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사자
/이달균
죽음 곁에 몸을 누이고 주위를 돌아본다
평원은 한 마리 야수를 키웠지만
먼 하늘 마른번개처럼 눈빛은 덧없다
어깨를 짓누르던 제왕을 버리고 나니
노여운 생애가 한낮의 꿈만 같다
갈기에 나비가 노는 이 평화의 낯설음
태양의 주위를 도는 독수리 한 마리
이제 나를 드릴 고귀한 시간이 왔다
짓무른 발톱 사이로 벌써 개미가 찾아왔다
- 시집 ‘늙은 사자’ 중에서
생명의 존엄성과 생명이 소멸하는 순간성, 그리고 죽음을 받아들이는 자세. 늙은 사자가 자신이 한 생애를 보낸 평원을 바라보며 마지막 순간, 즉 죽음을 앞에 두고 독백의 형식을 빌려 자신을 이야기 한다. 살아온 생애가 단 몇 초로 요약된다. 무리의 제왕으로 살았을 법한 이 맹수가 어쩌면 이렇게도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담담할 수 있는지. 자신은 이제 마지막이라는 것을 직감으로 알고 있다. 한 순간 스쳐 지나가 버린 마른 번개 같은 덧없는 눈빛이다. 평생을 싸워오며 온몸에 새겨져버린 노여움이 한낮에 잠시 꾼 꿈처럼 허망하기만 하다. 다 지나가는 것들이었는데 왜 그토록 치열하게 살았을까. 다 내려놓으니 이토록 홀가분하고 편안하고 평온한 것을. 자연에서 왔으니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은 당연한 이치라는 듯 이제 나를 드릴 고귀한 시간이라고 중얼거린다./이기영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