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댁은 경찰서 앞마당 우물에 몸을 던졌다. 휴전협정이 막바지로 치닫던 그 해 정월이었다. 형사들의 겁박에 시달리던 새댁은 우물로 도망쳐 빠져 죽었다. 살아남은 건 우물가에 벗겨진 고무신 한 짝 뿐이었다. 딸이 남긴 고무신을 보자 새댁의 어미는 그 자리에서 기절했다. 새댁의 시신은 두레박에 묶여 우물 밖으로 나왔다. 건져 올린 시신 위로 가마니가 덮일 때, 좌익이었던 새댁 남편은 북으로 가고 없었다. 소달구지에 실린 주검이 마을로 돌아왔지만 누구 하나 고개를 내밀지 못했다. 곡소리조차 담을 넘지 못하고 마당에 붙어 기어 다녔다. 장례랄 것도 절차랄 것도 따로 없었다. 시신은 관도 없이 덕석에 말아 뒷산에 묻었다. 얼어붙은 뽕밭에 시신을 묻을 때, 늙은이와 아낙네들만 구덩이에 코를 박고 울었다. 개중에는 왜 우는 줄도 모르고 따라 우는 어린 것도 있었다. 사내라고 생긴 것들은 죄다 어딘가로 잡혀가고 없었다. 잡혀가지 않은 사내들은 똥통 밑에 기어들어가 숨을 참았다. 똥통에서의 은신은 대나무밭에 땅굴이 완성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딸을 잃은 어미는 사내들을 지키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새벽마다 대나무밭을 들락거리는 것도 어미의 몫이었다. 어미는 사내들이 요강에 싼…
호박과 오이는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둘은 함께 살기로 했다 뿌리째 텃밭에 옮겨 함께 살기로 했다 그러다 열매가 서로 달라지자 속마음을 알 수 없다며 원망스럽다고 했다 그러나 둘은 꽃이 시들 때까지 잎과 줄기가 다 마를 때까지 한 번도 그 텃밭을 떠나지 않았다 박태현 ▶[서정과 현실](2011)로 등단. ▶시집 [부메랑] [둥근 집] [새들이 해를 물어 놓았다] 등.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2015), 한국동서문학 작품상 등 수상.
국회의원과 배우자가 보유한 농지 면적을 합치면 여의도 면적의 47.5배가 넘는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제21대 국회의원 76명이 모두 39만9천193㎡의 농지(전, 답, 과수원)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발표했다. 국회의원과 고위공무원들의 농지 소유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농지보유 자체가 적법·적합한지, 이해충돌의 여지는 없는지, 투기성 투자는 아닌지 엄중하게 따져야 할 것이다. 경실련이 국회의원 재산공개 관보 및 통계청 자료를 참고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국회의원 300명 중 4분의 1 가까운 76명이 보유하고 있는 농지의 총 가액은 133억6천139만 원에 달하고, 1인당 평균 면적 및 가액은 각각 5천253㎡(1천592평), 1억7천여만 원으로 집계됐다. 의원 본인만 농지를 가진 경우는 46명이었다. 9명이 본인과 배우자 모두 농지를 소유했고, 21명은 배우자만 농지를 갖고 있었다. 정당별로 보면 국민의힘 소속 국회의원이 총 7만 2천941평(24.07㏊)으로 가장 많은 농지를 소유하고 있다. 총 가액도 86억7천100만 원으로 가장 높았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의원들은 총 3만 6770평(12.13㏊)
지난 1958년부터 3년간 중국에서는 무려 3천여만 명이 굶어 죽는 희대의 참극이 일어났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어마어마한 메뚜기 떼들이 논밭의 곡식들을 모두 먹어치웠기 때문입니다. 자연재해였을까요? 아닙니다. ‘인재(人災)’였습니다. 마오쩌둥(毛澤東)이 펼친 ‘제사해(除四害) 운동’의 여파였죠. 이 운동은 들쥐, 파리, 모기, 참새 등 네 가지 해충을 제거하는 국민운동을 말합니다. 마오쩌둥은 쓰촨성(四川省)을 방문했을 적에 “참새가 먹는 곡식이 엄청나다”는 보고를 듣습니다. 마오는 즉각 참새를 없애라고 지시했고, 정부 주도로 참새 소탕 작전이 벌어집니다. 관료들은 참새 100만 마리를 잡으면 6만 명분 곡식이 절약된다는 계산까지 내놓습니다. 그래서 ‘인민의 적’ 참새가 박멸 대상 1호가 됩니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천적 참새가 사라진 들판은 메뚜기 떼가 장악했습니다. 곡식이란 곡식은 메뚜기가 다 먹어치우니 수확할 게 없었습니다. 결국 이 ‘참새 박멸’ 정책은 3천만여 명의 아사(餓死)라는 사상 유례없는 비극으로 이어집니다. 소련에서 급히 참새 20만 마리를 수입했지만 속수무책이었지요. ‘생태계의 먹이사슬’을 무시했던 마오쩌둥의 무지가 빚어낸 참극
