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28 (토)

  • 구름많음동두천 22.4℃
  • 구름많음강릉 23.7℃
  • 맑음서울 24.0℃
  • 구름많음대전 24.7℃
  • 구름많음대구 23.5℃
  • 구름조금울산 24.7℃
  • 구름많음광주 25.8℃
  • 구름조금부산 27.9℃
  • 구름조금고창 26.8℃
  • 구름조금제주 27.7℃
  • 구름조금강화 23.1℃
  • 구름많음보은 23.4℃
  • 구름많음금산 24.8℃
  • 구름많음강진군 25.9℃
  • 구름많음경주시 24.7℃
  • 맑음거제 25.1℃
기상청 제공

[Culture] 장정영 경기도미술협회 이사장

사군자의 향기나 기상, 절개 등 고매한 뜻을 담아 옛 선비나 사대부들이 심중을 표현코자 그렸다는 문인화. 그 가치 판단 기준은 무엇보다 보이지 않는 정신과 마음의 얼을 얼마나 잘 표현했는가에 달렸다. 아무리 잘 그린 그림이라도 가슴 속의 일기를 담아내지 못했다면 졸작이 돼버리는 세계는 신비롭기까지 하다.

 

하지만, 스스로의 생각과 느낌을 시로 풀어내고 그림으로 형상화 시켜서 화폭에 담는 과정이 녹록지 않아서일까. 사군자를 문인화의 전체로 인식하게 하는 좁은 식견이 만연해 있고, 한국화의 현실은 서구미술의 방법과 이론에 몰입해 있다.

그 속에서도 문인화의 전통 가치 부활을 위해 힘쓰고 그 정신을 이어 나가고 있는 작가 장정영(52·경기미협 이사장). 그를 만나 문인화에 관한 이상과 현실, 경기미협의 행보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글 l 권은희기자 keh@kgnews.co.kr

 

 


어린 시절 자연과 더불어 상상력 길러

그의 어린 시절은 드넓은 자연, 고즈넉한 사찰, 불교의 정신을 담아낸 탱화 등으로 점철된다. 가톨릭 신자로 알려진 그가 절에서 자랄 수 있었던 것은 불자였던 조모 덕분이다. 스님을 모시고 사찰을 지어 생활했던 친가를 자주 오가며 그는 절을 놀이터 삼아 뛰어놀곤 했다.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는 산사에서 주로 생활했다. 오늘날 같지 않게 예전에는 산 깊은 곳에 암자가 많았다. 당연히 자연과 벗하며 마음껏 뛰어놀 수 있었고 소소한 것들을 관찰할 기회도 많았다. 산해진미가 가득한 그곳이 어린 나에게는 참으로 마음에 들었다”

그것이 바탕이 됐을까. 그의 생활은 인문학적 상상력으로 가득 찼다. 또 생활에서 여백을 찾아내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나갔다.

“탱화를 하시는 스님이 계셨다. 큰 방 가득 화선지를 펼쳐놓고 나무 막대기로 본을 잡으셨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버드나무 가지를 하수구 밑에 묻었다가 꺼내 사찰 처마에 매달아 놓고 그것으로 불을 땠던 과정을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 나무 막대기가 목탄이었던 게다. 누구도 일러주지 않았지만, 저절로 터득할 수 있었던 소중한 경험이 오늘날의 바탕이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칭찬이 만들어 낸 화가의 꿈

그는 ‘칭찬’이 오늘의 자신을 만든 원동력이 됐다고 고백하기도 한다. 다른 이를 칭찬하는데 인색하지 않은 그의 모습은 또 다른 누군가의 꿈을 만들어주는 기폭제가 된다.

