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는 마모가 아니라 마침입니다. 마칠 수 없는 삶처럼 고달픈 게 또 있을까요. 그런 점에서 노화는 생각의 종결이자 살아내는 일의 마침입니다. 다만 예상치 못했던 마침이 불쑥 던져질까 걱정되는 건 사실입니다. 준비되지 못한 노후처럼 마침 또한 그러하다면 당혹스러울 일입니다. 두 해 전에 처음 통풍을 앓았습니다. 요관을 막은 돌(결석)을 체외충격파로 부수며 통풍의 원인이 신장에 있음도 알게 되었지요. 오른쪽 신장에만 십여 개의 돌이 생겼는데 신장 기능이 떨어져 노폐물(요산)을 걸러내지 못한 결과입니다. 작년에는 갑상선에 이상이 생겨 낭종 치료를 받았고, 최근에는 참기 힘든 복통에 시달리다 병원을 찾아야 했습니다. 위 내시경 시술과 함께 간과 췌장을 초음파로 검사하였습니다. 위가 아니라 간이나 담낭에 결석이 생겨도 복통에 시달릴 수 있음을 처음 알았습니다. 그뿐이겠습니까. 돋보기안경을 벗으면 책을 볼 수도 글을 쓸 수도 없습니다. 치아야 뭐 덧붙일 필요도 없겠지요. 허우대만 말짱하지 걸어 다니는 종합병동인 셈입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처음 예방주사를 맞던 순간부터 지금까지 ‘병’ 혹은 ‘병원’이라는 단어는 두려움의 대상입니다. 두려움의 뿌리에는 병을 앓다 일찍
초안 큰스님의 본명은 송만석(1926~1998)이며 승려 생활을 하다가 1950년 6.25전쟁에 육탄용사로 참전한 국군용사다. 전쟁 전에 사병으로 군복무를 마쳤고 전쟁이 발발하자 하사로 재입대하여 ‘육탄용사’가 되면서 상사로 승진했다. 민첩하고 달리기에 능한 실력으로 5사단의 旗手(기수)가 되었다. 태극기를 가슴에 간직하고 적의 탱크를 수류탄으로 무찔렀다. 6.25전쟁을 온몸으로 겪어내는 과정에서 총상을 입었고 육군병원에서 ‘명예제대 제1국’으로 전역했다. 전역후 1954년에 경기도 양주 오봉산 석굴암으로 들어와 승려생활을 이어갔으며, 폐허가 된 석굴암에 움막을 짓고 불사에 일생을 바쳤다. 6.25전쟁 중 전사하여 오봉산에 즐비해 있던 군인들의 시신을 매장하거나 화장하는데 온 힘을 기울였다. 총상으로 인해 자주 병원 치료를 받았지만 보훈신청을 하지 않아 자비로 진료비를 냈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이었으나, 초안스님은 혼자 묵묵히 해냈다. 이후 불사에 매진하는 동안 군법당을 건립하고 군포교에 전념하는 등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초안스님의 유일한 제자이자 현재 석굴암 주지인 도일스님이 보훈처에 보훈등록을 신청하였으나 직계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접수조
서울에서 자유로를 타고 가면 편도 왕복 8차선의 넓은 도로 위에 적힌 생소한 이정표가 보인다. 직진 화살표와 함께 적힌 지명은 ‘개성’이다. 그 화살표를 따라 개성공단으로 매일 아침 출근을 하는 남쪽 사람들을 태우고 달리던 통근버스는 이제 임진강을 건너지 못한다. 개성으로 가는 길이 막힌 자유로의 마지막 마을이 마정리다. 남에서 북으로 가는 끝 마을이고, 북에서 남으로 오는 첫 마을인 마정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마주치는 것이 육중한 콘크리트로 축조한 대전차 방호벽이다. 성문처럼 버티고 선 대전차 방호벽을 통과하면 지하 주민대피소가 있다. 지난 17일 이 주민대피소 입구에 새로운 간판이 내걸렸다. ‘마정리 마을박물관 평화충전소’다. 남북대치가 첨예해지면서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치닫던 2015년 ‘뭔가’ 하지 않을 수 없었던 정부가 만든 대피소는 단 한 번도 쓸 일이 없었다. 5년 넘게 비어 있던 주민대피소를 단장해서 문을 연 마을 박물관의 첫 전시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얼굴과 손’이다. 마을의 제일 연장자인 홍갑이 할머니(97세)와 정정순 할머니(94세)를 비롯한 스물아홉 분의 손 석고상은 마정리 사람들의 고단했던 삶을 보여준다. 더러 지워지고 끊긴 자리
