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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유승호 작가의 그림 이야기

주룩주룩 등 의성어·의태어 이미지 작업
산수화 고상함·무게감을 재미있게 표현
한글자 한글자 손길 따라가니 풍경을 만나다

 


글씨로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정답은 ‘있다.’ 유승호 작가는 글씨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
글씨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생소하지만 유 작가에게는 생소한 것이 아니라 생황의 일부분이다.
글씨로 그림을 그리는 유 작가를 만나 진솔한 얘기를 들어 봤다.


에코워즈(Echoword)의 정의와 어디서 이 단어가 나왔는지.

-Echowords의 정의는 흉내내는 말 이란 뜻이며, echo(흉내, 모방)라는 단어와 word(말)이라는 단어를 합친 말에서 나온 것이다. 따라서 Echowords는 의성어, 의태어 등을 나타내기도 한다.

landscape 작품제목들이 ‘슈’나 ‘주루루룩’ 처럼 의성어가 많은데 어디서 이 단어들이 왔으며 왜 이런 제목들을 쓰는지.

-내 글씨작업들은 작업에서 보여지는 이미지와 문자와의 관계(멀리서 봤을 때 이미지로 보이지만 가까이서 봤을 때 그 이미지가 글씨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를 나타낸다.

예를 들어 ‘주루루룩’(한국말로 빗물이 떨어지는 소리를 의미한다)이라는 글씨들을 펜으로 써서 ‘주루루룩’ 흘러내리는 이미지를 표현하는 것이다.

실제로 ‘주루루룩’의 작품을 보면 글씨들이 화면의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슈-’작품의 경우는 슈라는 단어를 한국의 만화책을 보고 직접 가져온 말인데, 그 만화책 속에서 ‘슈-’는 로켓이 하늘을 향해 발진하는 소리를 의미한다.

중국의 전통산수화중 어느 한 작품의 이미지 부분이 로켓이 발진하는 이미지와 닮아 있어서 ‘슈’라는 단어를 가져온 것이다.

이런 의성어, 의태어들은 주로 만화책 속의 말 풍선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만화책 보는 것을 즐기지는 않는다.

단지 작품에 쓰일 이미지를 보고 있으면 만화책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유치하고 유머스러운 말들이 그냥 무의식 중에 떠오르곤 한다.

글씨로 그림을 그리면서 지론이 있다면.

-나의 풍경글씨작업은 모방 또는 복제라는 개념을 갖고 있다.

중국산수화의 원전을 보고 글씨로 모방하는 측면이나, 2007년 미즈마갤러리(도쿄)에서의 개인전시에 출품작중 하나인 ‘나는 니가 아니야’의 제목과 이미지에서 단적으로 보여지듯 원전의 이미지부분을 또다시 복제해 이미지를 덧붙인 측면, 그리고 ‘나는 니가 아니야 나는 니가 아니야...’ 라고 같은 말을 끝없이 반복해서 펜으로 쓰거나 내 글씨체를 복제한 스탬프로 복제하는 행위, 이와 같이 나의 풍경 글씨작업 개념에서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라는 아이러니한 관계에 관심을 갖고 있다.

글씨로 그림을 그리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

-그런 이유는 글쎄 별로 없는 듯 하다. 단지 처음으로 글씨작업을 시작했을 때 ‘화면에 글씨를 써 나가면 이것이 미술이 될 수 있을까?’ 라는 의구심에서 시작하게 되었다. 이것은 당시 나에게 무척 설레이게 했다.

1999년 첫 개인전을 열었다. 첫 개인전의 의미는.

-'히히히`라는 주제 하에 첫 개인전을 열었다.

점과 글자라는 두 요소를 갖고 화면 안에서 놀아나고 있는 작품을 보여줬다.

점들의 놀아남, 문자들의 놀아남, 이러한 점·문자의 놀아남은 무거운 의미들을 가볍게 흘려 보내고 화면의 공간 속에서 부유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엔 즐김, 본능, 쾌락, 유머만이 남아있는 꿈속으로. 그래서 점들(글자들)은 히히히 웃으면서 놀아나고 있다.

‘히히히’ 는 양면성을 갖고 있다. 하나는 좋아서, 즐거워서 웃는 히히히, 다른 하나는 조롱하는, 부정적인 웃음으로서의 히히히.

유승호의 캔버스(점 작업)작업과 종이(글쓰기작업)작업은 꽤 많은 시간(보통 한 작품 완성기간이 30~50일 정도 걸림)과 반복된 동작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는 마치 도를 닦는, 수행하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이는 지루함의 연속일 수도 있고 무언가가 끊임없이 손에서 떠나지 않고 있다는 포만감일 수도 있다.

그래서, 좋아서 ‘히히히’ , 싫어서 ‘히히히’

어떻게 특정한 의성어를 작품 제목으로 정하는지

-작품 제목을 정하는데 있어서 나는 심각해 하지 않는다.

