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안연식
대문 앞 헛기침으로 당신을 알리시고
인사를 받을 때까지 대청마루 오르지 않던
보름달 중천에 떠 있듯
당당했던 그 모습
모깃불 피워놓고 멍석에서 별을 보며
강독사인 양 유머스런 구수한 입담에
보따리 웃음 찾아서
모여들던 사람들
무학인데도 가슴으로 느끼며 사는 삶
이웃도 가족인 양 햇살 얹어 아우르니
물길 튼 울타리 사랑
소르르 가슴 젖고
전조등 불빛처럼 예기치 못한 긴 이별
수많은 구름 문장 악보 위에 그려진
“베풀라” 생생한 그 노래
하늘 연주 아직 들리네
사부곡으로 곡마당 시골어귀를 메아리친다. 시인은 얼굴도 행동도 둥글다. 둥그럽게 생을 마감하신 부모님을 닮으신 건가, 묵언으로 타자를 염려하고, 짙은 인간애 심연을 던지는 메시지는 그래서 더 울림이 온다. 고단한 일상이지만 넉넉한 시인의 가슴이 있고, 그 가슴절벽에 우직한 정도의 순례가 있으니 시인을 생각할수록 아름답다. 사람이 겉모습으로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우매한가는 단체라는 인과관계에서 깊이 체득했다. 아버지가 바라는 것은 길 찾기 여행의 여운일 것이다. 만학의 서러움이 아니라, 크든 작든 세상살이가 만만한 게 없다. 열정과 혼신의 땀을 흘려야 가파른 고개를 오를 수 있고, 겸손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긴 이별이 아니라 회상에 잠긴 기억의 문으로 아버지의 그리움들이 일어난다. 시집 ‘눈썹춤’ 출간을 축하한다./박병두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