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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의 언제나, 영화처럼] 이런 곳에서 진실이 밝혀질 수 있다고 생각해?

64. 드라이 - 로버트 코놀리

 

호주에서 온 영화 ‘드라이, The Dry’는 가물고 건조한 내용의 작품이다. 그래서인지 영화의 상당 부분이 호주의 말라붙은 땅을 그려내는 데 주력한다.

 

키와라(가상 도시)라는 지방에 320여 일 동안 비가 내리지 않는다. 계곡과 들판 모두가 다 말라붙었다. 사람들도 그렇다. 모두들 대체로 삐쩍 마른 데다 영혼마저 건조해졌다(실제로 호주는 2010년부터 현재까지 극심한 가뭄과 엄청난 홍수를 반복하는 기후변화에 시달리며 살아간다. 이 영화의 원작이 된 제인 하퍼의 동명 원작 소설은 2016년에 나왔다). 사람들 사이에서도 물이 흐르지 않는다. 다들 고립돼, 무미하고 건조하게 살아갈 뿐이다. 그런데 이곳에서 가족이 몰살당하는 사건이 터진다.

 

루크라는 이름의 한 남자가 자신의 아내인 카렌과 아들을 죽이고 자살한 것으로 보이는 사건이다. 멜버른에 있는 루크의 친구이자 민완형사인 주인공 애론(에릭 바나)은 장례식에 와 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루크의 아버지는 애론에게 “루크는 내게 거짓말을 했어. 너도 내게 거짓말을 했어”라는 묘한 내용의 쪽지를 보낸다.

 

 

진실 역시 말라붙었다. 계곡 사이로 흘러야 할 진실의 강은 메마른 지 오래다. 사건 현장을 지나친 것으로 알려져 용의자 취급을 받는 마을의 한 남자는 애론에게 말한다. “이런 곳에서 진실이 밝혀질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오랜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애론은 자신이 얽힌 과거의 사건 때문에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건 이미 짐작했던 일이다.

 

20년 전 애론과 루크는 여학생 엘리, 그레첸과 단짝이었다. 넷은 자주 계곡으로 가 수영을 즐기며 어울린다. 그러다 엘리가 물에 빠져 죽는 일이 벌어지고, 애론이 엘리를 살해했다는 오해를 받는다. 루크와 그레첸도 이 사건 후 헤어지게 됐고,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루크는 카렌과 결혼을 했고, 그레첸은 누군지 알 수 없는 남자와의 사이에서 애를 하나 낳아 싱글맘으로 살아간다. 그렇게 20년이 지난 후 루크와 가족이 석연찮은 이유로 몰살당하게 되자 애론은 오랜 연정의 복수심이 그레첸으로 하여금 루크와 카렌 부부를 살해하게 한 것 아닐까라는 의심을 갖게 된다.

 

오랜 친구이자 새롭게 애인으로 발전할 수도 있었던 애론과 그레첸은 이 한 가닥 ‘의심’으로 서로를 급격하게 외면한다. 그런 심리적 줄다리기를 겪으면서까지 애론은 루크 가족의 죽음에 얽힌 비밀을 찾으려 한다. 그리고 그것이 20년 전 벌어진 엘리의 죽음과 연관이 있는지 알아내려 분투한다.

 

 

진실은 비록 20년 지난 후에라도, 그렇게 시간이 엄청나게 흘러간 후에라도 결국 밝혀지기 마련이다. 만고의 진리다. 문제는 그 시간의 흐름 동안 진실의 실체가 왜곡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의 관계를 비틀어 놓는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사람 개개인의 마음속에 황폐한 어두움을 드리운다는 것이다. 모두들 밝혀지지 않는 진실의 무게에 짓눌려, 그 트라우마에 허덕이며 살게 된다.

 

과거의 비밀은 현재의 사건과 연결돼 있다. 현재의 비밀을 풀기 위해서는 과거의 사건 속에서 그 열쇠를 찾아야 한다. 과거는 현재이고 현재는 과거이다. 어떤 누구도 그 뫼비우스의 띠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영화 ‘드라이’는 비밀의 껍질에 휩싸이는 순간 인간은 끝없이 약해지고 동시에 악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오해와 억측이 해소되지 않는 한 인간의 관계는 회복되지 않는다. 공동체의 삶은 평안해지지 않는다.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은 늘 고독한 법이고, 문제는 그게 꼭 속 시원한 결론을 도출하지도 못한다는 점이다. 진실은 때론 상대적인 것이어서 전모를 밝히기보다는, 일부를 끝내 묻어둬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진실이 모두를 다 살려내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세상과 인생은 늘 최선보다는 차선을, 최악보다는 차악을 선택하게 한다. 그 부조리가 못내 견디기 힘들게 하지만, 삶이라는 것 자체가 부조리한 것이다. 그것을 깨닫는 것은 일종의 통찰의 순간에 해당한다. 영화 ‘드라이’의 주인공 애론도 어느 순간 모든 비밀을 꿰뚫게 된다.

