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언지점 불가위야 (斯言之玷 不可爲也)’라는 말이 있어요. 시경(詩經)에 나오는 이 말은 ‘내가 한 번 잘못 내뱉은 말 한마디는 돌이킬 수 없다’는 뜻이지요. 요즘 여야 대선 예비후보들이 총칼 전쟁보다도 더 가혹한 선거전을 치르고 있는데, 말 한마디에서 비롯된 시비들이 정말 살벌하네요. 전자기술의 발달로 10년~20년 전에 했던 말까지 자료가 남아 있어서 무슨 말만 하면 과거의 언행들이 득달같이 소환되곤 하니 놀랍군요. 불과 몇 년 전에 했던 말과 다른 말을 하다가 딱 걸린 후보들이 곤욕 치르는 걸 바라보노라면 “저 노릇도 참 못 해먹을 짓이네”하는 딱한 마음이 먼저 드네요. 내남없이, 살아가는 일이란 그저 쓰레기를 만드는 일이 태반인데, 그렇게 수십 년을 한 점 티 없이 사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그런데도 대선전 양상은 영락없이 ‘내로남불’의 극치를 이루고 있네요. 지금 봐서는 춘풍추상(春風秋霜) 같은 좋은 명언들은 머지않아 영영 사라지게 생겼군요. ‘정치는 곧 말’이라는 속언(俗言)이 있어요. 현대정치는 철저하게 말로 하는 경쟁이니까 그 말이 아주 그르지는 않은 듯해요. 그래서 그런지 대개 말 잘하는 사람들이 정치판에 있군요. 그런데 요즘 정치권에서…
밭에 가야 맘이 편하다는 선산할매는 일이 끝나면 고추지지대로 쓰던 쇠꼬챙이에 목장갑을 걸어둔다. 굽은 손가락 굵은 손가락 모양대로 피는 목장갑은 억지수절 사십 년 선산할매 상사화.
당신에게 기도할 말이 많이 없습니다. 그냥 제 바람을 몇 가지 말씀드립니다. 그냥 제가 고기를 좀 덜 먹거나 안 먹게 되었으면 좋겠는데, 그게 잘 안됩니다. 입으로는 환경과 생태를 이야기하는데, 고기를 씹으며 느끼는 맛이 참 좋고 떨쳐내기가 힘듭니다. 육식이 기후위기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데, 저는 왜 이러는 걸까요? 그 맛의 유혹에 못 이겨 봄에 올라온 냉이를 캐어 먹기보단 슈퍼에 가서 손쉬운 만두를 사다 먹습니다. 요즘은 만두가 참 잘 나와 맛이 좋습니다. 그리고 만두 포장지는 쓰레기통을 채웁니다. 밥을 안쳐 놓고 기다리기가 싫어 라면을 끓입니다. 매번 비닐봉지와 수프 봉지도 쓰레기통을 채웁니다. 하루를 지내다 보면, 이것저것 생각 없이 구매한다고 돈이 나가 있고, 쓰레기통과 재활용통엔 사흘이면 언제나 100년이 지나도 썩지 않을 것들로 꽉 차있습니다. 하느님, 당신에게 어떻게 기도를 하면 이런 일상이 바뀌어지는지요. 제가 어떻게 기도를 하면 이런 삶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요? 당신이 독생자 예수를 보낼 만큼 사랑한 이 세상은 매일 쓰레기가 매립된 산 하나가 만들어지고, 다음 매립을 위해 맑은 물이 흐르던 산 하나가 파헤쳐지는 세상입니다. 쓰레기 섬이 태
18세기 바로크 음악의 정수로 꼽히는 비발디의 사계. 사계절 변화를 선율로 묘사하고 있다. 또 겸재 정선 등 조선 후기 산수화가들은 이른바 진경산수화를 통해 우리의 사계절 산천을 있는 그대로 운치있게 그려냈다. 이처럼 사계절을 주제로 하는 음악, 미술 등 예술작품은 무수히 많다. 사계는 우리 삶의 토대인 셈이다. 사계절 순환은 영구불변의 자연법칙이다. (1년 내내 여름이거나 겨울인 지역은 제외) 이는 지구 탄생 때부터 계속돼왔다. 그런데 사계절 순환법칙이 위태로워질 조짐이다. 기후변화, 지구온난화 때문이다. 1년 사계 중 여름이 길어지고 있다. 