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한 해가 저물어간다. 코로나19로 인한 피로감과 무기력함은 지난해와 똑같이 우리를 힘들게 했다. 전 지구적인 환란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피폐할 정도로 망가트렸다. 누구나 겪었던 이 불행한 시간은 보상받을 길이 없어 더 안타깝다. 그러나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개인적인 은혜와 원한은 사회적 참사와는 다르게 생각해야 한다. 모두가 경험하는 감사함은 사회를 풍요롭게 하고 함께 경험하는 아픔은 서로 의지가 된다. 하지만 개인이 경험하는 사랑과 고통은 오롯이 개인의 몫이기 때문에 홀로 감내해야 한다. 그래서 더 감사하고 또 힘들다. 얼마 전, 신경정신과 의사와 대화를 나눴다. 그분의 말에 따르면, 심리적인 상처를 서로 주고받은 경우에 병원을 찾아오는 환자의 대부분은 피해자라는 것이다. 가해자가 병원을 찾아 자기가 한 일에 대해 힘들어하면서 상담을 하기 위해 내원한 경우는 없었다고 한다. 타인으로부터 위해를 당한 피해자만 마음속에 상처를 감추고 위장하다가 곪아 터질 때쯤 되어서야 살기 위해 구조를 요청하는 것이리라. 결국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은 성경 구절에나 나오는 선언적 수사에 불과하며 감정을 가진 인간이기 때문에 원수를 사랑하는 일은 가당치 않다는
세상에서 최악의 통증 세 가지를 꼽아보라면, 대개는 자신이나 가족이 겪은 병치레를 근거로 답할 것이다. 나는 통풍(痛風), 산통(産痛), 참척(慘慽)의 고통을 꼽는다. 참척은 부모 앞에서 자식이 먼저 죽는 비극을 말한다. 악상(惡喪)이라고도 한다. 이 셋 가운데 가장 아픈 병은 무엇일까. 하나를 고르라면 나는 통풍이라고 답할 가능성이 높다. 현재 통풍을 앓고 있거나 심하게 앓았던 사람들은 이 문답을 어리석다고 무시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서른 살 때 처음 어느 날 밤, 원인을 알 수 없는 무시무시한 통증을 겪었다. 6.25처럼 그날 잊을 수 없다. 병원에 가서 통풍이라는 관절염인 걸 알게 되었다. 이후 20년 동안 나의 투병사는 과장 없이 핏빛이다. 처절하고 혹독했다. 어린 딸 앞에 두고 울었다. 초반에는 1년에 두세 차례, 나이 들면서는 분기에 한 번, 이후에는 한 달에 두세 번 강력한 공격을 받았다. 그때 나는 통풍 환자들이 모인 세상이 바로 지옥이라고 주장했다. 마취하지 않고, 엄지발가락 첫 마디에 송곳을 찔러 박은 채 사나흘 동안 흔들면서 좌우로 돌린다고 가정해보라. 단 1초도 쉬지 않고 지속적으로. 바로 그 통증이다. 해병전우회처럼 그래서 통풍환자들
진정한 자선이 되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칭찬과 내세에서의 보상에 대한 기대를 하지 않아야 한다. “너희는 일부러 남들이 보는 앞에서 선행을 하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그렇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어버이로부터 아무런 상도 받지 못한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그 자선을 숨겨두어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하늘 어버이께서 갚아 주실 것이다.” (예수) 가난한 과부가 희사한 한 푼은 부자의 만금과 맞먹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것이 진정한 자비이다. 오직 가난한 자, 스스로 수고하여 일하는 자만이 자선의 기쁨을 누릴 수 있고, 부유한 자와 게으른 자에게는 그 기쁨이 없다. 부자가 가난한 사람에게 공개적으로 자선행위를 하는 것은, 좋게 말해 예의지 결코 자선이 아니다. 