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이라는 말 /박혜람
바람과 가장 절친한 말이 있다면
그것은 잎이라는 말일 것이다.
이 엽록(葉綠)의 프로펠러들이
없었다면 바람은
날아오르는 종족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서로가 서로의 가려운 등을 긁어주듯,
서로가 서로를 닮아가듯, 서로의
무거운 그늘과 햇빛을 털어주는,
아니, 서로가 할퀴는
절친한 것들의 흔들림
나라는 잎
바람에 속아서 너무 빨리 팔랑거렸다
그러고 보니
바람과 가장 불편한 말이 있다면
그것 또한 잎이라는 말이다
출처- <낡은 침대의 배후가 되어가는 사내> 2006년 문예중앙
푸푸 웃음이 나온다. 내 청춘의 시간들을 내놓으라고 악다구니를 하는 여자의 모습이 불쑥 떠오른다. 잎의 팔랑거림으로, 가지의 휘어짐으로 나는 종종 창 안쪽에서 바람의 세기를 측정한다. 정말 강풍이 부는군, 뉘 집 창문을 깨고야 말겠어, 닫힌 문의 잠금장치를 다시 확인하곤 한다. 굳이 바람을 맞아보지 않아도 잎이 그것을 확인시켜 준다. 절친한 동시에 불편한 바람과 잎의 오래된 관계, 그러나 누가 그 둘의 관계를 인위적으로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사내가 여자를 위로하듯 바람이 잎에 얹힌 눈송이를 털어내며 등을 토닥이며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