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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숙의 프랑스예술기행] 오노레 드 발자크와 뚜렌

 

프랑스인들의 추앙을 받는 오노레 드 발자크(Honoré de Balzac). 그는 문학의 거성이었다. 짧은 생애 동안 수려한 소설을 100편 넘게 썼고, 주인공이 2000여 명 넘게 등장하는 그의 방대한 ‘인간희극’은 불멸의 전설이 됐다. 하지만 그는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다갔다.

 

1799년 파리 남서부 뚜렌(Touraine)에서 태어난 오노레. 그의 아버지는 22사단 식량관리인 베르나르-프랑수아 발싸였고 어머니는 장식끈 제조업자의 딸 안 샤를롯트-로르였다. 샤를롯트-로르는 열여덟 살 때 스물다섯 살 연상인 발싸와 결혼해 오노레를 낳았다. 쉰이 넘어 아버지가 된 발싸이지만 이상하게 아들에게 애정을 주지 않았다.

 

아버지의 전근으로 오노레는 14살 때 파리로 왔다. 이때 발싸(Balssa)는 파리지엥(파리사람)이 되려고 성을 발자크(Balzac)로 바꿨다. ‘오노레 드 발자크’는 이런 경로로 탄생했다. 발자크는 법무사가 되려고 법과대학에 다녔다. 그러나 졸업 후 작가로 방향을 틀었다.

 

험난한 길이었다. 희곡을 쓰는 족족 실패했고 빚더미에 빠졌다. 꿋꿋하게 글을 써 내려갔고 쉬지 않고 원고를 다듬었다. 책이 나오기까지 열일곱 번이나 출판사와 원고를 주고받았다. 주옥같은 그의 글은 천재성이 아닌 피와 땀의 결정체였다. 이런 그를 사모한 귀족 부인 이브 한스카(Eve Hanska)와의 사랑은 절절하다. 이 여인과 발자크는 마라톤급 연서를 주고받았다. 하지만 함께 하기엔 장애가 너무 많았다. 포기하지 않았고 이들은 돌파해서 결혼했다. 그러나 신은 시기했다. 병든 발자크는 결혼 5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다.

 

 

발자크의 문학적 산실은 그의 고향 뚜렌이었다. 소년기에 떠났지만 항상 자랑스러워했고 종종 찾아 갔다. 특히 뚜렌 한 가운데 있는 사세(Saché) 성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 이 성의 조용한 작은 방에서 번잡한 파리와 고통스런 빚을 잊고 매일 16시간씩 글에 몰두했다. ‘고리오 영감’, ‘루이 랑베르’, ‘세자르 비로토’, ‘잃어버린 환상’은 모두 여기서 집필한 것이다. 사세성이 직접 영향을 준 것은 앵드르 계곡의 목가적인 풍경을 묘사한 ‘골짜기의 백합’이다.

 

이 소설에서 발자크는 “왜 내가 뚜렌을 좋아하는지 더 이상 묻지 마라. 나는 인간이 요람을 좋아하거나 사막의 오아시스를 좋아하는 것처럼 뚜렌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이곳을 좋아하는 것은 예술가가 예술을 사랑하는 것과 같다. 뚜렌 없이 나는 더 이상 살 수 없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뚜렌에 대한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는 최고의 묘사다.

 

 

그렇지만 한 마디 하겠다. 뚜렌과 루아르!! 프랑스 최고의 성의 도시. 알알이 박힌 성들은 밤하늘의 별과 같다. 그 성 중에는 여자들을 위한 것, 남자들을 위한 것이 있다. 슈농소는 ‘여자들의 성’으로 세르 강 위에 둥둥 떠 있어 피안의 세계를 연상시킨다. 샹보르는 ‘남자들의 성’으로 프랑수아 1세, 다빈치, 앙리2세, 루이14세 등 명예로운 남자들이 살았다. 테마여행을 계획한다면 발자크와 성을 찾아 뚜렌으로 떠나 보라. 후회 없는 여행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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