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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봉초 유포분교 ‘비봉땅 자연미술학교’

“와~” 담장 넘어 들려오는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 소리가 낯선 이의 방문을 제일 먼저 반기는 곳, 화성시 비봉면 유포리 ‘비봉땅 자연미술학교’.
이 학교는 1992년 문을 닫은 비봉초등학교 유포분교에 들어선 자연체험학습교육장이다. 그리고 10년 가까이 아이들의 재잘거림을 찾아볼 수 없었던 이 동네에 다시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되찾아준 곳이기도 하다.
동네 한 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학교 건물은 알록달록한 장식물들과 시설들로 아기자기하다. 모든 것을 아이들 눈높이에 맞추려 한 운영자의 따뜻한 마음이 풍겨난다.

“선생님, 찰흙놀이가 더 재밌어요”, “선생님, 연 살대가 부러졌어요.”
인천에 사는 초등학교 4학년 남준이는 요즘 너무 신이난다. 한 달에 한번씩 동네 친구들, 가족과 함께 ‘비봉땅…’에 간다는 생각을 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남준이 엄마 김연숙(38)씨도 덩달아 신이난다. 하루종일 컴퓨터만 끼고 살던 아이가 요즘은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고 책 읽는 것도 좋아하기 시작했다. ‘비봉땅…’의 자연체험학습이 남준이에게 큰 힘이 되고 있음을 새삼 깨닫는다.
버려졌던 유포분교에 ‘어린이 교육’이라는 새 싹이 돋기 시작한 것은 2001년. ‘비봉땅…’의 교장인 서양화가 도금옥(45?여)씨가 이곳을 임대해 어린이 자연체험교육 학습장으로 활용하면서부터다. ‘학교는 학교다워야 하고, 교육은 재밌어야 한다’는 교육철학을 지론으로 삼고있는 도 교장은 지역명칭 ‘비봉’을 그대로 따고 ‘학교’로서의 의미도 그대로 살려 ‘비봉땅 자연미술학교’를 이곳에 설립했다.
부지 1천350여평에 이르는 ‘비봉땅…’은 전체가 아이들 놀이터처럼 꾸며져 있다. 어린이, 가족, 교사들이 함께 만든 작품들이 교실, 복도, 운동장 등에 가득 전시돼 있고 학교와 따로 떨어진 화장실 벽면은 아이들이 그린 벽화로 장식돼 있다. 기존의 재래식 화장실 이미지와는 사뭇 다르다. 운동장은 어린이 시각에 맞춰 만들어진 폐품 이용 조형물들이 여기 저기 서 있고, 학교 앞 텃밭에는 상추, 감자 등 유기농 채소가 자라고 있다. 학생과 교사들이 함께 심고 키우는 산 교육현장이다.
“사실 옛날 같았으면 이런 교육이 필요 없었을 거예요. 우리 어렸을 때는 밖에 나가면 모든 것이 체험학습장이었잖아요. 도시속에 사는 요즘 아이들은 자연을 접하지 못하다보니 여기오면 더로 신기해하고 재밌어 하는 거죠.”
인천에서 꽤 알려진 서양화가인데다 그곳에서 학원을 운영하던 도 교장이 도시생활을 접고 이곳에 내려 온 것은 교육현실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다. “스스로 발견하고 깨닫고 생각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공교육이 해주지 못하는 이런 부분을 여기 같은 대안학교들이 채워줘야 한다는 생각에 무작정 떠나왔지요.”
하지만 교육에 대한 부푼 꿈을 안고 화성 비봉땅을 찾아 내려온 그에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처음 임대받아 이곳에 내려오니 글쎄 학교 전체가 쓰레기 더미인거예요. 폐교가 된 이후 10년 가까이 쓰지 않았던 데다 건설업자가 이곳을 잠깐 임대해 썼다고 하더라구요. 제대로 관리가 안돼 학교 전체가 완전 폐허가 된 상태였지요. 수도시설도 돼 있지 않아 1년 가까이 이웃집에서 물을 기러다 썼어요. 결국 견디다못해 수도관을 직접 놓았어요. 학교건물 개보수비만 해도 어마어마하게 들었지 뭐예요.”
현재 ‘비봉땅…’엔 도 교장과 최경애(38) 교사 두 명이 상근하고 있고 주말에는 임시 교사들이 함께 참여한다.
이곳은 일반적인 체험학습장들과는 교육방법이 다르다. 대부분의 학습장들이 일회성 체험 프로그램에 그치는데 반해 ‘비봉땅…’은 수료기간을 1년으로 정하고 있다. 유년부는 1년에 최소한 6번, 초등부는 한달에 한번씩 총 12번 수업을 받는다. 현재 유년부 3천여명이 이곳을 이용하고 있으며, 일요일 대안학교로 운영하는 초등부는 50여명 정도다. 전국에서 모인 30여개의 유치원 원장들도 연구위원으로 참여, ‘자연미술에 대한 연구 모임’을 한달에 한번씩 이곳에서 열고 있다.
유년부와 초등부 이외에도 이곳에는 특별한 교육 프로그램이 하나있다. 학교 이외 다른 교육을 받지 못하는 동네 아이들을 위한 ‘버들무지반’ 프로그램이다. 매주 수요일이면 동네 아이들 25명은 이곳에서 무료로 미술교육을 받는다. ‘버들무지’는 유포리의 순수 한글 이름이란다.
“이 곳 아이들은 부모가 농삿일을 하러 가면 학교를 다녀온 이후 돌봐주는 사람없이 저이들끼리 놀아야 해요. 아이들이 안스럽다는 생각에 만든 프로그램인데 반응이 너무 좋아요.”
실제로 동네 사람들은 아이들이 부모 말보다 비봉땅 교사들의 말을 더 잘 듣는다며 언제나 고마워하고 있다. 이곳 소식을 들은 이웃동네 아이들도 여기에 오고 싶어하지만 현재 여건으로는 더 많은 아이들을 받을 수 없어 도 교장도 안타까워하고 있다.
‘비봉땅’에서는 5월 1일 하루동안 ‘비봉땅 어린이 축제’를 연다. 비봉땅 어린이들과 가족, 그리고 동네 사람들이 하나돼 여는 축제다. 마을 공동체의 중심 역할을 해나가던 학교가 하나 둘 사라지기 시작하고 있는 요즘, 유포리는 ‘비봉땅 자연미술학교’로 다시 부활하고 있다.

