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숙 경기대 한반도전략문제연구소 부소장·파리정치대학 정치학박사](https://www.kgnews.co.kr/data/photos/20220831/art_16595767550761_719c9f.jpg)
프랑스인들의 추앙을 받는 오노레 드 발자크(Honoré de Balzac). 그는 문학의 거성이었다. 짧은 생애 동안 수려한 소설을 100편 넘게 썼고, 주인공이 2000여 명 넘게 등장하는 그의 방대한 ‘인간희극’은 불멸의 전설이 됐다. 하지만 그는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다갔다.
1799년 파리 남서부 뚜렌(Touraine)에서 태어난 오노레. 그의 아버지는 22사단 식량관리인 베르나르-프랑수아 발싸였고 어머니는 장식끈 제조업자의 딸 안 샤를롯트-로르였다. 샤를롯트-로르는 열여덟 살 때 스물다섯 살 연상인 발싸와 결혼해 오노레를 낳았다. 쉰이 넘어 아버지가 된 발싸이지만 이상하게 아들에게 애정을 주지 않았다.
아버지의 전근으로 오노레는 14살 때 파리로 왔다. 이때 발싸(Balssa)는 파리지엥(파리사람)이 되려고 성을 발자크(Balzac)로 바꿨다. ‘오노레 드 발자크’는 이런 경로로 탄생했다. 발자크는 법무사가 되려고 법과대학에 다녔다. 그러나 졸업 후 작가로 방향을 틀었다.
험난한 길이었다. 희곡을 쓰는 족족 실패했고 빚더미에 빠졌다. 꿋꿋하게 글을 써 내려갔고 쉬지 않고 원고를 다듬었다. 책이 나오기까지 열일곱 번이나 출판사와 원고를 주고받았다. 주옥같은 그의 글은 천재성이 아닌 피와 땀의 결정체였다. 이런 그를 사모한 귀족 부인 이브 한스카(Eve Hanska)와의 사랑은 절절하다. 이 여인과 발자크는 마라톤급 연서를 주고받았다. 하지만 함께 하기엔 장애가 너무 많았다. 포기하지 않았고 이들은 돌파해서 결혼했다. 그러나 신은 시기했다. 병든 발자크는 결혼 5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다.
![사세성, 발자크 박물관](https://www.kgnews.co.kr/data/photos/20220831/art_16595767409548_918ac5.jpg)
발자크의 문학적 산실은 그의 고향 뚜렌이었다. 소년기에 떠났지만 항상 자랑스러워했고 종종 찾아 갔다. 특히 뚜렌 한 가운데 있는 사세(Saché) 성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 이 성의 조용한 작은 방에서 번잡한 파리와 고통스런 빚을 잊고 매일 16시간씩 글에 몰두했다. ‘고리오 영감’, ‘루이 랑베르’, ‘세자르 비로토’, ‘잃어버린 환상’은 모두 여기서 집필한 것이다. 사세성이 직접 영향을 준 것은 앵드르 계곡의 목가적인 풍경을 묘사한 ‘골짜기의 백합’이다.
이 소설에서 발자크는 “왜 내가 뚜렌을 좋아하는지 더 이상 묻지 마라. 나는 인간이 요람을 좋아하거나 사막의 오아시스를 좋아하는 것처럼 뚜렌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이곳을 좋아하는 것은 예술가가 예술을 사랑하는 것과 같다. 뚜렌 없이 나는 더 이상 살 수 없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뚜렌에 대한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는 최고의 묘사다.
![‘여자들의 성’ 슈농소 성](https://www.kgnews.co.kr/data/photos/20220831/art_16595767411424_6beb9d.jpg)
그렇지만 한 마디 하겠다. 뚜렌과 루아르!! 프랑스 최고의 성의 도시. 알알이 박힌 성들은 밤하늘의 별과 같다. 그 성 중에는 여자들을 위한 것, 남자들을 위한 것이 있다. 슈농소는 ‘여자들의 성’으로 세르 강 위에 둥둥 떠 있어 피안의 세계를 연상시킨다. 샹보르는 ‘남자들의 성’으로 프랑수아 1세, 다빈치, 앙리2세, 루이14세 등 명예로운 남자들이 살았다. 테마여행을 계획한다면 발자크와 성을 찾아 뚜렌으로 떠나 보라. 후회 없는 여행이 될 것이다.
![‘남자들의 성’ 샹보르 성](https://www.kgnews.co.kr/data/photos/20220831/art_1659576741311_2af92c.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