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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희의 미술이야기]걸작이 탄생하기 위한 조건

 

1912년, 20대의 마르셀 뒤샹은 가장 적게 구속받고 최대한 많은 자유를 누리는 삶을 선택한다. 그리고 동료 피카비아의 소개로 생트 주느비에브 도서관 사서로 취직하였다. 이곳에서 일하여 얻는 수입은 그로 하여금 굶지 않고 월세를 내며 혼자 살 수 있도록 해주었다. 물론 아버지가 보내주는 생활비에도 일부 의존했다. 그의 아버지는 자녀들의 경제 상황에 따라 상속분을 미리 떼어 생활비로 나누어주었다. 그는 그런 아버지의 깊은 배려를 늘 존경했었다. 그는 애초부터 결혼을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독신이었으니 생활비가 많이 들어갈 일도 없었다.

근무시간은 오전 열시부터 오후 두세 시까지였다. 근무를 마치면 샤르트르 학교 서지학 강의를 듣기도 했다. 학교의 시험에 통과할 계획 같은 건 처음부터 세우지 않았다. 단지, 성인 남자가 남들만큼 충분히 일하지 않고 있는 사정에 대한 변명거리가 필요해 강의에 등록했던 것이다. 그러고 나서는 근무 시간과 수강 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자유롭게 누렸다. 자유 시간 대부분은 작품 구상에 할애했다.

창작 활동으로 돈을 벌지 않기로 했다. 예술가가 작품으로 돈을 벌려면 의식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다. 뒤샹은 스스로에게 의미 없는 작업은 하지 않기로 했다. 회화도 집어치워 버렸다.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가 반시대적이라는 입체파 화가들의 비난으로 인해 상실감이 크기도 했지만 꼭 그 때문에 회화를 그만둔 것은 아니었다. 그 일이 있고 난 뒤에도 뒤샹은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와 비슷한 형식의 작품을 몇 점 더 그리면서 자신의 실험을 이어갔었다. 그러던 그가 회화 작업을 중단한 것은 단지 새로운 관심사가 생겨서였다. 그 무렵 그는 공장에서 만들어낸 물건이나 기계에 대단한 흥미를 느끼고 있었고, 그러한 기계들의 움직임을 한동안 멍하니 바라보곤 했다. 그리고 예술가의 작품들보다는 이런 초콜릿 분쇄기나 비행기 프로펠러가 훨씬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엔 장난삼아 자전거 바퀴를 거꾸로 뒤집어서 좌대 위에 설치해보기도 했는데, 그 유명한 <레디메이드> 시리즈는 이렇게 순식간의 엉뚱한 시도로 창조되었다. 뒤샹은 자신이 흥미를 느끼는 기계들의 모습을 스케치하거나 새로운 장치를 고안하여 도면을 그렸으며, 점차 회화와 결별하고 설치작업을 이행하자는 생각을 굳혔다.

한편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는 프랑스에서 동료 화가들의 비난을 샀던 것과는 달리 뉴욕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었다. 피카소나 브라크와 같은 입체파 화가보다도 마르셀 뒤샹에게 쏠리는 대중의 관심이 훨씬 컸다. 뒤샹은 형들로부터 그 소식을 듣고 있었지만, 별 동요 없이 도서관 사서 일과 새로운 형태의 작업 구상을 이어갔다. 물론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가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고 해서 회화 작업으로 회귀하는 일도 없었다. 그는 캔버스 대신 커다란 유리를 선택했고 그 위에 형태를 새기는 작품을 구상했다. 뒤샹의 <큰 유리>는 그렇게 해서 탄생했다.

뒤샹의 설치 작품들은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보다 훨씬 더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를 향한 대중의 관심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식은 적이 없었다. <큰 유리>를 비롯해 뒤샹이 발표한 설치 작품들은 미술사에서 엄청난 의미를 차지하고 있어서 뒤샹은 현대미술의 서막을 열었던 가장 큰 주역으로 꼽힌다.

하지만 <큰 유리>, 혹은 <그녀의 독신자들에 의해 발가벗겨진 신부, 심지어>라 불리는 이 작품은 어떻게 보면 한낱 장난 같은 작품이다. 최신형 기계를 화면 안에 그대로 박아버린 구도, 기계의 움직임과 성적인 상상을 결합시킨 엉뚱함, 그리고 말장난 같은 작품의 제목은 황당하기 그지없다. 공부를 핑계로 아주 조금 일하고 아주 많이 여유를 즐기면서 그는 시시껄렁한 공상이나 즐겼었던 것일까. 너무나도 능청스럽고 태연한 그의 태도 때문에 우리는 그가 그전의 미술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미술을 얼마나 열렬히 추구하고 있었는지 짐작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어쨌거나, 작품으로 돈을 벌겠다는 의지마저도 내려놓고 가능한 적게 구속받으면서 자유로움을 추구했던 그의 삶의 태도는 <큰 유리>를 탄생시킨 중요한 조건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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