누군가가 너에게 길을 물으면, 너는 예의 바르게 걸음을 멈추고 가르쳐주어야 한다. 또 만약 누군가가 너에게 만원이나 5만 원을 빌려달라고 할 때, 네 수중에 그만한 여유가 있다면 빌려주어야 하지만, 만약 빌려주었다 해도 그것은 자선과는 거리가 멀다. 물질적으로 돕는 것은 희생이 동반되어야 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때 비로소 물질적 도움을 받은 사람은 정신적 도움을 받은 것이다. 오늘 세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끔찍한 산업재해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어렵사리 제정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산업현장에서는 준비가 제대로 되었다는 증거가 아직 없고, 정부에서도 예측되는 혼란과 모순을 신속히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기업들은 산업재해 근절이라는 대의를 존중하여 차제에 경영철학을 바꾸는 계기로 삼는 게 맞다. 정부나 정치권 역시 경영계의 합리적인 우려와 보완 요청을 허투루 들을 일이 아니다. 내년 1월 27일부터 시행되는 중대재해처벌법은 산업현장에서 노동자가 숨지거나 다칠 경우 사고 예방책임을 다하지 않은 사업주·경영책임자를 직접 처벌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50인 이상 사업장에 적용되는 이 법은 사망 1명 이상,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 2명 이상 등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안전조치 의무를 위반한 해당 사업장의 경영책임자에게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는 강력한 제재규정을 담고 있다. 그러나 산업현장은 여전히 제대로 준비가 돼 있지 않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최근 50인 이상 중소제조기업 322곳을 대상으로 설문한 ‘중소제조업 중대재해처벌법 준비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
아이들이 도착하기 전 교실의 아침은 학부모님들에게 받는 연락으로부터 시작된다. 대부분 당일 결석과 관련된 연락이 주를 이루고, 사정이 생겨서 일찍 조퇴시켜달라는 내용이 그다음을 차지한다. 가끔은 아이의 몸이 안 좋지만, 등교시킬 테니 상태가 나빠지면 집으로 보내 달라는 내용도 있다. 며칠 전에는 조금 특별한 연락을 받았다. 우리 반 친구 A가 코로나 백신 접종을 해서 다음 날 집에서 휴식을 취하기로 했었다. 나에게도 이미 결석하겠다고 말해둔 상태였다. 막상 당일이 되자 A가 부모님께 학교에 가서 재미있는 수업을 들어야 한다고 우겨서 하는 수 없이 등교시킨다는 내용이었다. 접종 후 증상이 걱정되니 잘 지켜봐 달라는 당부가 함께 왔다. A가 부모님에게 걱정을 끼치면서까지 참여하고 싶어 했던 수업은 햄스터 로봇을 활용한 코딩 수업이었다. 태블릿이나 컴퓨터에서 코딩 블록 명령어를 채워 넣으면 햄스터만큼 작은 로봇이 빛과 소리를 내며 움직인다. 로봇을 활용하면 미로 탈출, 술래잡기, 축구 경기나 보드게임과 비슷한 미션 수행까지 가능하다. 장난감을 마음대로 조종하는 느낌이 들어서인지 아이들의 수업 몰입도가 최상이다. 사실 처음부터 아이들이 처음부터 코딩을 좋아했던 건…
