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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디지털교도소’의 사적 응징, 법치 근간 위협

사이버 시대의 괴물 지뢰밭…원천적으로 제거해야

  • 등록 2020.09.09 06:27:26
  • 13면

주로 성범죄 혐의가 있는 이들의 신상정보를 임의로 공개해온 누리집 ‘디지털교도소’의 개인정보 공개로 한 대학생이 결백을 주장하다가 숨지는 비극이 발생하면서 ‘사적 응징’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공적 기관에 대한 깊은 불신을 파고드는 ‘사적 복수’는 선동적 공감을 얻을 가망이 다분하다. 그러나 ‘사적 응징’은 법치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결정적인 병폐로 작동할 수 있는 까닭에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게 옳다.

 

불세출의 명배우 크린트 이스트우드가 주연한, 1973년 제작된 미국영화 ‘더티 해리2-이것이 법이다’는 무기력한 공권력의 허점을 파고드는 ‘사적 응징’의 명암을 극명하게 드러낸 명작이다. 권력과 금력의 힘으로 법망을 빠져나가는 인사들을 처단하는 사적 응징을 일삼는 신참 교통경찰 3인조 뒤에 브릭스 반장이 있다는 사실을 주인공 경찰 갤러한이 밝혀내는 내용이다. 영화에서처럼 우리 사회에는 범죄를 저지르고도 교묘히 빠져나가는 존재들이 없지 않다.

 

지난 6월 만들어진 홈페이지 ‘디지털교도소’에는 성범죄와 살인, 아동학대 등 3개 유형에 100여 명의 신상이 올라와 있다. 디지털교도소 운영진은 사이트를 개설하면서 “대한민국 악성 범죄자들의 신상정보를 직접 공개해 사회적 심판을 받게 하겠다”고 밝혔다. 피해자들이 신속하게 구제되지 못하고 가해자들이 처벌을 받지 않는 현상으로 억울해하는 이들이 많은 현실 속에서 심정적으로 호응하는 네티즌들이 상당할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타인 신상정보를 법적 근거 없이 공개하는 것은 명백한 불법이다. 우리 형법은 제21조 (정당방위)나 제23조 (자구행위) 규정으로 긴급하거나 불가피한 방어적 불법행위를 합법으로 인정한다. 그러나 수사가 진행되지 않거나 법원 판결이 나지 않은 상태에서 특정인을 범죄자로 단정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디지털교도소’에는 누구나 납득할 만한 객관적 기준조차 없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의 말처럼, ‘사적 제재’라는 불법성이 해소될 여지가 없는 이런 사이트는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물론 일단의 사회현상으로서 ‘디지털교도소’가 시사하는 바는 상당하다. 성범죄자 등에게 솜방망이 처벌을 내리는 사법체계에 대한 시민들의 실망이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유전무죄(有錢無罪), 유권무죄(有權無罪)라는 조소가 세상에 남아있는 한 의적 홍길동·임꺽정·일지매, 암행어사 박문수 같은 의인에 대한 선망은 깊을 수밖에 없다. 어디선가 슈퍼맨이나 스파이더맨 같은 이가 나타나 불의를 물리치고 악을 순식간에 제거했으면 좋겠다는 절박한 심리가 내재하는 것이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법 앞에 평등한 진짜 정의로운 사회는 우리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최고의 시대적 가치다. 법치는 그 최소한의 장치이자 최후의 보루다. 비록 현재의 법치에 허점이 있다 하더라도 작은 틈을 허락하여 ‘사적 복수’가 둑 터진 듯 횡행하게 해서는 안 된다. 막아야 할 명분은 충분하다. ‘디지털교도소’는 좀 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시대적 경종이긴 하지만, 결코 허여돼선 안 된다. 철두철미한 봉쇄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법이 무엇인지 그 본질을 입증할 사명이 사법 당국에 무겁게 드리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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