 

영화는 사실 중간중간 애론이 찾아내는 실마리를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펼쳐 놓긴 한다. 그런데 그게 너무 신중해서 사건의 실체를 깨닫고 진범을 알아내는 데까지 시간이 걸리게 한다. 영화는 나름 의외의 반전을 보여 주는데, 여기서 반전이라고 하는 이유는 처음엔 좀 더 그럴듯한 원인, 조금 덜 세속적인 배경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죽은 루크와 그의 죽음을 수사하는 애론은, 옛 여자친구인 엘리의 죽음에 어떻게든 관여가 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자신들의 알리바이를 함께 조작해 공유하고 있는 사이인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루크의 죽음은 당초, 과거의 원죄에서 벗어나려는 그의 다분히 종교적이고 정신적인 이유 때문인 것으로 짐작하게 만든다. 그러나 영화는 그러한 예상의 궤도를 타지 않는다. 극 후반 사건이 전개되는 롤러코스터 같은 분위기는 역설적으로 오히려 다소 진부하게 느껴진다.

 

 

키와라라는 호주의 시골 마을은 어쩌면 호주 전체, 더 나아가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 전체를 대변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불신에 가득 차 있고 대체로 다들 고립돼 살아가며, 상대를 존중하거나 배려하려는 태도 따위는 사라진 지 오래다. 오로지 자기변명들만 가득한 삶들이고, 오로지 자신 혼자만을 위한 생존 본능으로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키와라 마을 사람들은, 우리들 자신의 자화상이다. 사람들은 더 이상 행복하지가 않다.

 

이들의 관계를 복원하는 건, 현재의 이슈를 해결하고 과거의 진실을 밝히는 것이다. 과거의 문제는 과거로 끝나지 않는다. 현재의 문제는 결국 현재를 뛰어넘어 과거가 된다. 과거와 현재는 그렇게 공감각적으로 만나게 된다. 과거와 현재, 어느 하나를 해결하지 않는 한 문제는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 그중 어느 하나만 해결한다 해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애론은 정말 엘리의 죽음과 관계 있는 것일까. 그의 친구 루크는 왜 아내와 아들을 쏴 죽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일까. 그리고 그게 ‘팩트’일까. 두 사건은 어떻게 연결돼 있는가. 주인공 애론은 과거와 현재의 연관성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애론은 과거의 사건으로 마을 사람 모두에게서 받는 오해와 냉대를 풀기 위해선, 현재의 사건을 해결해야 한다고 믿는다. 개인의 문제는 결국 전체의 문제이고, 내 안의 마음의 문제는 내 바깥에서 벌어지는 세상사의 문제이다. 안은 밖이고 밖은 안이다. 그 둘은 늘 연결돼 있다.

 

 

호주라는 곳, 특히 키와라라는 가상공간이 상상하게 하는 호주 빅토리아주의 모습은 광대함 그 자체이다. 영화는 그 광활함이 갖는 격리의 느낌을 물리적으로 보여주고 또 강조하기 위해 오프닝 신부터 줄곧 풀 숏과 부감 숏의 구도를 보여준다. 인간은 저 거대한 자연 속에서 한낱 미약한 존재에 불과하고 공간에 의해 철저하게 규정되는 존재임을 느끼게 해 준다. 저렇게 어마어마한 황야에서 살아간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유추하게 한다. 때문에 저럴수록, 저렇게 점점이 떨어져 살 수밖에 없는 물리적 환경이라면 더더욱, 가족적 유대와 따뜻한 연대가 필요하다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인간의 연대의식은 애초부터 있는 것이 아니라 시간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며 훈련되는 것이다. 그 교육에 소홀하면 공동체는 존재하지 않게 되고 인간 스스로도 망가진다. 같이 살 수 없는 인간 사회는 인간 개개인 스스로를 파멸시킨다.

 

영화 ‘드라이’는 물 한 방울 스며있지 않은 마른 광야를 통해 메마를 대로 메말라진 현대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사람들은 그가 그 일을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보다 저질렀을 수도 있다는 의심에 더 비중을 두며 살아간다. 서로 간의 유대가 무너진 사회의 전형적인 증상이다. 서로가 서로를 잠재적 범인으로 간주한다. 인간은 선한 길보다는 악할 길을 택한다. 그 비극의 땅에는 대체로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법이다. 파멸은 그렇게 온다. 영화가 기이하고 불길한 느낌에 휩싸여 있다고 느껴지는 이유다. 어둡고, 무엇보다 극도로 건조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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