비봉땅 지킴이, 도금옥 교장
‘비봉땅 자연미술학교’는 유포리 마을 한 가운데 자리하고 있다. 학교 위치만큼이나 ‘비봉땅…’이 동네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크다.
도 교장은 아이들 뿐 아니라 동네 사람들에게 인기가 꽤 높다. 특히 젊은 엄마들은 그를 친구처럼, 언니처럼 따른다. 무료로 아이들 미술교육을 해주고 있어서 이기도 하지만 한 학기에 한번씩 열고 있는 ‘어머니 부모교육’은 인기 프로그램이다. 젊은 엄마들은 도 교장에게 자녀교육의 어려운 점을 상담해오기도 한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젊은 여자가 얼마나 버틸까’ 하는 동네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에 힘들지 않았던 것도 아니란다. 그러나 학교가 되살아나기 시작한데다 동네 대소사가 있으면 발벗고 나서는 그의 노력에 사람들은 하나둘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지금은 동네 사람들이 알아서 학교주변을 관리해줄 정도란다.
얼마전에는 동네에 있는 ‘남이장군 묘’가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 화성시에 항의 메일을 보내 정비하게끔 하는 등 그는 이제 이 마을 주민이 다 됐다. 도시에서 어린이와 가족이 내려오면 동네를 데리고 다니며 안내자 역할도 자처할 정도다.
그의 꿈은 이곳에 ‘자연속 어린이 미술관’을 짓는 것이란다. “저도 화가지만 어른들 그림과 달리 아이들 그림은 전혀 때가 묻지 않았어요. 거기에는 아이들의 꿈과 행복, 미래가 담겨 있죠. 아이들의 행복한 모습이 깃든 어린이 미술관을 짓는 것이 제 가장 큰 바람입니다.”
시골학교를 마을공동체의 중심으로 되돌리고 있는 그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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