“40여 년 전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 학교에 손님들이 오실 때면 반 친구들과 함께 그림을 그려 교실 뒤에 걸곤 했다. 그때 담임선생님께서 그림을 잘 그린다고 칭찬해주셨던 것이 자신감과 꿈을 심어줬다고 생각한다. 그때부터 화가가 돼야겠다고 결심했다. 열심히 그림을 그린 덕분에 고등학교에 다닐 때까지 대회에 나가 상도 많이 탔고 자연스럽게 미대에 진학해 서양화를 전공할 수 있었다”

 

 


사물 함축, 사상 표출… 매력 느껴

장 작가는 일필일획으로 사물을 함축하고 사상을 표출하는 데서 매력을 느낀다고 말한다. 간결한 선은 우주를 표현하고, 과장되지도 단조롭지도 않은 화폭 안에서 또 다른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자연, 맑은 심성이 문인화 속에 담기는 장면을 설명할 때 그는 그 ‘멋’에 통달한 사람 같기도 하다.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그가 어떤 연유로 문인화와 인연을 맺게 됐는지 물었다.

“90년대 초 시흥에 미협이 창립됐을 즈음 협회 일을 하면서 많은 사람과 만날 수 있었다. 그 중 가깝게 지냈던 이가 탤런트 한인수 씨다. 한번은 한인수 씨가 그림을 그리는 나에게 난을 그려달라고 부탁했다. 전공도 아니고 사군자를 잘 그리지는 못했지만, 정성껏 그렸다. 다 그린 그림을 쭉 둘러보니 난초가 아니라 초라한 풀처럼 느껴졌다. 마치 절름발이가 된듯한 기분이랄까. 곧장 계정 민이식 선생님을 찾아가 문인화를 사사했다. 80년대 말 무렵의 일이다”

뒤늦게 시작했지만, 그는 경기미술상(2008), 대한민국미술대전 특선 3회 및 입선 2회, 전라북도 미술대전 특선 3회, 동아 미술대전 입선(1993), 목우회 입선(1993) 등의 수상 경력을 쌓아가며 단연 두각을 나타냈다. 지나치게 형식화된 문인화를 문인화답게 만드는 정신을 계발해내는 작가라는 평을 받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문인화의 가능성이 여전히 수면 아래 있다는 것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낸다.

“정규교과목에서부터 동양화 쪽으로는 교육이 많이 이뤄지지 않아 아쉽기만 하다. 서예, 문인화도 비인기 분야라 가끔은 천대받는 느낌을 감출 수가 없다. 작품이 쉽지 않아 꺼리는 부분도 있을 듯하다. 문인화가들은 본질을 잃지 않는 범위 내에서 현대적인 흐름을 놓치지 않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서양화에도 문인화적 요소가 분명 존재한다. 어떤 이유에서건 문인화의 진정성을 인정받고 위상을 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문인화가, 대학교수, 미협 이사장 등으로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는 그는 최근, 경기미협 관련된 일에 시간 대부분을 보내며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

“다른 단체나 사람들에게 미협이 하는 일, 회원들의 노력과 성과를 알리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 경기미협의 위상을 정립하는 일이 임기 내 반드시 해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미협 운영, 미술 대전의 투명성 제고에도 힘쓰고 있다. 지난 경기미술대전에서부터 심사 방법에 변화를 줘 그간의 논란에 대한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도 했다. 또 지난달에는 경기도노인전문시흥병원에 작품을 기증하고 대여하는 등 미협이 도울 수 있는 최대의 범위 내에서 봉사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더불어 회원들의 화합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어려운 때일수록 소통이 필요하다”

한국현대문인화 대표작가전 참여

지난달 장 작가는 인사아트플라자 이형아트갤러리에서 열린 ‘한국현대문인화 대표작가’전에 참여해 그간의 작품세계를 펼친 바 있다. 경기미협 이사장으로서 바쁜 행보를 이어온 터라 이번 전시에서 만난 그의 작품은 반가움이 더했다.

그의 삶은 시대를 반영하고 생활이 느껴지는 문인화와도 맞닿아 있다. 자연으로부터 터득한 그의 신념과 세계는 또 다른 이치를 알게 해주는 듯하다. 우계 장정영 작가는 문인화의 ‘여백’만큼이나 여전히 숨은 에너지와 가능성을 품고 있다.

 







배너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