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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희의 미술이야기] 신성한 예배, 그리고 작품

 

교회 발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확산이 우리 사회를 충격에 빠트렸다. 소셜미디어 대화방에서 지인들이 교회에 관한 이야기를 건네 때면 나도 모르게 주눅이 들어 수다를 이어가기 어려워진다. 물론 코로나 사태가 터진 이래 교회에 나가지 않았다. 일상생활도 최대한 조심스럽게 이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를 다닌다는 이유로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을 대할 때마다 어쩐지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든다.

 

며칠 전 대통령이 주최한 회동에 참석한 한 종교 지도자는 이번 사태에 대하여 송구함을 표하는 한편, 교인들에게 종교의 자유와 예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역설했다. 이 자리는 삶의 안전성과 종교적 가치가 극명히 대비되는 자리이기도 했다. 나를 비롯한 수많은 교인들에게는 예배의 신성함이란 과연 무얼 의미하는지 돌아보게 했던 기회가 됐으리라.

 

오랜 세월 미술가들에게 예배는 매우 중요한 모티프가 되어왔었다. 예배의 장소에 웅장한 작품이 걸리면 의식의 신비로운 분위기는 한껏 고조되곤 했다. 그리하여 르네상스 시대에는 미술가들이 예배의 장소를 통해 유명세를 떨치는 경우가 많았다. 미켈란젤로의 경우 교황의 권위에 어쩔 수 없이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를 완성했다. 높은 교회의 천장에 누운 자세로 매달려 몇 년 동안 그림을 그려야 했던 일은, 일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던 미켈란젤로에게도 피하고만 싶은 고된 일이었다. 하지만 권력을 앞세워 자신을 협박하는 교황의 명령을 끝내 피하지는 못했다.

 

작업의 결과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천장화는 매우 웅장하고 아름다워서 보는 이들을 단번에 압도했다. 그 시절 종교화는 글씨를 모르는 성도들에게 성경의 내용을 전하기 위한 매우 훌륭한 도구였다. 예배에 참석하면서 그 웅장한 그림을 감상했던 이들의 감격을 우리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예배는 신성한 의식이라는 절대적이 명제가 성립되는 순간이었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는 위대하다. 하지만 오늘날 사람들은 그 예배의 장소를 다양한 각도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천장화의 작품이 그만큼 웅장했다는 것은 교회의 건축과 장식에 그만큼 많은 돈을 들였다는 이야기이며, 교회가 그만큼 타락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화가를 험난한 작업으로 내몰았던 교회의 권력은 역사에 기리 남을 작품을 완성하는 결과를 낳았지만 우리는 그것을 꼭 정당하다고 여기지는 않는다. 예술가의 위대함에 의심을 품는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교회의 권력과 예배의 신성함에 대하여 많은 이들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앙리 마티스의 경우 몸이 아픈 자신을 정성으로 돌보아준 자크 수녀와의 우정에 감동이 되어 로사리오 성당 건축에 참여하게 된다. 예배당 안에는 시스티나 천장화와 같은 압도적인 분위기의 정교한 작품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대신 다채롭고 청량한 빛들이 가득하다. 몇 년 동안 류머티즘을 앓아왔던 마티스는 오랜 시간 붓을 들고 있기조차 힘든 몸 상태였다. 하지만 예술가로서의 자질을 격려해 주고 화가의 작업을 도왔던 자크 수녀 덕분에 그는 성당의 벽화와 스테인드글라스, 각종 제단 소품들을 완성할 수 있었다. 비록 정교한 솜씨를 발휘할 수는 없었지만 작업에 임하면서 작가가 느꼈던 행복감이 예배당에 고스란히 담겼다. 물론 이들 작업은 말년의 화가의 예술혼이 흠뻑 담긴 훌륭한 작품들이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한참 전 개봉했던 우리나라 영화의 제목 ‘밀양’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영어로는 ‘Secret Sunshine’, 즉 숨겨진 빛이라는 의미의 제목이다. 한 예술가를 충만하게 했던 영감에 ‘밀양’이 깃들어 예배당을 채우고 공간에 머무는 이들을 감동시켰다면 이 또한 진리일 수 있다. 하지만 예배당에 놓여있던 작업들의 의미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다양하게 해석되었다. 그 장소에서 행해졌던 예배의 의미도 마찬가지이다.

 

‘밀양’, 한동안 이 단어를 마음에 지니고 있어야 할 듯하다. 주변을 돌아보며 그동안 믿어왔던 가치에 대해 회의를 품기 시작한 자들에게는 침묵의 신앙, 밀양의 신앙이 필요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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