람들이 참 많다. 아이러니다. 토크빌이 1833년 영국을 방문하고 부자 나라에 웬 가난한 사람들이 이리 많냐며 깜짝 놀랐던 장면을 떠올리면 이 상황이 좀 이해가 갈까. 아무튼 이란의 불평등은 정책의 실패. 국가의 책임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인구 8500만 명, 이 중 3분의 2는 도시에 거주한다. 인플레이션도 늘 존재한다. 이란정부는 헌법에 명시된 국민의 사회적 권리를 보장하지 않았다. 그러니 국가의 원조를 받지 못하고 소외된 채 사는 사람들이 많을 수밖에. 공적원조는 대부분 에너지, 밀가루, 우유, 식용유, 설탕을 사는 데 필요한 보조금 정도. 이 중 에너지 비용은 보조금의 약 90%. 국내 총생산의 30%였다. 이는 과도한 에너지 사용과 밀수를 조장했다. 게다가 에너지 보조금의 70%는 상위 30%에게 돌아갔다. 1인당 식량 소비는 모두 비슷한데 에너지 소비는 상위 10분위가 하위 10분위보다 5배 더 많았다. 이란 정치인들은 이러한 불합리한 정책을 바로잡아야 했다. 그러나 그 어떤 지도자도 해결하려는 의지가 없었다. 다행이 라프산자니(Rafsanjani) 정부(1989–97)와 하타미(Khata
신약성서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이야기다. 전도자 바울이 드로아에 왔다. 드로아는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항구 도시로, 트라야누스 황제가 만든 도수교(導水橋)가 명물이었다. 초대교회 풍경이 대개 그러하듯, 이곳에서도 아무개의 집에서 일요모임이 열렸다. 밤이 깊도록 바울의 강론이 이어지는데, 한 청년이 3층 창문에 걸터앉아 몹시 졸다가 그만 땅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강론이 중단된 건 당연지사. 혼비백산한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가 청년을 일으키려 하지만, 아뿔싸, 숨을 쉬지 않는다. 어쩌자고 이 청년은 그토록 위험한 장소에 엉덩이를 대고 앉았을까? 좀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서 일찌감치 모임에 왔더라면 안전한 자리를 선점할 수 있지 않았을까? 늦게 온 탓에 창문턱에 걸터앉은 것까지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 쳐도, 얼마나 정신없이 졸았기에 땅으로 떨어지는가? 이 청년의 이름은 유두고. ‘유두고’는 헬라어로 ‘행운’이라는 뜻이다. 그 시절 노예들에게 흔한 이름이었다고 하니, 소름이 돋는다. 노예를 행운이라고 부르는 건 철저히 자본가의 시각일 터. 그러니까 유두고는 일요일에도 쉬지 못하게 붙들어둔 욕심 사나운 주인 밑에서 온종일 일한 뒤, 느지막이 모임에 참석했으리라.…
에이브릴 헤인즈(Avril Haines) 미 국가정보국장(DNI)이 지난 5.12-14간 방한했다. DNI는 16개 미국 정보공동체를 지휘하는 수장격 정보기관으로, 9·11 사태 이후 정보통합과 공유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고육지책으로 설립한 기관이다. 그간 정보기관장 방한은 극비로 부쳐졌고 사전 노출되었을 때는 이를 막느라 대변인실 등이 고생했는데, 이번에는 반공개적 행사로 치러졌다. 왜 그랬을까? 몇 가지로 정리해볼 수 있다. 첫째, 일각에서 헤인즈 국장 일정 공개를 한미동맹 강화 메시지를 중국에 보여주기 위한 것이란 보도도 있었으나, 보안 유지의 어려움이 우선적으로 고려되었다고 본다. 국가정보원만 방문하고 간다면 보안유지가 가능하겠지만, 청와대· 국방부 등도 방문하는 만큼 노출될 수 밖에 없고, 그렇다면 노출을 역으로 방한의미를 부각시키는 기회로 활용했다고 본다. 둘째, 방한 목적을 놓고 북한에 대한 경고 등으로 해석하고 있으나, 한국의 대북인식과 정책을 파악하는 것이 주목적이었다고 본다. 헤인즈 국장의 임무는 북한의 능력 평가와 의도분석이며, 이에 대한 대북정책 결정은 백악관과 국무부의 몫이다. 미국은 정보와 정책을 분리하는 전통이 강하게 살아있어,…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했을(특히 유년 시절에) 다음과 같은 행복한 감정을 알고 있다. 즉 이웃도 부모도 형제도 악인도 원수도 개도 말도 풀도 사랑하고 싶어지는 감정, 오로지 모든 사람이 즐겁고 행복하기를 바라고, 특히 내가 그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은 감정, 언제나 모든 사람이 즐겁고 기쁘게 살기 위해 자기 자신을, 자신의 생명을 바치고 싶은 감정이다. 그리고 그 감정만이 인간 생명의 원점이다. 선량함은 독자적이고 현실적인 어떤 것이다. 인간 속에 선량함이 있는 만큼 그 속에 생명이 있다. 이 법칙 중의 법칙을 깨닫는 것은, 우리의 마음에 우리가 종교적이라고 부르고 있는, 가장 행복한 감정을 일깨운다. (에머슨) 쾌락주의는 우리를 절망으로 이끌고, 의무에 관한 철학에는 적지 않은 기쁨이 있다. 그러나 구원은 오로지 의무와 행복의 일치 속에, 개인의 의지와 신의 의지의 합일 속에, 또 그 최고의 의지가 사랑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는 신앙 속에 있다. 율법학자 한 사람이 예수께 물었다. “모든 계명 중에 어느 것이 첫째가는 계명입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첫째는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님이신 너희 하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