다만 제목으로서 자연스럽게 느껴지면 그만인 것이다. (모든 글씨작업이 작품 속에 써져 있는 글씨 그대로 제목을 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작품 속에 써져 있는 글씨 그대로 제목을 정하는 것이 나에게는 자연스럽고 편안하다.

유승호의 스타일이(단지 언어들로 다시 원화를 되돌려 놓는) 원화들을 어떻게 해체하는지가 흥미로운데 이런 과정이 의미하는 것은.

-동양의 전통산수화라는 보편적 이미지는 지적, 고상함, 우아함, 선비적, 무게감을 연상케 한다.

나에게 전통 산수화는 더 이상 지적, 고상함, 우아함, 선비적, 무게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오래된 유명한 그림을 보듯 단지 나른함을 불러 일으킨다. 그런 그림들은 나에게 이젠 더 이상 어떤 의미를 주는 것이 아니라 단지 스쳐 지나 버리게 만든다.

나의 무의식 속에서 이런 나른함에 코믹하고 유머스럽고 경박하고 어린아이들 수준의 단어들로 또 다른 생명을 불어넣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작품을 멀리서 봤을 때 진지함을 나타내지만 가까이 봤을 때 그 이미지가 우스꽝스러운 글씨들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보는 순간 뒤통수를 치게 만드는 것이다.

산수화 원화들의 출처는? 여러 원화들 중 특정한 그림을 선택하는 이유, 무엇이 중요한 요소인지? 왜 산수라는 전통적인 주제를 정하는지.

-내가 사용한 몇몇 산수화 원화들은 중국 북송시대의 원화들에 집중되어 있다. 북송시대의 산수화가 무엇 때문에 나의 관심을 끌었을까. 나도 모르겠다. 북송시대의 산수화 원화들을 주로 사용한 특별한 이유는 단지 그 시대의 그림들이 그냥 마음속으로 땡겨서이다.

나도 모르게 마음이 땡긴 한 가지 이유는 그 시대 산수화 중 곽희(郭熙)의 조춘도(早春圖) 부분 등에서 나타나는 외곽선의 뭉개짐 혹은 불분명함 때문이다. 이것은 순전히 나만 느끼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의 초기작업(1993년 작업) 중에 얼굴 및 신체를 목탄과 콘테로 드로잉한 작업과 붓으로 드로잉 하듯 선(線)적으로 느끼게끔 페인팅한 작업들이 있는데 여기서 관심있게 봐야 할 부분은 목탄, 콘테, 붓 등으로 형상을 드로잉할 때 형상의 외곽선을 여러 겹 어긋나게 선(線)으로 겹처서 외곽선이 불분명하게 나타내는 습관이 있었다.

이런 형상의 외곽선이 불분명한 드로잉은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마치 수묵화에서 먹을 묻힌 붓으로 한지에 천천히 그렸을 때 먹이 번져 외곽선이 불분명해지는 것과 흡사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수묵화의 원화에 빗대어 글씨작업을 하게 되었는데 동양의 전통 중 회화의 장르에서 일반적으로 쉽게 볼 수 있는 것은 수묵화 중 산수화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를 택한 것이다.

산수화 원화를 토대로 글씨작업을 할 때 원화와 다르게 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산수화 속의 붓터치(외곽선)를 더욱 뭉개뜨리게 혹은 불분명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는 나의 글씨작품에 조금 가까이 가서 보면 산수화가 더욱 번져 그린 것 처럼 보인다. 이렇게 더욱 더 외곽선이 불분명하게 또는 뭉개져 보이게 작업하는 것을 나 자신 스스로 즐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유승호의 작품이 그려지지 않고 쓰여졌다는 점이 흥미롭다. 유승호씨는 자신의 작품이 그림, 글 또는 그림과 글의 혼합 중 어떤 것으로 생각하는지

재미있는 그림쪽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림을 다르게 감상할 수 있는 도구적인 역할, 다시말해 산수화라는 고상함에 언어를 통해서 산수화가 아닌 다른 그림을 만들어낸 것이 나의 글씨 작업이라 생각한다.

작품 중 she는 영어로는 여자, 한국말로는 오줌 소리 그리고 이미지는 어린 남자아이인 것처럼 여러가지 다른 의미가 있다. 이 작품은 다른 작품보다 개념적으로 더 복잡하고 유승호씨만의 유머를 보여준다. 이 작품에 대해 더 설명하고 작품에서 유머의 중요성은.

영어로는 여자, 한국말로는 오줌 소리, 이미지는 어린 남자아이. 무엇이 진짜인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가? 어느쪽에 비중을 두나? 이 그림 속에 나타난 어린 남자아이의 정체성은? 나의 정체성은?

무언가 상실되어 보이고 약해 빠져 보이는 남자아이, 이 남자아이의 모습이 갓난 아기 때 잃은 아버지의 부재를 나타내는가. 나에게 아버지는 무언인가.

이렇게 무거운 의미, 생각들을 유머로서 날려 버리고 싶다. 그렇게 될 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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