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8.02 (금)

  • 구름많음동두천 30.1℃
  • 구름많음강릉 33.5℃
  • 구름조금서울 32.2℃
  • 구름많음대전 33.2℃
  • 구름많음대구 35.6℃
  • 맑음울산 33.8℃
  • 구름조금광주 34.2℃
  • 맑음부산 31.5℃
  • 구름조금고창 33.4℃
  • 맑음제주 34.7℃
  • 구름많음강화 28.4℃
  • 구름많음보은 31.4℃
  • 구름많음금산 32.9℃
  • 구름조금강진군 33.9℃
  • 맑음경주시 37.9℃
  • 맑음거제 31.0℃
기상청 제공

전통무예원/양평 단월면 명성분교

전통무예원이 들어서 있는 양평군 단월면 명성리는 양평 시내에서도 강원도 홍천 방향으로 40여km 쯤 가야 나오는 오지다. 6월 중순의 명성리는 짙푸른 신록(新綠)으로 뒤덮여 있어 가옥은 찾아보기조차 힘들 정도다. 명성리에 있는 전통무예원(민족무예원)을 찾다 초여름 웅장한 자연의 위력에 그만 길을 잃고 헤맸다. 물어물어 찾아든 전통무예원은 ‘콸콸콸’ 넘쳐나는 계곡물과 우거진 수풀 사이로 가로놓인 옛 단월초 명성분교에 자리잡고 있었다.

양평군 단월면 단월초등학교 명성분교가 문을 닫은 것은 1995년 2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었던 이곳은 주변경관이 아름답다보니 개발과 함께 차츰 땅값이 올랐고 사람들은 농토를 팔고 하나둘 마을을 떠나갔다. 자연스럽게 학생들도 하나둘 줄어들게 됐고 결국 학교통폐합 정책에 따라 학교는 문을 닫고 아이들은 큰집격인 단월초등학교로 편입됐다.
이후 2500여평 부지에 1층짜리 교실건물, 교무실, 사택, 숙직실 등 4개의 건물이 들어서 있는 명성분교는 양평군이 임대해 주민들의 문화예술 보급차원에서 활용, 문화예술인들에게 재임대했다. 폐교가 된 이후 퉁소연구회가 이곳에 들어왔었으나 활용이 제대로 되지 않아 곧 문을 닫았다고 한다. 이후 1999년 12월 (사)결련택견계승회 민족무예원 소속의 김명근(51) 원장이 주민들의 동의를 얻어 이곳을 위탁받아 ‘전통무예원’으로 운영하고 있다.
김 원장은 처음 이곳을 임대받아 내려왔을 당시 막막함 뿐이었다고 회고한다. “처음 이곳에 온 시기가 한겨울이었는데 숙직실은 철창도 없고 난방은 전혀 안돼 털모자 쓰고 잠을 자야 할 정도였어요.”
이후 개조하는 모든 시설들을 교육청에 기부채납하기로 하고 건물 보수공사에 들어갔다. 난방시설도 설치하고 화장실도 새로 만드는 등 숙식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건물 개보수 공사로 들어간 기초투자비용만 해도 아파트 한 채 값은 나올 것"이라고 말하며 김 원장은 사람좋게 웃는다.
실제로 그는 이곳에 투자하느라 서울 강남에 있던 아파트를 팔아야 할 했다. 김 원장의 노력과 의지에 오랫동안 남편을 이해하지 못하던 아내 정순화(47)씨도 결국 마음을 바꾸고 2002년 양평으로 내려왔다. 정씨는 이곳 분교에 내려온 뒤 무예원을 운영하고 있는 남편을 도와 텃밭을 일구며 살고 있다.
그렇지만 2년간의 보수공사를 감안한다면 실제로 전통무예원 운영을 시작한 것은 3년전부터다. 매주 주말이면 택견 동아리 식구들과 (사)결련택견계승회 소속의 대학동아리 30여곳 학생들이 돌아가며 이곳에 내려온다. 또 택견수련이나 MT장소로 많이 알려지다보니 가족단위로 찾는 사람들도 꽤 늘었다고 한다.
1974년 태권도 최연소 심판으로 주목받았던 김 원장이 택견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990년대 초쯤이다. “태권도를 하며 자연스럽게 택견을 접하게 됐는데 어린시절 놀던 놀이 대부분이 택견의 일종이란 사실을 알았어요. 태권도가 다른 나라 기법들이 복합된 기술이라면 택견은 순수한 우리의 문화거든요. 자연스럽게 저도 택견의 소중함과 멋에 빠져들었지요.”
택견은 1983년 중요무형문화재 제76호로 지정된 우리의 전통문화재다. 인류의 원시적인 호신술에서 나온 맨손 겨루기 무예로 발을 많이 쓰기 때문에 발로 행하는 놀이라 하여 각희라고도 하며, 차고 때리는 격술보다는 상대의 힘이나 허점을 이용하여 차거나 걸어서 넘어뜨리는 동작을 기본으로 한다.
김 원장은 현재 양평초와 홍천 대곡초에서 택견을 가르치고 있다. 또 어린이들과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택견수업을 하고 있는데, 김 원장은 동네 아이들을 대상으로 일주일에 두 번씩 무예원에서 여는 택견 수업이 무엇보다 즐겁다고 한다.
즐거워하기는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화요일과 수요일, 저녁 6시 수업이 시작되면 아이들은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우르르 학교로 몰려든다. 마을이 관광지로 개발된 이후 대부분의 젊은 주민들이 상업에 종사하고 있어 아이들은 갈 곳도, 돌봐줄 사람도 없다. 그래서 더욱 마음껏 뛰어놀며 배울 수 있는 택견 수업을 무엇보다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초등학교 3학년 김민주(10.여) 어린이는 서울에서 이사온지 얼마 안됐다.
처음엔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도 못하고 시골 생활에 적응도 못하더니 이곳에서 택견을 배운 후로는 친구들과 어울리는 법, 자연에 익숙해지는 법 등을 하나씩 배우기 시작했다. 민주는 “이제 명성리가 서울보다 훨씬 좋다”고 말한다.
서로 어울리며 단합하고 즐길 줄 아는 전통무예 ‘택견’. 강원도와 경기도 경계선에 놓여 있어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화합할 줄 아는 단월면 사람의 모습과 너무도 닮아 있다.

