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는 말이 있다. 이는 자본주의의 논리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말은 성경구절로 기독교문명의 서구사회 논리다. 이 관념이 무너질 찰나에 놓여 있다. 코로나 위기 앞에 기본소득 논의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하지 않는 데도 매월 꼬박꼬박 돈을 준다는 기본소득. 이런 세상이 온다면 이는 분명 혁명이다. 프랑스의 유명한 싱크탱크 장-조레스 재단(Fondation Jean-Jaurès)이 “프랑스가 기본소득제를 도입한다면 이는 혁명에 가까운 조치”라고 보는 이유다. 프랑스 기본소득의 상징인 아몽 역시 “기본소득은 새로운 사회계약(contra social)의 시작”이라고 평가한다.
이러한 혁명을 정치인 혼자만의 힘으로 가능할까. 제갈량이 살아 돌아온다 해도 어림없는 소리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시민이 뭉치는 수밖에 없다. 프랑스는 기본소득제 도입을 위해 시민들이 발 벗고 나섰다. 지난해 5월 프랑스 정치인들, 경제인들, 대학교수들, 시민단체 대표들은 일반시민들과 함께 수상과 예산회계부장관, 보건복지부장관, 국무장관을 소환했다. 2021년 재정 법안에 기본소득을 추가해 줄 것을 요구하기 위해서였다. 프랑스의 이 법안은 유럽에서 선구적인 것으로 기존 수당들의 정비를 뛰어넘어 진정한 기본소득을 창설하기 위한 것이다.
프랑스 기본소득, 시민이 발벗고 나섰다
여당의원 쁘띠(Valérie Petit)와 싱크탱크 제네라시옹리브르(GenerationLibre)의 창립자 코엥(Gaspard Koenig), 경제학자 바스키아(Marc de Basquiat) 3인이 주도해 기본소득 서명운동도 시작했다. 지난 해 5월 시작할 때는 45명의 여·야당 국회의원들과 법관, 기업인, 철학자, 대학교수, 작가, 시민단체대표들, 대학원생 총 85명이 동참했다. 인간의 실존을 보호하고 보다 나은 세계로 나가기 위해서는 좌·우파 이념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명분을 건 이 거국적 운동에 동참하는 시민들은 자꾸 늘어가고 있어 현재는 1160명이 되었다.
변화의 물결을 거역할 수 없었던 것일까. 코르시카 주 정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본소득 실험을 희망하고 나섰다. 프랑스 의회도 마찬가지다. 지난 해 11월 기본소득인 “시민의 디딤돌(socle citoyen)”을 창설할 공공토론 개시를 위해 결의안을 채택했다. 사회당 의원들과 그와 연합한 의원들이 제시한 기본소득안을 필두로 논의를 벌일 계획이다. 내년 4월 대선에 나갈 주자들도 기본소득에 대한 입장을 밝히지 않으면 안 될 처지가 되었다. 이처럼 프랑스 기본소득 시계는 찰칵찰칵 돌아가고 있다.
기본소득 실현, 정치인만으로는 불가능
그러나 프랑스가 여기까지 오는 데는 인고의 세월이 필요했다. 1970년대 기본소득을 논의하기 시작해, 1980년대 기본소득네트워크가 활성화 됐다. 그 후 많은 싱크탱크와 전문가들이 기본소득 모델을 앞 다퉈 개발하고 토론과 논쟁을 벌여왔다.
우리 기본소득이 실현되려면 이 같은 과정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프랑스처럼 반세기가 걸려야 한다는 소리는 아니다. 다만 이 제도가 한국에 도입되려면 지금처럼 해서는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이재명 지사를 선두로 극소수만 기본소득을 주장하고 있지 대부분은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기본소득은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혁명에 버금가는 일이다. 많은 이들이 두려워하고 의문을 쏟아낼 수밖에 없다. 이 가시밭길을 가려면 무엇보다 치밀한 연장들을 준비하고 국민의 이해와 협조가 있어야 한다. 한국의 기본소득 지지자들은 대상을 누구로 할 것인지, 소득수준은 얼마가 적정한지, 재원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등을 고려해 모형을 만들고 실험해 하루빨리 공공의제로 올리기 바란다. 설득의 장이 없으면 시민의 이해와 협조를 절대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