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이 물결을 일으켜 물의 투명함을 잃게 하듯이, 정욕과 불안, 동요, 공포는 마음을 어지럽혀 사람이 자신의 본질을 의식하는 것을 방해한다. 위대하고 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사람들은 언제나 평화롭고 언제나 만족한다, 빈약한 영혼을 가진 사람들은 언제나 불만이요 언제나 무관심하다. 사람들은 자신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외면적인 일에 몰두하고 있을 때만 괴로워하거나 불안과 동요를 느낀다. 그럴 때, 그들은 불안한 듯 자문한다. “어떻게 해야 하나? 도대체 어떻게 되는 걸까? 이렇게 되면 안 되는데, 저렇게 되면 안 되는데”하고, 자신들의 권한 밖에 있는 것을 늘 염려하는 사람은 모두 그렇다. 이와는 반대로 자신에게 직접 책임이 있는 일과 씨름하며, 자신의 생명은 자기완성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처럼 불안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만일 그가 자신이 진리를 지켜낼 수 있을지, 허위를 벗어날 수 있을지를 걱정한다면 나는 그에게 이렇게 말하리라. “걱정하지 말라. 네 걱정의 씨앗은 바로 네 손안에 있다. 자신의 사상과 행동을 매일 성찰하며 자신을 개선하도록 노력하면 된다. 그러므로 ‘무슨 일이 일어날까?’ 하는 말은 할 필요가 없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너는 그것을 교
열망보다 허망이 압도적으로 앞서는 지금과 같은 대선 상황이 있었을까? 이즈음 여론조사 결과가 심상치 않다. 대선 주요 후보들에 대한 비호감도가 각각 60% 선으로 호감도보다 대략 2배 이상 높은 것이다. 실제 한국갤럽이 지난 19~21일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여야 대권주자 개별 호감도를 물은 결과 '이재명 32%, 홍준표 31%, 윤석열 28%' 순을 기록한 반면 비호감도는 '윤석열 62%, 이재명 60%, 홍준표 59%' 순으로 나타났다. 대선 국면은 열망으로 가득 차 있기 마련이다. 새 시대정신으로 지난 시절의 한계를 극복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이런 바람은 자연스럽게 대선 후보에게 투영된다. 그런데 호감도보다 비호감도가 2배가량 높다는 것은 그들에게 희망을 접었음을 뜻한다. 요컨대 유권자들은 가장 큰 열망으로 정권 교체를 들고 있는데 여기에 부합하는 대선 후보가 없다고 본다. 이 때문에 후보들이 새 비전을 제시해도 먹히지 않는다. 이 심각한 위기는 후보들의 구태에서 온 게 아닐까? 후보들은 상대방의 부패와 비도덕성을 놓고 전쟁을 벌이고 있다. 그들은 유권자들이 자신들을 버린 지도 모르고 이전투구에 골몰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오래된 편견
딴 따다다 다 따다다 다~ 딴딴 따다다 다~~ 드럼이 조심스럽게 장단을 쳐 들어간다. 플루트가 마법의 소리를 내며 합류한다. 환상적 듀엣의 하모니는 반복적으로 계속된다. 첼로와 바순, 클라리넷은 혹여나 지루할까 끼어든다. 드럼은 첫 동작을 한 치의 흐트럼 없이 반복하고 플루트는 톤을 높여 재등장한다. 하프, 기타, 바이올린, 트럼펫, 피콜로, 트롬본, 심벌즈... 이 세상의 온갖 악기가 하나씩 합세하며 오케스트라는 절정에 도달한다. 지극히 단순한 템포와 리듬. 하지만 놀라울 정도로 리드미컬하고 몽환적이다. 모리스 라벨(Maurice Ravel)은 기발하다. 볼레로(Boléro). 