윤석열 검찰총장이 대선후보 선호도에서 최상위 그룹에 부상되면서 여야 정치권이 일대 혼란에 빠졌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요란스러운 핍박을 꿋꿋이 버텨내는 그의 모습이 민심에 깊숙이 각인된 결과라는 해석이 주류다. 한때 그를 영웅시하던 집권당 더불어민주당은 모진 적대감을 드러내고 있다. 졸지에 현직 검찰총장이 대항마 1위로 부각된 현실에 국민의힘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다. 여야 정치권은 윤석열 현상에 대해 따따부따하기 전에 먼저 부끄러워해야 맞다. 오죽 ‘못하고, 못났으면’ 이런 돌발사태가 발생할까. 차기 대선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이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나 이재명 경기도지사 누구와 붙어도 오차범위 내에서 접전을 벌이는 것으로 나타난 가상 양자 대결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아시아경제가 ‘윈지코리아컨설팅’에 의뢰해 지난 15~16일 전국 만 18세 이상 1천 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다. 차기 대선 지지도 맞대결 질문에서 윤석열 총장은 42.5%로 이낙연 대표 42.3%보다 근소하게 앞서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윤석열 검찰총장이 맞붙는 경우엔 이재명 42.6%, 윤석열 41.9%였다. 여론조사기관 ‘한길리서치’가 쿠키뉴스 의뢰를 받아 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50년 전 평화시장 피복 공장의 재단사인 22살의 꽃보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 경제발전의 어두운 그림자로 온몸에 휘발유를 붓고 죽어가며 남긴 마지막 말이다. 올해는 전태일 열사 50주기이다. 50년 전 자기 한 몸을 바쳐 인간의 존엄을 위해 열사의 분신으로 표현한 노동존중의 울부짖음에 우리는 함께 눈물 흘리고 기억하며 추모한다. 전태일 열사 피의 댓가로 우리사회는 그때와는 비교도 안될만큼 고도성장을 이루었고, 이제는 떳떳이 세계무대에서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눈부신 경제 발전을 이룩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우리사회에는 아직까지도 숨은, 아니 숨겨진 전태일이 존재한다. 과연 50년이 지난 지금 한국의 노동환경은 변화 하였는가? 전태일 열사는 뜨거운 피를 우리 사회를 위해 바쳤건만 아직도 우리사회 곳곳에는 아직도 피지도 못하고 진 노동자의 꽃이 피어있다. 정부 통계자료를 보면, 작년 한 해 2020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죽었고, 올 상반기에도 벌써 1101명의 노동자가 죽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방금 전까지 뉴스를 진행한 인간 앵커 OOO가 아닌, 사이버 공간에만 존재하는 AI(인공지능) 앵커 OOO입니다.” 최근 국내 한 방송 종합편성채널이 처음으로 메인뉴스인 ‘저녁 종합뉴스’에 유명 여자 아나운서를 본뜬 AI 앵커를 선보였다. 선입견을 갖지 않고 보면 표정 등에서 약간의 어색한 부분이 있었지만 인간 앵커와 차이를 거의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AI앵커를 지켜본 시청자들은 “신기하다” “대박 진짜 같다” “소름끼친다”는 반응들을 쏟아냈다. 해당 여자 앵커도 “언젠가는 AI가 내 자리를 위협하겠구나”하는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바둑 알파고처럼, AI앵커는 실제 앵커가 진행한 영상을 통해 목소리, 말투, 표정, 입모양, 동작 전부를 익히는, 이른바 딥러닝 과정을 거친다. 그리고 실전에 투입돼 뉴스 원고를 10분전쯤 입력해주면 곧바로 인간 앵커와 똑같은 모습으로 뉴스를 진행한다. 스튜디오, 각종 방송 장비, 앵커 분장 등이 필요없어 비용 절감은 기본이다. 일본이나 중국에서는 2~3년전부터 AI앵커를 실전에 투입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아직은 사람의 감정 등을 똑같이 전달할 수준까지는 아니다. 하지만 알파고를 시작으로 점점 인간의 안방
코로나19가 일상을 바꾸고 있다. 대부분의 경제활동도 침체기다. 정부도 민간도 회복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럼에도 경제활동 주요지역의 유동인구는 확연히 줄어들었다. 경제침체에도 이를 대체하는 활동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대체재 기능의 대표적인 곳이 골목상권이다. 송리단길, 용리단길, 연리단길, 행리단길 등이 대표적이다. ○리단길이라고 하는 골목상권은 전국에 30∼40여 개에 달하고 있다. 골목상권은 크게 지역 또는 장소의 정체성을 담고 있는 커뮤니티 기반과 자본의 유입으로 운영되는 특수목적 골목상권으로 구분할 수 있다. 최근 들어 골목상권이 심상치 않다. 커뮤니티 기반의 골목상권보다는 특수목적 상권에서 특히 그렇다. 이 현상은 비단 현재가 아니다. 작년 골목상권의 시초라 할 수 있는 경리단길에서 이미 나타났다. 경리단길의 문제는 이미 언론이나 방송에서 여러 차례 다룬 적이 있다. 우리 사회를 이루는 모든 것은 생애주기가 있다. 인간의 생명뿐만 아니라 제품, 관광지도 마찬가지다. 골목상권과 유사한 관광지 생애주기는 버틀러(Butler)의 이론이 일반적이다. 시간에 따른 관광객의 변화 등을 기초로 총 6단계(탐색, 참여, 개발, 강화, 정체, 쇠퇴 및
