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흔한, 그리고 아주 큰 불행으로 이끄는 유혹의 하나는 “다들 그렇게 한다”는 말로 표현되는 유혹이다. “낡은 옷에다 새 천조각을 대고 깁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 하면 낡은 옷이 새 천조각에 켕기어 더 찢어지게 된다. 또 낡은 가죽 부대에 새 포도주를 담는 사람도 없다. 그렇게 하면 부대가 쳐져서 포도주는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둘 다 보존된다.” (예수) 우리에게 특별한 존경을 요구하는 사물을 만나면, 옷을 벗기듯 그것을 추앙하는 말들은 모두 벗겨내는 것이 좋다. 외면적인 치장은 자주 이성을 왜곡시키기 때문이다. 자신이 지금 고귀한 일을 하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을 때가 가장 속고 있는 것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잘못된 수치심은 악마가 즐겨 쓰는 무기이다. 악마는 그 수치심을 이용해 잘못된 교만 이상으로 성공을 거둔다. 그는 잘못된 교만만으로는 그저 악을 부추길 뿐이지만, 잘못된 수치심으로는 선을 저지할 수 있다. (존 러스킨) 이 세상에 악은 없다. 악은 모두 우리의 마음속에 있으며, 이것을 물리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민중의 속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민중 속에 들어가지 않으면 모른다. 나이 많은 사
1. 축구는 전쟁이다 한의사 관점에서 볼 때 가장 위험한 운동은 축구다. 운동 중에 발목을 삐거나, 무릎을 다치거나, 허벅지 근육이 찢어지는 환자 대부분이 축구광이다. 부상도 부상이지만 충분한 치료나 재활 없이 축구하다 다시 다쳐서, 아주 운동을 접는 경우도 여럿 보았다. 이건 내 개인적인 경험담일 뿐만 아니라 통계적으로도 입증된 사실인데, 학원 스포츠가 활성화된 영국에서 40대 이후 부상자가 가장 많은 운동은 축구 클럽 출신이 압도적 1등이었다. 축구하다 전쟁을 하기도 한다. 1969년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는 월드컵 예선전을 하다 전쟁을 일으켰다. 대략 5000명가량이 죽었다고 하는데, 물론 그 이전에 영토 문제와 이민자 문제 등으로 사이가 매우 나쁘긴 했다. 그래도 그렇지, 축구하다 졌다고 엘살바도르 여고생이 권총 자살을 하고, 대통령과 축구선수단 전원이 장례식에 참석해서 복수를 다짐하다니, 이게 상식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축구라면 가능하다. 위의 두 나라가 중남미 후진국이라 그런 게 아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당시 난동을 부리던 영국 훌리건들이 프랑스 경찰 머리를 벽돌로 내리쳐서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된 일도 있었다.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가 프
그대 음성에 내 마음 열리고, 마치 꽃들이 동 트는 새벽의 입맞춤에 피어나듯! 하지만 지극히 사랑하는 사람이여, 더 잘 내 눈물을 말리기 위해, 그대 음성을 더 들려주세요! 영원히 데릴라의 곁으로 돌아온다고 말해 주세요! 너무도 애절한 아리아다. 용맹한 이스라엘 장군 삼손. 그를 유혹하는 매혹적인 필리시테인 여인 델릴라. 백성을 배반하고 한 여인을 택하는 나약한 남자의 비극. 카미유 생상스(Camille Saint-Saëns)는 이 이야기를 '삼손과 델릴라(Samson et Dalila)'에 담았다. 아름답기 그지없는 이 오페라곡은 탄생 당시 공연 금지명령을 받았다. 성경과 달리 묘사된 삼손이 프랑스 교회의 심기를 건드렸기 때문이다. 결국 국경을 건너 독일로 갔다. 리스트는 생상스를 도와 바이마르 대공 오페라하우스에서 삼손과 델릴라를 연주하게 해 줬다. 고진감래라던가.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관객들의 찬란한 박수가 쏟아졌다. '동물의 사육제'로 더 유명한 생상스. 그는 파리 자르디네(Jardinet) 3번지에서 태어났다. 세 살 때 작곡을 시작했고, 열 살 때 피아노와 오르간 연주자가 됐다. 천재란 말을 다시 한번 소환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생상스의 음악
