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8.02 (금)

  • 구름많음동두천 30.1℃
  • 구름많음강릉 33.5℃
  • 구름조금서울 32.2℃
  • 구름많음대전 33.2℃
  • 구름많음대구 35.6℃
  • 맑음울산 33.8℃
  • 구름조금광주 34.2℃
  • 맑음부산 31.5℃
  • 구름조금고창 33.4℃
  • 맑음제주 34.7℃
  • 구름많음강화 28.4℃
  • 구름많음보은 31.4℃
  • 구름많음금산 32.9℃
  • 구름조금강진군 33.9℃
  • 맑음경주시 37.9℃
  • 맑음거제 31.0℃
기상청 제공

옛 여주 점동초 당현분교

여주 IC에서 장호원 방향으로 4km 남짓 달리다, 점동면 왼편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 또 한참을 내려가다보니 여주군 점동면 당진리 밀머리 마을과 마주친다. 앞으로는 남한강 줄기인 청미천(淸渼川)을 끼고 뒤로는 오갑산의 넓은 품에 안긴 ‘밀머리 마을’은 산세가 낮고 들판이 넓은 ‘산 좋고 물 맑은’ 농촌 지역이다. 밤 하늘에 별이 많아 별서리로 불리다 구전돼 밀머리가 됐다는 당진 밀머리 마을. 이 곳에 유의미한 대안교육이 펼쳐지는 열린교육 현장, ‘여주 밀머리 미술학교’가 들어서 있다.

마을공동체에 새로운 바람 일으키고 있는 밀머리 미술학교
밀머리 미술학교는 1996년 문을 닫은 점동초 당현분교에 자리잡고 있다. 이 마을은 충북 충주, 강원 원주, 경기 여주가 이어지는 삼합지역인데다 면소재지에서 당진리로 들어서는 당진교가 30년전 생긴 이후로는 교통이 좋아져 이동 인구가 크게 늘었다고 한다.
결국 1990년대 후반 학교통폐합 정책에 따라 당현분교는 폐교가 되고 말았다. 이후 여주학생수련원으로 활용되다 2002년 7월 공공미술가인 박찬국(현 밀머리미술학교 대표)씨가 이곳을 임대해 여러 실험적인 대안교육을 진행해오고 있다.
지난해 밀머리에서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아트캠프, 자유캠프, 방학 캠프, 시각문화 체험교실 등 정규 프로그램과 따뜻한 왼손, 고구마 프로젝트 등 기획프로그램까지)이 펼쳐져 대안교육을 갈망하는 많은 이들에게 새 기운을 불어넣었다. 교과서 중심의 학교 공교육이 일반화돼 있는 현실속에서 대안이 될 수 있으리라는 희망 때문이었다.
이 가운데서도 박 대표는 ‘따뜻한 왼손’ 프로젝트를 잊지 못한다. “이 프로그램이 끝날 때는 아이들에게 ‘이별’에 대해 인식시켜야 할 정도로 성공적이었죠. 당시 여기에 참여했던 복지시설 관계자들은 또 다시 이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길 바랄 정도니까요.”
지난 여름 펼쳐졌던 이 프로젝트는 지역내 복지 시설에 있는 어린이들 가운데 정신지체 아이들과 결손가정 아이들을 묶어 미술을 매개로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줄 수 있는 활발한 소통 프로그램으로 기획됐다. 또 점동고등학교 실업반 아이들과 미술계 대학생들의 보조활동까지 어우러져 복합적인 프로그램으로 진행됐다.
무엇보다 이 프로젝트에서 박 대표가 기대 이상의 성과라 여기는 것은 고등학생 봉사자들의 태도변화라고 한다. “프로그램에서 자신들의 주체적인 역할이 있고, 활동한 만큼 가감없이 인정받을 수 있다는 점이 청소년들에게 좋은 방향으로 작용했던 것 같아요. 프로그램 참가 후 학교에서 아이들의 태도변화가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 되었거든요.”
박 대표가 처음 이곳에 온 것은 2000년 초쯤이라고 한다. 아마도 그가 여주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일상에 안주하지 못하는, 보다 의미있는 일에 매달려야만 직성이 풀리는 예술가의 기질 때문인지도 모른다. 서울에서 잘 나가던(?) 문화예술가로 알려진 그는 당시 여주 지역예술가들의 요청으로 폐교가 될 뻔했던 여주 걸은리 한 초등학교 살리기 프로그램에 가담하면서 여주의 문화가능성을 발견한 것이다.
‘M 조형연구소’ 소장으로 10여년간 공공미술가로 활동했던 박 대표는 과감히 소장직을 내놓고 여주로 내려왔고 그의 뜻에 동참하는 30~40대 젊은 예술가들과 함께 남들이 쉽게 접근하지 않는 실험적인 문화교육에 뛰어들었다.
“처음엔 문화관광부와 자치단체인 여주군이 폐교를 ‘창작 스튜디오’로 조성하는 사업을 지원해줄 수 있다고 해서 아주 희망적이었어요. 하지만 문화 교육에 대한 지자체의 열의는 그리 크지 않았고 자체예산으로만 운영해나가야 했죠.”
이곳의 경제적 사정도 폐교를 임대해 들어와 있는 다른 곳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처음 임대해 들어왔을 때는 난방장치가 돼 있지 않아 보일러를 놓는 등 시설 정비로 그 해 겨울을 다 보내야 했다. 3천여평 규모에 1년 임대료만도 2천8백만원.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해서 수익이 남는 것은 아니니 임대료는 고스란히 빚으로 남게 된다.
밀머리 미술학교에서는 다소 실험적이지만 생산적인 문화사업들을 진행, 올해는 이달부터 ‘생태적 집짓기’라는 시범사업을 문화관광부의 지원으로 운영한다. 폐차된 버스를 활용해 대안공간을 만들어 가는 과정으로 대안에너지에 대한 고민, 활용보존 방법 등에 대한 연구가 함께 진행된다. 여기에는 각 분야의 교수, 예술가, 단체들이 동참하며 지난해 ‘따뜻한 왼손’을 함께 진행했던 점동고등학교 실업계반 학생들이 함께 참여한다.
이외에도 밀머리에서는 현재 지역문화예술을 한데 묶기 위한 의미있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 1년 6개월간의 여주 지역내 활동 결과들을 토대로‘문화예술 교육 네트워크’를 만들기로 한 것이다. 현재 여주 ‘한살림’ 회원들이 이곳에 들어와 문화예술교육, 유기농 재배법 등을 교육하고 있으며 약 두달전부터는 민간 연극단체 ‘금수강산’도 이곳에 상주하며 풍물교실, 연극교실들을 지역주민들과 함께 열어가고 있다.
이처럼 주민들과 문화예술 단체들은 많은 관심을 보여주고 있는 반면 행정기관들의 반응은 미진한 상태다. 박 대표는 지자체들이 조금만 더 관심을 갖고 지속적인 지원을 해 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주민과 문화단체, 행정기관이 뭉쳐 문화예술 교육 네트워크를 형성한다면 문화와 교육에 대한 지역주민들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지역의 문화적 잠재력을 발굴하고 공교육을 활성화할 때 주민들은 지역에서의 삶에 대한 동기를 스스로 부여하게 될 테니까요.”


