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주요 일간지의 발행부수는 극비였다. ‘어쩌다’ 조선일보 등의 신문발행부수 조작 사실이 드러났다. 사실 주요 일간지들은 지난 수십 년 간 유료부수 조작이라는 ‘사기행각’을 지속해왔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권력과 유착을 넘어 권력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이다. 신문의 발행부수는 단순한 사세 과시 수단만은 아니다. 이번에 부수 조작사실은 발행부수 인증기관인 ABC협회에 근무하는 직원의 ‘양심선언’으로 드러났다. 문화부의 유가부수 실사 결과는 충격적이다. 지난해 ABC협회는 ‘1등 신문’ ‘조선일보’의 유가 부수를 116만 2953부라고 공개했는데, 표본 실사 결과 그 절반 수준인 58만 부에 불과했다. 73만 3254부라고 공개한 '동아'와 19만 2853부라고 공개한 ‘한겨레’의 경우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발행부수는 광고단가 산정을 포함한 모든 평가의 선행지표가 되기 때문에 부수 조작은 중대한 범죄행위다. 조중동은 정부광고의 최대 수혜자였다. 최근 3년 간(2017년 5월~2020년 8월) 동아일보가 305억 1200만원, 조선일보가 265억 4700만원, 중앙일보가 173억 7700만원의 정부광고 수입을 올렸다. 일반 기업도 발행부수에 근거하여 광고
생명은 살아있다는 것이고, 살아있다는 것은 고통을 느끼며, 주변과의 열린 관계를 통해 자신을 유지하고 또한 쉬임없이 진화하는 존재를 의미한다. 고통에 대한 감수성과 더불어 자기만의 가치에 닫혀 진화하지 않는 개체나 단체, 사회는 생명을 다한 것이며, 이는 사상과 이념, 가치에 있어서도 다르지 않다. 현실에서 크고 작은 개선을 통해 기존 체제를 강화하고 안정시킴으로써 사회 발전을 꾀하는 보수와 주어진 현실에 안주하기보다는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바람직한 지향점을 향해 기존 체제의 해체도 마다하지 않으며 진화해가는 진보라는 두 날개는 살아있는 사회를 위해 모두 필요하다. 촛불의 무혈 혁명 이후 문재인 정부와 지난 21대 총선에서 압승을 거둔 더불어민주당에 기대했던 진보 인사들은 노동 문제를 포함해 빠른 사회 개혁이 진행되지 않다 보니 실망을 표시한다. 이들은 민주당 주류를 이루고 있는 70-80년대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이 이제 기득권이 되어 사회 개혁보다는 정치 권력 놀음이라는 구태 정치를 한다고 비난한다. 하지만 친일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우리 사회에서 일제 점령 이후 100여년에 걸쳐 형성된 친일 기득권 세력이 만든 사회 구조는 물론, 그런 조직 문화에 길들여진
찬바람 휘휘 돌아칠 때마다 살짝 얼었다 다시 녹아내리기를 반복하며 단내 폴폴 만들어내다 보면 기어이 하얀 분을 뒤집어쓰고 먹음직스럽게 제 모양 뽐내곤 하는 곶감이 있다. 처마 밑에 정갈하게 매달린 채 이제 막 하얀 분 뒤집어쓰기 시작하는 곶감. 밤늦게 학교숙제 하다말고 마루건너 잠 쫓으러 나갔다가 한 알 빼먹고, 마당에서 문득 올려다 본 그 달빛에 취해 또 하나 빼먹고, 아무도 없는 집이 심심해서 또 하나 빼먹다가 기어이 두 알 남은 곶감걸이를 보고 “오늘은 내 기어이 이 곶감귀신을 잡아야겠지?” 라며 찡긋 윙크를 날리시던 아버지가 생각나게 하는 그 곶감. 곶감이 가지런히 담겨져 있다. 설날 선물이라며 전해온 박스 안에 마치, 추억처럼 한 알 한 알 말갛게 웃는 있는 그 곶감들의 미소로 인하여 환하게 피어오르는 지난 이야기들. 한입 베어 물면 입안이 텁텁해지도록 떫고 불편한 맛의 땡감나무만 있었던 어린 날의 우리 집. 간식이 따로 없었던 그 시절, 왜 우리 집엔 단감나무가 없냐고 불만을 털어놓을 때마다 특단의 조치로 엄마는 삭힌 감을 만들어주셨다. 떫은 땡감을 따서 소금물로 하루정도 삭히고 나면 아삭아삭한 식감을 자랑하는 그 어떤 단감보다도 맛있는 삭힌 감이
올해도 어김없이 3·1절이 지나갔다. 모든 언론이 3·1운동 102주년이라고 썼다. 오랫동안 사용해 화석화된 잘못된 용어이다. 102년 전 3월 1일 민족대표들은 탑골공원 인근의 태화관에 모여 독립선언을 했고 일경에 체포되어 갔다. 독립만세를 외치는 경성 거리의 민중들을 바라보며 끌려가던 그들은 뜨거운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3월 1일의 거사를 준비하는 과정은 한 편의 드라마였다. 국외의 독립선언과 의문스러운 고종황제의 죽음으로 민중의 분노가 치솟자 당시 국내 최대 종단인 천도교의 지도자들은 비밀리에 독립선언을 준비하였다. 각계의 지도층에게 함께 할 것을 제의했지만 대부분 동학의 후신인 천도교를 무시하며 함께 하기를 거부했다. 마침 개신교에서 독립청원을 준비하고 있었고 불교계의 두 분의 스님이 합류하니 종교계가 앞장서는 모양새를 갖추었다. 천도교는 과거 실패했던 동학혁명을 다시 일으킨다는 자세로 준비했다. 준비된 독립선언서를 자체 인쇄소인 보성사에서 비밀리 인쇄하다가 종로경찰서의 악질 조선인 순사에게 발각되기도 하고 완성된 선언서를 옮기는 과정에 파출소에서 불심검문을 당하는 등 곡절 끝에 3만 5천 장의 선언서를 종교 조직을 활용해 전국에 퍼트리는 데 성공하
