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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태가 변하는 모든 것이 ‘조각’…에르빈 부름 ‘나만 없어 조각’展

오스트리아 대표 작가 ‘에르빈 부름’ 국내 최대 개인전
변하는 형태, 부피가 증감하는 “모든 ‘현상’ 자체가 조각”
조각·사진·회화 등 61점 작품 선봬
3월 19일까지, 수원시립미술관

 

재료를 깎고 새기거나 빚어 입체 형상을 만드는 것. ‘조각’이 가진 이 개념을 뛰어넘어 신체를 통한 행위, 사진도 조각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전시가 있다.

 

지난 달 7일 수원시립미술관에서 개막한 오스트리아 조각가 에르빈 부름의 국내 최대 규모 개인전 ‘에르빈 부름: 나만 없어 조각’이다.

 

에르빈 부름(Erwin Wurm, 1954-)은 오스트리아의 빈과 림부르흐를 기반으로 작업하는 동시대 조각가로 2017년 제57회 베니스비엔날레 오스트리아 국가관 대표 작가이다.

 

그는 1980년대 말 일상적인 옷을 조각의 재료로 사용하며 독자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형태가 변화하거나 부피가 증감하는 모든 ‘현상’ 자체를 조각으로 보았다. 1990년대에는 자신의 신체를 소재로 하는 조각에서 시작하여 90년대 중반 이후 조각의 대상을 ‘행위’로까지 확장했다.

 

이렇듯 1980년대 후반부터 약 40년간 이어져 온 에르빈 부름의 작업은 조각의 본질과 형식에 관한 탐구이다.

 

전시는 ▲사회에 대한 고찰 ▲참여에 대한 고찰 ▲상식에 대한 고찰 등 총 3부로 구성돼 작가의 61개 대표작을 선보인다.

 

 

◇ 살이 찌고 빠지는 과정도 ‘조각’

 

작가는 “음식 섭취를 통해 살이 찌고 빠지는 과정은 우리가 살면서 가장 먼저 겪을 수 있는 조각적 경험”이라고 말한다.

 

그는 1990년대 초반 ‘8일 만에 L 사이즈에서 XXL 사이즈 되는 법’(1993) 같은 작품을 통해 사람의 신체도 조각의 일부로 바라봤다.

 

이 작품은 체중을 증가시키는 방법에 관한 책 형태의 ‘텍스트 조각’이다. 주된 내용은 먹고, 자고, 다시 먹고…거의 움직이지 않고 고열량의 음식을 섭취하라는 것. 작품은 ‘비만’이라는 동시대 현안을 담아 현대인들의 미에 대한 관념을 성찰해보게 한다.

 

 

울퉁불퉁 부풀려진 ‘팻 컨버터블(팻 카)’(2019)은 사람의 얼굴을 한 분홍색 자동차로, 마치 지방이 가득 찬 모습이다.

 

귀여우면서도 우스꽝스러운 이 작품은 현 상태에 만족하지 못하고 자꾸만 더 크고 좋은 것을 갈망하는 현대 자본주의, 소비 지상주의 사회를 풍자한다.

 

이와 동시에 날씬한 신체에 대한 강박에 가까운 집착, 비만과 빈곤의 모순적인 관계 같은 현대 사회의 문제에 대해서 고민해볼 것을 제안한다.

 

2020년 사순절을 기념하기 위해 오스트리아 슈테판 대성당 중앙 제단에 걸렸던 ‘사순절 천’은 높이 11m, 폭 7.5m의 거대한 보라색 니트이다. 미술관 층고를 넘어 3m 가량은 바닥에 펼쳐져 전시됐다.

 

전시를 기획한 박현진 학예사는 “작가는 보라색 천을 걸어 놓는 행위를 따뜻한 니트로 대체해 이웃을 돌보는 마음을 전한다”고 설명했다.

 

에르빈 부름은 “지금 사회가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인류들이 점차 변화하고 있다. 과거 우리는 키도 작고 몸집도 왜소했다”며 “어떻게 보면 이 작품은 미래 인류들이 입을 수 있는 옷이 아닐까 생각하며 작업했다”고 말했다.

 

 

◇ 시간성을 담은 ‘조각’

 

1분 내외의 짧은 시간 동안 관람자가 직접 조각이 돼보는 참여형 연작 ‘1분 조각’은 조각에서 형태를 이루는 덩어리를 완전히 없애고 그 공간에 1분이라는 시간성을 담아 ‘행위’가 조각이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작가의 이름을 세계적으로 널리 알린 작품이기도 하다.

 

작품은 간략한 지시 드로잉, 일상의 사물 그리고 좌대로만 구성된다.

 

작가는 “행위(action)도 조각이 될 수 있을까?”, “동작의 속도를 늦춘다면 조각이라고 할 수 있을까?” 같은 아이디어를 발전시킴으로써 조각의 개념을 확장한다. 그에게는 ‘시간’도 양감, 부피, 표면처럼 조각의 중요한 구성요소이다.

 

제목에 등장하는 ‘1분’은 ‘짧은 순간’을 표현하는 상징적인 숫자일 뿐이고 실제로 작품을 수행하는 시간은 10초가 될 수도, 2분이 될 수도 있다. 작가는 모든 것이 금방 쓰고 버려지는 현대 사회의 속도에 맞는 조각을 만들고자 짧은 시간을 선택했다.

 

 

에르빈 부름은 “‘1분 조각’ 연작은 개인적으로 재미를 느끼는 작품이다”며 “이 ‘희망 이론’ 작품도 귀여운 인형이지만 제목에는 철학적이고 사회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다른 작품들도 내면의 의미가 담겼다”고 작품을 즐기는 방법을 전했다.

 

 

◇ 평면 역시 ‘조각’

 

최근 작가는 추상 형태로 옮기는 과정에 집중해 새로운 조각의 흐름을 만들어 가고 있다. 작가의 작품 세계에서는 평면도 ‘조각’의 범주에 속한다.

 

일상을 유머러스하게 담은 ‘게으름을 위한 지시문(Instructions for Idleness)’(2001)은 ‘사진 조각’으로 분류된다.

 

이 연작은 작가가 직접 모델이 돼 게을러지는 법을 다각도로 풀어낸 사진 작업이다. 하품하기, 잠옷 차림으로 있기 등의 사진과 텍스트는 작가 특유의 재치를 잘 보여준다. 작가는 사회 관계망 속 현대인들의 완벽한 모습이 사실은 전부 허구이며, 우리가 ‘거짓된 시간’ 속에 있다고 말한다.

 

 

또한 작가에게는 회화도 ‘조각’이 된다. 플랫 조각(Flat Sculptures)을 이루는 각각의 제목들(스킨, 소프트, 플랫 등)은 모두 작가의 지난 작품들과 관련된다.

 

그는 ‘쓰인 것과 보이는 것의 차이’를 표현하고자 단어를 거의 알아볼 수 없도록 추상적으로 변형했다.

 

작가의 설명에 따르면, 화면 속 글자들은 밀대로 납작하게 눌린 듯한 형태이다. 그 형태는 부풀어 오른 ‘팻 조각’ 시리즈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일반적인 조각과는 다른, 무형의 생각만으로도 조각을 만들 수 있다는 에르빈 부름의 작업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전시 ‘에르빈 부름: 나만 없어 조각’은 오는 3월 19일까지 만날 수 있다.

 

[ 경기신문 = 정경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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