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물어 가는 지구를 굴리며 / 김종경 / 별꽃 / 127쪽 / 1만 2000원 ‘용인문학’, ‘용인신문’의 발행인이자 2008년 계간 ‘불교문예’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한 김종경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저물어 가는 지구를 굴리며’가 출간됐다. 김 시인은 현대인이 처한 ‘변방’에 주목하면서도 결코 절망하거나 항복하거나 포기하지 않는 인간성 회복에 주목한다. 이번 시집에서도 변방을 다루는 시인의 통찰이 드러나지만, 첫 시집에서 보여 줬던 우리 시대의 현실주의에 뿌리를 둔 시편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현대인의 유목성, 생태 위기, 사회 부조리, 소외 계층 등 암울한 변방 세계를 통해 우리 시대가 처한 아픈 자화상을 비춘다. 인간 본질에 대한 깊은 사유와 성찰로 삶과 죽음, 빛과 어둠 사이 길목에 놓인 사물(현상)의 시원으로 확장시킨다. ‘혹여, 그곳에서 또다시 과거와 미래를 오가는 열차를 만나면 종말로 향하는 마지막 열차라도 좋으니 그와 함께 올라탈 거야 그리고 아무도 없는 정거장에서 무작정 뛰어내려 직립보행을 멈춘 후 평생 네발로 사는 거지’ (‘잃어버린 시간’ 중에서) 김 시인은 카메라 렌즈 속에 포착되는 생명체를 슬프고 아름답게 담아내는 특유의 시선을
◆ 소옴 / 윤미경 지음 / 지식과감성 / 296쪽 / 1만 3500원 ‘가벼운 만큼/ 쉬이 찾기를/ 하얀 솜/ 안아 주기를…/ 행여나 쉬웠던 걸음/ 비에 젖어 더뎌지기를…/ 꿈은 꿈을 꾸고 삶은 생을 산다/ 고행을 위로하는/ 은유적인 휴식에/ 피고 지는/ ‘솜’이 되었다’ (163쪽, ‘소옴’) ‘솜’을 이르는 옛말 ‘소옴’. 솜은 공기 중을 두둥실 떠다닐 만큼 가볍지만, 그 어떤 물체보다도 포근하다. 그리고 잔뜩 물을 머금어 묵직함을 지닐 수도 있는 존재이다. 책은 발레리나에서 마케터, 전시 기획자, 호텔 총괄, 대기업 고문 등으로 활동한 저자가 치열하게 경험하고 이뤄내며 느낀 성과들을 담았다. 날아갈 듯 한 없이 가녀렸던 소녀에서 단단함을 갖춘 어른이 되기까지의 에세이와 시 등 글 조각을 모은 한 권의 솜 뭉치이다. 저자는 춤추며 신었던, 17년간의 신을 버리고 새 신을 신었다. 평생을 바쳐 제발에 꼭 맞춰놨던 신발을 벗고 딱딱한 새 신발에 적응하기까지 부단히도 노력했다. 한국 최초의 로봇 판매 성과를 기록하고, 기업에서 준비된 물량을 완판시키고, 8장의 PPT발표를 위해 5500장의 초고 PPT를 작성하기도 했다. ‘뒤꿈치가 까지고 피가 났다. 아팠지
◇ 바람 불고 고요한 / 김명리 / 문학동네 / 124쪽 / 1만 원 1983년 ‘현대문학’으로 독자들을 처음 만나, 정갈하게 다듬은 시어로 존재의 쓸쓸함과 비극적 아름다움을 노래해온 김명리 시인의 새 시집이 6년 만에 출간됐다.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죽은 줄 알았던 모과나무에서 어른거리는 ‘연둣빛’ 소생의 기운을 느끼며, 살아 있는 모든 존재의 깊이를 ‘잠시 번성했던 초록의 무게’라고 성찰한다. 시집은 총 4부로 이뤄져 있다. 1부는 자연물을 통해 느끼는 생명의 작은 기미들과 인간 삶의 본질적인 쓸쓸함을 다룬다. 2부에서는 어머니라는 소중한 대상을, 3부는 우리 주위에서 함께 살아가는 연약한 몸을 지닌 동물들을 바라본다. 마지막 4부는 이 모든 시상을 아우르는 작품들로 채워졌다. 존재를 향한 연민어린 시선을 드러낸다. ‘죽은 줄 알고 베어내려던/ 마당의 모과나무에/ 어느 날인가부터 연둣빛 어른거린다/ 얼마나 먼 곳에서 걸어왔는지/ 잎새들 초록으로 건너가는 동안/ 꽃 한 송이 내보이지 않는다’ (‘바람 불고 고요한’ 중에서) 시집의 핵심적인 정서를 담고 있는 표제시 ‘바람 불고 고요한’은 스러져가는 삶에 집착하지 않고, 그 무상성을 온전한 자연스러움으로 받아
나태주 시인의 ‘꽃을 보듯 너를 본다’가 지난 10년간 독자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시집으로 집계됐다. 교보문고(대표 안병현)가 2012년 12월부터 2022년 11월까지 지난 10년간 독자에게 사랑을 받은 시집을 조사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 시인의 대표작 ‘풀꽃’ 등 인터넷에 자주 인용된 작품만을 시인이 직접 선정해 출간한 시집 ‘꽃을 보듯 너를 본다’는 교보문고 통합몰에 후기만 1457개가 달린 꾸준 상품(스테디셀러)이다. 