소중한 뒷 이야기
“황규선 김미경 박성현 이선하 진정선”
밀머리미술학교의 중심에 박찬국 대표가 있다면 그 뒤를 든든히 받히고 있는 다섯명의 수문장들이 있으니, 위 사진속 인물들이 바로 그들이다. 학교에서 미술분야를 전공한 이들은 밀머리미술학교가 만들어진 이후 박 대표를 도와 여러 프로그램들을 진행해오고 있다.
부 대표로 이곳에 상근하고 있는 규선씨 이외에 4명의 강사들은 그나마 문화관광부 인턴사원으로 지원해 얼마 안되지만 월급도 받고 있다. 이제 갓 학교를 졸업한 20대의 젊은이들 답게 밝고 희망적인 모습을 이들의 얼굴에서 읽을 수 있었다.
이들에게 이곳 생활에 대해 이것 저것 물어보다 “일도 많고 월급도 적을 텐데 이곳 생활이 힘들지 않느냐”는 우문(愚問)을 던졌다. 그러자 “예술을 그런 가치로 따질 수는 없잖아요, 의미있는 일이라면 그런 건 그리 중요치 않아요”라는 현답(賢答)이 바로 날아온다.
“자연과 어우러져 새로운 형태의 문화예술교육을 펼치는 것이 좋아요. 정형화돼 있는 예술이 아닌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다는 생활속 예술 말이죠. 이런 프로그램에 함께 참여해 직접 기획하고 만들어나간다는 것은 보람되죠.” 모두 한결같은 대답이다.
문득, 변화하는 시대의 다양한 가능성을 구체적인 실천으로 발전시켜나가고자 하는 젊은 세대들의 욕구와 노력에 행정기관이나 기성세대들은 어느 정도 뒤따라주고 있는가, 의문이 인다.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