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5 (목)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안휘의 시시비비] ‘노이즈 라이팅’

  • 안휘
  • 등록 2021.08.04 06:00:00
  • 13면

 

오래전 어느 날 아침 온 동네 길거리에 ‘옹녀와 변강쇠’라는 빨간색 여섯 글자만 달랑 적힌 광고지가 즐비하게 나붙었어요. 잠깐 궁금해하다가 금세 노이즈 마케팅(noise marketing)이란 개념을 떠올리긴 했지요. 사전에는 ‘자신들의 상품을 각종 구설수에 휘말리게 함으로써 소비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켜 판매를 늘리려는 마케팅 기법’이라는 풀이가 나옵니다.

 

곧바로 신고가 들어갔을 텐데도 그 광고지는 며칠 동안이나 붙어있었어요. 그리고 얼마 후 ‘옹녀를 기다리는 변강쇠’는 개업을 앞둔 나이트클럽 상호라는 말이 들려왔지요. 제대로 홍보하기 위해 써야 하는 돈에 비하면 나중에 물게 되는 벌금은 껌값이라더군요. 느닷없이 나붙은 야릇한 전단 광고지 배경에 그런 영악한 셈법이 도사리고 있다는 걸 알고 무릎을 쳤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사이버 세상에서 이제 노이즈 마케팅은 점점 더 기법이 다양화 지능화하고 있습니다. 노이즈 스피킹(speaking), 노이즈 라이팅(writing)에다가 교묘한 네거티브 광고에 이르기까지 천태만상이지요. 조금만 잘못 건드려도 헌법상 보장된 ‘표현의 자유’ 논란이 일어나니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요, 아무리 그래도 때로는 참 큰일이구나 걱정이 드네요.

 

폭증하고 있는 유튜브 시장을 보면 흥미를 자극하는 노이즈 마케팅의 역설(逆說) 품앗이가 본의 아니게 만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청백으로 나뉘어 무조건 내 편만 들며 마구 떠들어대는 유튜버들의 궤변 놀음에 솔직히 별로 감동은 없어요. 그게 돈벌이 수단이라니 측은한 생각도 들어요. 교언영색 선의인(巧言令色 鮮矣仁)이라는 공자 말씀은 이 시대에도 딱 들어맞는 듯해요.

 

말도 말이지만, 글은 더 큰 문제입니다. 평생을 글쓰기로 먹고 살아왔지만 갈수록 ‘글은 비수(匕首)’라는 말을 실감하게 돼요. 무심코 끄적거린 댓글 하나가 사람을 살리기도 죽이기도 하는 세상이 됐잖아요. 도쿄올림픽 3관왕에 오른 자랑스러운 양궁선수 안산에게 가해지는 잔인한 문자폭력을 보니 가슴이 너무 아프네요. ‘여대에 쇼트커트이면 무조건 페미(페미니스트)’라는 억지를 쓰면서 ‘메달 박탈’까지 언급했다니 참으로 기가 막힙니다.

 

불순한 목적으로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배설하고, 그 배설물을 퍼 날라 클릭 장사를 하고, 그걸 빌미로 논란과 이슈를 제조해내는 노이즈 공급시스템을 언제까지 묵묵히 봐줘야 하나요? 로이터통신의 명명대로 이는 분명히 용서해선 안 될 ‘온라인 학대’ 범죄입니다.

 

양궁 3관왕에 오른 후에 열린 기자회견에서 안산 선수는 “경기력 이외의 질문엔 노코멘트”라고 잘라 말했다지요. 사대 위에서 마음이 흔들리 때마다 “쫄지 말고 대충 쏴!”라고 혼잣말하며 마음을 가라앉혔다고도 하는군요.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세상이 이토록 허술한데, 우리의 젊은이들 가운데 이렇게 건강한 아이들이 있다니, 그나마 다행 아닌가요?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