이어 ▲김용택 시인 필사시집 ‘어쩌면 별들이 너의 슬픔을 가져갈지도 몰라’ ▲나태주 시인 ‘가장 예쁜 생각을 너에게 주고 싶다’ ▲박준 시인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류시화 시인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순이었다. 작가별로는 판매순위 상위 30편 작품 중 나태주 시인의 작품이 6편으로 가장 많았고, 윤동주 시인이 작품 4편으로 뒤를 이었다. 사회관계망 시인으로 젊은 독자층에게 인기를 얻었던 하상욱 시인이 3편, 김용택·박준·이해인·류시화 시인(엮음 포함)이 2편씩이었다. 주 독자층을 분석하면 남성보다는 여성이 시집을 더 많이 찾았다. 20대 여성이 20.4%으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고, 다음
‘살다보면 때로는 잊는 것이 기억하는 것보다 더 어려울 때가 있나니, 하물며 그것이 사랑의 일이라면 사랑도 더러는 죄를 짓는 일이거니’ 시집 표지에도 적혀있는 이 문구는 김용태 시인의 시 ‘여린히읗이나 반치음같이’의 한 구절이다. 지난달 27일 세상에 나온 시집 ‘여린히읗이나 반치음같이’. 시인은 책을 내며 “아직 여물지 않은 글들이다. 놓아 보내자니 위태롭고 죄스럽다”면서 “모든 것들에게 감사해야 할 뿐”이라고 소중한 인연에 감사를 전했다. 김용태 시인은 2016년 제97회 문학사랑 신인 작품상에 당선됐으며, 문학사랑협의회 회원, 대전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느즈막이 시를 쓰기 시작했다는 그는 “쉰 살이 넘어 후반생을 살고 있다. 앞으로 미래에 태어날 나의 손주들과 더 나아가 후손들이 ‘우리 할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었나’ 물었을 때 내가 남길 수 있는 게 무엇일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어릴 적부터 글 쓰는 재주가 있었다는 김 시인은 “등단한 후 이왕이면 내 이름 석 자로 된 시집을 남기고 싶어 습작을 열심히 했고 이 책은 그 결과물이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여린히읗이나 반치음같이’라는 책 제목의 의미를 묻자 저자는 불교의 연기법에 대해 설명했다.
◆그 바닷속 고래상어는 어디로 갔을까/김기준 글/최성순 사진/스타북스/240쪽/값 1만5000원 마흔에 만난 그 바닷속 고래상어 정아를 그리워한 스킨스쿠버이자 의사 시인 김기준 교수. 이 책은 그동안 스킨스쿠버 체험을 통해 기록해뒀던 내용을 묶은 수중 에세이 시집이다. 지난 20년 동안 몰디브, 갈라파고스, 필리핀 팔라우, 제주 앞바다 등 국내외 여러 잠수 지역을 찾아다니며 스킨스쿠버 활동을 하면서 바닷속에서 만난 수많은 어류와 동식물의 모습을 에세이와 시로 재현해냈다. 저자는 “필리핀 팔라우에서 고래상어를 만났다. 마흔을 갓 넘겼을 무렵 ‘나는 누구인가’라는 고민을 하게 됐고, 고래상어의 모습이 떠올라 다시 그 바다로 떠났다. 그토록 만나고 싶었는데 다시 만나게 돼 ‘정아’라는 애칭을 붙여줬다”고 소개했다. 또 잠수하며 바닷속에서 만난 모든 물고기를 가리켜 ‘사랑하는 아이’ 또는 ‘내 친구’라고 표현한다. 그는 함께 협업한 최성순 사진작가와의 인연에 대해 “폭풍우가 몰아치는 인도네시아의 바다 위에서 ‘촌놈’ 둘이 운명처럼 만났다”고 고백했다. 두 사람은 ‘우리 가끔 파도치는 세상에서 만나 술 한잔 나누자. 삶의 깊은 바다를 헤매다 우연히 만나도 서로의 숨결
“시가 사람이고 그 사람의 삶이자 인생이라고 합니다. 앞으로도 살아가면서 내가 겪은 일상들을 시로 담아낼 생각입니다.” 김민찬 목사가 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자신의 삶을 담은 시집 ‘그리고, 봄’을 출간했다. ‘그리고, 봄’은 그야말로 김민찬 목사의 인생을 담고 있다. 시집을 출간하게 된 이유를 묻자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닌 나를 기록하고 싶었다’는 그의 대답처럼 시 하나하나에 진솔함이 묻어난다. 김 목사는 “살면서 그냥 지나치고 잊어버리게 되는 것들을 기록하고 싶었다”면서 “나한테는 중요한 이야기들이다. 제목을 ‘그리고, 봄’이라고 지었는데 봄이 되고나서 쓴 글이 많아서 그런지 관련된 주제가 많았다”며 마음에 드는 작품을 골랐다고 소개했다. 책 표지를 살펴보면 봄이라는 제목과 달리 마치 봄을 기다리는 듯 한 앙상한 겨울나무 한그루가 그려져 있다. 김 목사가 이 나무를 가리키며 “겨울도 내게는 봄이고,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온다는 메시지이다. 시련을 겪고 나서 좋은 날이 온다는 의미도 담겨있다”고 말했다. 