정부·여당이 내년 7월부터 법정 최고금리를 현행 연 24%에서 20%로 내리기로 한 결정은 코로나 사태로 국민의 삶이 한층 어려워진 점을 고려할 때 반가운 일이다. 다만 금리 인하로 서민들의 금융압박을 해소해주려는 선의의 취지에도 불구하고, 저신용자의 대출이 더욱 어려워지게 돼 불법 사채시장으로 떠밀려가는 풍선효과에 대한 우려가 깊다. 금융 난민들이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리지 않도록 하는 세밀한 대책이 긴요한 상황이다. 정부·여당이 당정 협의를 열어 내년 하반기 중 법정 최고금리를 현행 연 24%에서 20%로 4%p 내리기로 하자 진작부터 최고금리 ‘10%’를 외쳐온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환영 입장과 함께 궁극적으로는 ‘기본대출’ 도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재확인했다. 기본대출은 고액자산가나 고소득자들이 누리는 1~2%가량의 저리 장기대출 기회를 국민 모두에게 제공하는 대신 대출금을 대부업체 대출금 수준인 1천만 원 내외로 한정하자는 것이 핵심이다. 이 지사는 불법 사채시장으로 내몰리는 금융 난민 문제에 대해서는 “이자제한법 위반 대출은 불법이니 이자나 원리금 반환을 불허해야 하고(독일 또는 일본), 그렇게 하면 유흥업소 선불금 반환을 불허하자 선불금이 사라진 것
문재인 대통령이 한·아세안 정상회의를 시작으로 다층적인 정상외교에 나서고 있다. 행사에서 역내포괄적동반자협정(RCEP) 최종 협정문 서명식을 통해 아세안 10개국과 함께 세계 최대 규모의 자유무역협정(FTA) 지대가 출범한 것은 중대한 변화다. 하지만 RCEP를 중국의 주도권 확대로 보는 시각이 있는 만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철저한 실용외교를 바탕으로 미국 바이든 정부가 회복시킬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참여도 철저히 준비해야 할 것이다. 한국과 아세안 10개국, 중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등 15개국이 참가하는 RCEP는 참가국의 무역 규모, 인구, GDP가 전 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무려 30%에 달하는 최대 규모의 FTA다. 세계 각국이 관심을 기울이는 모든 무역협정이 그렇듯이 각 부문에서 경제영토를 넓힐 계기로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 무역의존도가 60%를 넘기고 있는 우리 경제구조에서 유럽연합(EU)을 능가하는 경제블록 가입은 일단 좋은 기회다. 한·아세안 FTA에 이어 RCEP 출범으로 인해 핵심 품목뿐 아니라 섬유·기계부품 등 중소기업 품목과 의료위생용품 등 포스트 코로나 시대 유망 품목의 수출에도 유리한 환경이 조성된다. 원산
회색 도시를 알록달록 수놓았던 단풍이 어느새 지고 있다. 나무는 이제 마지막 잎새마저 훌훌 떨군 채 앙상한 맨몸으로 겨울을 맞이할 것이다. 그래서 봄 ‘꽃놀이’와 달리 가을 ‘단풍놀이’는 잔인하게 느껴진다. ‘놀이’보다는 ‘애도’가 어울릴 것 같다. “당신이 갑자기 죽은 후/그동안 전혀 의견 일치가 되지 않던 친구들이/당신의 사람됨에 대해 동의한다/… 당신은 공정하고 친절했으며, 운 좋은 삶을 살았다고/…//다행히 당신은 죽었다, 그렇지 않았다면/공포에 사로잡힐 것이다…” 올해 노벨문학상을 받은 미국 시인 루이스 글릭의 <애도>(류시화 옮김)라는 시다. 죽음이라는 현상 혹은 사건에 대해 이토록 정곡을 찌르는 시적 표현도 드물겠다. 살아 있을 때는 ‘좋은 사람이다, 나쁜 사람이다’ 평가가 갈리더니만 죽으니까 한결같이 ‘좋은 사람’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그의 죽음이 갑작스러울수록 평가는 더욱 후하고 슬픔은 더욱 큰 법이다. 이것은 “연기”가 아니다. 사람들이 “흘리는 눈물은 진실하다.” 죽음 앞에서 인간은 누구나 옷깃을 여미는 법이니까. 오죽하면 그리스도교에서 ‘원죄’라는 말을 고안했을 정도로 태생이 이기적인 인간은 타인을 절대로 곱게 봐주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