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이후 하염없이 추락했던 주가가 최근 역대 최대폭으로 반등하면서 주식투자 인구와 자금, 거래규모 등에서 각종 신기록을 수립하며 주식대박의 무용담들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지난 3월 19일 장중 1439로 무너졌던 코스피 지수는 6개월만에 1천포인트 가까이 상승하며 2400선을 넘었고, 코스닥도 100% 이상 뛰어오르며 900선을 눈앞에 두고 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주목할 만한 변화는 증시흐름을 주도하는 주체가 ‘기관과 외국인’에서 ‘개인’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전 세계적인 코로나19 확산으로 경기 침체 우려가 불거지면서 외국인과 기관이 팔아치운 물량을 개인이 고스란히 받아내며 지수를 방어한 것을 빗대어 ‘동학 개미 운동’이라는 신조어까지 나오기도 했다. 이 무렵 증시로 유입된 개인투자자 자금은 무려 70조 원으로 여기에 선물옵션 자금까지 더하면 80조 원에 육박할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정부가 코로나19 위기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 대대적인 ‘돈 풀기’에 나서면서 결국 시중에 넘치는 유동자금이 부동산을 대체할 투자처를 찾아 하루 평균 약 6천억원씩 증시로 몰린 탓으로 풀이된다. 특히 2030세대의 경우 ‘비대면 경제’가 보편화되고 안정적 일자리
어려서 3권짜리 삼국지를 읽었다. 표지가 떨어져나간 이 책을 동네 청년들이 돌려가며 보았다. ‘새농민’이라고 월간지가 우체부 아저씨의 붉은 가죽가방에 담겨 배달되었다. 아마도 당시 농어촌 사람들을 계몽하기 위해 만든 잡지였을 것이다. 거기서 고바우 영감을 처음 만났다. 이마에 머리카락 한 올 세우고 세상을 비평하는 4칸짜리 만화였다. 세월이 흘러 책이 줄어들고 모바일이 늘었다. 전기만 통하는 철선인줄 알았는데 전기줄 속으로 말이 오간다. 시골마을 이장집에 전화기가 들어오자 동네사람들이 줄을 선다. 도시에 나간 아들딸에게 소식을 전하고 그 자녀들이 전하는 이야기를 듣기 위해 줄을 서니 이장님 집 앞은 줄서는 맛집(!)이 되었다. 이장님댁 전화를 쓰기위해서는 10원짜리 동전이 필요했다. 시외전화 전용전화기로 시내전화가 되는 줄을 누군가가 알아냈다. "유레카~!" 대단한 발견이었다. 시외전화 되는 기기이니 시내는 당연히 되는데 시외만 거는 줄 알았을 정도로 착하게 몰랐다. 모바일은 무선으로 연결된다. 이제 4살 아이도 그림책을 문지르다 화면이 바뀌지 않으니 책을 내던진다. 매일 오전, 오후로 예쁜 사진을 주고 받는다. 참 좋은 글을 어디서 구했는지 긴 문장을 정성
한미동맹이 또 다시 화두로 떠올랐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식상하리 만치 단골이슈가 되어 오면서, 동맹유지의 당위성 보다는 이른바 ‘개혁적인 재조정’으로 방향이 잡혀가는 듯하다.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이 최근 미국을 방문하여 ‘한미동맹이 양국 관계의 근간’임을 강조하고 있음에도 미덥지 못한 마음은 여전하다. 통일부 장관의 소위 ‘한미평화동맹’과 같은 말장난으로 치부되는 수사들이 수시로 터져 나오기 때문이다. 한미동맹은 여전히 중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집권한지 4년차가 되어가고 한미 양국 정상 간 여러 차례의 정상회담에도 불구하고, 집권층 일부는 현 시점까지도 “한국의 안보를 위해서 굳건한 한미동맹이 필수적인가?”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면서 ‘미국 쇠퇴론’과 ‘중국 역할론’ 사이에서 갈지자를 걷고 있다. 코로나 사태에 대한 트럼프의 어설픈 대응은 미국의 초강대국 지위에 대한 의문을 가중시켰고, 중국의 경제력 증대와 한반도 통일에의 역할론은 한국의 선택을 고민하게 만들고 있다. 한미동맹에 대한 갈등을 ‘쇠퇴 강대국’과 ‘뜨는 국가’, 그리고 ‘포식(predation)’과 ‘파트너십’이란 개념에서 바라보고자 한다. 대미 자주노선
“각종 감염병의 유행 상황을 설명할 때 인류 생존에 위협을 주는 전쟁에 비유하는데, 사실상 전 세계는 ‘3차 세계대전’을 치르고 있는 상황이다.” 권준욱 중앙방역대책본부 부본부장이 최근 코로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에 대한 심각성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발생한 사상자가 많게는 7000만명이라고 언급한 내용을 봤다”면서 “현재 전 세계적으로 집계된 환자만 해도 3000만명이며 사망자는 100만명을 목전에 두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실감나는 비유인 것 같다. 그의 말대로라면 코로나 3차 세계대전은 지난해 12월 31일 중국 우한에서 발발했다. 그리고 이제 9개월여가 됐는데 포연은 더 짙어지고 전장도 지구촌 구석구석으로 확산되는 형국이다. 언제 코로나 싸움이 끝날지 예측만 할뿐이다. 제2차 세계대전은 1939년 9월 1일 히틀러 독일군이 폴란드의 서쪽 국경을 침공한 것을 시작으로 일본이 항복 문서에 서명한 1945년 9월 2일에 공식적으로 끝났다. 전쟁발발 만 6년만이다. 구글 자료에 따르면 전사자는 약 2500만 명, 민간인 희생자는 약 3000만 명에 달한다. 코로나를 실제 살상무기가 동원되는 전쟁과 100% 동일선상에 비교할 수는…