시가 인생에서 어떤 의미냐고 묻자 소설이나 에세이도 저자의 생각이 담기지만 짧고 강하게 함축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매력이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사랑시 행복구 설렘동/변승희 지음/꿈공장+/127쪽/값 1만2000원 일단 제목만으로도 가슴에 뭔가 몽글몽글 샘솟는 느낌을 주는 책이다. 심지어 살짝 기분을 들뜨게 만드는 것을 보니, 그 무언가는 바로 설레임인 듯하다. '사랑시 행복구 설렘동'이라니, 참 기발하다. 너무 예쁘게 만들어진 표지는 소녀적 감성이 물씬 풍긴다. 하늘하늘한 파스텔톤 원피스에 챙이 아주 큰 모자를 쓰고, 한 손에 이 책 한 권을 들고 있으면 딱 어울릴 것 같다. 책 속에 담긴 시들 또한 사랑, 마음, 자연 등을 주제로, 일상에서 마주치는 소소한 에피소드를 잔잔하게 노래하고 있다. 그래서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해봤음직한 내용이 더욱 친근하게 다가온다. 직장인이라면 아마도 그 크기가 더하지 않을까 싶다. 특히 책을 다 읽고 나면 한 문장이 머리에 남는다. '저자에게 짝사랑하는 누군가가 있나?'이다. 물론 직접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건 아니다. 게다가 부인과 자식에 대한 애정이 철철 흐르는 작품들을 곳곳에 포진시킨, 자상한 아버지이자 남편인 '남자'가 저자다. "그런 질문을 많이 받는데, 사실은 모두 창작이에요. 개중 사랑을 다룬 얘기들은 피 끓는 청춘일 때 느꼈던 감성들이 회상이 되기도
다들 한 번 쯤은 그런 경험이 있지 않을까? 아무 생각 없이 펼친 책 한 권을 밤 새워 읽었던, 혹은 별 기대 없이 보게 된 드라마나 영화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몰랐던 일 말이다. 간만에 그런 시집을 만났다. ‘두만강 시간’. 보면 알겠지만, 책의 표지는 너무나 특별할 게 없다. 다른 책들과 섞여 책장 어딘가에 꽂혀 있다면 찾아내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될 만큼,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그런 모양을 하고 있다. 요즘 나오는 화려한 책들과 비교하면 눈길을 사로잡을 만한 매력은 없는 게 사실이다. 기자도 처음 책을 펼쳐들 땐 그저 훑어볼 요량이었다. 그러나 한 장 한 장 그냥 지나쳐 넘어갈 수 없었다. 결국 꼬박 몇 시간을, 책에 파묻혀 끝까지 다 읽고 나서야 기지개를 켜며 자리를 뜰 수 있었다. ‘아’ 하는 한숨 섞인 탄성과 함께 마음으로 들어오는 책, 이후에는 저자에게 소주 한 잔 건네며 위로의 시간을 나누고 싶은 책. 무엇보다 그 속에서 치유되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이 책을 코로나19로 지친 우리네 삶 속에 선물해보자고 감히 추천한다. 북한을 이탈해 대한민국에 왔고, 최근 박사 학위까지 받은 사람이 시집을 냈다고 해서 인터뷰 일정을 잡았다. 16일 경기신문
모든 비밀의 시/어디 엔드레 글/한경민 옮김/최측의 농간/192쪽/1만4천원 헝가리 시인 어디 엔드레(Ady Endre)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를 수놓았던 유럽의 쟁쟁한 시인 중에서도 가장 천재적인 시인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루카치, 하우저 등 당대의 지식인들뿐 아니라 오늘날 헝가리인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어디 엔드레 시인의 작품선집을 최측의 농간에서 선보였다. ‘모든 비밀의 시’는 옮긴이 한경민이 어디 엔드레 시인의 여러 시집에서 80편의 시를 선정해 우리말로 옮기고, 옮긴이의 헝가리인 동료 허르커이 더니엘러가 감수를 맡은 책이다. 어디 엔드레는 청교도주의와 데카당스적 면모의 혼재, 사상적으로도 반드시 일관된 입장을 취하지 않았으며 작품 활동뿐만 아니라 파격적인 생활 방식이나 진보적인 연애 방식으로 당대 헝가리 사회에 커다란 파문을 던진 바 있다.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던 시절 어디 엔드레가 발표한 초기 시들은 대체로 냉담한 반응을 얻으며 시인으로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문학적 뮤즈라고 할 수 있는 연인 레다를 만나 새로운 삶과 문학 창작 시기를 맞이하게 된다. 그는 파리로 이주한 레다를 따라 당대 예술의 중심지였던 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