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번 국도 수원에서 서울방향으로 향하는 경수산업도로를 따라 자동차로 20분만 달리면 의왕 청계분지단지가 보인다. 이곳은 각 종 식물과 꽃 등을 대량으로 재배해 손님들에게 판매하는 곳이다. 길 맞은편 의왕저수지를 끼고 즐비한 고급 레스토랑과 찻집에 시선이 쏠릴 수도 있지만 이곳 청계단지를 찾는 사람 수는 해가 지나도 줄지 않고 있다. 지난 2004년 초기만해도 17개의 비닐하우스 동이던 것이 현재는 절반 이하로 줄었다. 하지만 식물을 사랑하는 매니아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으면서 현재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유는 또 있다. 장인들의 열정 때문이다. 이곳에서 20년 넘게 야생 초를 기르며 품종 개발에 열정을 바쳐온 영광식물원 정창섭 대표(2007년 경기도농업전문경영인 지정)도 그 중 한 사람이다.
그의 전공 분야는 원예다. 그 중에서도 야생초가 정 대표의 주특기다. 그는 자신의 무기를 갈고 닦았다. 그것도 20년 이상의 세월 동안. 시간의 무게만큼이나 주특기 내용도 알찼다.
청계분지단지 내에 들어선 정 대표의 비닐하우스 야생초 매장인 '정원'에서 그와 첫 만남이 이뤄졌다.
매장은 인근 비닐하우스와는 달랐다. 야생초 생태계의 보고라고 불릴 정도로 그의 컨텐츠는 놀라웠다. 흰진달래와 동백꽃에서부터 깽깽이풀과 동이나무, 산수국과 만병초, 수선화와 매발톱나무에 이르기까지 '정원'의 야생화는 접지 응용을 통해 무궁무진한 유 무형의 가치를 창조해 내고 있었다.
그는 명함을 교환하자 마자 30분 간 쉬지 않고 입을 열었다. 내용은 야생초 분지의 미학과 접지 예찬론이다. 마치 강의하듯 알려줬다. 아니 그것은 대화였다. 야생초의 아름다움과 신비 함에서부터 접지의 묘를 살린 상업화 성공 전략까지.
정 대표의 머리 속은 온통 야생초로 가득 찬 듯 보였다. 흥미로웠다. 처음 야생초를 접한 사람이라면 느끼는 단순한 호기심과 관심이 아니라 몰입 되는 것을 느꼈다.
그는 자상했다. 야생초를 기르는 정성으로 오가는 손님들에게 열정이 담긴 안내 서비스를 펼쳤다.
사실 그의 이런 모습은 다른데 있는 게 아니다. 10년 전인 지난 2000년 초부터 안양시 생활 원예 전문강사로 뛰었다. 자신이 사는 의왕에선 주민들을 대상으로 5년 넘게 야생화 전문 강사로 무료 봉사했다.
대학 강단에도 섰다. 한국농업 대학이 주관하는 도시민 전원농업 교육에서 농촌 정착 교육 강사로 3년 간 활동했고, 고정 교육생만 매주 20명씩 모두 천 명이 넘는 제자를 가르쳤다. 보람도 있다. 시중은행 지점장까지 지낸 중년의 신사가 정년 퇴임을 하자마자, 자신의 비닐 하우스 매장 옆에다 매장을 낸 것이다.
정 대표는 “야생화 원예 분야에 관심과 참여를 원하는 사람들이 계속 늘고 있다. 내가 잘한 것도 없는데…”라며 애써 웃음을 감추려 했다.
그가 전하는 야생화 이야기는 이랬다.
“종자가 가장 중요하다. 종자를 통해 변이를 일으키면 관상용으로 부가가치가 높아지는 원리다. 장미 한 송이라도 경매에서 팔리면 한 송이당 로열티를 네델란드에 지불해야 한다. 이는 국부 유출이다. 우리도 얼마든지 기술력을 키워 파이를 키울 수 있다. 앞으로는 종자전쟁이 될 것이다. 앞으로 종자 산업 분야에 야생화는 강력한 경쟁력을 가질 것으로 본다.”