한반도 기후대가 이미 온대에서 아열대로 진입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다수 전문가의 진단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언젠가는 겨울이 아예 없어져서 사계절 순환법칙이 붕괴하는 날이 올 수도 있다. 지나친 기우일 수도 있을 것이다. 결코 현세대에는 발생하지 않을 현상이라며 가볍게 넘길 수도 있겠다. 하지만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말이 있듯이 기후변화를 방치했다가는 멀지 않아 현실이 될 수도 있다. 시계를 미래에서 과거로 돌려보자. 수억 년 전부터 지구는 몇 차례 기후변화를 겪었다고 한다. 빙하기와 간빙기가 반복됐다. 하지만 당시의 기
8·15 광복 76돌이 지났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등에 따르면 한국이 1990년 이후 30년 사이에 주요 경제 지표에서 일본을 넘어섰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의 국가경쟁력에서 한국과 일본은 1995년 각각 26위와 4위였는데 지난해는 23위, 34위로 한국이 역전했다. S&P 등 3대 국제신용평가기관의 신용등급도 일본보다 높다. 또 유엔산업개발기구(UNIDO)의 제조업 경쟁력 지수(CIP)에서 1990년 한국과 일본이 각각 17위, 2위였는데 2018년엔 한국이 3위, 일본은 5위가 됐다. 한국과 일본의 국내총생산(GDP)은 1990년 각각 17위, 2위에서 2020년엔 10위와 3위로 격차가 좁혀졌다. 반면에 기초과학·원천기술 분야에서는 여전히 거리가 있다. 2020년 글로벌 연구개발(R&D) 1000대 투자기업 수에서 일본은 한국보다 5배 이상 더 많다. 소재·부품·장비(소부장) 분야에서 대일 적자 규모는 1994년 83억 달러에서 지난해 154억 달러로 증가했다. 2019년 우리의 연구개발(R&D)비 및 인력 규모는 세계 5위, GDP 대비 R&D 비중은 이스라엘에 이어 세계 2위 수준이다. 하지만 보여주기식 단기 과제에
얼마 전 취재 때문에 나태주 시인을 만났는데 ‘어떤 존재가 시인이 되는가. 시 없이 무탈하게 사는 삶, 지옥을 살더라도 시 쓰는 삶 중 택하라면 기꺼이 후 선택을 하는 자’라는 말을 들었다. ‘좋은 시를 쓰려면 지옥을 살아봐야 한다’는 말로도 들렸다. 실제 문인, 예술가 중 오체투지하듯 산 이들 가운데 ‘문학과 예술의 소재, 성찰이 삶의 지옥에서 빚진 게 많아 통과의례라 생각한다’ 라거나 ‘다시 태어나도 천 번이고 만 번이고 같은 길을 가겠다’고 말하는 예술가를 많이 만났다. 그들처럼 예술의 피와 끼가 없는 나는 ‘도대체 예술이 무엇이기에 지옥마저 껴안는가’라는 의문을 더하곤 했다. 스탄 게츠(Stan Gets 1927-1991)를 소개하려고 꺼낸 이야기다. 브라질 보사노바 음악을 이야기할 때 작곡자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Antonio Carlos Jobim, 1927-1994)과 함께 세트로 나오는 미국의 색소폰 연주자. 그의 음악을 처음 들은 것은 20여 년 전, 친구 작업실에서였다. FM 라디오에서 재즈가 흐르고 있었는데 색소폰 소리 하나가 훅 들어왔다. 들으면 담박 아는 명곡 서머타임(Summertime). 미국 조지 거슈인의 오페라 ‘포기와 베스’