지난 1월 20일 미국의 바이든 정부가 전 세계 이목을 받으면서 출범하였다. 바이든 정부는 당면한 코로나 19 대응과 미국 경제 회복, 국제무대를 선도하는 미국 위상을 재건하겠다는 목표하에 자유민주주의 가치 공유 국가들과 동맹을 통한 협력을 강조하고 있다. 미국은 우리 대한민국을 미국의 굳건한 동맹국이자 동아시아 안정과 번영의 핵심축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북한의 비핵화 등 한반도 문제는 미국에게 있어서도 중대한 문제(vital interests)이며 기존 한반도 정책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면서 동맹국인 한국, 일본 등과 긴밀히 협의해서 문제 해결을 위한 적합한 방안을 찾아 보겠다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바이든 정부가 보는 북한문제는 단순하지 않고 복잡하고 어려워서 심사숙고해야 한다는 원론적이면서도 현실적인 고민에 바탕을 두고 있다. 블링컨 국무장관과 셜리만 국가안보보좌관, 셔먼 국무부 부장관 등 미국의 한반도정책 결정라인에 있는 핵심인사들은 북한문제에 대해 ‘북미공동커뮤니케’가 있었던 2000년 이후 직 간접적으로 관여해 왔기 때문에 북한의 본질과 협상술을 익히 잘 알고 있는 인물들이다. 이들은 북한문제에 거의 초보라고 할 수 있었던 트럼프 행정부시절…
한국현대시조대사전(韓國現代時調大事典)이 발간된다. 코로나의 엄중한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한국 현대시조의 종가인 (사)한국시조시인협회에서 3년 동안 준비기간을 거쳐 한국시조의 결정판을 발간하게 된 것이다. 협회는 한국현대시조 대사전 작업 이외에도 현대시조창작교육센터의 설립, 중앙일보의 학생시조 백일장과 시조 낭송대회 개최, 백수문학상과 백수문학축제, 시조창작교육지도사(1급, 2급, 전문가) 자격증 제도 신설과 승인 등 많은 일을 진행하였다. 2020년에는 많은 행사가 축소되었지만 이번에 가장 중요한 대사전 사업의 결실을 보게 된 것이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강조했지만 현대시조의 발전을 위해서 필자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시조를 자연스레 접하고 익힐 수 있는 문화풍토의 조성과 세계화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 문화풍토는 단순히 어느 한 부분이 좋아져서는 결코 이룰 수 없는 일임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하여 가장 서둘러야 할 일이 바로 한국현대시조대사전(韓國現代時調大事典) 발간과 현대시조창작교육센터 설립이라고 볼 수 있다. 어느 분야의 대사전을 만든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선 대사전으로 꾸밀 만큼의 문화 역량이 결집되었냐는 조건을 충족하고, 이를 보존하고
꽃이 머금은 시를 받아 적네 유리새 유리알 노래를 시간의 옷 속 켜켜 눌러둔 바위의 시 억년 바위의 침묵을 나, 꺼내어 베껴 쓰고 있네 가을비 허공을 그어대며 나 좀 봐 나 좀 봐봐 숨길 듯 숨길 듯 슬쩍 내보이는 연하게 빗금 치고 있는 비의 발자국을 사물의 모서리들을 스캔하네 저기 저 절로 고운 것들의 말씀을 모래알들의 귀엣말을 김추인 ▶현대시학](1986)으로 등단 ▶시집 [모든 하루는 낯설다] [행성의 아이들] [오브제를 사랑한] 등 9권 ▶만해‘님’문학상(2010), 한국예술상(2016), 질마재문학상(2017) 수상
이른바 ‘개미(개인 투자자)들의 반란'으로 불리는 ‘게임스톱’ 사태로 미국 주식시장이 요동쳤다. 비디오 게임 유통업체인 게임스톱에 대해 헤지펀드가 공매도에 나선 데 맞서 미국 개미들이 매수의 연합전선을 펴는 등 양측의 힘겨루기가 고래싸움으로 비화되고 있다. 그 여파로 지난주 뉴욕증시는 지난해 10월 이후 최악의 한주를 보내는 등 파장이 계속되고 있다. 세계 증시도 직·간접의 영향을 받았고, 우리의 ‘서학개미’(해외 주식 개인투자자)도 게임스톱 공매도 싸움에 가세했다. 비디오 유통업체 하나가 전 세계 금융시장을 흔드는 진앙지가 된 것이다. 1972년 미국의 기상학자 에드워드 로렌즈는 ‘나비효과’라는 말을 처음 내놨다.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지구 반대편에 돌풍을 일으킬 수 있다는 뜻이다. 온난화의 재앙적 나비효과는 오늘날 전 분야에 걸친 세계화에도 가장 극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표현이다. 세계화는 인류가 존재하면서 지속적으로 진행돼 왔다. 생존과 명예, 탐욕을 좇아 인간은 끊임없이 이동하고 도전했다. 로마와 몽골 제국 등은 정복 전쟁으로 ‘지리적 세계화’에 시동을 걸었다. 이어 항해술 발달과 나침반이 발명되면서 영국 등 유럽 국가들이 지리적 세계화에 꽃을 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