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근황
/황지우
한 이레 죽어라 아프고 나니
내 몸이 한 일흔 살아버린 것 같다
온몸이 텅텅 비어 있다
따뜻한 툇마루에 쭈구려 앉아 마당을 본다
아내가 한 평 남짓 꽃밭에 뿌려둔
어린 깨꽃 풀잎새가
시궁창 곁에 잘못 떨어져, 무위로,
생생하게 흔들린다
왜 저런 게 눈에 비쳤을까
나은 몸으로 다시 대하니 이렇게 다행하고
비로소 세상의 배후가 보인다
-황지우 시집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 민음사
5월이다. “나무”로부터 “나무”에게로 가는 그 길 위에 씨앗들이 눈 뜨고 있는 봄날, 시인의 시선은 “흔들리는” “깨꽃”에 머물러 있다. “생생”하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증거다. 살아있으니 흔들리는 것이다. 아프고 난 후, 모든 것을 “텅텅” 비우고 난 후에야 다시 채워지는 것들이 있다. 마음의 “꽃밭”에 뿌려둔 씨앗들이다. 그 씨앗들이 발아할 때, 그 “무위”의 시간 속에서 비로소 자유롭게, 맘껏 “생생하게” 흔들리는 봄이 겨울로부터 왔다. /권오영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