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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장에게 듣는다 - 염태영 수원시장


꿈 많던 미술학도가 그리는 명품도시 수원의 미래
“사람이 반가운 휴먼시티 수원 만들 것”

 

대담|안병현 편집장 abh@kgnews.co.kr  정리|배임석 차장 baeis26@kgnews.co.kr
사진 |이준성기자 rokmc3486@kgnews.co.kr

 

 

두 번의 도전 끝에 수원의 행정수반으로 입성한 염태영 시장은 수원사랑과 환경지킴이, 그림 잘 그리는 정치인으로 대변된다. 염태영 시장이 그리는 명품도시 수원의 크로키를 살펴보고 꿈많은 미술학도에서 환경운동가로 굴곡많은 정치인으로 살아온 그의 삶의 철학과 휴먼스토리를 들어본다.

 

수원 토박이 염태영. 지난 6.2지방선거 민주당 승리의 주역이다. 그의 수원시장 당선에 이변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염 시장은 6·2지방선거에 승리한뒤 충혼탑, 조상묘 참배에 이어 화성시에 있는 요양원에 들르면서 당선자로서의 첫 행보를 시작했다. 대뜸 “요양원에 누구를 찾아 갔느냐”고 묻자 다소 의아해하는 염 시장. 정치적인 질문을 예상한 터였으리라. 이번 인터뷰의 취지는 시장 염태영보다 인간 염태영에 의미를 두고 싶다고 설명하자 반색하며 매고 있던 넥타이를 푸르며 자연스럽게 인터뷰에 응했다.

 

그는 “거의 식물인간상태로 누이가 그곳에 있다”고 했다. 중고등학교 시절 부모님을 차례로 여의면서 지독한 가난속에 5남매의 가장으로 세상과 맞서게 됐다. 병상의 큰 누이는 그런 우리들에게 엄마와도 같은 분이었다. 대학시절 민주화운동하는 친구들의 끼니를 챙겨주셨고  지난 2006년 수원시장 출마 준비당시 밤낮으로 선거를 돕다가 쓰러졌다고 한다.

 

당시 집권여당인 열린우리당의 지지도가 낮던 시절이라 선거운동하기가 쉽지 않았다. 누이의 헌신적인 노력과 봉사가 없었다면 아마 지금의 염태영도 없었다고 회고한다. “언젠가 반드시 당선돼 취임식 맨 앞자리에 모시겠다고 스스로 약속한 것이 한두번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염시장의 눈가가 촉촉이 젖어온다.

 

염 시장은 미술. 특히 동양화에 조예가 깊기로 유명하다. 어린 시절 촉망받는 미술학도로서 승승장구 했다. 그랬던 그가 미대의 꿈을 접고 서울대 농화학과로 진학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형편이 어려워 제대로 된 미술공부를 할 수 없었지만 수성고 미술반 은사의 배려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고 한다. 사춘기 시절 겪어야 했던 슬픔으로 우울증에 시달렸고, 신앙에 빠지면서 남들과 경쟁하는 것들에 흥미가 없어졌다. 그러면서 혼자 할 수 있는 그림에 더욱 몰두할 수 있었다. 성적도 제법 좋아서 학교에서는 내심 예비서울대미대생으로 점찍어 두었지만 자신을 위해 하얀 화선지에 무릉도원을 그려 나갈 자신이 없었다. “가장으로서 생계를 책임져야 했고 대학을 졸업해 빨리 취직을 해야했다.”며 어린시절 가장으로서 겪었던 회한을 털어 놓았다.

 

염 시장이 대학 새내기시절이던 1980년의 시국은 혼란스러웠다. 기독청년협의회 활동 등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민주화운동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리고 밤에는 야학에서 학생들에게 미술을 가르치며 봉사를 했다. 염 시장은 야학에서 영어를 가르치던 지금의 아내 강옥형(현 독산고 교사)씨를 만나 평생가약을 맺는다.

 

 

당시 영어를 가르치던 지금의 아내는 수원매산초등학교 동창생이었다. 이를 계기로 더욱 가까워질 수 있었다. “어느날 매산초등학교 앨범에 맘에 드는 여자아이들을 둥그렇게 표시해둔 적이 있었다. 그녀를 야학에서 만난 것이다.”라며 어린나이에 이미 평생의 반려자를 알아봤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염태영 시장은 대학을 졸업한 후 미원, 두산, 삼성과 같은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서 직장생활을 했다.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생활하기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잘 다니던 회사에 사직서를 내고 본격적인 환경운동가로의 변신을 꾀한다.

 

“나를 대신해 시민운동의 현장에 나가있는 친구들에게 항상 미안했다. 그래서 언젠가는 현장으로 되돌아간다는 생각과 의무를 가지고 있었다. 막내동생이 대학을 졸업하고 가정의 경제를 책임질 수 있는 시기가 오기를 내심 기다렸다.”  대학시절 그는 환경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이제는 환경이다’라는 생각을 갖게 됐고 독학으로 환경기사1급과 환경기술사 자격을 취득했다. 그러던 중 환경에 관심이 많은 뜻있는 분들이 수원에 환경단체설립을 촉구하고 앞에 나서주기를 원했다. 어차피 가야할 길이라는 판단이 섰기 때문에 그는 환경불모지였던 수원에 수원환경운동센터를 설립하고 공동의장에 취임한다.