지난 3월 4일.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 경선결과에 많은 국민들이 놀랐다. 거의 모든 여론조사 보도가 나경원 후보의 무난한 승리를 반복 보도한 것과 달리, 오세훈 후보가 승리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이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 경선은 국민적 관심을 크게 끌지 못했다. 경선이 정해져 있는 결론을 도출하는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통과의례 정도로 생각됐기 때문이었다. 유권자의 이런 선유관념은 누가가 심었을까? 여론조사기관 탓으로 돌려야할까? 아니다. 잘못된 선거 여론조사 보도 관행을 답습하는 언론의 책임이 크다. 언론은 나경원 후보가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앞섰고, 여성 프리미엄 10%까지 얻어 결과가 뻔할 것이란 확증편향에 매몰돼 있었다. 아집의 결과는 처참 했다. 비단 이번만이 아니다. 언론은 이변이라는 이름으로 얼버무리고 넘어간다. 이변은 언론이 정확한 민심을 전하지 못했음을 반증한다. 이변은 흥미를 낳는다. 약자로 평가 받던 후보가 강자를 꺾은 결과를 흥미롭게만 바라만 볼 수 없다. 그래서는 안된다. 여론조사 보도가 언론의 신뢰에 큰 타격을 주기 때문이다. 3월 9일자 일간지들은 윤석열 전검찰총장이 차기 대선지지도 1위에 올랐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생명이 있는 것은 모두 자신의 목숨을 소중히 하여 죽음을 두려워한다. 그들을 죽이거나 괴롭혀서 죽음에 이르게 하지 말라. 살아 있는 모든 것 속에 너 자신이 깃들어 살고 있음을 알라. (부처) 자연은 우리를 같은 재료로 같은 목적을 위해 이 세상에 내보냄으로써, 우리를 형제로 만들었다. 자연은 우리 속에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을 불어넣고, 우리를 친구로 만들었다. 또한 자연은 우리에게 정의를 실천하도록 만들었다. 자연은 남을 돕기 위해 우리의 손은 내밀어져 있도록 만들었다. 우리의 하나됨은 수많은 돌로 지은 돔과 같은 것이다. 만약 돌들이 서로에게 기대지 않는다면 돔은 이내 허물어지고 말 것이다. (세네카) 나는 인간과의 일체감을 똑똑히 의식하고 느낀다. 또 그러한 일체감은 비록 미약하기는 하지만 동물에게서도 느낀다. 곤춘이나 식물의 경우 그 일체감은 미약해지고, 미시적인 존재와 인간의 감각을 넘어선 초대형 존재에 이르러서는 그 일체감은 완전히 사라져 버린다. 그러나 나에게 그 일체감을 느끼는 감각기관이 없다고 해서, 그것이 일체성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증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생명이 있는 모든 것과의 유대를 느끼는데 방해가 되는 모든 것을 너 자신으로부터 제
하나의 왕국을 세우면 왕과 왕비가 있듯이 운동을 왕에 비유하면 영양은 왕비에 비유된다. 그만큼 운동과 영양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적절한 운동과 영양 섭취는 근육의 성장, 발달 및 회복과 면역의 향상을 위해서는 매우 중요하다. 요즘 운동 인구의 저변 확대와 웰빙이 관심사로 떠오르면서 스포츠 식품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엄청난 시장이 형성되고 있다. 특히 사이클과 마라톤과 같은 장시간 운동으로 인해 근육에서 고갈된 탄수화물과 체내에서 빠져나간 수분과 전해질을 보충해주는 기능성 스포츠 음료와 보디빌더와 역도와 같은 저항성 운동 시 근육의 단백질 합성을 통한 근 비대를 촉진시켜주고 운동 후 손상된 근육을 회복하는데 도움을 주는 단백질 보충제에 대한 관심이 전문선수와 스포츠 동호인들 사이에서 무엇보다 크다. 즉 스포츠 식품의 섭취는 피로 없이 운동을 지속하거나 근력을 향상시키고 손상된 근육을 회복시키는 등 운동 수행을 전제로 운동 효과를 최대한 얻기 위함이다. 따라서 무엇을 많이 섭취해야 좋은가? 보다는 언제 무엇을 얼마의 양으로 섭취해야 하는가 ? 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으로 본다. 예를 들면 단·장기간 고강도 운동 후 근육의 빠른 회복을 위