그는 이 분야에서 최고인 듯 보였다. 물론 전제가 있다. 그의 땀과 시간, 노력을 바친 영광식물원이 얼마나 잘 되느냐에 달려있다. 정 대표가 2007년 경기도농업전문경영인으로 선정되면서 그는 더 바빠졌다. 최첨단 비닐하우스로 이뤄진 영광식물원은 태초에 아담과 이브가 머물던 동산에서 자라나던 생명의 식물과 한반도 전역, 전 세계 산지와 습지, 심지어 무인도에까지 직접 가 구해온 종자들이 믹스 돼 천국을 연상케 했다. 현대화 시설을 갖춘 천국. 말이 좀 이상하다. 그러나 식물원 곳곳을 둘러보면 이런 말이 오버가 아님을 알 것이다. 그는 해외 출장을 자주 다닌다. 영광식물원에 담길 새로운 식구를 구해오기 위해서다.
얼마 전 정 대표는 식물원에 소비자체험 교실을 세웠다. 물론 경기도에서 4천여만원의 지원금을 받았다.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말이 있다. 그는 이런 세상 이치에 충실하기 위해 알찬 교육 프로그램을 짜 보답했다.
어린이와 성인, 어르신, 전문가반으로 세분화하는 세심함도 보였다. 내용은 화분 분갈이, 병충해 방지, 분재 기르기, 분화류 재배법, 사계절 관리법 등 다양했다. 흥미로운 건 교육생들과 등산과 야생화 관찰 견학, 바비큐 파티까지 함께 했다.
정 대표는 "직장에서의 스트레스와 회색도시 자동차 매연 등 현대 사회의 찌들린 삶에서 잠지나마 재충전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영광식물원 내에 체험 교실 건립 구상을 현실에 옮겼다"며 "지역 사회와 화훼 영농인들에게 열린 농장으러서 외국 화훼의 신품종 등 신기술 보급을 통한 경쟁력도 커지는 효과를 내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처럼 그의 무궁무진한 상상력과 진념, 열정이 뭉친 식물원에는 무엇보다 지속가능성에 대한 희망과 비전까지 있어 보인다.
바로 그의 부인 김혜순씨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남매가 그 주인공이다. 첫 째 딸은 올해 한양대학교 생명소재공학과에 입학했다. 화훼와 원예, 야생초 재배가 상품이나 관상 목적 뿐만 아니라 사람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에 딸이 과업을 이을 것이란 기대에서다. 둘째인 고2 아들 역시 서울대 농대 진학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아버지인 정 대표가 일군 야생화 농사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다.
아내 역시 오늘날 야생화 정원 매장과 영광식물원이 있기까지 숨은 일등 공신이다. 정 대표와의 만남은 우연인 듯 필연이 됐다.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를 마치고 서울 마포에 있는 홀트아동복지관에서 장애 아동들을 돕는 프로그램에 남편인 정 씨가 뜻하지 않게 참여한 게 결혼하게 된 계기가 됐다. 당시 정씨는 매월 4만원씩 복지관에 기부를 해왔다.
그는 “아내와의 만남은 운명 그 자체"라며 "오늘날 야생화 정원과 영광식물원이 있기까지 아내의 인내와 동고동락이 밑거름이 됐다”고 말했다. 그랬다. 정 대표의 영광식물원은 그의 마음처럼 열려 있고 뚫렸다. 막힘이 없다. 야생초 원예와 화훼를 배우고 싶은 누구에게나 개방 돼 있다. 뜻이 있는 자에게 길이 있다는 말이 있다. 그가 지금까지 걸어온 삶의 궤적을 찬찬히 돌아보면 야생화에서 뜻을 품고 오로지 앞만 보며 달려온 그의 삶의 향기가 식물원 내내 퍼져있음을 알 수 있다. 문의: 야생화 정원(☎031-426-3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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