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숲에서 그을린 삶을 보다
/곽효환
길은 사라지고
굽고 휘고 뒤틀린 나무들 뒤섞여
더 깊이 더 무성히 울울한 여름 숲
문득 펼쳐진 낙엽송 군락에 서서
오래전 사람들의 그림자를 본다
산나물과 약초를 캐고
화전을 일구며 살다 간
쓰러진 고목 위로 귀틀집 혹은
너와집이나 굴피집 한 채 지어
몸 들였을 까맣게 그을린 삶들
맨손으로 도끼와 톱과 낫과 삽과 괭이를 부린
지도에는 사라진
고단한 빈손들이 어른어른 지나간다
- 곽효환 시집, ‘너는’
초록이 절정을 이루는 계절이다. 산과 들과 길은 온통 푸르름 속에 들어있으며 우리 눈을 밝게 해 준다. 굽고 휘고 뒤틀린 나무들이 뒤섞여 더 깊고 더 무성해진 울울한, 이러한 여름 숲은 우리가 바라보는 그 마음 하나만으로도 희망을 갖게 한다. 저 무성한 잎들을 떨구었다 다시 일어서듯 잎들을 다는 계절을 불러오고 하늘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나무들, 그처럼 저 숲에는 모든 것을 헤치며 살아온 삶이 있다. 산나물과 약초를 캐고 화전을 일구며 살다 간 사람들이 있다. 맨손으로 도끼와 톱과 삽과 괭이를 부린 그 가난 속에서도 꿋꿋이 살다 간 고단한 빈손들이 있다. 너와집이나 굴피집 한 채 들여 몸 들여놓으며 그 자연 속에서 자연의 순리에 맞춰 살다 간 사람들, 그러한 삶이 있어 우리가 있다. 지도에는 사라진 그 소박한 손들이 있어 현재의 우리네 삶이 있다. 그리하여 풍요로운 세상을 살고 있는 하루가 힘들거든, 오래전 저 여름 숲에서 그을렸던 삶을 살았던 사람들을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할 일이다./서정임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