 

아내는 염태영 시장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
안정된 직장을 뒤로 하고 환경운동을 하겠다는 염시장의 든든한 후원자는 바로 아내였다. 천군만마를 얻은 염 시장은 본격적인 환경운동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경실련 환경개발센터, 수원천 되살리기 시민운동본부, 녹색연합, 수원시화장실문화협의회 등의 활동 등으로 대통령 표창을 수상하며 수원의 환경발전에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기 시작했다. 인터뷰의 화두가 ‘환경’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미스터 토일릿(Mr. Toilet)’ 故 심재덕 前 수원시장과의 인연으로 이어졌다.

 

자연형하천복원을 위한 수원천복개반대운동을 시작할 무렵 당시 수원문화원장이던 심 前 시장이 참여의사를 밝혀왔다. 주위에서는 환경운동의 정체성이 퇴색된다며 반대했지만 그는 심 前 시장의 선명성을 읽는 것이다. 그로부터 심 前 시장과 염시장은 정치적 동반자로 발전하기에 이른다. 심 前시장은 그를 차기 시장 후계자로 거론할 정도였다.

 

심 前 시장의 고희 기념 헌정책자를 집필주도 하는 등 심 前 시장의 정치적 적자로 불리우는 평가에 대해 그는 “이런 말을 들을때마다 돌아가신 분께 누가 될까 항상 염려된다”면서 “내 삶에 있어서 좋은 스승이었고 정치적 멘토였다.”며 그리움을 전했다.

 

1995년 민선지방자치단체의 시대의 도립으로 지역 환경문제 해결을 위한 다수의 시민단체 설립의 붐이 일기 시작했다. 지방을 발전시키기위한 ‘지방의제21운동’이 활발해지면서 수원의제인 ‘희망수원21’의 실무 책임자로 능력을 인정받아 ‘경기의제21추진협의회’사무국장과 ‘지방의제21 전국협의회’초대 사무처장을 역임했다. 이런 다양한 경험과 성과를 눈여겨본 노무현정부는 2005년초  그를 지속가능발전위원회 기획운영실장 겸 청와대 환경비서관으로 선임했다.
 

 

 

정치에 뜻을 두고 시민운동을 한 것은 아니다. 환경을 중심으로 살맛나는 마을을 만들고 싶었다. ‘지구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지역에서 실천하라’는 ‘지방의제21’의 명제를 반드시 이뤄내 우리 아이들에게 푸른 미래를 만들어 주고 싶었을 뿐‘이라고 말하며 ”시민운동을 정치에 입문하기 위한 초석으로 생각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시민운동과 정치의 상관관계 대해 경계선을 확실히 그었다.

 

염태영 시장은 지금 그 약속에 한발자국 다가서 있다. ‘수원시장인수위’를 ‘좋은시장준비위’로 개칭하면서 탈권위주의에 앞장섰다. 수원시의 통합과 소통을 위해 선거기간 경쟁했던 이윤희 후보를 준비위에 포함시켰다. 또한 타 후보의 좋은 공약을 시정에 반영하기 위한 공동정부 준비작업도 서두르고 있다.   

 

뉴타운이 아닌 웰타운 조성
“수원발전을 위해서는 통합과 소통이 중요하다. 야권의 단일화 후보로 당선된 만큼 각 정당의 주요정책과 강점들을 적극 수용할 생각이다. 예컨대, 친환경무상급식, 재개발사업, 지역경제활성화방안을 통한 다양한 일자리창출 등을 들 수 있다. 수원. 오산. 화성 통합과 같은 주요공약에 대해서는 중앙정부와 각 지자체의 이해와 협조를 구해 수원시민의 염원이 녹아있는 시정을 펼칠 생각”이라며 “이를 위해 능력위주의 깨끗한 인물들을 대거 발탁해 추락한 공직자들의 위신과 청렴도를 끌어올릴 생각이다.”라고 강조하며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예측 가능한 인사를 하겠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무엇보다 콘크리트 행정으로 노쇠한 수원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어 뉴타운이 아닌 웰타운을 조성해 사람이 중심되는 수원을 만들어 나가겠다.”며 수원시장으로서의 의지를 피력했다.
염태영 시장은 선거기간 ‘사람중심투자’ ‘사람을 섬기는 시정’을 목표로 사람중심의 수원통합을 역설했다. 또한 ‘시장이 반찬이다’라는 슬로건 아래 시민을 위한 정책을 강조해왔다. 과연 염태영 시장이 차리는 밥상에 오르게 될 반찬은 무엇일까? 4년 후 ‘염시장이 차려놓은 웰빙밥상에 숟가락만 올렸을 뿐’이라는 수원시민의 평가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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