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때는 공장에 가는 학생의 수가 많은 대학 순서대로 명문대였는데, 지금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국가시험도 거부하며 반발하는 이기주의자가 많은 순서대로 명문대다.”
이렇게 말하며 고개를 흔드는 8090년대의 청년들은 이 시대의 20대 청년들을 잘 모르는 것 같다.
1980년까지 대학생들 대부분은 대학교 배지를 달고 다녔다. 다른 건 몰라도 80년대의 대학생들이 제 옷깃에 달았던 대학 배지를 스스로 뗀 일은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일이었다.
80년대의 대학생들은 80년 5월, 광주가 짓밟히는 것을 외면하고 침묵했던 자신들이 정의와 진리를 표상하는 대학의 배지를 달 자격이 없다고 여겼다.
80년대 청년들의 힘은 반성을 실천으로 옮긴 결단과 행동력이었다. 모든 언론이 광주민중항쟁을 북한의 사주에 의한 폭도들의 만행으로 도배질을 하고 있을 때, 광주항쟁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싸우다 제적당하고, 감옥으로 간 것이 80년대 청년 학생들이다. 고작 ‘가리방’으로 등사한 유인물 몇 장 뿌리고 개처럼 두드려 맞으며 끌려간 그들에게 대한민국의 검사와 판사들이 구형하고 선고한 형량을 합하면 몇 만 년이 될지 모른다.
그렇게 감옥으로 간 숫자보다 더 많은 대학생이 졸업장을 포기하고 공장으로 갔다. 1980년대 중반 공장노동자들의 하루 일당이 3770원이었다. 잔업과 철야는 언제나 관리자의 마음이었다. 오후 3시에 반장이 와서 알려주기 전까지는 자신의 퇴근 시간이 6시일지, 9시일지, 다음날 오전 5시일지 알 수 없었다. 완벽한 무권리 상태에서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던 노동자들과 친구가 되어 ‘나에게 대학생 친구 한 명만 있었으면’했던 전태일의 외로움에 응답했던 이들이 80년대의 청년 학생들이었다.
90년대 청년들은 87년 6월 민주화 대투쟁과 7, 8월 노동자 대투쟁을 통해 겨우 문을 연 민주주의를 폭넓게 확산시키며 정착시켰다. 분단을 독재의 수단으로 이용해온 권력을 극복하기 위한 대중적인 평화 통일운동의 지평을 한껏 넓힌 것도 90년대 세대의 성취였다.
그러나 8090년대 그토록 빛났던 그 청년들을 바라보는 지금 20대 청년들의 시선은 아주 차갑다.
지금의 20대는 8090세대의 청년 정신이 만들어냈던 신기루와 같은 시대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대학 배지를 뗀 8090세대는 대학 간판이 아닌 시대정신을 중심으로 연대하는 청년정신을 발휘했고, 학벌이 아닌 가치 중심의 질서를 만들었다. 서울대도, 연고대도 아닌 한양대의 임종석을 전대협의장으로 뽑고, 지도력이 대학서열 순으로 발휘되는 것이 아님을 그들 세대는 압도적인 대중의 능력으로 입증하며 학벌주의와 소영웅주의를 극복했다. 서울의 이름난 대학의 학생이 옆 학과 학생보다 지방의 유명하지 않은 대학의 전대협 친구와 더 친했다. 8090세대는 가치를 중심으로 연대했고 전대협은 하나의 캠퍼스였다.
그러나 지금 어떤가. 8090세대 청년들이 가졌던 가치 중심의 연대는 거짓말처럼 아득히 사라지고 70년대 이전보다 더 강고한 학벌주의와 서열주의가 다시 자리 잡았다. 서울에 있는 10개 대학의 순서가 조선왕조 족보처럼 통용된다. 40년 전에는 그래도 머리 좋고, 열심히 하면 명문대에 들어가고 개천에서 용도 났다. 지금은 금수저 은수저 쇠수저, 제가 물고 태어난 수저 순서대로 대학에 들어온다.
대학의 서열 따위는 따지지도 않고, 국회의원과 동네호프집 주인이 스스럼없이 형, 아우 하며 지내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전대협 캠퍼스 동문들만 모른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사다리 하나 보이지 않는 기울어진 운동장에 서 있는 지금 20대 청년들의 절망을.
캄캄했던 절망의 시대를 놀라운 씩씩함으로 돌파해냈던 청년 정신의 귀환을 기대한다. 8090세대와 더불어 이 시대의 청년들을 지키는 사수대장 이인영, 이 시대 청년들의 미래를 돌파하는 선봉대장 임종석이 되어 주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들을 의장으로 뽑았던 8090의 청년 세대는 그냥 꼰대가 되지 않았다. 8090세대에게는 아직도 반성하고 행동할 줄 아는 힘이 남아있다. 아파하는 이 시대의 청년들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등을 내줄 준비가 된 꼰대들이라고 나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