뒷 이야기
양평군에는 현재 폐교가 된 학교가 18곳이 있다. 이 가운데 절반인 9곳은 임대자가 양평군청이다.
군청은 이 가운데 5곳을 마을주민들을 위한 문화체육공간이나 문화학교로 활용하고 있으며, 나머지 4곳은 마을주민의 동의를 받아 문화창작공간으로 수위탁을 준 상태다.
같은 행정기관이 임대하다 보니 다른 시군에 비해 임대료가 저렴하다. 교육청은 군청으로부터 50%의 임대료를 받고 있는데, 이 가운데서도 마을주민들을 위해 면 단위에서 활용하고 있는 학교 5곳은 해당 면사무소 예산으로 임대료를 편성해 군청이 내고 있다.
또 재임대가 된 나머지 4곳도 군청이 교육청으로부터 임대받은 상태라 다른 지역에 비해 임대료가 절반 가량이다. 2500여평 부지의 명성분교는 임대료가 연 370만원, 월 37만원 정도로 다른 시군에 비해 저렴한 편이다.
이는 무엇보다 지차체 단체장의 의지에 따른 결과다. 1999년 당시 군수가 마을의 중심이었던 학교가 문을 닫는 경우가 잇따르자 학교를 지역주민들에게 되돌려주자는 취지로 폐교 임대에 나선 것이다.
많은 시군 소속 교육청들이 폐교를 돈벌이 수단으로만 여긴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양평군청이 실시하는 문화예술 보급차원의 폐교 활용방안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