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가 없다면 유권자는 과연 정치인으로부터 무얼 얻어낼 수 있을까. 직접민주주의를 신봉했던 루소는 “영국시민들은 선거 때만 자유로울 뿐 선거가 끝나는 순간 노예로 전락한다”며 대의제 민주주의를 꼬집었다.
이러한 풍경은 비단 영국에서만 연출된 것일까. 루소가 살았던 프랑스는 어떠한가. 2017년 대선을 한 번 보자. 후보자들은 유권자들의 환심을 사기위해 각종 공약들을 내걸었다. 그 중 ‘대박’을 친 정책은 아몽 후보가 내건 기본소득제였다. 아몽은 사회당 오픈프라이머리가 열리기 전 각종 여론조사에서 발스(Manuel Valls) 후보에게 크게 밀렸다. 그러나 정작 오픈프라이머리가 열리자 기본소득제를 크게 쟁점화해 발스를 무려 18% 포인트 차로 물리쳤다. 본선에 나간 아몽은 2017년 프랑스 대선을 기본소득전으로 몰아갔다.
그 덕에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은 뜨거워졌고, 프랑스인 60%가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반전이 일어났다. 만성병에 걸린 기존 복지제도로는 청년실업률과 소득불평등을 해소할 수 없다고 판단한 유권자들이 기본소득에 큰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그러나 아몽은 완승했다고 볼 수 없다. 우선 대선에서 졌고, 또한 그의 기본소득은 엉성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하지 않던가. 기본소득제가 설득력을 얻기 위해서는 구체적이어야 한다. 하지만 아몽의 기본소득은 개념부터 모호했다. 기본소득제를 노동시장의 자동화와 일자리의 디지털화라는 측면에서 정당화하고자 했지만, 이 소득은 무엇보다 구매력을 보장해야만 한다. 경제성장이 둔화된다 할지라도 기본소득은 어느 정도의 경기활성을 동반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기본소득을 실시하려면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기본소득이 마크로 경제정책을 얼마나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 재원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소득재분배는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 기본소득은 어떤 사람들에게 노동을 거부하도록 부추길 소지는 없는 것인가. 이런 질문에 아몽은 명확한 답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아몽의 기본소득안이 물거품이 된 것은 아니다. 그가 정치적으로 크게 쟁점화시킨 덕에 프랑스 15개 지역이 기본소득 실험을 자처하고 나섰고, 다른 기본소득 지지자들도 앞 다퉈 모델을 제시하기에 이르렀다.
현재 코로나 정국 속에서 위기를 타파할 해법으로 기본소득제가 재점화되는 것도 결코 우연은 아니다. 그 동안 기본소득을 반대했던 우파들도 지지자로 변하고 있다. 공화당의 프라디에(Aurélien Pradié) 사무총장은 10여 명의 의원들과 함께 18세에서 25세 청년실업자들에게 700유로를 지급하는 기본소득제를 설계 중이다.
그러나 프라디에안은 아몽의 것과 크게 다르다. 급진좌파정당인 ‘불복종하는 프랑스’의 카테낭(Adrien Quatennens) 의원은 “기본소득 제안자들마다 각기 버전이 다르다”고 역설한다. 이에 아몽은 “모두가 기본소득을 다시 들고 나와 그 원칙의 타당성을 따져보는 것을 보니 기쁘기 그지없다”라고 말한다.
2022년 프랑스 대선에서 기본소득은 또 다시 뜨거워질 전망이다. 아몽은 내년 대선에 불출마하지만 기본소득에 대한 생각이 그와 비슷한 후보를 밀겠다고 밝혔다. 이에 불복종하는 프랑스의 멜랑숑(Jean-Luc Mélenchon) 대표는 아몽과 협의할 각오가 되어 있다고 러브콜을 보낸다. 프라디에 사무총장은 공화당 대선 주자가 들고 나갈 기본소득안을 올 여름 전에 구체화할 계획이다.
프랑스 정당들은 이처럼 내년 대선 빅 어젠다로 떠오르고 있는 기본소득안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루소의 말처럼 유권자는 선거 때나 왕이 된다. 후보자들은 좋은 경쟁상품을 내 놓고, 우리는 왕처럼 최상의 상품 하나를 우아하게 고를 수 있다면 이 보다 멋진 선거판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