고단하기만 한 기자와 PD는 취업준비를 하는 학생들에게 항상 인기직종이다. 저널리즘이 강세를 띠던 시절에는 기자가, 2000년대 들어 방송영상이 문화산업의 주류로 등장한 다음부터는 PD가 전공을 불문코 최고인기 직종이 되었다. 광고종사자도 매력적인 직업으로 손꼽힌다. 이 모든걸 가르치고 공부하는 학과가 미디어커뮤니케이션 학과이다. 신문방송학과, 언론정보학과, 미디어영상학과 등 이름을 달리해도 같은 과를 지칭한다. 주요 신문방송사의 신입 충원현황을 보면 전공하는 학과와 직업이 매칭을 이루는건 수요공급구조상 불가능해 보인다. 더 나아가 PD와 기자 중에 미디어 관련 전공자는 생각보다 적다. 해당업무에 필요한 능력이 전공과목에서 모두 배태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장기술을 주로 배우는 3년제 대학과 저널리스트와 PD로의 길을 준비하는 4년제 대학에 차이가 있다. 대학의 학과와 연동하여 가장 급격한 변화를 겪는 산업현장이 미디어 분야다. ICT 기술과 함께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을 대학에서 다 소화하고 가르쳐 분야별 전문성을 함양시킨다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하다. 1990년대 이후 대학은 학교와 현장을 연결하여 학생들에게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능력을 키워주고자 실습
장마가 한반도에 길게 머물렀다. 관측 이래 최장의 장마라는 말을 들었다. 가뜩이나 코로나로 뒤숭숭한 판국에 수해까지 덮쳐 수재민들의 상처는 더 깊어졌을 터였다. 집중호우에 살림살이가 거덜 난 수재민들을 보자 오래된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그날은 러시아 최초의 여성 통치자이며 신성함이라는 뜻을 가진 태풍 ‘올가’가 올라와 내륙 전체를 물바다로 만든 날이었다. 신성함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중부지방을 때린 ‘올가’는 많은 걸 휩쓸어 갔다. 1999년 여름의 일이었다. ‘올가’가 내륙을 향해 올라오던 그 시각 우리 형제들은 평택으로 모이고 있었다. 아버지 생신잔치를 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일찌감치 출발해서 내려온 터라 부모님이 계시는 일터에 머물러 있었다. 그날 오산역 인근이 폭우로 물에 잠기면서 서울을 오가는 모든 차편과 기차편이 끊어졌다. 기차를 타고 고향으로 내려오던 막내 동생은 오산역에서 발이 묶여 근방의 모텔에서 하루 묵어야 했다. 다른 동생들은 늦게 출발한 덕에 오산을 넘어오지 못하고 서울로 돌아갔다. 결국 그 날 저녁은 우리 세 사람만 둘러앉아 빗소리를 들으며 저녁을 먹었다. 부모님이 폐차장 직원들 밥을 해주었던 터라 그곳에서 숙식을 하셨는데 우리도…
지난 14일, 충격적인 뉴스가 보도 되었다. 인천 미추홀구에 사는 초등학생 형제가 평소라면 학교에 있어야 했을 평일 점심, 단둘이 집에서 라면을 끓이던 중 불이 나 크게 다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주위의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코로나19가 다시 기승을 부리자 교육당국은 비대면 수업으로 교육을 진행 해야만 했고, 부모가 자녀들을 돌보지 못하는 이른바 ‘돌봄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들에게 이러한 상황은 매끼 식사를 해결하려면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상황으로 코로나 시대가 빚은 사회적 참변이라 할 수 있다. 더욱 필자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일은 이미 이웃들이 그동안 3차례나 아이들이 방임 학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신고했고, 담당 구청 및 학교가 이러한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부모에 대한 강력한 제제도 없었고, 아이들을 돌보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강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사회가 아닌 어머니의 판단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관계 당국이 손을 놓고 있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동학대 사실을 모든 기관에서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제각각 맡은 범위 안에서만 제한적으로 역할을 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지난 박근혜 정권 시절, 필자는 교육부, 복지부,…