인간은 누구나, 특히 그리스도교는 더더욱, 직접적인 행동을 통해서든 재물을 통해서든 언론을 통해서든, 전쟁과 그 준비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 전쟁과 그리스도교는 양립할 수 없다. 왜냐하면 전쟁이란 내가 살기 위해 너를 죽이는 것이고, 그리스도교는 내가 진정 살기 위해서는 내가 죽어야 하기 때문이다. (조헌정) 무장된 국가와 전쟁, 이 두 가지가 언젠가는 없어진다 하더라도, 그것은 결코 통치자들이나 이 세상의 권력자들에 의해서는 아닐 것이다. 전쟁은 그들에게 너무나 큰 이익을 주기 때문이다. 전쟁은, 전쟁으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운명은 자신들에게 달려 있음을 깨닫고, 자신들을 전쟁터로 내모는 자, 자신들을 병사로 만들려고 하는 자의 명령에 복종하기를 그만 둘 때, 비로소 사라질 것이다. (하르두엔) 만약 세계의 모든 민족들이 서로 손을 잡고 평화를 지킨다면 우리는 권력자들에게 그들의 병사들이 가져다주는 이익보다 훨씬 많은 이익들을 가져다줄 것이다. 이에 더하여 사람들이 온갖 번뇌로부터의 벗어나기 위한 사색과 수련까지 배운다면 우리는 진정으로 인류의 복지를 위해 일하게 된다. 우리는 권력자의 행복을 위해 누구보다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
흔히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는 ‘소확행 (小確幸)’.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집 ‘랑겔한스섬의 오후’에 등장하는 말이다.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는 것,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접어 돌돌 만 속옷이 잔뜩 쌓여 있는 것, 새로 산 정결한 면 냄새가 풍기는 하얀 셔츠를 머리에서부터 뒤집어쓸 때의 기분'이라고 했다. 소소한 일상 속에서의 ‘작은 행복’ 뜻도 포함된다. 코로나 펜데믹(대유행) 시대를 맞이하면서 모든 이들이 대면 생활을 절제하고 있다. 이러다 보니까 마음의 치유에 출구를 찾고자 이들이 늘어나는 것 같다. 제주 올레길을 걷다가 어느 탐방객 배낭에 이렇게 적혀있는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코로나, 길을 걸으면서 치유한다’라고 인쇄되어 있다. 눈에 들어오면서 공감을 했다. 지금 우리는 소소한 일상 속에 작은 행복을 찾고 있는지 모르겠다. 최근 제주도 천연의 숲길인 ‘사려니숲’을 다녀왔다. 아침부터 바람이 세차게 불어 가는 길 걱정했지만 역시 ‘사려니숲’을 거닐면 일상 속 ‘작은 행복’을 느낀다. 초여름 가랑비나 이슬비가 내리는 날 ‘사려니숲’을 찾으면 최고다. 그리고 이렇게 늦은 겨울 무렵 ‘사려니숲’을 찾는 것도 갔다 오
청년은 “학살중단! 군부퇴진!”이란 피켓을 들고 있었다. 마스크 위 청년의 눈은 맑고 깊었다. “고향 가족들 걱정에 많이 힘들겠어요”라고 말을 던지자 눈동자에 금방 물기가 맺혔다. 7일 창원시청 앞 미얀마민주화투쟁 연대집회에서 만난 청년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미얀마교민들과 창원시민들이 광장에 띄엄띄엄 둥글게 섰다. 그야말로 국제집회였다. 교민들은 ‘미얀마의 임을 위한 행진곡’이라 알려진 민중가요 ‘예찌비’(Thway Thitsar)를 불렀다. “형제자매들이여. 단결하고 또 단결하자. 우리는 피로 역사를 썼다..”로 시작하는 내용으로 3천명이 희생된 88년 투쟁을 기리는 상징노래이다. 집회에 참여한 창원시민들은 답가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군부의 탄압을 피해 떠돌다 94년 한국으로 망명한 '한·미얀마연대'의 조우모아대표는 한국어와 미얀마어로 번갈아 말했다. “버마는 세 번의 쿠데타가 있었고, 이번이 세 번째 저항입니다. 한국의 민주주의를 나눠주세요. 도와주세요”라며 애타게 호소했다. 이들은 전날 문재인대통령이 “군부의 폭력진압을 규탄하고 민주주의 회복을 간절히 바란다”는 입장을 밝힌 것에 대해서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시민들의 연대사도 미얀마어로 통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