무릇 참다운 사상, 살아있는 사상은, 기르는 힘과 변화하는 힘을 갖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그러나 그 변화는 서서히 나무처럼 변하는 것이지 구름처럼 쉽게 변하는 것이 아니다. (존 러스킨) 진정으로 위대한 사업은 모두 서서히 눈에 띄지 않게 달성된다. (세네카) 인생은 영혼의 탄생이어야 한다. 동물적인 것이 인간화되고, 육체가 정신으로 거듭나고, 양초가 빛과 열로 바뀌듯 육체적 활동이 정신적 활동으로, 의식으로, 이성으로, 정의로, 관용으로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숭고한 연금술은 지상에서의 우리의 존재를 정당화한다. 여기에 우리의 사명이 있고 우리의 존엄성이 있다. (아미엘) 병아리가 웅크리고 있는 달걀을 깰 때, 병아리의 목숨에 미치는 위태로움을 감수해야 하듯, 사람도 다른 사람의 영혼에 미치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는 그를 자유롭게 할 수 없다. 모든 영혼은 일정한 단계까지 성장하면 스스로 자신의 쇠사슬을 끊는다. (류시 말로리) 생명은 끊임없는 기적이다. 생명의 성장이 무엇인지 아는 것은 자연계의 가장 신비로운 비밀을 아는 것이다. (류시 말로리) 자신은 성공했다는 생각만큼 도덕적 완성에 해로운 것은 없다. 다행히도 진정한 도덕적 성장의 길은 눈에…
긴 진화의 상호 적응과정이 생략된 채 인간 문명에 의해 발생한 코로나 19는 창궐한 지 20개월 정도 되는 지금, 변이를 계속하며 전세계적으로 2억 이상의 사람을 감염시켜 사망자는 400만 명을 넘어섰다. 이 바이러스가 만든 지옥도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람들은 경제 활동은 물론 생활양식마저 바꾸며 대응하고 있다. 코로나 19로 고통받는 상황 속에 우리는 부동산 투기라는 또 다른 전염병을 경험한다. 통계청이 지난 7월 말 내놓은 ‘2020년 국민대차대조표’만 보아도 주택 시가총액은 현 정부 출범 이전인 2016년 말 4000조 원 정도에서 4년 만에 1700조 원 넘게 불어나 폭등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희생자가 고령층인 코로나 19와는 달리 2030대 계층이 주요 대상이다. 살아남기 위해 2030대는 삶의 방식을 바꾸어 영끌로 버텨야 했고, 이마저 어려운 부동산 난민들은 더 이상 무너지지 않기 위해 빚투라는 처절한 방식으로 대응한다. 이런 생물학적, 문화적 전염병 창궐 속에 놓쳤던 전염병의 존재를 확인한다. 이재용 재벌 총수의 가석방. 그는 박근혜와 함께 국정 농단에 관여했던 기업인이다. 국정 농단은 물론 각종 범죄 혐의로 재판 중인 그의 가석방이란 탄핵된…
창을 열면 물안개가 짙다. 늘 그렇다. 강(江)에 기대 사는 마을의 아침은 물안개로 시작된다. 안개는 강과 산과 들의 경계를 지우고 기억에 박힌 익숙함 마저 지운다. 물까마귀 울음이 안개 너머에서 날아와 단풍나무 이파리를 흔든다. 안개에 갇힌 까마귀 울음은 반듯하게 착지하지 못하고 마당에 나뒹군다. 강을 건너온 까마귀 울음에 잣나무 숲에 사는 딱따구리가 화답한다. ‘까악’은 애달프고 ‘딱딱’은 절박하다. 둘의 울음은, 전선(戰線)을 사이에 두고 암호를 주고받는 스파이들의 교신 같다. 강을 덮은 물안개는 전쟁의 참상을 덮는 연기(煙氣) 같다. 물안개를 따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와 미얀마 로힝야족 마을이 흘러간다. 물안개의 발걸음은 강물의 흐름만큼이나 더디다. 물안개의 느린 발걸음은, 링거에 의지하고 숨을 뱉는 다섯 살 아이의 맥박 같다. 강을 덮은 물안개가 강을 거슬러 나아간다. 강도 따라 거꾸로 흘러가는 것 같다. 죽임으로 역사를 거스르는 반역의 걸음걸이도 저러할까. 비틀거리려는 아침, 창틀에 손을 짚고 거꾸로 흐르는 물안개를 바라본다. 아직 해는 뜨지 않았다. 물안개가 자욱하기는 인터넷 세상도 마찬가지다. 새벽 내내, 인터넷 창(MS Windows)을 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