독창적인 이 곡은 기존 음악의 틀을 완전히 깼다. 라벨은 이 곡을 당대 최고의 러시아 무용수 이다 루빈시테인(Ida Rubinstein)에게 헌정했다. 하지만 이 곡은 라벨이 스페인 안달루시아 춤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었다. 라벨과 스페인. 도대체 어떤 연관이 있을까. 라벨은 1875년 피레네-아틀란티크 주 시부르(Ciboure)에서 태어났다. 파리에서 759킬로 떨어진 서남단의 작은 마을 시부르. 이곳은 프랑스의 끝 지점이고 스페인의 시작 지점이다. 우뚝 선 피레네산맥과 푸른 대서양
일산대교의 무료통행이 어제(27일) 낮 12시부터 시작됐다. 경기도와 김포·고양·파주 등 3개시는 이날 일산대교에서 통행료 무료화를 발표한 후 무료통행 카운트 행사를 개최했다. 일산대교는 한강다리 28개 중 유일한 유료 통행 교량이었다. 일산대교 무료 통행은 지난 25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도지사직을 사퇴하기 직전 ‘민간투자사업 지정 및 사업시행자 지정’을 취소하는 공익처분 결재를 함으로써 이루어졌다. 이 전 지사의 마지막 결재로써 김포·고양·파주시민들에게 큰 선물이 됐다. 결재 다음날인 26일 도는 일산대교 운영사인 ㈜일산대교에 ‘민간 투자사업 대상 사업 지정 및 사업시행자 지정’을 취소하는 공익처분 통지서를 통보했다. 공익처분이란 공익을 위해 지자체가 민자 사업자의 관리·운영권을 취소한 뒤 상응하는 보상을 해주는 것이다. 민간투자법 제47조에 의하면 사회기반시설의 효율적 운영 등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사업시행자 지정을 취소할 수 있고 손실액은 토지수용위원회가 정당한 보상금액을 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27일부터 공익처분 효력이 발생함으로써 일산대교 측은 통행료를 받을 수 없게 됐다. 경기도가 공익처분을 통보하기까지 우여곡절이 있었다.
코로나19(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을 막기 위해 지난해 2월 시작된 사회적 거리 두기 방역체계가 1년 9개월여 만에 일상 영위를 목표로 하는 쪽으로 완화된다. 정부는 25일 공청회에서 오는 29일 확정할 정책 최종안 내용을 발표했다. 온 국민이 학수고대해온 ‘위드 코로나’ 시대를 목전에 두고 꼭 필요한 조건은 수준 높은 ‘시민 정신’의 발현이다. 정부의 철두철미한 대비책에 발맞춰서 팬데믹 종식을 견인할 성숙한 ‘시민의식’을 총점검해야 할 때다. 정부의 개편안은 내달 1일부터 3단계(단계별 6주 예정)에 걸쳐 ‘위드 코로나’를 시행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1단계(11월 1일~12월 12일)에선 족쇄와도 같았던 운영(영업)시간 제한이 사라진다. 다만 유흥 및 실내체육시설은 ‘백신 패스’가 적용된다. 사적 모임은 백신 접종 여부와 상관없이 전국적으로 10명까지 허용된다. 3단계가 시작되는 내년 1월 24일부터는 시설 운영, 행사, 사적 모임 등의 규제가 모두 해제될 전망이다. 지금처럼 코로나 그물망에 갇혀서 영원히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백신 접종률이 높아지고 치료제가 나오는 등 세계적 방역환경이 변화하고 있는 시점에 코로나 팬데믹 출구전략을 모색하는 것은
