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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청년 안토니오 코레아, 루벤스를 만나다

17세기 바로크 미술의 대표적 화가 피터 폴 루벤스(1577∼1640)가 그린 '조선남자'가 지난해 12월 19일부터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전시에 들어가자(오는 8일까지) 이 드로잉의 주인공을 둘러싼 공방이 불붙었다.
이 주인공은 과연 누구일까? 도대체 어떤 사연으로 머나먼 이국 땅까지 간 것일까? 루벤스는 어떤 경로로 이 주인공과 만나게 되었을까? 끊임없이 솟아나는 의문들은 해답을 찾지 못한 채 궁금증만 증폭시켰다.
그러나 그림 속 사내가 조선인이라고 믿을만한 근거는 없다. 제목도 후대에 붙여진 것이다. 1983년 영국 런던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드로잉 경매 사상 최고가인 32만4천 파운드(약 6억6000만원)에 팔렸을 때 제목이‘한복 입은 남자(A Man in Korean Costume)’였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게티 미술관으로 옮겨가면서 지금의 제목으로 바뀌었다.
그렇다면 그림 속 사내는 과연 누구일까. 루벤스는 어떻게 이 사내를 그리게 됐을까.
부산대 사학과 곽차섭 교수가 여기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놓은 책 '조선청년 안토니오 코레아, 루벤스를 만나다'(푸른역사 刊)를 출간해 관심을 끈다.
저자는 루벤스의 드로잉 '조선 남자'의 모델이 이탈리아 상인 프란체스코 카를레티를 따라 로마까지 간 조선청년 '안토니오 코레아'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한다.
곽 교수는 루벤스의 그림들과 모델의 복색, 그리고 동서양의 문헌 자료들을 실마리 삼아 독자들과 함께 그 가능성의 흔적을 찾아 나선다.
저자가 드로잉 속 인물이 한국인이라고 믿는 이유는 이렇다. 사내가 쓰고 있는 것은 조선시대 양반 계층이 평상시 쓰던 방건(方巾)의 일종인 관모(冠帽)다. 옷은 한국의 철릭(天翼)이다. 철릭은 조선시대 사대부로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남녀 구별 없이 널리 애용되던 옷. 저자는 철릭의 모양새로 보아 17세기 이전에 유행하던 종류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다음은 사내의 얼굴. 서양학자들은 사내의 얼굴이 몽골리안 계통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고 저자는 코가 낮지 않고 광대뼈가 약간 튀어나온 점으로 보아 남방계 아시아인은 아닐 것으로 추정했다. 조선인이라고 단정짓기는 힘들지만 조선 사람이 아니라고 할 만한 이유도 눈에 띄지 않는다는 다소 자신 없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루벤스가 그린 사내가 안토니오일 것이라고 믿는 근거는 무엇인가. 안토니오는 임진왜란 때 일본에 포로로 잡혀간 후 이탈리아 상인 프란체스코 카를레티에게 팔려 이탈리아로 건너간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저자는 △안토니오가 카를레티와 함께 1606년 7월 피렌체로 간 얼마 후부터 로마에서 살았으며 △루벤스가 1605년 11월∼1608년 10월 로마를 방문했다는 기록 등을 근거로 루벤스가 1606년 7월 중순경에서 1608년 10월 사이 로마에서 안토니오를 만나 그렸을 것으로 추정했다.
저자가 안토니오에 대해 가졌던 또 하나의 의문은 이탈리아 남부 오지의 알비 마을에 사는 코레아 씨들이 1990년대 초 일부 언론의 보도대로 안토니오의 후손이냐는 문제이다. 저자는 그렇게 믿을 만한 어떤 증거도 나오지 않았다고 잘라 말한다.
알비 마을은 1505년부터 스페인의 지배 하에 들어가는데 스페인에도 코레아라는 성씨가 존재하므로 스페인의 코레아 씨들이 이곳으로 흘러들었을 가능성이 있다. 아니면 유럽의 ‘쿠리아(Curia)’라는 성씨가 우여곡절 끝에 개명해 코레아 씨가 됐을 수도 있다는 것.
이상의 근거만으로 저자의 주장에 동조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풍부한 사진 자료를 보며 저자와 함께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과정은 루벤스의 드로잉만큼 매력적이다.
이 책은 '푸른역사'가 역사 곳곳에 숨어 있는 흥미로운 주제들을 발굴, 다룸으로써 역사 대중화의 영역을 확대하기 위해 기획한 '히스토리아' 시리즈 첫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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