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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그리고 서울]속전속결은 민주주의의 위험

 

첫 단추를 잘 못 끼워서일까. 한국 민주주의는 좀처럼 진일보하지 않는다. 21대 국회는 20대 국회와 별반 다름없이 불협화음의 연속이다. 야당은 원하는 상임위원회 자리를 차지할 수 없다고 국회를 보이콧하고 여당은 추경 예산안을 단독으로, 그리고 속사포로 처리한다.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의 알력도 마찬가지다. 추미애 장관은 윤석열 검찰총장을 희화화하고 사퇴를 압박하지만 윤 총장은 두문불출이다. 설득과 타협이라는 민주주의의 대전제는 그 어디에서도 작동하지 않는다.


국민들은 사사건건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청원을 하고 클릭 수가 30만이 되었느니, 40만이 되었느니 야단들이다. 언론은 이를 이슈화해 갈등을 유발하고 여론전쟁으로 몰아간다. 사건의 본질을 둘러싼 사회적 토론은 온 데 간 데 없고 숫자놀음으로 속전속결 재판해 버리는 한국민주주의는 과연 이대로 괜찮은가.


삼성 이재용 부회장의 불기소 사건은 그런 의미에서 할 말이 많다. 이 부회장은 경영권 승계를 위한 지배구조 개편 작업으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불공정 합병, 자본시장법 위반, 분식회계 등의 혐의를 받고 있다. 얽히고설킨 이 문제를 수사하기 위해 검찰은 그간 무수한 시간을 투자해 왔다. 그러나 수사심의원회는 단 10시간 만에 결론을 내렸다. 10대 3이라는 압도적인 차로 이 부회장의 승리다. 번개 불에 콩을 구워먹어도 유분수다.


물론 수사심의위원회를 나무랄 생각은 추호도 없다. 허점투성이인 이 제도를 만든 사람들이 문제다. 이번 정부는 검찰의 기소권을 제약하기 위해 수사심의위원회 제도를 만들었다. 의도는 좋다. 그러나 이 제도가 안고 있는 약점은 꿈에도 몰랐던 모양이다.


일찍이 대중 연구의 선구자인 귀스타브 르봉(Gustave Le Bon)은 ‘군중심리’에서 대중의 속성을 비이성적이며 전염성과 휘발성이 강하고 분위기에 약한 집단으로 묘사하고 있다. 지금은 21세기로서 르봉이 살았던 시대와 물론 다르다. 더욱이 한국과 프랑스의 대중은 차이가 날 수 있다. 하지만 르봉이 말한 대중의 일반적인 속성은 예나 지금이나 태평양, 인도양, 이편이나 저편이나 오십보백보다.


월터 리프먼의 미국의 대중을 보면 알 수 있다. 1920년대, 30년대 미국 광고업계의 황태자였던 리프먼은 그의 저작 ‘여론/환상의 대중’에서 대중의 우매함을 묘사하고 있다. 리프먼은 광고에 속아 넘어가는 무수한 소비자들을 보면서 플라톤의 우화의 동굴을 떠올렸다. 동굴에 갇힌 사람들은 벽에 투영된 사물의 그림자만 볼 수 있지 사물의 진짜 본질은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대중은 쉽게 속아 넘어가는 특성이 있다. 글자 그대로 환상의 대중이다.


1970년대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브르디외(Pierre Bourdieu) 역시 그의 논문 ‘여론은 존재하지 않는다’에서 대중을 그리 똑똑하게 보지 않는다. 대중은 번뜩 떠오르는 생각에 좌우되어 확고하지 않은 의견을 표명한다. 따라서 사람들의 정치적 사고 능력을 반영하는데 있어 분명 한계가 있다고 주장한다. 


대중, 즉 여론은 이처럼 시공을 초월해 결코 변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 그런 여론에게 지금 한국 민주주의는 너무 많은 것을 맡기는 듯하다. 이 상황을 좋은 민주주의로 평가하기 어렵다. 50년간의 독재를 단숨에 따라잡겠다고 속전속결 하지 말고, 시간을 두고 주도면밀하게 따지며 해야 한다. 이제는 그만 우물에서 숭늉을 찾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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