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세실리아
불화와 우울 떨쳐내지 못해
허공에 몸 날려 해체된 19층 여자
네 살배기 아들 만나러
아파트 외벽 기어오르는 중이다
다 왔나 싶은데
이제 겨우 1.5층
손바닥 짚었다 뗀 자리마다
인줏빛 선명하다
재작년 그 일 있은 직후
오밤중 짐 꾸려 떠난 걸
아는지 모르는지
-손세실리아 시집 〈꿈결에 시를 베다/실천문학〉
숨이 턱 막히고 만다. 손세실리아 시인은 참 여러 얼굴을 가지고 있는 여자사람이다. 여장부 같기도 하고, 산전수전공중전 다 겪고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님 같기도 하고, 청초한 아침 이슬 같은 눈빛을 보이기도 한다. 건드리면 금방 터질 것 같은 물집 같은 뒷모습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제주에 내려가 그 많은 바람 다 받아 안고 깊어진 눈빛이 붉은 담쟁이를 놓치지 않았으리라. 시인이 손바닥 짚었다 뗀 자리마다 인줏빛 선명히 글썽인다.
/조길성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