가난을 거울처럼 보여주는 죽 이야기, 부족함이 없을 때 먹으면 건강식이지만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먹는다면 슬픈 이야기가 된다. 뜨거우면 불어서 먹고 식으면 그냥 음료 마시듯 ‘쉬운 죽 먹기’다. 남쪽에서 죽은 아주 고급지게 만든다. 배부른 곳에 와서 다시는 죽을 먹지 않으리라 했으나 별식으로 자꾸 권하기에 먹는데 그때마다 죽의 맛에 감탄한다. 죽에 대한 몇 가지가 기억을 떠올려 보면 가난한 때에 싫도록 먹었던 것이 먼저 떠오른다. 그 시기 먹었던 죽은 식욕에 대한 원초적 해결을 위한 것이기에 처절하다. 아주 작은 양으로도 살릴 수 있었는데, 영양실조로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잃은 어미의 곡성, 떠도는 아이와 노인들, 죽느냐, 사느냐가 생사를 가르니 부족한 식욕이 식탐을 만들어 먹고 먹어도 배부르지 않은 죽 한 그릇이 소원일 때가 있었다. 곡기 없는 죽을 먹고도 살아남은 사람들을 보면 생명이 경이롭기도 하다. 이 시기 먹었던 죽은 ‘맛’보다는 ‘생존’이었다. 죽을 ‘맛’으로 먹었던 때도 있다. 항상 가난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넉넉할 때는 낭만도 있어 솥을 둘러메고 냇가로 나가 고기를 잡아 즉석에서 어죽을 끓여먹고 한바탕 놀 때도 있었다. 청진이나 해변가 사람들
코로나19 팬데믹이 잦아들기는커녕 새로운 변종 오미크론 출현으로 폭발적인 위세를 떨치고 있다. K-방역을 자랑하던 정부도 번지는 바이러스 태풍에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그런 가운데 대선 레이스에 돌입한 여야 정치권이 자영업자 손실보상금을 놓고 ‘하느냐’, ‘마느냐’ 다투던 끝에 이번에는 ‘함께 하자, 말자’ 전쟁을 벌이고 있다. 경각에 다다라 생존 자체를 위협받고 있는 자영업자들 사정을 진정으로 헤아린다면 치졸한 ‘선거 셈법’을 멈추고 당장 머리를 맞대는 게 옳다. 608조 원에 이르는 내년 예산이 국회를 통과한 지 며칠 지나지도 않아 정치권이 ‘100조 원’ 추경을 거론하는 일종의 ‘추경 중독증’ 문제는 워낙 사정이 급박한 만큼 일단 논외로 치자.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와 여당은 애초 25조 원을 투입해 연내에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을 추진했었다. 그러나 홍남기 경제부총리를 비롯한 정부의 반대에 부딪혀 이런저런 논란을 낳던 끝에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을 맞았다. 그러던 중에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50조 원 소상공인 손실보상금 지급 정책을 내놓자 상황이 급변했다. 이재명 후보와 민주당은 야당의 정책을 받아들이겠다며 당장 추경 협의를 하자고 손을 내밀었
첫아이 소풍 도시락을 호들갑 떨며 싸던 때가 있었다. 새 모이 마냥 밥 몇 숟갈 먹는 아이인데 잔칫상 차리듯 준비했다. 쪽잠을 자고 새벽같이 일어나 재료를 손질했다. 오색 꼬마 김밥, 별 모양 소고기 주먹밥, 메추리알로 만든 병아리, 햄과 채소를 꽃잎처럼 오려낸 샐러드를 담았다. 내 아이만을 위한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도시락이었다. 엄마가 처음이라 그게 최선의 모성애인 줄 알았다. 그 아이가 다섯 살 무렵 나는 병설유치원 특수학급에서 일했다. 공교롭게도 첫애와 같은 해에 태어난 아이들을 맡았다. 그래서인지 내 눈에는 덩치만 컸지 아직 아기들로 보였다. 엄마 품을 떠나 규범이 지배하는 공간에서 생활하는 게 짠하고 뭉클하고 안타깝고 대견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교사라기보다 엄마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해 봄날 아이들과 소풍을 갔다. 점심이 되어 각자 집에서 보내온 도시락을 가지고 모둠으로 둘러앉았다. 주위를 둘러보는데 한 녀석이 뭉그적대며 눈치를 보고 있었다. 조막만한 손을 만지작거릴 뿐 가방에서 도시락을 꺼내지 않았다. 교사의 재촉에 내놓은 건 검정 비닐봉지에 든 떡 한 팩, 소풍 도시락이었다. 뭔지 모를 부끄러움이 그 순간 나를 멈춰 세웠다. 뭐든 나눠 먹어야…
인간은 자신의 마음에 신이 살고 있는 정도에 따라 신을 볼 수 있다. 17세기의 신비적인 시인 안젤루스가 말했듯 내가 신을 보는 눈은 그대로 신이 나를 보는 눈이다. (아미엘) 인간의 영혼은 곧 신의 등불이다. (탈무드) 어느 날 강 속의 물고기들이 물고기는 물속에서밖에 살 수 없다고 얘기하고 있는 인간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 말을 들은 물고기들은 무척 놀라서, 도대체 물이 뭔지 아는 물고기가 없느냐고 서로 물어보았다. 그러자 한 영리한 물고기가 말했다. “바다속 공부를 많이 해서 지혜로운 늙은 물고기가 한 마리 있는데 무엇이든 다 알고 있다더군. 우리 바다로 헤엄쳐 가서 그 노인한테 물이 무엇인지 물어보세.” 그리하여 물고기들은 지혜로운 물고기가 살고 있는 바다에 가서, 물은 어떤 것이며 어떻게 하면 물에 대해 알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지혜로운 늙은 물고기가 말했다. “물이란 우리가 그것에 의해 살고 있는 것, 그리고 그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너희들이 물을 모르는 것은, 너희들이 그 속에서 살며 그것에 의해 살고 있기 때문이지.” 그와 같이 사람들도 신에 의해 살고, 신속에 살고 있으면서 신을 모르고 있다. (수피) 자신의 사상을 하늘 높이 올리는