학문의 중요성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학문의 유익함이 증명되어야 한다. 그런데 학자들은 언젠가는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막연하게 말하고 있다. 종교적인 미신과 마찬가지로 이보다 더 나을 것도 없는 학문적 미신이라는 것도 있다. 정신 학문은, 모든 오락과 유희, 드라이브, 산책을 즐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의무의 실천을 방해하지 않는 한 허용이 된다. 자신의 의무를 소홀히 하고 오락에만 빠지면 안 되듯이 참된 인류의 정신적 행복에 기여하지 않는 학문에 종사하는 것도 도의에 어긋난다고 할 수 있다. 학문이란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그 이름으로 부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행복에 더욱 필요한, 더욱 높은 인식의 대상을 다루는 것이다. 뜻도 맨 처음부터 있는 뜻이요, 삶은 나중 끝까지 있는 삶이다. 처음도 나중도 밑도 끝도 없는 말씀을 하는 수 없이 그 한마디를 잡아 쳐든 것이 글이라는 것이요, 그 글을 이리 엮고 저리 짜놓은 것이 책이라는 것이다. 커도 말 끄트머리, 작아도 말 끄트머리, 바로 놓아도 말 끄트머리, 뒤집어놓아도 말 끄트머리다. 네가 처음 속에 나중을 보며, 나중 속에 처음을 보고, 껍데기 속에 속을 읽으며, 속 속에 껍데기를 읽는다면, 알지 못해도 안…
군대를 제대한 아들이 집 근처 편의점 알바를 뛰었다. 늦게 퇴근한 아들이랑 쐬주 한 잔하며 얘기를 나누다보니 시급이 최저임금에도 못미친다. 왜그러냐고 물었더니 “에이, 아빠.. 편의점에 최저임금 다 주는 자리 없어요”한다. 가슴 한켠이 짠했다. 법적 최저기준조차 보호받지 못하는 녀석에게 애비는 해줄 말이 입안에서 맴돌았다. 월 150만 원이라도 받고 일하고 싶다는 사람이 있으면 일할 수 있게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한 대통령 후보가 떠올랐다. ‘윤석열표 공정’은 집 앞 골목부터 진작에 실현되고 있었다. 그는 못배우고 가난한 사람은 자유가 뭔지도 모르고 필요하지도 않다고 했다. 그의 말이 옳았다. 아들은 부당한 조건에 맞서 일하지 않을 자유를 행사하지 못했다. 아들에게 궁핍할 자유는 필요치 않았다. 이런 아들이 요즘 말로 빡쳤다. 윤석열 후보의 부인 김건희 씨 기자회견을 보다가 “남편 한데 사과할거면 집에서나 하라고~!!”하면서 버럭했다. 안그래도 편의점 알바보다 더 벌 수 있는걸 알아보다 공장에라도 나가야겠다고 생각하던 차, 윤석열 후보가 “손발 노동은 아프리카에서나 하는 것”이라 했다는 말을 듣고 빈정이 상했던 터였다. “허위학력이나 경력위조가 한두…
삼프로(3PRO) TV를 꼬박 세 시간 동안 시청했다. ‘삼프로가 묻고 정책이 답하다’라는 대선특집이었다. ‘어떤 유튜브 TV길래 여야의 대선 주자 이재명, 윤석열을 불러냈지?’라는 의문을 풀기 위해서 들어갔다가 세 시간을 감금당했다. 감금을 자청한 꼴이었다. 정확하게 듣기 위해 재생 속도도 높이지 않고 1.0을 유지했다. 전통 매체와 포털을 통해 뉴스를 접했던 꼰대 수용자였음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고백하면 삼프로를 3%로 알았다. 두 후보는 각각 90분 동안 주식과 부동산을 중심으로 집권 후의 경제 정책 비전을 설명했다. 전통 매체들은 설명한 내용 가운데 특정 단어나 일부 내용을 중심으로 인용해 보도했다. 이들의 발언 내용을 심도 있게 전한 언론은 거의 없었다. 이재명 후보에 대해서는 “작전주에 투자해 큰돈 벌어”라는 제목의 기사를 쏟아냈다. 윤석열 후보 기사는 “토론 무용론을 펼쳤다”는 데 포커스를 맞췄다. 기자가 두 후보의 90분에 걸친 설명 내용을 다 듣고 기사화했는지 조차 의심스러웠다. 이 후보는 방송 서두에 주식투자를 해봤느냐는 질문에 “1992년 처음 주식 투자를 하면서 증권회사에 다니는 대학 친구의 권유로 주식을 샀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작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