다시금 전문가들의 글을 자세히 꼼꼼히 읽어보게 된다. 기회를 얻어서 이처럼 글을 올리는 입장이 되고보니 다른 분들의 글에 관심이 가고 신문 사설도 읽어보게 된다. 그리고 하나같이 짧은 문장속에 옥수수알처럼 빼곡하게 담아내는 꼭 필요한 단어의 조합과 융합에 감탄한다. 적재적소에 사람을 배치하듯 꼭 필요한 자리에 한자, 사자성어, 숙어를 재료삼아 사우디 부호들의 카펫 엮어가듯 사각과 네모의 아름다움을 만들어 낸다. 도대체 한글과 한자를 가지고 만들고 짜낼 수 있는 모자이크는 얼마나 많고 그 바닥은 얼마큼 넓은 것일까. 우선 짧은 2글자 제목이 마음에 든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두 글자 제목에서 반이상 설명한다. 시의적절이다. 제목을 보는 순간 필자의 생각 절반이 마음에 들어온다. 그리고 눈으로 문장을 살피면서 공감을 하게 된다. 현악기의 화음처럼 제목과 내용이 잘 맞아 돌아간다. 그리고 기승전결. 그렇게도 깔끔한 문장의 이어감이 마지막에서 한 잔의 사이다처럼 청량하다. 이런 생각을 하시는 분이구나. 감탄과 탄복을 하게 된다. 그런 글을 쓰시는 분이 즐비한 세상이다. 볼수록 존경심만 가득하게 하는 분들이다. 펜으로 키보드로 오케스트라 80명을 지휘하는 모습이 연상
눈 속에서도 피는 꽃이 있다. 포털에 찾아보니 ‘영원한 행복’이라는 꽃말을 가진 복수초(福壽草)가 대표적이다. 주목을 받는 이유는 삶에 지친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때문이다. 사회 전반이 어렵다. 희망이 필요한 시기다. 관광과 관련된 항공사, 여행사의 구조조정이니, 폐업이라는 소식이 자주 들린다. 관광의 기반(관광매체)이 없어지고 있다. 코로나19가 종식되더라도 기반이 회복된 후 관광은 재개될 수 있다. 관광은 구성요소인 주체(관광객), 객체(관광자원), 매체(여행정보, 여행사, 항공사 등)가 유기적으로 작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걱정이다. 그렇다고 모두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일부 지자체는 관광업계에 지원했던 기준을 대폭 완화하고, 코로나 시대에 발맞추어 사업을 변경하여 추진하고 있다. 국내 관광객을 유치했을 경우 여행사에 숙박비와 체험비, 차량임차비를 지원하는 대상을 20인에서 8인 이상으로 완화하고, 입식 관광식당으로 전환을 추진 중인 음식점 시설개선사업도 기존 80석 이상 규모의 식당에서 40석 이상으로 기준을 낮췄다. 축제나 행사 개최, 국내외 관광박람회의 홍보관 운영도 대면을 최소화하고 온라인 등의 비대면 방식으
세상에는 겪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아버지를 여의면 고자(孤子)라고 하고 어머니를 여의면 애자(哀子)라고 한다. 지난달 말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나서야 나는 그 깊은 의미를 어렴풋이 알아가고 있다. 고자(孤子)의 말뜻은 외로운 자식이다. 아버지를 여의고 나서 내가 의지할 곳을 잃었다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았다. 이제 나의 절대적인 지지자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상실감에 휩싸이곤 했다. 애자(哀子)의 말뜻은 슬픈 자식이다. 어머니를 여의고 나서 지금까지 많이 울었고, 때 없이 눈물이 났다. 내가 받은 것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데 내가 해드린 것은 너무나 없었다. 이제 갚을 길 없는 빚을 진 슬픔을 떠안고 살아야 한다. 우리 세대의 많은 부모가 그랬겠지만, 나의 부모님도 현대사의 격변 속에서 자식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했다. 아버님은 식민지의 백성으로 태어나 어린 나이에 만주를 오가며 목수로 성장했고, 인정받는 대목으로 성공했다.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살아남은 다음에 아버지를 기다린 것은 독재정권의 전횡이었다. 초가집이 기와집으로 바뀌고, 양옥이 들어서는 과정에서 창업한 작은 공장이 성공을 거두는 행운을 누렸지만 의협심이 유달랐던 아버지는 반골의 정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