一路平安(일로평안)을 희구하면서 시작된 2021년도 결코 평안하지 못한 한 해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금세 잡힐 듯했던 코로나는 변이가 변이를 낳으면서 위기에 위기를 겹치는 상황으로 이어지고, 무역에서 시작된 강대국 간의 사활을 건 패권경쟁은 전방위로 전선을 넓혀가고 있다. 첨단 기술과 자원이 국제사회 헤게모니를 좌우하는 주요 요인으로 부상하면서, ‘기술냉전’ ‘기술패권’ ‘기술주권’ ‘디지털 냉전’ 등이 낯설지 않은 용어가 되어가고 있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미·중 기술패권경쟁은 점입가경이다. 미국은 어떤 비용을 부담하더라도 ‘디지털 만리장성’을 쌓아 첨단기술에 대한 중국의 접근을 봉쇄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중국도 ‘반도체전문대학’도 설립하는 등 반도체의 설계, 제조, 조립, 시험 중 길목이 되는 기술 우위 확보에 부심 중이다. 일본 역시 경제안보 담당관을 신설하고 첨단기술의 유출을 막기 위해 ‘경제안전보장법’을 추진하는 한편, 양자컴퓨터 개발· 인공지능 로봇개발과 같은 경제 안전보장과 직접 관련 있는 개발 프로젝트 참여 연구자들이 해외 정부 및 기관의 지원을 받고 있는지도 의무적으로 공개토록 하는 지침까지 마련하는 등 ‘기술 쇄국주의
최근 내가 접한 통계 중 가장 무서운 통계는 2021년 의대 신입생 2977명 가운데 무려 80.6%가 월 가구소득 920만 원이 넘는 부유층출신이라는 것이었다. 나머지 19.4%도 빈곤한 가정출신은 아닐 테니 세계적으로 유례없을 지독한 부잣집편중이다. 이대로라면 우리나라에서 ‘없는집’ 자식들이 의사되기는 틀렸다. 이미 의사는 부모찬스로 만들어지는 대표적인 특권직업이다. 의대생만이 아니다. 로스쿨학생은 물론 SKY 등 명문대 학생과 예술계 학생도 부유층과 전문직 가정출신이 압도적으로 많다. 드물게 발표되는 관련통계들은 우리사회에서 교육이 계층이동수단에서 신분대물림수단으로 타락했다는 사실을 더할 나위 없이 명징하게 보여준다. 만약 매년 명문대별, 인기단과대별로 신입생 학부모집단의 10 분위 소득분포가 지난 10년 동안 집계, 공표되었다면 어땠을까? 나아가서 영재고/과학고/국제고/외고/예고별로 신입생 학부모집단의 10분위 소득분포가 함께 집계, 공표되었다면 어땠을까? 모르긴 해도 교육의 신분대물림 강화효과가 의심의 여지없이 확인되면서 전사회적으로 폭동의 기운이 감돌았을 것이고 예방차원에서라도 정치권이 특단의 대책을 내놓았을 것이다. 치열한 입시경쟁과 사교육비를…
더불어민주당에서 내년 3월 대선과 함께 실시되는 국회의원 재보선의 무공천론이 검토되고 있다. 재보선 지역은 서울 종로(이낙연 전 민주당 의원), 서초갑(윤희숙 전 국민의힘 의원), 경기 안성(이규민 전 민주당 의원), 대구 중·남구(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 충북 청주 상당구(정정순 전 민주당 의원) 등 5곳이다. 이 가운데 넓은 의미로 해석해 민주당 귀책사유 지역은 종로와 안성, 청주 상당 등 3곳이다. 종로의 경우 이낙연 전 대표가 대선 경선 과정에서 의원직 사퇴라는 승부수를 던졌다. 안성 및 청주 상당은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당선무효형을 받았다. 그간 시민사회 등에서 공직선거법 위반, 비리 등으로 재보선의 사유를 제공한 책임이 있는 정당은 후보를 내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돼 왔지만 정치권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특히 민주당은 지난 4·7 서울‧부산시장 재보선의 책임이 있었지만 공천을 강행했다.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 등 중대한 잘못으로 재보선을 하는 경우 해당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않는다’는 당헌을 고치는 무리수까지 뒀다. 반면 서울 서초갑과 대구 중‧남구 2곳은 국민의힘에 책임이 있다. 윤희숙‧곽상도 전 의원이 각각 부친 땅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