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잎 경(經)을 듣다
/박완호
법화산 오르다 마주친, 다 붉기도 전에 떨어져 내리는 단풍잎들
법화경 책장 한번 못 넘겨보고 소나무 사이로 냅다 달아나는 다람쥐동자승처럼,
나도 산꼭대기엔 못 오르고 맨땅에서 좌선하는 나뭇잎 경(經) 외는 소리나 주워듣다
괜히 한쪽 귀만 먹먹해져서는,
아무것도 든 게 없는 머릿속일망정 애써 비우는 척해볼 일이다
그는 울창한 이파리들이 물감을 녹여 덧칠하는 공중을 잠시 바라본다. 그의 시선에서 비켜 있는 사각(死角)에서도 숲은 흔들린다. 갑자기 다람쥐 한 마리가 그 사각에서 튀어나와 소나무 사이로 냅다 달아난다. “법화경 책장 한번 못 넘겨” 본 동자승이 스님을 피해 도망치는 잰걸음 같다. 그 풍경을 넋 놓고 바라보다 문득 자신도 다람쥐처럼 허기진 배만 움켜쥐고 갈팡질팡하는 것이 아닌가, 내심 부끄러워진다. “산꼭대기엔 못 오르고 맨땅에서 좌선하는 나뭇잎 경(經) 외는 소리나 주워 듣는다”는 것. 괜스레 한쪽 귀만 먹먹해져서는 애써 모른 척하지만, 부끄러움의 깊이는 먹먹할 뿐이다./박성현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