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05 (일)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생활에세이]쾌락에 속지 마라

 

일요일 아침이다. 새벽잠이 깨었는데도 나는 일어날 줄을 모른다. 오늘 하루만큼은 내 자유다. 출근할 걱정 없고 지시받을 일 없고 눈치 볼 일도 없다. 종일 컴퓨터 앞에서 낑낑거릴 이유도 없다. 그러니 세상천지가 내 것이다. 


그런데 또 귀가 간질간질한 게 아주 신경에 거슬린다. 귀찮지만 반쯤 몸을 일으켜 화장대 서랍에서 면봉 하나를 꺼내 든다. 이걸로 후벼, 말아? 잠시 망설이다가 면봉을 귀에다 살그머니 집어넣는다. 오매, 오금이 저린다. 이 순간, 이 느낌은 이루 형용할 수가 없다. 살살 후빈다. 오장육부가 녹아내리듯 시원하기가 이를 데 없다. 그러면서도 생각한다. 너무 깊이 넣지 마라. 이비인후과 가기 싫으면…. 알지, 알아. 그렇지만 이 정도론 시원찮다. 


조금만, 조금만 더…. 나는 조금 더 면봉을 귓속에 밀어 넣고 살살 후빈다. 돌린다. 심하지 않게 간지러운 곳을 찾아다닌다. 그럴 때 기분은 홍콩 가는 길이 따로 없다. 조금 돌린다는 게 조금 더 돌린다. 조금 넣는다는 게 조금 더 들어간다. 


면봉이 귓속 깊숙이 들어가 고막에 닿은 듯하다. 찌릿, 한순간 고막에 통증이 온다. 아차! 너무 깊이 넣었네. 과유불급이라. 후비는 데도 정도가 있어야 한다. 이렇게 기분 내키는 대로 마구 후벼댔다간 반드시 탈이 난다. 


나는 얼른 집어넣었던 면봉을 귀에서 꺼낸다. 면봉 끝에 도톰한 귀지가 보인다. 쓰레기통에 버리고 반듯하게 눕는다. 덕분에 귀가 간지러운 건 면했다. 그런데…. 귓속 느낌이 좀 안 좋다. 그놈의 면봉이 너무 깊이 파고든 것 같다. 짜릿한 느낌이 잠시 잠깐 느껴진다. 이거 탈이 나겠네.


나는 몸을 반쯤 일으켜 피부 트러블에 자주 쓰는 연고를 찾아낸다. 다시 면봉 하나를 꺼낸다. 면봉 끝에다 팥알만큼 연고를 바른다. 


그걸 다시 귓속에 넣는다. 조심스럽게 아주 조심스럽게 나는 면봉에 묻은 연고를 귓속에 넣고 바른다. 시원하고 찌릿하고 기분 좋고 째지는 기분이 전신을 타고 살살 녹인다. 한번 들어간 면봉은 나올 줄을 모르고 다시 고막 깊숙이 파고든다. 에라, 이왕 버린 몸 가는 데까지 가본다. 오매, 죽이네. 시원하고 짜릿하고 사지육신을 옥죄며 녹이는 듯한 이 느낌! 잠시 후엔 삼수갑산을 갈망정 시원한 데를 골고루 찾아다닌다. 또 뜨끔 면봉이 고막에 닿은 듯하다. 안 되지. 얼른 면봉을 빼낸다. 대강해야지. 아무리 좋은 약도 과하면 독인 걸, 암!


나는 다시 사지육신을 반듯하게 눕히고 오랜만에 찾아온 자유를 만끽하려 한다. 세상에 좋다. 천당이 따로 없다. 이게 바로 파라다이스다. 똑바로 누웠다가 뒤집었다가 다시 모로 뒤집고 내 맘대로다. 진짜 좋고 좋다. 이 시간, 이 순간만은 천하의 어떤 자도 내 자유에 손댈 수가 없다. 나는 쾌재를 부른다. 이렇게 나만의 시간이 있다. 또 만세 만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잠깐이다. 면봉 들어간 자리가 아프다. 또 찌릿. 탈 났네. 아프다. 감이 안 좋다. 일어나 병원부터 찾아야겠다. 내 인생이 본래 이랬다. 기쁨이 있으면 그만한 슬픔이 반드시 따라서 왔다. 행복하다고 생각했는데 뜻하지 않은 일로 울적해진다. 동전의 양면 같다. 밝은 면이 있으면 어두운 면이 있다. 뜨끔! 또 귀가 쑤신다. 또 뜨금! 자꾸 아플 것이다. 간지러움을 지우려고 면봉에 맡긴 순간의 쾌락이 나를 또 병원으로 이끈다. 


인생아, 인생아, 내 인생아!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