만약 우리 모두의 생명의 근본이 같지 않다면, 우리가 늘 경험하는 동정이라는 감정을 설명할 길이 없다. 누군가의 분노를 진정시키려면, 예를 들어 그것이 아무리 정당한 분노라 하더라도, 화를 내고 있는 사람에게, “하지만 저 사람도 불행한 사람 아닌가!” 하고 말하는 것만큼 효과적인 것은 없다. 빗물이 불을 끄듯, 곧 동정은 분노를 사라지게 하기 때문이다. 누구라도 좋으니 그 사람에 대해 불같이 화를 내며 그에게 고통을 주고 싶다면, 자신이 이미 그 고통을 상대방에게 주었고, 실제로 상대방이 정신적, 육체적으로 고민하거나 어려움과 결핍을 고생하는 것을 보면서, 그것이 나 때문이라고 중얼거리는 광경을 상상해 보라. 나머지 일은 어떻게 되든 그것만으로도 분노가 사라질 것이다. (쇼펜하우어) 남을 욕하며 그와 다투고 있을 때, 너는 인간은 모두 형제라는 것을 잊고 있으며, 사람들의 친구가 되는 대신 적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것으로 인해 너는 자신에게 해악을 끼치고 있다. 왜냐하면 네가 맨 처음 신이 창조한 선량하고 자비로운 인간이 아니라, 몰래 다가가서 먹이를 덮쳐 물어 죽이는 야수로 변한다면, 너는 너의 가장 소중한 재산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너는 지갑을 잃으
숲 속 벤치에 앉아 하늘을 본다. 부드러운 청자 빛 하늘 아래는 흰 구름이 자유롭다. 구름은 호랑이 머리가 되었다가 개의 형태이더니 바로 고양이 꼴이다. 흐르면서 변하는 게 구름이다. 변하기 때문에 눈 주고 할 일없는 사람처럼 바라보기도 한다. 근자에 나는 하늘 바라보는 재미가 유별하다. 눈이 피로해도 밖으로 나가 하늘을 보고, 글을 쓰다 문장이 막히면 나가서 하늘을 본다. 글의 주제가 마땅치 않아도 오늘 같이 하늘을 보고 구름을 만나면서 뭔가가 머릿속에서 새롭게 뛰어내려 주기를 기대한다. 10월도 저물어 삼십 일이 되면 시월의 마지막 밤이 온다. 이 해도 60여 일 남았다. 계절은 겨울이란 고개를 넘어야 한다. 오늘도 숲의 그 벤치에 앉아 하늘을 본다. 하늘의 빛(彩)을 독창적으로 표현하고자 먼 하늘을 끝없이 바라보아도 색채감에 딱 맞는 언어를 찾을 수가 없다. 그런데 어디선가 이용의 노래 《잊혀진 계절》이 들려오고 있는 것 같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뜻 모를 이야기만 남긴 채/ 우리는 헤어졌지요/ 그날의 쓸쓸했던 표정이/… 언제나 돌아오는 계절은/ 나에게 꿈을 주지만/ 이룰 수 없는 꿈은 슬퍼요/ 나를 울려요/’ 이 ‘이룰 수
지난 1923년 9월 1일 발생한 간토(關東)대지진의 혼란 속에 조선인 수천 명이 일본 자경단 등에 의해 억울하게 학살된 사건이 있었어요.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 ‘조선인이 방화한다’는 등의 유언비어를 퍼뜨리면서 일어난 비극이었지요. 소문 조작을 동원한 인류의 비극은 이때가 처음이 아니었어요. 14세기 유럽에서 흑사병이 돌 무렵, 유대인 박해를 위해 ‘우물에 독을 탔다’는 가짜뉴스는 여러 차례 동원되었다네요. ‘우물에 독(毒) 타기’는 전쟁사에서 오래된 고육책(苦肉策)이에요. 루마니아 지역에 있었던 ‘발라키아’ 공국의 왕 블라드 3세는 15세기 오스만 튀르크족에게 쫓기자 후퇴하면서 모든 우물에 독을 풀어 적의 진격을 늦추었대요. 20세기 들어서도 핀란드나 독일군이 적의 추격을 늦추기 위해 이 방법을 사용했어요. 수년 전에는 IS가 그 짓을 해서 국제적인 비난 여론이 높았지요. 요즘 본격화하고 있는 대선전이 사상 유례없는 진흙탕 싸움으로 가고 있군요. 정치의 품격은 만신창이가 된 지 오래고, 오직 경쟁자를 죽이기 위한 살의(殺意)만이 휘 번뜩이는 위험한 게임이 벌어지는 중이네요. 가장 위태로운 행악은 ‘우물에 독 타기’ 추태예요. 문제를 내는 사람도
누렇게 익은 벼이삭에 잠자리 한 마리 날개를 접고 앉아 고개 숙인 벼를 배운다 바람이 와서 흔들릴 때마다 배움을 끌어안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