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클루언의 통찰 가운데 어쩌면 가장 논쟁적이고 수용하기 어려운 것은 핫 미디어와 쿨 미디어의 구분일 것이다. 미디어 연구자들은 미디어를 핫(Hot)과 쿨(Cool)로 구분하는 발상에 대해 아무런 근거도 없는 엉뚱한 발상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럴까?
국제학술지 《유럽공중보건저널》의 연구에 따르면, 미국과 유럽의 39개 나라 10대 청소년들의 음주량이 부모 세대의 젊은 시절보다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오스트레일리아와 스웨덴의 연구진은 여러 나라의 청소년을 대상으로 실시한 인터뷰를 토대로 청소년 음주 감소에 영향을 준 4가지 요인을 확인했다.(한겨레신문 2021년 12월 27일자)
그중 하나로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따라 사람들과 교제하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는 점을 꼽았다. 사람들과 술을 마시며 교제하기보다는 소셜 미디어 등 인터넷 공간의 정보와 콘텐츠를 이용하며 홀로 시간을 보내는 시간이 많다는 것이다. 부모 세대의 지배적 미디어와는 차원이 다른 미디어의 존재가 주요 요인 중의 하나라는 얘기다.
매클루언의 논지는, 미디어가 바뀌면 감각비율과 지각비율에 변화가 온다는 것이다. 언어를 사용해 대화를 하는 것과 문자로 기록한 글을 읽을 때의 느낌이 다르다는 사실은 경험적으로 인정할 것이다. 감각비율과 지각비율이 다르기 때문이다. 말(청각)과 글(시각)은 뇌에서 처리하는 영역부터 다르다. 오감 중에서 가장 민감한 곳이 청각이라는 사실도 기억해두자. 시각과 청각을 동시에 작동하는 것도 쉽지 않다.
매클루언에 따르면 핫 미디어는 하나의 단일한 감각을 고밀도(high definition)로 확장시키는 미디어이고, 쿨 미디어는 반대로 정보량이 빈약한 저밀도의 미디어다. 정보가 꽉 찬 핫 미디어는 완결성이 높아 참여의 여지가 적은 반면에, 제공되는 정보량이 적은 쿨 미디어는 빈 공간을 채우려는 참여의지를 북돋운다. 말은 쿨 미디어, 글은 핫 미디어다.
사람의 뇌는 파충류의 뇌(뇌간)로 태어나 포유류의 뇌(변연계)를 거쳐 인간의 뇌(대뇌)로 성장한다. 세 살까지 기간의 기본 성장 과정에서 미디어가 주는 영향이 크다. 뉴런과 뉴런을 연결하는 시냅스는 10~12세 사이에 왕성하게 발달한다. 인간의 뇌에서 가장 나중에 완성되는 영역으로서 성격과 사회성을 좌우하는 대뇌 전두엽의 발달은 17~18세에 마무리된다. 그 나이 또래에 지배적인 미디어가 무엇이었느냐에 따라 인간의 본성과 사회성이 영향을 받는 것은 물론이다.
부모세대가 인쇄 미디어 세대라면, 지금 청소년들은 전기 미디어의 세대다. 인쇄 미디어는 전문 분야를 세분하는 스페셜리스트를 선호하지만, 전기 미디어는 전자기장처럼 융합적인 제너럴리스트를 선호한다. 인터넷은 무한의 공간에 비해 상대적으로 정보량이 적은 쿨 미디어로서 참여의 시대를 열었다. 웹 2.0과 함께 성장한 MZ세대는 디지털과 모바일에 익숙하고, 쿨 미디어인 SNS에 참여해 적극적으로 토론하고 새로운 문화를 창출해낸다. 매클루언이 옳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