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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추위도 녹이는 익명 기부천사들의 선행

“나보다 더 힘든 이에게” 폐지 주워 모은 돈 기부한 기초생활수급자

  • 등록 2022.12.29 06:00:00
  • 13면

금강경에 나오는 ‘무주상보시(無主相布施)’는 내가 무엇을 누구에게 베풀었다라는 생각조차 없이 돕는다는 말이다. 성경에도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알지 못하도록 하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물질 우선주의가 판치는 이 세상에서 ‘무주상보시’와 ‘왼손이 모르는 선행’을 베푸는 사람을 만나기란 어렵다. 사회는 갈수록 각박해 진다. 그럼에도 이름을 밝히지 않은 인간천사들의 기부 소식이 잇따라 들려와 혹한의 연말을 훈훈하게 하고 있다.

 

지난 15일엔 익명의 주민이 수원시 팔달구 지동 행정복지센터에 쌀(10kg) 101포를 기증했다. 3년 동안 조금씩 모은 돈으로 쌀을 구입했다는 그는 함께 보낸 편지에서 “나도 시각장애 3급으로 한국실명예방재단의 도움으로 계속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재단의 도움을 받으면서 나 역시 어려운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복지사각지대에 있는 취약 계층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19일엔 익명의 기부자가 수원시 권선구 세류2동 행정복지센터 앞에 선물을 두고 갔다. 햇반 10박스, 라면 10박스, 스팸 2박스 등 식료품이었다. 작은 보탬이라도 함께 하고 싶다는 뜻을 적은 편지도 발견됐다.

 

인구 6만 2000명 남짓한 가평군에서도 익명기부가 잇따르고 있단다. 15일 조종면 행정복지센터에 60대로 보이는 남성이 찾아와 100만원을 기탁했다. 신원을 알려달라는 센터 직원의 요청을 한사코 거절했다는 이 남성은 2018년부터 매년 12월 중순 쯤 센터에 100만원씩 기부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 7일에는 60대 부부가 센터를 방문해 딸의 축의금을 더 의미 있게 쓰고자 가족들이 뜻을 모았다며 300만원을 기부했다. 조종면에는 이달 들어 60대로 추정되는 남성 2명이 각각 100만원과 500만원을 센터에 기탁하는 등 익명 기부 천사들의 선행이 이어지고 있다.

 

나벌어 나먹기도 힘들다는 요즘 이같이 따듯한 마음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진다는 것은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모두 사랑과 자비심이 충만한 기부천사들이다.

 

그 중 가슴 먹먹하도록 감동을 주는 선행이 있다. 지난 19일 60대로 보이는 익명의 남성이 57만 8070원을 어려운 저소득층을 위해 써달라며 수원시 영통구 망포1동 행정복지센터에 기부했다. 기부자는 기초생활수급비와 폐지 주워 모은 돈으로 생활하는 기초생활수급자였다.(관련기사 본보 22일자 7면) 망포1동 행정복지센터에 따르면 기부자는 얼마 되지 않은 돈을 기부하는 것이 부끄럽다며 익명으로 기부 처리해달라는 한 마디를 남기고 사라졌다고 한다.

 

그가 두고 간 비닐봉투 속에는 1000원‧1만원 권 지폐와 10원짜리부터 500원짜리 동전이 가득 있었다. 기부자는 2021년부터 지속적으로 폐지를 주워 번 돈을 모아 망포1동 행정복지센터에 기부해왔다고 한다. 그는 올해만도 4차례나 센터에 총 120만 원 정도를 기부했다고 한다.

 

16일에도 권선구 곡선동행정복지센터에 익명의 기부천사가 다녀갔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80대 여성은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달라며 현금 100만원을 기부했다. 폐지를 수거하고 기초생활수급비를 아낀 돈이었다. 추운 날씨에 힘들게 폐지를 모아 번 돈을 기부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직은 우리 사회에 희망이 있다. 기부문화가 더 확산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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